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은 사랑의 기호들에 관한 감상의 영화다. 박찬욱의 감상법은 기호들을 할 수 있는 한 공격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힘을 이용해 자신 앞에 놓인 논리적인 명제들, 논리적인 그림들, 논리적인 세계의 체계들을 파고들 수 있는, 놀랄 정도로 폭력적인 방법을 구사하는 것이다. 저물어가는 해. 밀려오는 파도. 지연된 시간. 모래 구덩이 속의 서래. 물에 젖어 무거워진 해준의 신발. 정훈희의 '안개'. 이것이 폭력이 아니라면 달리 무엇인가.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달리 무엇인가. _ 프리즘오브 프레스, <프리즘오브 PRISMOF 특별호 : 헤어질 결심>, p19


 오랜 알라딘의 이웃분으로부터 책선물을 받았다. 영화 <헤어질 결심>을 인상깊게 보시고 책선물을 해주셔서 한동안 잊고 지냈던 <헤어질 결심>을 다시 떠올린다. 평론가 정성일의 글처럼 영화는 수많은 상징과 의미로 연결되어 있다. 복잡한 수식처럼 얽힌 이들 관계를 소거(消去)한다면 최후에 남는 것은 '사랑 이야기'다. 정성일은 본문에서 사랑의 기호들을 설명하면서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1889 ~ 1951)의 논리를 따라간다. <헤어질 결심> 뿐 아니라 박찬욱 감독의 전작으로부터 이어오는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으로 작품 세계를 바라본다. 이 같은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헤어질 결심>의 사랑 이야기는 조금 더 명확하게 보인다. 철처하게 계산된 서래의 움직임 속에 놀아나는 해준. 지쳐가는 해준에게 서래는 스스로 영구미제(永久未濟)의 인물이 되며, 해준에게 잊혀지지 않는 자신의 사랑을 새긴다.


 서래는 해준을 해파리로 만든다. 서래는 해준을 재우면서 최면을 걸듯이 말한다. "바다로 가요. 물로 들어가요. 당신은 해파리에요. 눈도 코도 없어요, 생각도 없어요." 서래가 해준을 잠재울 때, 그때는 아직 사랑의 시간이 아니다. 더 기다려야 한다. 서래는 차를 운전해서 바닷가로 달려가며 해준에게 전화한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죠." 그들은 비 오는 날 사찰을 방문할 때에도 아직 사랑하지 않았다. 아니, 해준만이 서래를 사랑하고 있었다. 팜 파탈 서래의 계산 안으로 들어온 형사 해준을 해파리로 다루는 것은 얼마나 잔인하고 냉정한 최면인가. _ 프리즘오브 프레스, <프리즘오브 PRISMOF 특별호 : 헤어질 결심>, p17


 서래가 자신의 생각을 가장 극적으로 실현해낸 이포 바닷가를 보면서 영화를 볼 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 ~ 1900)의 '영원회귀'와 '힘(권력)에의 의지'를 생각하게 된다. 


[사진] 영화 <헤어질 결심> 이포 바닷가 (출처 : 아이뉴스24)


 "힘의 마력. 필요도 아니고 욕망도 아니고 힘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인류의 수호신이다. 인간에게 모든 것을, 즉 건강, 음식, 주택, 오락을 줘보라. 그들은 여전히 불행하고 불만스러워할 것이다. 왜냐하면 마력적인 존재가 기다리면서 채워지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고 이 마력적인 존재를 만족시켜보라. 그러면 그들은 거의 행복하게 된다. 인간과 마력적인 존재가 행복할 수 있는 최대한 정도까지." _ 프리드리히 니체, <아침놀>, 제4부, 262절


  해준을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남기기 위해 마침내 해준을 붕괴(崩壞)시킬 정도까지 몰아붙이는 서래. 그것은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한 하나의 의지가 아닐까. 서래는 자신의 의지를 세우기 위해 밑으로 들어간다. 태양이 모래밭 위에 걸리는,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가 서래를 덮지만, 그 순간 서래가 느끼는 감정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자신의 뜻이 이뤄지는 극한의 쾌감이 아니었을까.


