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옷을 벗고 씨 뿌리고, 옷을 벗고 소들을 몰고

 옷을 벗고 수확하시라. 데메테르 여신의 일을 모두 

 제때에 보살펴 모든 것이 제때에 자라기를 바란다면 말이오!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나중에 궁핍해져서 남의 집을 돌며

 구걸해도 아무것도 얻지못할 것이오.(390 - 395) <일과 날>(p120) 中


  헤시오도스(Hesiodos, BC 740 ~ BC 670)의 시(詩) <일과 날 Opera et Dies>에 이미  '노동(勞動, labour)'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을 보면, 노동(형태와 무관하게)은  떼어놓을 수 없는 삶의 일부임을 다시금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을 기준으로 가치를 평가하는 노동가치설(勞動價値說 Theories of Labour Value)은 여러 학자들 - 이븐 할둔(Ibn Khaldun, 1332 ~ 1406) , 윌리엄 페티(Sir William Petty, 1623 ~ 1687)등 - 에게 지지를 받았다. 특히, 카를 마르크스 (Karl Heinrich Marx, 1818 ~ 1883)가 <자본론 Das Kapital: Kritik der politischen O"conomie> 사상에서 노동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어떤 물건의 가치량을 결정하는 것은 오직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량, 즉 그것의 생산에 사회적으로 드는 노동시간이다. 동일한 노동량이 들어 있는 상품들, 동일한 노동시간에 생산할 수 있는 상품들은 동일한 가치량을 가진다. 가치로서는 모든 상품은 일정한 크기의 응고된 노동시간에 불과하다.(p49) <자본론1> 中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가치 측정기준으로 노동시간을 제시하고, 같은 책에서 '노동력'이라는 상품에 대해서도 분석을 수행한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상품으로서 '노동력'은 노동을 통해서만 발휘되며, 그것의 가치는 노동력 소유자의 생활 유지라고 전제한다. 이에 따른 지출의 증가는 소득의 증가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전제이지만, 아웃소싱(outsourcing)이 일반화되어 기업의 위험을 외부화하는 오늘날의 노동 현실은 이와 거리가 있다. 어쩌면 우리의 노동에 대한 인식은 과거만 못할지도 모른다.


 노동력의 가치는 이 특수한 상품의 생산과 재생산에 드는 노동시간에 의해 규정된다. 노동력은 오직 살아 있는 개인의 능력으로서만 존재한다. 그러므로 노동력의 생산은 이 개인의 생존을 전제로 한다. 이 개인이 살아있다면, 노동력의 생산이란 이 개인 자신의 재생산, 그의 생활 유지다. 살아 있는 개인은 자기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일정한 양의 생활수단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노동력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은 결국 이 생활수단의 생산에 드는 노동시간이 된다. 다시 말해 노동력의 가치는 노동력 소유자의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생활수단의 가치다. 노동력의 발휘인 노동에는 인간의 근육, 신경, 뇌 등의 일정한 양이 지출되는데, 그것은 다시 보충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지출의 증가는 소득의 증가를 조건으로 한다.(p225) <자본론1> 中


 마르크스 이후 산업화, 정보화 시대로 넘어가면서 노동의 가치는 점점 떨어져왔으며, 이제는 '노동의 종말'을 말할 때에 이르렀다. 인간의 노동이 없는 세상.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 1945 ~ )은 <노동의 종말 The End of Work>에서 이에 대해  말하고 있다. 또한, 맥스 테그마크 (Max Tegmark, 1967 ~ )은  <맥스 테그마크의 라이프 3.0 Life 3.0: Being Human in the Age of Artificial Intelligence>를 통해 인공지능(AI)에 의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모두 설계되는 세상을 전망한다. 기계와 인공지능이 생산하는 세상. 이러한 미래에 인간은 어떻게 될 것인가. 

 

 결국 노동은 기계가 하는 것이 될 것이다. 노동은 단지 효용을 생산하는 데 관한 것이다. 반면, 사람들은 내재적인 가치를 창출하고 공유된 사회 공동체 의식을 재활성화 하기 위해 해방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노동으로부터 해방됨으로써 다가오는 세기에 인류를 위한 위대한 도약을 꿈꾸고 있는 시민 사회에서 사회적 자산을 만들어 내기 위한 중요한 공헌을 할 수 있다.(p45) <노동의 종말> 中


 맥스 테그마크는 이러한 미래에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호모 센티언스(Homo Sentiens)가 된다고 말한다. 문명의 주인으로 마음의 평정을 찾고 우주의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인 호모 센티언스는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 1976 ~ )의 호모 데우스(Homo Deus)의 또다른 버전으로 받아들여진다. 

