기적에 관하여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28
데이비드 흄 지음, 이태하 옮김 / 책세상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기적은 자연 법칙의 위반이다. 확고하고 불변하는 경험은 자연의 법칙을 확립해왔으며, 따라서 모든 경험에 입각한 추론이 완벽한 것처럼 기적에 상반되는 증거 역시 그 성격상 완벽하다... 자연의 일상적인 과정에 따라 일어난 것이라면 어떤 것도 기적이 될 수 없다. 건강해 보이는 어떤 사람이 갑자기 죽었다면 그것은 기적이 아니다. 그러한 종류의 죽음은 일상적인 것은 아니지만 종종 목격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면 그것은 어떤 시대에도 어떤 지역에서도 목격된 적이 없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기적이다. 따라서 모든 기적적인 사건에는 그것에 상반되는 일양(一樣)적인 경험이 있게 마련이며, 그렇지 않은 경우 그 사건은 기적이라 불릴 수 없을 것이다. _ 데이비드 흄, <기적에 관하여>, p19

점점 계몽됨에 따라 우리는 개국 역사에는 기적적이거나 초자연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고, 기적적이거나 초자연적인 것들은 신비한 것을 향한 인류의 일상적인 성향에서 야기된 것이며, 이 같은 성향이 식견과 학식을 통해 종종 제어를 받기는 하지만 인간 본성에서 철저히 근절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_ 데이비드 흄, <기적에 관하여>, p24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 ~ 1776)은 <기적에 관하여 Of Miracles> 에서 자연 법칙을 위반하는 현상을 기적이라고 정의하고, 이러한 자연 법칙의 위반이 종교의 토대가 될 수 없음을 비판한다. <기적에 관하여>에서 흄은 경험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낮은 사건보다 일상에서 발생할 가능성을 높은 사건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것을 주장하면서 종교란 이성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 아니라 신앙의 측면에서 다가가야함을 말한다.

흄의 기적에 대한 비판과 관련해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흄이 정의한 기적이 바로 자연 법칙을 위반하는 기적, 즉 위반 기적이라는 점이다. 기적이란 종교를 지지하는 합리적인 토대이기보다는 오히려 신앙의 표현임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흄의 기적에 대한 비판이 갖는 철학적 의의를 종교의 참된 토대는 이신론자들이 신뢰했던 경험과 이성이라는 인간의 자연적인 인식 능력이 아니라 신앙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_ 데이비드 흄, <기적에 관하여> 해제, p113

이 기적이 어떤 새로운 종교 체계와 연관될 경우, 사리 분별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거부할 뿐 아니라 심지어 아무런 확인 없이도 거부할 만큼 거짓임이 명확한 우스꽝스러운 거짓말에 모든 사람들이 속아왔다... 어떤 다른 사태에 관한 증언에서보다 종교적 기적에 관한 증언에서 진리의 위반이 좀더 흔한 일이기에 종교적 기적에 관한 증언의 권위는 훨씬 더 약화될 수밖에 없다. _ 데이비드 흄, <기적에 관하여>, p35

이성만으로 기적의 진실성을 확증시키는 것은 역부족이다. 신앙에 의해 기적에 동의하는 사람은 누구나, 인간 이해력의 모든 원리를 전복시키며 관습과 경험에 어긋나는 것을 믿게 만드는, 자신의 인격 안에서 지속되고 있는 어떤 기적을 의식한다. _ 데이비드 흄, <기적에 관하여>, p38

사실, <기적에 관하여>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신앙심이 깊은 모든 사람들에게 기적이 생긴다면 우리 삶은 제대로 영위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죽지 않거나 죽어서도 살아나고, 모든 병에서 낫고, 하는 일마다 잘 된다면 더이상 기적이 아닌 일상일 것이고, 기적으로 인해 우리 삶은 그보다 더 불안해질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과연 신은 원할까?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몰렸을 때 기적을 바라게 된다. 지금 이 순간을 피하게 해달라는 바람. 여기에 더해 만약 기도를 이루어 준다면, 다른 무언가를 하겠다는 흥정까지. 인간이기에 당연하게 드는 마음이겠지만, 참된 기적은 그것을 넘어선 것이 아닐까.

큰 시련이 왔을 때, 어려움이 닥쳤을 때 사람의 마음을 한데 모을 수 있다는 것. 완고했던 마음을 풀고 나보다 남을 더 배려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이것 자체가 안정을 추구하는 생명의 본성을 거슬리는 위대한 기적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우리는 언제나 바라는 기적을 얻지는 못하지만, 기적 안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흄이 말한 신앙의 토대 위에 선 종교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결국 기적이란 신앙의 다른 이름이며 올바른 신앙이란 올바른 기적관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흄의 지적처럼 인간은 본성적으로 기적을 바라는 성향을 지니고 있어서 오늘날과 같이 고도로 문명화된 시대에도 여전히 우리는 기적을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러나 기적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오직 요행을 바라는 위반 기적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이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토대를 붕괴시킬 것이 틀림없다. 따라서 기적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참된 종교와 사교(邪敎)를 구별하는 하나의 시금석이 되며, 이러한 점에서 흄의 기적에 대한 소론은 참된 종교와 사교가 혼재하며 서로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는 종교다원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다. _ 데이비드 흄, <기적에 관하여> 해제,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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