 

 인류의 오류 역사의 결과로서 니체가 도달한 이 영원회귀의 앎은 지금까지 오류를 산출해 온 힘에의 의지가 거기서 스스로의 맹목적 성격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 - 더욱이 그 맹목적인 힘에의 의지에 의해 인식하는 것이었다. 인식과 오류가 그 극한에서 수렴한다.  그러나 힘의 놀이는 거기서 영구적인 정지 상태에, 완전한 균형 관계에 들어서는 것이아니다. 위대한 정오, 태양이 천정에 걸리는 것은 순간이며, 더욱이 그 순간을 그것으로서 인식할 수 있는 자에게 있어서만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이 한순간이, 요컨대 세계가 인식에 의해 빛나고 니체의 메모를 끌어들이자면 "쾌락의 절대적 과잉"이 증명되는 이 한순간이 되돌아오게 되면 이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 _ <니체사전> '영원회귀' 中 , p414


  서래가 바닷가에서 '힘에의 의지'를 관철시켰다면, 그 의지를 둘러싸고 덮는 것은 파도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 그렇지만, 그 파도는 어느 것 하나도 같지 않다. 서로 다른 높이와 소리, 세기를 가진 저마다 다른 파도는 '영원의 상' 아래에서 끊임없이 해준 곁에 머무르려는 서래의 의지를 덮는다.  


 다른 한편 니체는 세계의 본래적인 존재 양태를 부단한 '생성'으로서 파악하고 있으며, 이 점에서 '힘에의 의지'의 형이상학 구상은 '영원회귀'와 결부된다. 즉 세계가 일정한 '힘의 중심들'의 상호 작용으로 성립해 있다고 한다면, 무한한 시간 속에서는 모든 조합이 실현될 수 있으며, 또한 이미 실현해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모든 것이 회귀한다는 것은 생성의 세계의 존재의 세계로의 극한적인 접근이며 고찰의 정점이다"라고 말하고, "생성에 존재의 성격을 각인하는" 것 -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힘에의 의지다"라고 하고 있다. _ <니체사전> '힘에의 의지' 中 , p643


 그렇지만, '힘에의 의지'와 '영원회귀'의 만남은 항상 같은 결과를 낳지 않는다. 마치 자기 유사성을 가진 프랙탈(fractal)처럼, 서래를 덮은 파도는 그 다음 파도에 영향을 미치고, 다시 그 다음 파도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또 다른 생성(生成)을 이룬다. 그렇게 만들어낸 변화의 양상들이 부분과 전체의 자기 유사성으로 표현되며, 서래의 죽음은 하나의 사건으로 해준에게 사랑이 되어 남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림] 망델브로 집합(출처 : https://www.researchgate.net/figure/A-Mandelbrot-set-M-2-for-the-family-f-x-c-x-2-c-5-The-boundary-of-the-black_fig1_263911584)


 앞서 평론가가 말했듯, <헤어질 결심>은 사랑의 기호에 관한 영화다. 때문에, 어느 기호에 중점을 두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관점과 해석이 가능하다. 오늘 이 페이퍼에 올린 해석도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이고, 이 관점도 다듬어지지 않아 거친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글을 올리는 것은 먼저 좋은 선물을 주신 이웃분께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미련한 생각에서 조금은 나아지는 과정의 발자취를 남겨야겠다는 생각때문이다...


 어떤 복소수 C에 대해 식 f(z)=z2+C로 정의된 복소 다항식 f가 있다고 하자. 임의의 복소수 z0을 고르면 반복, 즉 함수 f를 계속 적용하여 수열 z0, z1, z2...를 얻을 수 있다. 어떤 경우 (C>=2) 얻은 수열은 무한대로 다가가는 반면, 어떤 경우에는 유계 상태, 즉 0으로부터의 고정된 거리 내에 머물러 있다... 만일 z0을 고정하고 C에 대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고려하면 어떻게 될까?  그 결과가 망델브로(Mandelbrot set)이다. z0=0으로 잡았을 때 수열이 유계로 남아 있는 C 전체의 집합이 정확한 정의다. 망델브로 집합도 대중적인 상상을 사로잡는 복잡한 프랙탈 모양을 갖는다. _ 티모시 가워스 외, <The Princeton companion to Mathematics 1> , p414


