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자 룩셈부르크는 여느 혁명가와 다른 방식으로 소개되었으면 합니다. 누군가를 속속들이 안다는 건 허물마저 아름답게 꾸며내 해석해야 할 필요가 생기거든요. 로자는 다정한 사람이죠, 이렇게 말하고 싶은 욕심을 참아야 하거든요. 1898년에 베를린에 온 로자는 위장결혼을 해서 독일인이 되어야 했답니다. 상호 이익을 위해서 형식적 결혼을 하는 화이트 메리지white marriage는 로자에게 갈등을 일으킬 필요가 없는 행위였습니다. 혁명적 대의를 위한 결단일 수도 있지만 뭔가 씁쓸해지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적 인물들의 행동을 해석하지 말고 볼 필요도 있습니다. 더불어 개인적 '선택 의지'로만 해석할 수도 없잖아요. 로자처럼 행동하는 지식인을 사회가 필요로 했다고 봅시다. 말하자면 로자의 윤리는 사회민주에 헌신하는 태도에 있었던 셈입니다.
로자는 계급 없는 사회를 열망했습니다. 계급이 없다는 게 무슨 말일까요. 계급이 있다고 해도 행복한 세상일 수는 있을텐데 …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로자가 보기에 기존 체제를 유지하면서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터무니 없어요. 개량화만 가능할 뿐이며, 인민의 고통을 덜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판단한 것이죠. 로자가 국민경제학 박사를 27살에 끝마쳤다고 하니, 오랜 시간 정치경제를 숙고했을테고 그 토대 위에서 내린 결론이었겠지요.
사실 로자가 얼마나 옳았는지 잘 모릅니다. 그런 걸 판단할 수 있는 개인도 없다고 생각하구요. 저로서는 로자가 역사의 방향을 어디에 두고 자신을 끌고 가고 있었는지를 짐작할 뿐이죠. 당시에도 좌파 사회주의자의 위치는 불안했습니다. 더구나 좌파 정당 내에서도 여성의 위치에, 신체적 허약함까지, 녹록치 않은 형편이었습니다. 로자가 품은 노동운동에 대한 열망은 제국의회에 있던 동료들의 비난에 초연할 수 있는 힘을 주고 있었죠.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 권력화란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로자에게도 사적 열망이 있었죠. 작은 자신만의 집과 가구 몇 개, 그리고 아기를 갖는 가정을 꿈꾸던 사람이었습지요. 다만 로자는 자신에게 일어나길 바라는 소박하고 충실한 삶이 모든 노동자들에게도 함께 일어나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일은 군주제를 끝내면서 혼란에 휩싸입니다. 저는 전쟁의 속도는 쉽게 전이된다고 믿어 왔습니다. 로자의 시대에도 귀향한 군인들의 소요가 끊이지 않았을 겁니다. 직업이 혁명가인 로자로서는 그들이 적인 동시에 동지여야 했습니다만, 군인들에게 로자는 적이었습니다. 로자는 에덴 호텔에 숙영지를 둔 군인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고 전해집니다.
독일은 민족주의적 도취 상태에서 1차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많은 상처를 남기고 끝맺어야 했습니다. 로자는 전쟁의 한가운데서도 평화유지를 위해 투쟁했었죠. 글을 쓰고 시위를 하며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었을 뿐이지만, 대중적 힘을 획득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제거 대상이 되어야 했습니다.
참혹한 암살로 이어지는 구실이 되기도 했습니다.
로자에게 쏟아진 비난은 전쟁을 저지하려는 투쟁이 반역적이라는 점에 있었습니다. 교전 중인 상태에서 평화유지 투쟁은 전선의 동력을 상실시킨다는 것이죠. 전우를 잃고 패전하며 귀환한 군인들에게 패망의 원흉으로 지목받게 됩니다. 로자는, 사회주의자는 전쟁 패배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가 유통되고 있었습니다.
여성 선거권을 주장하고, 계급 투표를 폐지해야 한다고 로자가 연설합니다. 노동자와 농민에게 정당한 권리를 보장해 줘야 한다고 외칩니다.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던 로자는 암살로 인해 삶을 중단 당해야 했습니다. 자유는 항상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의 자유여야 한다고 했던 로자에게 '자유'가 주어졌다면 노동자 사회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오늘을 보내고 있겠지요.
혁명을 하자는 말은 피를 보자는 말이 아닙니다. 혁명을 우선시하자는 말은 질서를 뒤집어 혼란을 만들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혁명하는 사회는 자기자신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추궁하지 않고, 사냥하지 않으며, 차단시키지 않습니다. 혁명은 혁명하는 자유입니다. 개량적인 해석이 아니냐구요.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로자는 혁명을 하며 세계영혼을 열망했다구요.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지배적인 것일 뿐 아니라 유일한 것이라면 필연적으로 자본주의는 단기간에 내적 모순으로 붕괴할 것이라고 결론 내리는 추론 과정에 전부 또는 일부 동의하거나 전혀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어쨌든, 비자본주의 영역이 자본주의의 안정에 미치는 효과에 주목한 것은 룩셈부르크의 엄청난 기여임을 의심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