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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성과 그 문제들
존 듀이 지음, 정창호.이유선 옮김 / 한국문화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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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와 사회적 실천
존 듀이 지음, 김진희 옮김 / 책세상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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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으로서 예술 2
존 듀이 지음, 박철홍 옮김 / 나남출판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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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으로서 예술 1
존 듀이 지음, 박철홍 옮김 / 나남출판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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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와 사회적 실천 고전의 세계 리커버
존 듀이 지음, 김진희 옮김 / 책세상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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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상대성의 개념을 받아들인다면, 자유주의의 개념은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더 억압적으로 느끼는 세력에 항상 관계되어 있다는 점이 보다 분명해진다. 구체적으로 자유는 특정한 억압적 세력의 영향으로부터의 탈피를 의미한다. 그것은 한 때는 인간의 삶의 당연한 부분으로 간주되었지만 오늘날에는 속박이 된 것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_ 존 듀이, <자유주의와 사회적 실천> , p53/146

자유주의(自由主義)에서 자유(freedom)은 언제나 ‘-으로부터의 자유(free from)‘의 형태로 정의된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자유로부터 도피 Escape From Freedom‘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조금 예외적이긴 하지만, 존 듀이(John Dewey, 1859 ~ 1952)에게 자유는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여, 이로부터 우리는 듀이의 ‘자유론‘이 단순한 ‘절대권력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닌 생존과 인간일수 있도록 하는 보다 적극적 형태의 자유임을 알게 된다.

자유주의는 영속적이며 유연한 목적, 곧 능력 실현이 개인의 삶의 법칙이 될 수 있도록 개인을 자유롭게 하는 것에 전념한다. 자유주의는 변화의 방향을 제시할 수단으로서 해방된 지성의 사용에 전념한다. 문명은 진행되는 변화들을 사회 조직의 일관된 형태로 통합하는 문제에 직면한다. 자유주의 정신이 요청받는 상像은 모든 개인의 정신과 영혼이 인격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실질적 자유와 기회를 가능하게 만드는 사회조직이다. _ 존 듀이, <자유주의와 사회적 실천> , p61/146

무엇보다 듀이의 자유주의에서 주목할 점은 자유주의와 사회적 실천의 결합이다. 듀이가 개탄했듯이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는 이들은 자유를 원자화된 개인에게 귀속시키려고 했고 사회 변혁을 목표로 한 이들은 개인의 자유와 개별성을 부르주아적 가치로 폄하하고 배척했다. 그 결과는 불평등한 체제에 대한 정당화, 혹은 비민주적 전체주의의 양 극단으로 나타났다. 반면 듀이는 사회 변혁의 중심에 개인의 자유와 개별성의 발현을 위치 지음으로써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지속이라는 풀리지 않는 갈등 관계에 실마리를 제공했다. _ 존 듀이, <자유주의와 사회적 실천> , p10/146

또한, 이러한 해석으로부터 개인은 국가와 사회에 대해 ‘냅둬유‘ 수준의 laissez-faire가 아닌 권리자로서 생존과 발전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음을 저자는 본문을 통해 강조한다. 소극적 의미의 자유만을 강조했을 때, 개인은 사회의 원자(原子)로서 각자도생(各自圖生)을 꾀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산업혁명과 과학혁명 이후 많은 분야가 전문화, 대규모화한 현대 사회에서 소극적 의미의 자유가 과연 생존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인가. 듀이는 이 점에서 ‘자유‘의 의미가 재해석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현재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것은 자립이 아니라 기생적 의존이라는 사실이 대규모의 사적/공적 구호에 대한 필요를 입증한다. 공적 구제가 그 수혜자를 빈곤하게 하고 사기를 저하시키기 때문에 그에 반대한다는 현재의 주장은, 그 주장이 수백만 달러의 공적 자금의 지원이 필요한 상황을 그대로 수수방관한 사람들에게서 나오기 때문에 모순적으로 들린다. _ 존 듀이, <자유주의와 사회적 실천> , p46/146

E.H. 카(Edward Hallett Ted Carr, 1892 ~ 1982)가 <역사란 무엇인가 What Is History? >에서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대화‘로 규정했다면, 듀이는 자유 역시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사건 사이에서 다시 해석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지성(Intelligence)‘이다.