 보라, 그대가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다. 만물이 영원히 되돌아오며, 우리 자신도 더불어 영원히 되돌아온다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이미 무한한 횟수에 걸쳐 이미 존재했으며, 모든 사물 또한 우리와 함께 그렇게 존재해왔다는 것이 아닌가. _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 제3부 '건강을 되찾고 있는 자', 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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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3-04-04 01: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영화 ‘헤어질 결심‘에 이토록 깊은 뜻을 알게 하시다뇨!
감탄이 절로 나오네요~~
사랑에 대한 생각과 느낌이 참 다양한데 이 영화를 꼭 다시 봐야겠어요.
겨울호랑이님의 페이퍼가 책선물 주신 분에게 보내는 최고의 감사인사인 것 같습니다^^

겨울호랑이 2023-04-04 08:10   좋아요 3 | URL
페넬로페님 격려의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영화에 담긴 감독과 작가의 의도를 제가 제대로 파악했는지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워 집니다. 저 스스로도 작품 내의 더 많은 장치들과 알레고리들 중 많은 부분을 놓친 것을 알기에 더욱 그렇네요...ㅜㅜ 부족함이 많은 생각입니다만, 하나의 가능성 정도로 이해해 주시고, 페넬로페님께서 참고 정도만 하시고 작품을 즐기신다면 그것으로 이 페이퍼는 충분히 제 몫을 다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페넬로페님 좋은 하루 되세요!

잘잘라 2023-04-04 08: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는 극한의 쾌감‘이 궁금해지는 글입니다. ‘죽음의 공포를 대신할 수 있는 무엇‘을 상상하게 된달까요. 너무 오래 덮어두었던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생각을 이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23-04-04 08:26   좋아요 2 | URL
서래의 선택이 제3자의 눈에는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은 선택의 길이 죽음의 공포와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서래의 눈은 이미 삶과 죽음의 경계 너머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모래 밑으로 내려가는 선택을 통해 해준의 마음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다는 선택. 어쩌면 그것은 종교적 예수의 선택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요. 자신의 죽음을 통해 더 큰 것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 그런 희망이 그를 따르는 이들을 만들고 종교를 만들었다면, 서래 또한 자신의 선택 순간에 일종의 황홀경, ‘엑스터시‘를 느끼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그냥 가벼운 제 생각이고 추측입니다. ^^:) 잘잘랄라님 덕분에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나와같다면 2023-04-04 16: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니체의 ‘영원회귀‘와 ‘힘(권력)에의 의지 까지 대단한 사고의 확장이고 <헤어질 결심> 리뷰입니다!

2023-04-04 1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관점주의가 어떤 것인지 대략의 윤곽을 보여주는 것으로 니체가 존경했던 문화사가 야코프 부르크하르트의《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의 서문을 들어볼 수 있다. 부르크하르트는 서문에서 이 책의 서술 내용이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자신의 관점에서 본 해석일 뿐이라고 말한다.

도대체 니체에게 진리란 무엇인가. 니체는 유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진리란 그것 없이는 특정한 종의 살아 있는 존재들이 더 이상 살지 못할, 그런 오류의 한 양식이다." 이 문장에서 니체는 진리란 일종의 오류라고 단언한다. 왜냐하면 어떤 진리도 영원하고 절대적인 진리일 수 없기 때문에, 실상 어떤 관점에서, 어떤 해석에서 진리로 받아들여진 것,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오류의 일종인 것이다. 그런데 이 오류가 우리 삶에 필수 불가결한 것, 절대적으로 유용한 것이어서 진리로 간주되고 신봉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데카당스란 무엇인가? 니체에게 데카당스란 강한 인간에게서 힘을 빼앗고, 약한 인간을 승리하게 만드는 모든 경향이다. 강자의 권력의지를 부식시키고 부패시키는 약자의 도덕, 약자의 사상이 바로 데카당스의 핵심이다. 퇴폐라는 말에서 연상되는 문란하고 비도덕적인 삶이 아니라 오히려 도덕적이고 양심적이고 선한 삶이 데카당스의 핵심에 들어 있다. 결정적으로 그것은 기독교의 최고 덕목인 ‘연민’, 곧 약한 자들을 껴안는 마음이다.

