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호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물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될까요.

코난은 범죄가 없는 사회가 오면 란이와 잘 될 수 있을까요. 

또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는가와 별개로 

코난과 란이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게 무엇인지는 알고 있습니다.

코난도 란이도 잘 살려면 우선 필요한 것은 깨끗한 식수와 전기입니다.

란이도 코난도 혹 태어날 그들의 자녀에게도 필수적인 것은 이동수단의 충족과 교육과 의료 체제의 확보입니다.

나루호도! 그렇습니다.

한전 민영화를 반대합니다. 의료민영화를 반대합니다.

나루호도! 누구라도 외쳐야 합니다.

(근데 나루호도가 그렇습니다의 뜻인지 아닌지 모르면서 짐작으로 씀)


*이 그림은 <제목없음 81>입니다. 오, 별빛이여! 세상을 멈춘 곳에 머무는 빛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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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피노키오와 자라지 않는 세상에서 무럭무럭 커지는 aaa, 자기증식 드라이브를 썼었다. 당시 썼던 글을 찾아내 캡쳐도구를 사용해서 자기증식을 해봤다. 피노키오는 꼭두각시 인형이지만 역경을 이겨내 훌륭한 소년이 된다. 목수인 제페토가 정성으로 빚은 까닭에 때로는 아담의 은유로 받아들여지기 한다. 인간 소년이 되기 위해 배우고 익힌 사회적 약속은 피노키오를 진짜-사실이 되도록 한다. 피노키오는 거짓말을 하면 코가 자란다. 증식한다. 나는 늘 자기증식이란 이런 것이라고 무릎을 치곤 했다. 하얀 거짓말, 분홍 거짓말, 검은 거짓말 등 많은 거짓말은 선함과 약함의 구속과 충돌지점을 표시할 뿐 도덕적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아감벤이 <피노키오의 모험>의 인형은 사람도, 가면도 아닌 '어떻게'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피노키를 통해 인간다움의 의미를,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기제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한다. 생명철학자 아감벤은 벌거벗은 생명을 통해 알려진 정치철학자다. 피노키오가 마지막에 내뱉은 말을 자꾸 되풀이한다. “꼭두각시였을 때 내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웠는지.” 


소개말 중에서) "더 나아가 아감벤은 말한다. 동화이길 거부하지만 동화스러운 이 이야기는 하이브리드 문학의 전형이라고. 세상에 ‘내던져진’ 나무토막이 그 본성에 어긋나는 근대 질서와 규약, 제도를 거부하고, 꿈속의 꿈 이야기로 마무리되면서, 인간성에 대해 되묻는다고. 언제나 놀라운 메시지를 던지는 사상가 아감벤은 이번 책을 통해 인간의 조건을 ‘문학적’으로 통찰한다.

아감벤은 인간 내면에 야생성, 동물성, 인간성이 있는데 섞여 있지 않고 접촉해 있을 뿐이라고 한다. 이 책에서 그는 인간이 야생으로부터 동물로, 그리고 현재 모습의 인간이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피노키오가 그렇듯 변한 적이 없다고 역설한다. 그런 의미에서 꼭두각시가 인간이 된 적은 없는, 둘이 분리된 채 끝나는 피노키오 서사는, 인간을 정의하는 근대성이라는 장치가 작동하지 않았거나 혹은 오작동 되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언제나 그렇듯 ‘생명철학자’ 아감벤만이 전할 수 있는 놀랍고 충격적인 메시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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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영화 《길 위의 인생》이 중간쯤 진행되고 있었지만 사정은 짐작하고도 남았다. 작은 버스에 책을 싣고 몽골을 달리는 노년의 부부 이야기였다. 노인의 이름은 다시던득으로 17세에 등단한 시인이다. 다시던득의 할머니는 유목민의 전통을 그대로 간직했던 탓에 소년이었던 노인에게 끝없이 흰색 말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별이 쏟아지는 너른 땅 위에 할머니의 전설은 씨앗이 되어 뿌려졌고, 노인은 동화작가가 되어 다시 그 땅으로 되돌아오곤 한다. 몽골은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상태에서 온갖 전통과 신문물이 섞여 있는 상태다. 도시에 근사한 아파트를 가진 시인이자 동화작가인 노인과 소아과 의사를 은퇴한 후, 남편을 따라 작은 도서관 사서가 되어 동행하는 한드쑤렝의 길이 첫 번째 길이다. 