자유주의의 교리들이 영원한 진리로 확립되는 순간 그것은 진전된 사회 변화를 반대하는 기득권의 도구와 빈말의 제전이 되었으며 그렇지 않으면 새로 등장한 힘에 의해 분쇄되었다. 그러나, 자유, 개별성, 그리고 해방된 지성의 이념은 지속적 가치를 지니는데, 여태껏 그 가치가 지금보다 더 진실한 적은 없었다... 우리는 언제나 과거에 축적된 경험에 의지하지만 항상 새로운 세력이 등장하고 새로운 요구들이 발생하는데, 그것은 그 새로운 세력이 작동하고 새로운 요구가 충족될 수 있도록 과거 경험의 형식에 대한 재구성을 요구한다. 옛것과 새것은 옛 경험의 가치가 새로운 욕구와 목표의 종복이자 도구가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서로 통합되어야 한다. _ 존 듀이, <자유주의와 사회적 실천> , p53/146

지성을 통한 자유의 재해석이 이루어졌다면, 그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사회적 실천이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인식을 담은 제도 개선이 필요하며, 제도 개선을 위해서는 자유주의는 혁명(革命)과 같이 급진적일 필요가 있다. 어제까지의 경험이 오늘날에는 타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변화는 단절적이며 불연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는 인식. 이러한 인식으로 듀이는 급진적 자유주의자로 분류된다.

과거 유클리드 기하학은 뉴턴의 절대공간-절대시간의 토대가 되었다면, 유클리드의 공리(axiom) 하나가 깨어졌을 때, 비(非)유클리드 기하학이 등장했고, 리만 기하학에 기반하여 상대성이론이 받아들어질 기반이 마련되었다는 과학사(科學史)는 듀이의 주장에 대한 자연과학에의 반증이 될 것이다.

처음보다 더 불리한 상황에 있더라도 다시 시작할 필요 없이 조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지성을 사용하는 것이다.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옛것과 새로운 것을 통합에 의해 재구성하는 것이 지성의 본질이다. 그것은 과거의 경험을 지식으로 전환하고 그 지식을 생각과 목적에 투영해 미래에 무엇을 예견하고, 또 바라는 것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지시해준다. _ 존 듀이, <자유주의와 사회적 실천> , p54/146

간단히 말해서 자유주의는 이제 급진적이어야 한다. 그것은 제도 구성의 철저한 변호와 그 변화를 가져올 상응하는 행위의 필요성에 대한 ‘급진적‘ 인식을 의미한다. 현 상태 자체와 그것이 불러올 변화의 간극이 매우 크기 때문에 즉흥적으로 수행되는 단편적 정책으로는 그 간극을 메울 수 없다. 변화를 생성하는 과정은 어떤 경우라도 점진적일 것이다. _ 존 듀이, <자유주의와 사회적 실천> , p65/146

‘자유‘를 단순히 권력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소극적 의미의 해석이 아닌, 해방의 목적까지 고려한 듀이의 자유론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준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의 이론이 절대권력에 대한 순종을 통해 진정한 자유를 얻는다는, 마치 절대신에게 자유의지를 가지고 순명한다는 중세적 종교관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고 생각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 깊게 파야할 것 같지만, 이는 뒤로 미루도록 하자.

다만, 급진적 자유주의자인 듀이도 자유를 지키기 위한 무력과 전쟁에는 반대한는 입장을 보인다. 그렇다면, 자유를 지키기위해 선제타격도 불사하겠다는 ‘선제타격 자유주의자‘는 초급진적 자유주의자라고 봐야할 것인가, 아니면 그저 철학이 없는 ‘굥(空)‘이라고 볼 것인가... 글자 하나가 틀린 듯 하지만, 그냥 빠르게 가도록 하자.