니체가 말하는 우상이란 무엇인가. 니체는 《이 사람을 보라》에서 ‘우상’을 가리켜 "이상을 표현하는 내 단어"‘서문’, 2절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니체는 사람들이 ‘이상’으로 여기는 모든 것을 ‘우상’이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모세의 백성들이 황금 송아지를 우상으로 섬겼듯이 지금 사람들이 이상을 우상으로 숭배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상이 우상일 뿐임을 폭로하는 작업은 어찌 보면 전 생애를 관통하여 니체가 했던 작업이라고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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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플라톤이 도덕적인 것das Sittliche이라는 특정한 개념과 유리적인 이론을 발전시키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경험과 교육을 통해 습득되는 에토스로서의 덕에 대한 그의 이론은 그의학파의 경계를 넘어 멀리 후대의 모든 성찰들을 규정했고, 철학의한 분과 학문으로서의 "윤리학Ethik"이라는 개념이 정착되도록 만들었다.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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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6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6
히로시마 레이코 지음, 쟈쟈 그림, 김정화 옮김 / 길벗스쿨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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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가게는 손님을 행복하게 하려고 장사를 하는 게 결코 아닙니다. 손님의 소원을 들어드리는 것이 <전천당>의 목표입지요.˝_ 히로시마 레이코,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6>, p26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6>에서는 항상 자신의 일을 깔끔하게 하는 베니코가 전에 없이 실수를 저지른다. 그리고 베니코의 실수 사이에서 우리는 <전천당>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손님의 소원을 이루는 것과 손님이 행복해진다는 것은 서로 다른 것일까? 아래에서 한 번 생각해보자.

연의가 태권도를 마치고 땀을 너무 많이 흘렸을 때, 마침 행운의 손님이 되어 <전천당>의 베니코에게 갔다고 생각해보자. 목이 너무 말라 O2(오투)음료수를 계속 마실 수 있는 텀블러를 원해서 가질 수 있었다면 연의는 행복해진 걸까?


<전천당> 뽑기 기계의 장난감 캡슐이 베니코의 사소한 실수로 행운의 손님이 아닌 남자아이의 손에 들어갔다. 그다음 날 <인내 연필>은 남자아이의 손으로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_ 히로시마 레이코,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6>, p71

베니코의 말처럼 <전천당>에 들어가서 소원을 이루려면 ‘행운‘이 필요해. 그렇지만, 행운은 행복을 가져다줄 수 없단다.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소원을 이루려면 행운이 필요히다면 우리가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 것인지 함께 생각해볼까.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오늘 연의가 자전거를 타면서 배웠던 것도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오랫만에 타서 낯설게 느껴졌던 자전거를 거부하지 않고 계속 연습하면서 친숙해지는 과정. 꾸준함과 한 걸음 나아가려는 마음은 나중에 연의가 현명한 선택을 하는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아빠는 생각해.

주말에 피어나는 꽃들처럼 다음 한 주도 힘차게 잘 보내! 사랑하는 아빠가.

˝정말로 소중한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하면 전부를 잃은 것이나 같지요. 저 손님은 정말로 올바른 선택을 했군요.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아주 잘 알고 있으니 말이죠.˝_ 히로시마 레이코,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6>, p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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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과 네트워크 1 - 권력과 제국주의 케임브리지 세계사 7
크레이그 벤저민 지음, 류충기 옮김 / 소와당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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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고대 제국은 세 가지 기둥에 의지했다. 즉 군사력, 자기 정체성, 세금이 그것이다.이를 위하여 사람과 그들의 노동력을 관리했고, 이동, 잉여 생산물, 토지 , 교통로를 통제했다. 자원 개발이나 세금 수입 관련 제도와 기술도 제국 체제의 영향을 받았다. 또한 경제가 발전할수록 사회적 계층도 복잡해졌다. 귀족(엘리트) 계층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졌다. 이들은 차별화된 소비를 통해 경쟁자와 자신을 구별하고자 했다. _ 크레이그 벤저민 외, <케임브리지 세계사 7 : 제국과 네트워크 1> , p81