 

 지금까지 우리는 점점 더 나은 도구를 만들어 고대의 신들과 경쟁했다. 하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는 도구만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능력에서도 고대의 신들을 능가하는 초인간을 창조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신성(神性)은 사이버 공간만큼이나 일상적인 것이 되어 그 경이롭고 경이로운 발명품을 우리는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이다.(p76)... 건강, 행복, 힘을 추구하는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될 때까지 자신들의 모습을 한 번에 하나씩 점진적으로 바꿔나갈 것이다.(p77) <호모 데우스> 中


 <구약성경>과 <실락원 Paradise Lost>에서 '노동'은 아담에 대한 신의 저주로 주어진 짐이다. 이러한 짐을 인류가 벗고 다른 종족(호모 센티우스, 호모 데우스)가 된다는 것이 '복락원(Paradise Regained)'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어느 방향으로 가든 우리에게 노동의 대가는 최소한 '내일 걱정은 내일로 미룰 수 있는 여유' 이상의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기본 전제가 충졸될 수 있다면, 미래에 대한 근심도 조금은 덜어질 듯 하다. 기본소득도 이러한 연장선에서 고민할 하나의 대안이라 생각된다. 5월 1일을 맞아 노동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나에 대한 저주는 옆으로 빗나가 땅에 떨어졌소.

 일을 해서 양식을 얻는 것, 무슨 해가 

 되리오? 더욱 나쁜 것은 태만. 나의 노동은

 우리를 부양해주리다. 추위와 더위의 해를

 입지 않도록 하나님은 때에 알맞게 배려하시어

 우리가 원치 않아도 필요한 것을 준비하셨고,

 심판하면서도 가엾이 여기시어 그 손은

 값없는 우리에게 옷을 입혀주셨소이다.(1055 - 1060) <실락원2>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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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8 2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5-18 2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모두에게 실질적 자유를 - 기본소득에 대한 철학적 옹호
필리프 판 파레이스 지음, 조현진 옮김 / 후마니타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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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하에서 사회 전체는 잉여의 배분을 통제하며, 그래서 만약 사회 전체가 실질적 기본소득을 도입하기로 결정한다면, 그 사회는 그런 보조금을 지속 불가능하게 하는 방식으로 자본을 사용함으로써 그 사회의 결정을 무산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보다 경제적으로 덜 효율적이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고 해도, 다시 말해 자본주의 아래서 달성할 수 있는 최대의 산출량이 사회주의하에서 달성할 수 있는 최대의 산출량보다 더 크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고 하더라도, 그 사회의 산출량을 필요한 방식으로 지속적으로 분배할 수 있는 더 큰 역량을 사회주의가 갖고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에서보다 더 높은 기본소득의 재원을 여전히 조달할 수도 있다.(p402)

논의의 초점은 이 책의 출발점이었던 전통적 질문 -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서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가 - 에서, 사회경제 체제를 다르게 할 수 있는 많은 유관한 차원들로 이동했다. 미래를 위한 핵심 쟁점은 오히려 무조건적 기본소득을 도입해야 하는지의 여부, 도입한다면 언제 그리고 어떻게 도입해야 하는가이고, 재분배 권력을 초국가적인 관계 당국에 맡겨야 하는지, 맡긴다면 언제 그리고 어떻게 맡겨야 하는가이며, 연대성의 느낌을 기르기 위해 사회적 삶의 조직을 강제해야 하는지, 강제한다면 언제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이 될 것이다. 이런 것들은 미래의 중요한 투쟁이 그것을 둘러싸고 이루어지게 될 쟁점들이다... 이런 불확실한 길을 따르는 성공만이 자본주의를 정당화할 수 있다.(p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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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2020-04-29 14: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블확실한 길을 따르는 성공.. 이미 많은 부분이 코로나 시국에서 드러나듯 왜곡돼왔기 때문이겠죠ㅜ 저는 지금의 자유시장경제 하에서도 불로소득 분을 세금으로만 징수해도 충분한 분배가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연대성의 느낌을 갖기 위한 과제가 가장 어려워 보입니다! 날이 점점 좋아집니다^^.

겨울호랑이 2020-04-29 14:17   좋아요 2 | URL
오두막님 말씀처럼 시장경제 체제 하에서도 시장 원리가 충분히 작동되고, 분배 기능이 잘 수행된다면 복지재원을 마련하는데 어려움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시장경제와 별도로 ‘자본‘중심의 자본주의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생각합니다. 자본주의체제 하에서는 부실한 대기업들이 공공의 이익이라는 미명하에 소멸되지 않고 공적자금을 수혈받는 현실 속에서 진정한 시장경제가 작동하기를 희망합니다. 오두막님 화창한 봄날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순수이성 비판 서문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4
임마누엘 칸트 지음, 김석수 옮김 / 책세상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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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논의에서 결코 놓쳐서는 안 될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우리의 인식이 감성적 직관과 지성적 범주의 결합으로 이루어지며, 그것의 근원에는 언제나 그 인식이 통일을 이루기 위해 초월적 통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초월적 통각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감성의 틀과 12개의 범주라는 지성의 틀을 근원적으로 떠받쳐, 인식 일반의 가능성을 선험적으로 정당화하는 토대가 된다.(p147) - 해제 중 -