전쟁은 전장에서 발생하는 군사 간 접전이 아니라 모든 일상적인 사회 활동의 마비를 수반한다(p80)... 지성의 사용을 위한 마지막 논지는 그 방법이 사용되면 실제 목표, 즉 결과가 달성된다는 것이다. 폭력 사용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방법이라고 하는 폭력의 필연성의 도그마를 주창하는 자칭 민주주의의 진정한 신봉자들의 주장보다 더 큰 오류를 나는 알지 못한다. 폭력은 대항하는 폭력을 낳는다. 뉴턴의 작용/반작용의 법칙은 물리학에서 여전히 인정되고 있는데 폭력은 물리적이다. _ 존 듀이, <자유주의와 사회적 실천> , p8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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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 2022-10-22 06: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회 변화를 생성하는 과정은 점진적이라는 점, 지성이 사회적 실천이라는 점 등등 여러 대목에서 듀이의 시대가 무엇을 요구하고 있었는지 짐작해 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22-10-22 07:06   좋아요 1 | URL
실질적인 사회변화는 점진적으로 이루어지지만 이러한 변화가 반영되는 제도상 변화는 단속적으로 일어나기에, 듀이가 급진적 혁명을 주장한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초원님 감사합니다.좋은 하루 되세요!^^:)
 

확률의 정리, 특히 무한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다루는 정리는 수학적 결과지만, 특정 물리계에서 이러한 정리를 만족하는 표본공간이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경험적 주장이다. 확률에 근거하고 있는 예측에 대한 확신은 관찰과 검증을 대신할 수 없다.
내가 이 예를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확률론적 결과에 근거해서 실제 세계의 존재를 확실하게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팽창의 예측이든, 단순히 하나의 가능성이든 이해하기 힘든 점은 아주 멀리 떨어진 다른 우주의 존재가 아니라, 우리 각자의 삶을 잉태한 우리 우주의 전체 역사가 무한한 수의 다른 우주에서 동일하게 펼쳐져 있다는 주장이다. 뒷받침할 실험적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무한에 대한 확률 논증에 근거한 이러한 주장은 팽창 이론의 결론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런 맥락에서 테그마크의 주장은 기껏해야 도박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오늘날 인간의 본성을 부정하려는 경향이 존재하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은 정반대다. 우울증, 동성애, 지능, 언어, 난혼, 난독증, 거식증 등과 관련된 유전의 역할에 관한 연구 소식을 접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인간의 두뇌 피질이 가진 무한에 가까운 유연성 때문에 학습은 우리 행동의 대부분을 결정한다. 우리가 학습하는 행동 중에는 말하기, 읽기, 쓰기, 계산, 논리적 생각, 사회적 상호작용, 운동, 악기 다루기 등이 있다. 심지어 서기, 걷기, 손 내밀기와 움켜잡기, 지각 능력과 같이 표면상으로는 닫힌 프로그램을 대표하는 것으로 보이는 행동에도 상당한 학습의 요소가 있다. 인간의 행동과 관련된 학습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이론가들에게 학습이란 구체적이지 않고 수동적인 과정으로, 그들이 인간 행동의 핵심이라 여기는 유전자에 대한 이해를 방해할 뿐인 골칫거리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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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크라이나의 경우는 이야기가 완전히 달랐다. 우선 인구부터 4500만 명이 넘었고 경제 규모나 흑해(Black Sea)에서의 전략적 위치, 또 과거 러시아 제국 시절부터 이어져온 역사적 중요성과 가치를 생각하면 우크라이나의 서방측 동맹군 참여는 러시아로서는 뼈아픈 한 방이 될 수밖에 없었다. 또 당시는 공교롭게도 푸틴 대통령이 이런 서방을 향한 쏠림 현상의 차단 의지를 공식적으로 피력한 시점이었다.

2008년이 흘러가는 동안 러시아는 자신이 보유한 1000억 달러 규모의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의 채권을 시장에 풀어놓는다. 로이터통신의 보도처럼 이런 결단이 내려진 것은 주로 국내 정치사정 때문이었다.54 "위험한 투자에 대해 염려하고 있는 일부 러시아 언론과 국민의 적대감이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2008년 여름이 되자 비단 러시아 민족주의자가 아니더라도 미국의 모기지 증권을 위험한 투자로 보는 시각이 많아졌다. 모기지 대출 위기의 중심에는 정부보증기관(GSE)이 있었고 이 GSE의 눈앞에는 엄청난 실패가 기다리고 있었다. 러시아의 애국시민들은 지금까지 러시아의 국익 문제를 노골적으로 경멸해온 미국을 지원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는 사이 투자금은 안전한 투자처를 찾아 계속해서 대차대조표상에서 빠져나갔고 업계의 다른 분야나 상품들에서도 자금이 이탈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미국에서 일반 은행과 투자은행, 헤지펀드, MMF 등이 대형 사업체들에 공동으로 대출해주는, 즉 이른바 신디케이트론(syndicated loans)의 규모는 2007년 2/4분기에는 7020억 달러였지만 2008년 4/4분기에는 1500억 달러로 엄청나게 주저앉고 말았다.