 <케임브리지 세계사 7 : 제국과 네트워크 1 - 권력과 제국주의 Cambridge World History Vol. IV>에서 독자들은 농업 문명의 시작과 그 결과로 태어난 도시(都市)문명의 심화를 확인할 수 있다. 헤시오도스( Hesiodos, BCE 7세기 ? ~ ?)가 <일과 날 Erga kai Hemerai>에서 노래했듯, 철의 시대에 해당하는 농경 시대가 앞선 시기보다 결코 행복한 시기는 아니었다. 불평등은 커졌고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하는 시기. <제국과 네트워크 1>은 사회 구성원의 대다수가 이러한 불평등을 받아들일 수 있는 전제 조건으로 종교(宗敎)를 언급한다. 칼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 ~ 1969)는 도덕적 종교가 등장한 시기를 '축의 시대 Achsenzeit'로 언급한다. 종교를 통한 공동체의식의 함양은 동시에 일면식도 없는 이들을 '이웃'으로 통합하며 가족으로 만드는데 성공한다.


 야스퍼스의 전제는 기원전 제1천년기 중엽을 전후한 몇 세기 동안 유라시아 세계의 몇몇 선진 문화권에서 중요한 지성적/제도적 전환이 일어났다는 가설이다. 이러한 현상은 여러 문명권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표출되었다. 그러나 어떤 경우건 공통적으로, 인간의 사유 능력 및 심오한 사유의 증대를 텍스트로 정리했고, 직접적 대상을 넘어서는 이성(reason)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_ 크레이그 벤저민 외, <케임브리지 세계사 7 : 제국과 네트워크 1> , p224


 예후나 엘카나(Yehuda Elkana)에 따르면, 새로운 2차적 사고(second-order thinking) 덕분에  인류는 일상생활의 한계는 물론 기존 사회 의례에 내재된 우주론적 선입관을 넘어설 수 있었다. 신화적 사유가 당시의 사회를 주도했고, 그것이 의례에도 반영되어 있었다. 의례는 부족 사회 혹은 원시 사회의 응집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었다. _ 크레이그 벤저민 외, <케임브리지 세계사 7 : 제국과 네트워크 1> , p206


 종교를 통해 일체화된 사회 내에서 불평등은 지식의 소유 정도와 어느 정도 비례했다. 오늘날에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도시를 유지하기 위한 제반 활동을 효율/효곽적으로 할 수 있는 지식 소유 집단의 등장은 엘리트 귀족가문의 탄생으로 연결되며, 이로부터 지배계급-피지배계급의 분화는 세습화된다. 그렇지만, 엘리트 계층의 지배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가뭄, 홍수와 같은 자연 재해는 물론 안정적인 삶을 유지시킬 수 있는 능력을 입증해야 했고, 그 결과 도시국가들은 공동체의 번영과 유지를 끊임없이 전쟁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도시국가의 하부구조를 구성하며 공동체를 유지시켰던 계급인 노예층은 그 결과물이었으며, 이 과정에서 도시국가는 점차 왕국(王國) 그리고 제국(帝國)으로 성장해간다. 


 기원전 800년에서 기원후 800년 사이 유럽, 북아프리카, 아시아의 문명들은 심각한 변화의 시기를 거쳤다. 기원후 800년을 기준으로 자연과 기술에 관한 지식의 발전 정도를 보자면, 많은 지역에서 완성 단계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발전을 위한 기본바탕은 마련되어 있었다. 그 바탕 위에서 발달한 기술이 이후 시대의 지역 문화를 형성했다. _ 크레이그 벤저민 외, <케임브리지 세계사 7 : 제국과 네트워크 1> , p242


 올랜도 패터슨(Olando Patterson)이 정의한 노예란 "태생적으로 소외되고 일반적으로 천시받으며 영속적이고 폭력적인 압제에 놓여 있는 사람"이었다(p165) ... 오늘날의 노예는 말하자면 "내부에 존재하는 타자(outsiders within)"의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로서, 일을 하더라도 거의 아무런 권리가 없는 사람들, 일자리의 안전성이 극히 유동적인 사람들이다. _ 크레이그 벤저민 외, <케임브리지 세계사 7 : 제국과 네트워크 1> , p200