부자보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은 착하다는 몽골의 전통적인 관념이 식어가는 시대에 노인과 한드쑤렝은 인세를 받으면 보따리를 싼다. 여러 권의 책과 연필, 공책, 지우개 등을 챙겨서 저 먼 유목민들의 게르와 시골 학교들을 찾아다닌다. 아이들은 말 그대로 옹기종기 모여서 유난히 호기심 넘치는 몸짓으로 노인의 구연동화를 듣거나 동무들이 읽는 동화를 듣곤 한다. 알다르는 7학년이라 동화를 즐기기에는 약간 나이가 많아 보이지만, 들녘에서 만난 노인을 안내하기 위해 기꺼이 낙타의 등에 오른다. 한국에서 온 동화책 <모자 쓰고 인사해요>를 꺼내 머리에 둘러쓰고 즐거워 할 동생을 위해 달리는 건지도 모른다. 바위의 신화를 일러줄 노인의 지혜를 배우기 위해 그랬는지도 모른다. 알다르는 안장도 없이 고비사막을 지지치 않고 달린다. 낙타가 달리고 알다르도 뛴다. 두 번째 길이다.


노인은 몇 년 전 <까마귀와 대화하는 여인>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처음에 노인은 의심을 안고 할머니를 방문했다. 동물을 대하는 태도가 남달랐던 할머니에 대해 심한 과장을 섞어 전해진거라 믿던 노인은 직접 할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까마귀가 그곳까지 찾아오는지 확인했다. 까마귀는 오지 않았다. 그럴 줄 알았다며 도시로 돌아온 노인에게 할머니가 병환으로 입원했다는 연락이 왔다. 노인은 황급히 병문안을 갔는데 놀랍게도 병실 창가 나무에 까마귀가 와 있었다. 까마귀는 할머니의 입원이 거짓인지 진실인지 알고 있었다. 할머니가 다친 다리를 치료해준 후 인연은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양떼를 몰고 다니던 할머니를 따라 다니던 까마귀와 할머니 사이에는 하나의 끈이 생겼다. 세 번째 길이다. 


노인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준다. 아니다. 고쳐 말하면 아이들 앞에서 동화를 읽는다. 신데렐라를 읽고 게르를 이야기한다. 사슴 세 마리가 별이 되어 나타나는 사연도 말한다. 인간과 사슴이 어울려 살던 세상은 문제가 없었다. 어느날부터 돌로 사슴을 잡으려는 인간을 피해 사슴들은 하늘로 올라간다. 몇 백 년이 흐르고 고향이 그리운 사슴들이 다시 땅으로 내려오자 인간은 화살을 쏘며 쫓아온다. 다시 인간을 피해 하늘로 올라간 사슴들이 다시 땅으로 내려왔을 때 인간은 총을 쏘며 몰아냈다. 사슴들이 도망쳐서 내려올 때마다 뿔은 자라고 사다리처럼 길어졌다. 아직도 밤 하늘에는 세 마리의 사슴들이 고향으로 돌아올 날을 기다리며 빛나고 있다. 


다시던득 노인이 뭐라고 끝맺음하는지 모르지만 환상이다. 길이 없다, 길은 없다.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게 아니라 인간의 길은 길이 아니다. 인간의 길은 인간이 만들고 인간이 부수고야 만다. (내가 아름다운 다큐 영화를 망치는군.)



* 이 그림은 <제목없음 168>이다. 길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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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 2023-11-29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거나 그리거나 길이 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으면서 입맛을 잃기도 한다. 그런 나 자신을 모른 체 아닌 척 요란을 부려봐도 쓴 맛이 남는다. 길이 흐르도록 무명으로 무정으로 그렇게 살아가련다 오늘을 다잡는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여느 혁명가와 다른 방식으로 소개되었으면 합니다. 누군가를 속속들이 안다는 건 허물마저 아름답게 꾸며내 해석해야 할 필요가 생기거든요. 로자는 다정한 사람이죠, 이렇게 말하고 싶은 욕심을 참아야 하거든요. 1898년에 베를린에 온 로자는 위장결혼을 해서 독일인이 되어야 했답니다. 상호 이익을 위해서 형식적 결혼을 하는 화이트 메리지white marriage는 로자에게 갈등을 일으킬 필요가 없는 행위였습니다. 혁명적 대의를 위한 결단일 수도 있지만 뭔가 씁쓸해지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적 인물들의 행동을 해석하지 말고 볼 필요도 있습니다. 더불어 개인적 '선택 의지'로만 해석할 수도 없잖아요. 로자처럼 행동하는 지식인을 사회가 필요로 했다고 봅시다. 말하자면 로자의 윤리는 사회민주에 헌신하는 태도에 있었던 셈입니다. 


로자는 계급 없는 사회를 열망했습니다. 계급이 없다는 게 무슨 말일까요. 계급이 있다고 해도 행복한 세상일 수는 있을텐데 …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로자가 보기에 기존 체제를 유지하면서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터무니 없어요. 개량화만 가능할 뿐이며, 인민의 고통을 덜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판단한 것이죠. 로자가 국민경제학 박사를 27살에 끝마쳤다고 하니, 오랜 시간 정치경제를 숙고했을테고 그 토대 위에서 내린 결론이었겠지요. 