유럽에서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훗날 있었던 유로존 파산 사태가 아닌 2008년의 위기가 바로 투자와 소비의 심각한 위축과 실업 사태를 만들어냈다. 2007년 하반기부터 독일과 프랑스, 영국, 스위스, 그리고 베네룩스 3국의 크고 작은 은행은 자신이 입은 손실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깨닫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대출 부문이 주저앉았다. 금융 분야가 맨 먼저 타격을 받은 건 그들이 매일 일어나는 방대한 규모의 신용 거래에 가장 크게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금융업과 관련이 없는 일반 기업과 가계로 위기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주택시장의 위기와 함께 2008년의 미국 경제도 크게 침체되었는데 거기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소비 침체였다. 소비 수요가 줄어드니 당연히 생산과 공급이 줄고 실업 문제가 발생했다.46 캘리포니아주 중앙부의 센트럴밸리(Central Valley)의 경우 주택 가격이 반 토막 났을뿐더러 소비도 30퍼센트 줄어들었다.47 급하지 않은 지출은 모두 다 뒤로 미뤘다.

2008년의 금융시장 붕괴를 이토록 심각하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정도를 넘어서는 세계 경제의 예외적인 글로벌 동기화였다. 세계무역기구의 자료에 따르면 104개 국가가 한 곳도 빠지지 않고 2008년 하반기에서 2009년 전반기 사이 모두 똑같이 수입과 수출 감소 현상을 겪었다고 한다. 모든 국가와 모든 종류의 교역 상품이 하나도 예외 없이 경기침체를 겪은 것이다.

제조업 분야가 받은 충격은 수출하는 자동차나 혹은 휴대전화기의 수량 과 관련된 교역량의 감소였으며, 원자재 관련 분야가 받은 충격은 바로 가격 하락이었다.

가장 밑바닥에서 가장 크게 고통받은 사람들은 고등학교 졸업장조차 없는 젊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었다. 뉴욕의 경우 2009년이 계층 사람들의 실업률은 50퍼센트를 웃돌았다.70 전 세계를 기준으로 정확하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는지는 엄청나게 많은 중국 내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추정치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어쨌든 합리적으로 추론할 경우 대략 전 세계적으로 2700만 명에서 4000만 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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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풍경 4 파리의 풍경 4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지음, 송기형 외 옮김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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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원은 심판을 받았다. 지나친 호기심, 편협함과 위선, 수사(修士)연한 어리석음, 수녀연한 정숙한 티가 그곳을 지배한다. 옛 미신의 이 개탄할 만한 유물이 철학이 빛을 전파하는 도시 가운데 존재한다. 그러나 이 신성한 감옥의 담장은 그 희생자들을 모든 지배적인 이념으로부터 분리시킨다. 판편에 가장 묵시적인 복종이, 다른 한편에 편협한 명령권이 존재한다. 이에 덧붙여 대다수의 절망, 일부의 평온한 체념, 더 영적인 이들의 정신적인 우둔화가 나타난다. 여기서 의무란 관행일 뿐이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4>, p64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Louis-Sebastien Mercier, 1740 ~ 1814)의 <파리의 풍경 4 Tableau de Paris>에서 주제를 찾는다면, '제1계급 이야기'로 정할 수 있을 것 같다. '프랑스 대혁명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우리는 습관적으로 '앙시앵 레짐의 모순이 한계점에 이르렀기 때문' 이라 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앙시앵 레짐의 모순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구체제의 모순으로 구체적으로는 제1계급인 성직자와 제2계급인 귀족들의 부패'라고 답하지 않을까. 그리고, 대부분 우리는 이를 “Qu’ils mangent de la brioche!”, 영어로 "Let them eat cake"로 번역되는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d'Autriche, 1755~1793)의 말로 상징화해서 기억하고 있다. 