 도시국가들의 생산 활동 중심에는 이들 노예층이 있었다. 노예가 생산하는 물품은 주인에게 귀속되는 반면, 노예들에게 지불되는 비용은 최저생활수준에 머물렀기에 막대한 이윤이 발생한다. 도시 내에서 더이상 소비될 수 없는 잉여제품들은 키루스( Kurosch-e bozorg, BCE 600 ~ 530), 알렉산드로스(Alexander III of Macedon, BCE 356 ~ 323) 등이 건설한 대제국의 네트워크를 통해 제국 내의 도시국가들로 흘러들어갔다.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된 명품(名品)의 사용은 신분의 차이를 분명하게 보여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의례(儀禮)는 차이를 의식화시켰다. 


  <케임브리지 세계사 7 : 제국과 네트워크 1>에서는 농경화로 인한 분업과 집중화의 필요가 가속화되면서 불평등도 함께 커져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시기 도시는 국가가 되고, 국가는 제국이 되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정치 경제의 주된 단위는도시와 인근 농촌에 한정된다. 제국과 세계가 중심부와 주변부로 나뉘고, 종교를 대신한 또 다른 이데올로기가 등장하면서 제국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만드는 제국주의(Imperialism)의 출현은 아직 먼 훗날의 이야기다. <케임브리지 세계사 7 : 제국과 네트워크 2>에서는 BCE 1200 ~ CE 900년 시기 세계 여러 지역의 구체적인 역사가 소개된다. 이제 2권으로 넘어가자...


 도시화로 다양한 수공업 기술이 발달했는데, 특히 금속 제련과 도자기 생산 분야에서 고도로 복잡한 단계까지 수준이 높아졌다. 서양, 인도, 중국은 모두 거대한 기념비적 건물을 건설할 정도의 기술력과 조직력을 갖추고 있었다. 특히 사회 인프라 구조 건설과 관련해서 건축 기술의 수준이 높았다. _ 크레이그 벤저민 외, <케임브리지 세계사 7 : 제국과 네트워크 1> , p286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글로벌 관점에서 보자면 지역별로 나뉜 교환 체계라고 할 수 있는 네트워크들이 서로 연결되어 대륙 간 무역로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대륙 간 무역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무역로를 거친 개별 상품의 가치가 매우 비쌌다는 점, 그래서 그런 상품은 상당히 좁은 엘리트 계층의 소비 능력에 따라 유통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_ 크레이그 벤저민 외, <케임브리지 세계사 7 : 제국과 네트워크 1> , p113

고대 세계에서 국가, 제국, 지역 간 네트워크의 형성과 유지는 전통적으로 남성의 기획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와 대비되는 여성의 세계는 가정과 생활 경제였다. - P154

"파트롱(patron)"이란 후원자 혹은 작품의 구매자 혹은 작가의 고용주를 간단히 표현하는 말이다. 예술은, 특히 고대로부터 오늘날까지 남아 있을 정도로 견고한 물질로 만들어진 작품은 대개 값비싼 재료를 사용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방대한 자원을 통제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이 파트롱이 된다. 예를 들어 통치자, 국가, 교회 때로는 부유한 중산층 등이다. 파트롱은 자신들이 보기에 가장 좋은 것, 혹은 자신의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작품에 비용을 대줌으로써 예술의 발전 과정에 기여한다. - P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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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3-04-03 17: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느덧 7권까지 읽으셨군요^^ 저도 이 시리즈 찜해놓고 있는데 언제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계속 보관함에 들어있어요!ㅎㅎㅎ

겨울호랑이 2023-04-03 20:15   좋아요 1 | URL
네, 어찌어찌하다보니 7권까지 흘러왔습니다. 한 번 마음을 정하면 끝까지 파고 드는 거리의화가님이시라, 다른 책들이 마무리되면 금방 독파하시리라 생각합니다. 평안한 저녁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