사실 로자가 얼마나 옳았는지 잘 모릅니다. 그런 걸 판단할 수 있는 개인도 없다고 생각하구요. 저로서는 로자가 역사의 방향을 어디에 두고 자신을 끌고 가고 있었는지를 짐작할 뿐이죠. 당시에도 좌파 사회주의자의 위치는 불안했습니다. 더구나 좌파 정당 내에서도 여성의 위치에, 신체적 허약함까지, 녹록치 않은 형편이었습니다. 로자가 품은 노동운동에 대한 열망은 제국의회에 있던 동료들의 비난에 초연할 수 있는 힘을 주고 있었죠.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 권력화란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로자에게도 사적 열망이 있었죠. 작은 자신만의 집과 가구 몇 개, 그리고 아기를 갖는 가정을 꿈꾸던 사람이었습지요. 다만 로자는 자신에게 일어나길 바라는 소박하고 충실한 삶이 모든 노동자들에게도 함께 일어나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일은 군주제를 끝내면서 혼란에 휩싸입니다. 저는 전쟁의 속도는 쉽게 전이된다고 믿어 왔습니다. 로자의 시대에도 귀향한 군인들의 소요가 끊이지 않았을 겁니다. 직업이 혁명가인 로자로서는 그들이 적인 동시에 동지여야 했습니다만, 군인들에게 로자는 적이었습니다. 로자는 에덴 호텔에 숙영지를 둔 군인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고 전해집니다.


독일은 민족주의적 도취 상태에서 1차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많은 상처를 남기고 끝맺어야 했습니다. 로자는 전쟁의 한가운데서도 평화유지를 위해 투쟁했었죠. 글을 쓰고 시위를 하며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었을 뿐이지만, 대중적 힘을 획득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제거 대상이 되어야 했습니다.

참혹한 암살로 이어지는 구실이 되기도 했습니다. 


로자에게 쏟아진 비난은 전쟁을 저지하려는 투쟁이 반역적이라는 점에 있었습니다. 교전 중인 상태에서 평화유지 투쟁은 전선의 동력을 상실시킨다는 것이죠. 전우를 잃고 패전하며 귀환한 군인들에게 패망의 원흉으로 지목받게 됩니다. 로자는, 사회주의자는 전쟁 패배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가 유통되고 있었습니다.


여성 선거권을 주장하고, 계급 투표를 폐지해야 한다고 로자가 연설합니다. 노동자와 농민에게 정당한 권리를 보장해 줘야 한다고 외칩니다.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던 로자는 암살로 인해 삶을 중단 당해야 했습니다. 자유는 항상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의 자유여야 한다고 했던 로자에게 '자유'가 주어졌다면 노동자 사회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오늘을 보내고 있겠지요. 


혁명을 하자는 말은 피를 보자는 말이 아닙니다. 혁명을 우선시하자는 말은 질서를 뒤집어 혼란을 만들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혁명하는 사회는 자기자신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추궁하지 않고, 사냥하지 않으며, 차단시키지 않습니다.  혁명은 혁명하는 자유입니다. 개량적인 해석이 아니냐구요.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로자는 혁명을 하며 세계영혼을 열망했다구요.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지배적인 것일 뿐 아니라 유일한 것이라면 필연적으로 자본주의는 단기간에 내적 모순으로 붕괴할 것이라고 결론 내리는 추론 과정에 전부 또는 일부 동의하거나 전혀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어쨌든, 비자본주의 영역이 자본주의의 안정에 미치는 효과에 주목한 것은 룩셈부르크의 엄청난 기여임을 의심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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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신발을 신으면 좋은 곳으로 데려다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클라리사 댈러웨이도 구두와 장갑이야말로 그 사람을 알아차릴 신호라고 믿었다. 어떤 숙녀인지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많은 게 필요한 게 아니라고 말이다. 코르셋 저항운동이 아니더라도 클라리사의 숙녀담론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곰곰 생각하면 신발이라면, 어쩌면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군복을 입고 슬리퍼를 신지 않듯이 신발은 여러 가지를 말해줄 것이다.

 

이오가 삼림으로 가려는데 환영인사를 한다. 귀엽다. 사랑스럽다. 내가 그린 그림 속 이오라도 잘 생겼따.

이오는 맨발이다. 아니 신발 개념 자체가 없다. 그렇다면 만약 이오가 군화를 신거나 새틴 장갑을 끼거나 한다 해도 이오는 맨발의 이오라는 점을 잊지 않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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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11-23 16: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초원님^^


닭의 발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는 걸 초원님 그림 보고 새삼 느꼈어요
요새 초원님의 글 열심히 읽으면서도, 이해했는지 스스로 고개 갸웃갸웃하고 갑니다

겨울이 다가오니 사람들이 블랙블랙하고 다니는 추세인지라 닭의 현란한 빛이 예뻐보여요

초원 2023-11-23 20:53   좋아요 1 | URL
그렇지요! 자동차도 흰색 아니면 블랙, 거리가 그레이해요.

얄라님, 잘 지내시나요?

저도 고민이 많아요. 소통이 되는 글을 써야 하는데 부족부족하네요.
얄라님 지혜를 나눠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