 실제로는 마리 앙투아네트는 이런 말을 하지 않았고, 모든 사람이 이렇게기억한다는 단정은 아니다. 다만, 속(俗)의 지배계급의 학정은 우리에게도 쉽게 다가오지만, 성(聖)의 지배계급인 성직자 계층의 부정에 대해 쉽게 공감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남북국 시대의 신라말 또는 고려시대 말을 살았다면, 성직자 계층의 부패에 대해서 쉽게 이해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부분도 다시 생각해보니 오늘날 대형교회처럼 꼭 그런것만은 아닐듯 싶다). 서두가 길었지만, <파리의 풍경 4>는 가톨릭 국가에서 제1계급의 권력과 이에 대한 비판이 소개된다.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우리는 가톨릭(catholic)과 라틴어가 갖는 의미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살필 필요가 있다. 


 가톨릭 국가에서 축제일은 1년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사반세기 전에 이에 대한 비판이 있은 후로 그것은 13~14일이 줄었다. 5일 연휴가 여러 번 있으며, 3일의 연휴도 꽤 자주 있다. 그러고도 일요일에는 모든 것을 내던져야 한다. 미신이 공격받고 있지만, 절반밖에 개선이 되질 않았다. 축일이란 교회가 선술집에 가라고 신호를 주는 셈이며, 그날 온통 술꾼들이 거기서 일주일의 벌이를 다 써버리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가게가 문을 닫지 않는 날을 '평일(jours ouvrables)'이라고 부른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4>, p78


 천년제국 로마제국 말기 기독교가 공인된 후 육(肉)의 제국은 붕괴했지만, 영(靈)의 제국은 다음 천년의 유럽을 지배한다. 종교개혁 이후에도 가톨릭 국가에서 성(聖)은 속(俗)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소비(C)는 미덕이라는 말그대로 '고전케인즈주의'의 경제를 실천하는 사상적 토대가 되었다. 이에 반발한 개신교는 이러한 축제에 비판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신교도 국가에서의 경제발전 양태는 사뭇 달라지게 되는데, 이로부터 막스 베버(Maximilian Carl Emil Weber, 1864~1920)가 자본주의 정신의 기원을 찾는 것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가톨릭 세계의 시민이 된다는 것은 세례를 통해 이루어진다. 대부분 모태신앙( 母胎信仰)으로 이어져왔기에, 별다른 의심없이 세계의 일원이 되고 어울려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성직자와 신자들은 교회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의 연결은 주일 미사(Missa)를 통해 강화되는데, 미사전례는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의해 각국 언어로 미사전례가 허용되기 전까지 라틴어로만 진행되었다. 사제에게도, 신자들에게도 라틴어는 큰 부담이었지만, 덕분에 '감시받지 않은 권력'은 일단 손에 넣기만 하면 독점적 이익을 보장해주는 수단이 되었다.


 세례는 매우 중요한 의식이다. 그것은 한 개인의 존재, 지위, 운명을 결정하는 호적을 탄생시킨다. 그의 생애의 모든 상황에서 이 세계증명서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소한 전치(轉置), 사소한 실수도 심대한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이같은 증명서에 실수를 교정하려면 많은 절차가 필요하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에 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4>, p39


 신부는 촛불을 들고 의자 위로 올라간다. 그는 필사본 더미 속에서 필요한 것을 고르고, 거의 값을 깎지 않고 수단 속에 그 경건한 원고 뭉치를 숨겨 황급히 가져와, 방 안에 틀어박혀 좌우에 널린 문장들을 베끼고 훔친 글귀들로 '표적 작품'을 만드는데, 어느 누구도 그에 대해 항의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그의 설교와 찬사를 신부는 버젓이 교회 설교단에 판매한다. 그리하여 큰 수집장을 가진 양피지 제조인에게 그가 준 20에퀴는 100배의 이익을 낳는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4>, p151


 귀족사회가 혈연이라는 붉은 피로 연결되었다면, 성직자 사회는 라틴어를 매개로 푸른 피로 연결되었다. 라틴어를 통한 정보의 배타적 독점(獨占). 수도원이라는 깊은 은둔 안에서 라틴어제국은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문제점을 드러냈고,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의 독일어 성경 번역은 이러한 독점을 깬 파격적인 혁명이었음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이에 대해서도 우리는 대개 '종교개혁=면죄부판매 반대'라는 공식에 익숙해 있지만, 사실 역사는 이면의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움직인다. K-POP의 아이돌 스타 이면에 기획사가 있듯이. 


