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우크라이나의 경우는 이야기가 완전히 달랐다. 우선 인구부터 4500만 명이 넘었고 경제 규모나 흑해(Black Sea)에서의 전략적 위치, 또 과거 러시아 제국 시절부터 이어져온 역사적 중요성과 가치를 생각하면 우크라이나의 서방측 동맹군 참여는 러시아로서는 뼈아픈 한 방이 될 수밖에 없었다. 또 당시는 공교롭게도 푸틴 대통령이 이런 서방을 향한 쏠림 현상의 차단 의지를 공식적으로 피력한 시점이었다.

2008년이 흘러가는 동안 러시아는 자신이 보유한 1000억 달러 규모의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의 채권을 시장에 풀어놓는다. 로이터통신의 보도처럼 이런 결단이 내려진 것은 주로 국내 정치사정 때문이었다.54 "위험한 투자에 대해 염려하고 있는 일부 러시아 언론과 국민의 적대감이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2008년 여름이 되자 비단 러시아 민족주의자가 아니더라도 미국의 모기지 증권을 위험한 투자로 보는 시각이 많아졌다. 모기지 대출 위기의 중심에는 정부보증기관(GSE)이 있었고 이 GSE의 눈앞에는 엄청난 실패가 기다리고 있었다. 러시아의 애국시민들은 지금까지 러시아의 국익 문제를 노골적으로 경멸해온 미국을 지원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는 사이 투자금은 안전한 투자처를 찾아 계속해서 대차대조표상에서 빠져나갔고 업계의 다른 분야나 상품들에서도 자금이 이탈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미국에서 일반 은행과 투자은행, 헤지펀드, MMF 등이 대형 사업체들에 공동으로 대출해주는, 즉 이른바 신디케이트론(syndicated loans)의 규모는 2007년 2/4분기에는 7020억 달러였지만 2008년 4/4분기에는 1500억 달러로 엄청나게 주저앉고 말았다.

유럽에서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훗날 있었던 유로존 파산 사태가 아닌 2008년의 위기가 바로 투자와 소비의 심각한 위축과 실업 사태를 만들어냈다. 2007년 하반기부터 독일과 프랑스, 영국, 스위스, 그리고 베네룩스 3국의 크고 작은 은행은 자신이 입은 손실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깨닫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대출 부문이 주저앉았다. 금융 분야가 맨 먼저 타격을 받은 건 그들이 매일 일어나는 방대한 규모의 신용 거래에 가장 크게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금융업과 관련이 없는 일반 기업과 가계로 위기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주택시장의 위기와 함께 2008년의 미국 경제도 크게 침체되었는데 거기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소비 침체였다. 소비 수요가 줄어드니 당연히 생산과 공급이 줄고 실업 문제가 발생했다.46 캘리포니아주 중앙부의 센트럴밸리(Central Valley)의 경우 주택 가격이 반 토막 났을뿐더러 소비도 30퍼센트 줄어들었다.47 급하지 않은 지출은 모두 다 뒤로 미뤘다.

2008년의 금융시장 붕괴를 이토록 심각하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정도를 넘어서는 세계 경제의 예외적인 글로벌 동기화였다. 세계무역기구의 자료에 따르면 104개 국가가 한 곳도 빠지지 않고 2008년 하반기에서 2009년 전반기 사이 모두 똑같이 수입과 수출 감소 현상을 겪었다고 한다. 모든 국가와 모든 종류의 교역 상품이 하나도 예외 없이 경기침체를 겪은 것이다.

제조업 분야가 받은 충격은 수출하는 자동차나 혹은 휴대전화기의 수량 과 관련된 교역량의 감소였으며, 원자재 관련 분야가 받은 충격은 바로 가격 하락이었다.

가장 밑바닥에서 가장 크게 고통받은 사람들은 고등학교 졸업장조차 없는 젊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었다. 뉴욕의 경우 2009년이 계층 사람들의 실업률은 50퍼센트를 웃돌았다.70 전 세계를 기준으로 정확하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는지는 엄청나게 많은 중국 내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추정치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어쨌든 합리적으로 추론할 경우 대략 전 세계적으로 2700만 명에서 4000만 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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