 모든 것이 라틴어로 되어 있다. 이것이 이 터무니없는 관습을 보급하는 이유인가? 현학자여, 가까이 오라. 그대에게 심지어 공공기념물에까지 국어의 사용을 금지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내게 말하라....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4> , p32


 이것이 깊은 은둔이 하는 일이다. 여기서 모든 열정은 부패한다. 오만은 여기서 훨씬 더 무자비한 성격을 갖춘다. 이 고독한 벽 속에서 중간은 없다. 바로 여기서 영혼은 절멸하든지, 아니면 가장 높은 정도의 사악함으로 상승한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4>, p69


 성숙기에 접어들어 마음속에 가장 강렬한 불꽃이 튀는 시기에, 칩거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 신학생들이 의지할 것이라고는 오로지 신학적인 문제들밖에 없다. 금서 몇 권이 들어오면 유명한 신학적 명제들의 토대가 흔들리고, 신학생들은 그들을 적시고 있는 진리들에 대해 더 이상 확신을 갖지 못한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4>, p127


 그런 면에서 프랑스 대혁명 이전 몰리에르(Jean-Baptiste Poquelin, 1622~1673), 라신(Jean Baptiste Racine, 1639~1699), 코르네유((Pierre Corneille 1606~1684)에 의한 프랑스극(劇)의 발전이 미친 영향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자신의 생각을 담을 수 있는 도구가 생긴다는 것, 이들 작품을 통해 민중들은 시대를 읽을 수 있었고, 시대정신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라틴어의 독점권 소멸은 속(俗)에서 절대권력이 붕괴하는 전조라 할 수 있겠다.


 작가가 불안과 경계심, 전율 속에서 자신의 작품이 공연되는 것을 볼 때, 그의 마음속에서는 그 작품을 판단하는 무서운 군중과의 대화가 이루어진다. 영감을 일으키는 이 순간으로 인해 그에게는 독특한 착상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작가는 그 착상들을 외부로 알리지 않는다. 그것은 작가의 비밀이기 때문이다. 국가를 다스리는 당사자 역시 마음속으로 성찰을 하며 여러 차례 은밀히 미소 짓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어떤 종류이건간에 인간의 무리를 지배하면 그 무리를 비웃고 싶어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의지와는 상관없는 움직임이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4>, p132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동시에 프랑스 대혁명의 부르주아 혁명으로서 한계 또한 발견하게 된다. 노예정신을 가진 이들에게 권력을 주는 것이 과연 타당할 것인가. '자유, 평둥, 형제애'의 프랑스 대혁명 3대 이념에서 '형제애'는 앞의 두 이념에 따라 규정된다. '누가 나의 형제인가? 자유를 함께 누릴 수 있는 힘을 가진 이들인가, 아니면 모든 사람인가'. 로베스피에르(Augustin Bon Joseph de Robespierre, 1763~1789)와 몽테뉴파(La Montagne)의 몰락과 함께 대혁명의 한계는 규정지어졌고, 언어의 이중 견해를 이겨내기 위한 혁명이 아직도 진행 중임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혁명의 한계는 교회의 부패에는 비판적이었음에도, 무신론을 거부하는 대중들의 관용으로부터 시작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기서 니체의 <도덕의 계보>로 눈이 가지만,  헤겔의 <정신현상학>이 다시 번역된 김에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다시 정리하는 것이 순서일 듯하다. 자꾸 예정없는 옆길로 빠지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기한에 쫓기지 않는 독서가 갖는 장점이라 생각하며 일정에 추가하자...


 '이중 견해 - 개방적인 측면은 민중을 위한 것이고, 비의(秘義)적 측면은 교양인과 학자들을 위한 것이라는 견해 - '의 목표는 학문의 명성, 그리고 학문에 힘쓰는 사람들의 명성을 보존하기 위한 책략이 아니라, 노예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진실에 손을 대는 것을 막기 위한 사려 깊은 대비였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4>, p143


 무신론은 인간 정신의 모든 잔악함의 총합이다. 오만, 광신, 무지, 뻔뻔함이 그 안에 포함된다. 그것은 세상의 찬란한 정경을 사막으로 만드는, 정신착란과 매우 유사한 파괴적인 광기이다(p194)... 융통성없는 무신론자는 위험한 존재이다. 가장 계몽된 사람이라도 평범한 백성들처럼 생각해야 한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4>, p195


 글의 마지막은 18세기 프랑스의 풍경 중 재밌는 부분을 옮기는 것으로 대신한다. 예나 지금이나 고급 세단이나 스포츠카에 열광하는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 듯하다. 그런 면에서 '사치'는 앙시앵레짐으로 볼 수 없는 인간본성의 일부로 봐야할까...


 마차는 출세의 험난한 길에 들어선 모든 사람이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이다. 행운이 따르는 첫걸음에 그는 자신이 직접 모는 이륜마차를 구비한다. 두 번째 단계로 사륜마차 쿠페가 온다. 세 번째 단계는 신사용 사륜마차이다. 마지막이 숙녀용 사륜마차이다. 재산이 늘어나게 되면 아들이 자신의 '이륜마차'를 갖는다. 집사가 자신의 '이륜마차'를 갖는다.  _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4>, p376

신문들은 엄격하게 등급이 매겨져 있다. 보조금을 받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지루하고 형편없는 신문이 된다 해도 신문의 특권은 유지된다. 그런데 다른 데 관심을 쏟는 것은 허락하면서 각각의 신문에 제작 능력을 키울 자유는 왜 남겨주지 않는 것인가? 2~3년이 지나면 좋은 신문들은 승리를 구가하고, 나쁜 신문들은 망각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적어도 동일한 금액의 돈은 다시 찾을 것이고, 잉크, 종이 및 활자의 거래는 3배나 더 빨라질 것이다. 굶주림을 호소하는 인쇄업자, 가제본업자, 제본업자, 행상인 등의 라틴어 제국은 이러한 것들로써 먹고 살게 될 것이다. - P291

신문은 가장 거짓말을 많이 하고 가장 뻔뻔스러운 소문의 나팔수들이다... 기자들의 말을 반박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작품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때문이다. 가장 악의적인 비평가들을 쓰러뜨리는 데에도 약간의 시간만 지나면 된다. 훌륭한 상대이든 형편없는 상대이든, 경멸이 담긴 침묵이야말로 그 상대에 대한 가장 확실한 무기이다. - P323

오늘날 계몽철학의 횃불을 끄려 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등대는 불이 밝혀졌고 유럽을 지배하고 있다. 절대 권력의 바람이 그 불꽃을 굽히려 하지만, 그저 그 불길을 일으키고 더 강렬하고 찬란한 광채를 부여할 수 있을 뿐이다. 한 사람의 목소리를 억누르면, 이미 준비하고 있는 20명의 다른 목소리들이 더 크게 인간의 권리를 요구할 것이다. 국가 통치자들로서는 공정하고 온건해지는 것 외에 더 이상 달리 취할 방도가 없다. 인간은 자신들의 권리들을 알았다. 거짓이 지배하는 시기는 지나갔다. - P346

진리는 국민의 중심부로부터 나온다. 사지(四枝)가 정신의 뜻에 따르듯이, 진리는 국민의 의지에 따른다. 머리가 둔하거나 확신을 갖지 못한 사람들의 피신처인 모호함, 애매한 암흑의 상태는 전혀 없다. 편파적인 외침, 과장, 매문(賣文)과 풍자적인 글들이 때로는 진실을 흐리게 하지만, 진실 역시 의견대립의 결과일 뿐이다. 진실은 짙은 구름 같은 것들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성은 그 절정에서 하층민 작가들을 침묵하게 만든다. 또 한편으로는 국민정신이 일관성을 갖고, 변화를 읽고 예측하게 되는 모습을 갖는다. 그러한 것이 정치에서는 성공의 담보가 된다. - P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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