이 ‘생각하는 나‘로서의 초월적 통각은 현실의 주어진 세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부과된 이념의 세계로 나아가려고 한다. 이성은 지성의 판단 능력과는 달리 추리를 통해 주어진 세계를 넘어 부과된 세계로 우리의 개념과 범주를 월권적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여기에서 초월적 논리는 허구적 논리, 변증적 논리와 다시 한번 결전을 벌여야 한다.(p148) - 해제 중 -

구성적 원리가 주어진 세계 자체를 정리하고 결합하는 원리라면, 규제적 원리는 이념의 세계에 비추어 주어진 현상 세계를 하나의 통일된 체계로 만드는 것이다. 이성의 규제적 원리는 발견의 원리이지 구성의 원리가 아니다.(p150) - 해제 중 -

우리가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것은 순수 지성의 개념인 인과 범주를 현상 세계에만 적용해야 하는데, 그것을 넘어 이념의 세계에도 적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이 빠져들게 되는 이러한 오류는 우리 이성 안에 본래부터 내재하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p151)... 이러한 어쩔 수 없는 착각 앞에서 인간은 자신 안의 ‘위대한 허구‘, ‘허구 아닌 허구‘를 먹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인간이 버릴 수 없는 이념으로서의 이 허구가 바로 영혼의 불멸과 자유와 신이다.(p152) - 해제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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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 빈 현대의 고전 5
칼 쇼르스케 지음, 김병화 옮김 / 글항아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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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적인 자유주의 문화는 합리적 인간을 중심으로 한다. 합리적 인간은 자연에 대한 과학적 지배와 자기 자신에 대한 도덕적 통제를 통해 훌륭한 사회를 만들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한 몸에 모았다. 20세기에 접어들자 합리적 인간은 그보다 더 풍부한 내용을 지녔지만 더 위험하고 변덕스러운 존재인 심리적 인간에게 밀려났다. 이 신新 인간은 그저 합리적이기만 한 동물이 아니라 감정과 본능을 지닌 생물이다.... 19세기 빈 자유주의 문화는 서로 전혀 화합하지 못하는 도덕적 요소와 심미적 요소로 기묘하게 나뉘어 세기말 지식인들에게 그들 시대의 위기에 직면할 지적 도구를 제공했다.(p49) <세기말 빈> 中


 칼 쇼르스케(Carl E. Schorske, 1915 ~ )는 <세기말 빈 Fin-De-Siecle Vienna>에서  19세기 말 직전 오스트리아 제국의 수도 빈을 배경으로 자유주의 사상의 등장과 퇴조라는 사상의 변화를 쫓는다. 정치, 건축, 정신분석학, 미술, 음악의 여러 분야를 독립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유주의'라는 사상의 흐름을 통해서 바라보는 저자의 관점은 정치와 문화가 결코 독립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과 함께 제1차 세계대전이 오스트리아에서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배경 또한 우리에게 알려준다.


 저자는 오스트리아의 부르주아(bourgeois) 계급에서 다른 유럽 국가와는 다른 특징을 발견한다. 대혁명을 통해 귀족 계급을 몰아낸 프랑스나 산업자본을 통해 귀족의 권위를 대체한 영국 부르주아와는 달리 오스트리아에서는 부르주아들 스스로 귀족 계급에 동참하려는 다른 움직임을 보였으며, 문화/예술에 있어서는 귀족계급의 지원을 받은 예술가과 그들의 작품들은 체제의 순종을 강요하면서 어용(御用)예술로 변질되어 갔다는 점에서 다른 유럽국가들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오스트리아의 부르주아가 프랑스나 영국의 부르주아와 구별되는 기본적인 사회적 사실 두 가지가 있다. 그들은 귀족정치를 없애버리지 못했고 귀족들에게 완전히 녹아들어가지도 못했다. 또 그러한 취약성 때문에 황제를 경원하면서도 아버지 - 보호자 같은 존재로 여기고 그에게 의존했으며 깊은 충성심을 보였다. 독점적인 권력을 쟁취하지 못한 탓에 부르주아는 항상 어딘가 국외자 같은 존재였고, 귀족계급과 통합하려고 애썼다. 수도 많고 부유한 빈 거주 유대인 세력은 동화되려는 성향이 강했으므로 이 같은 추세를 더 강화시킬 뿐이었다.(p53) <세기말 빈> 中


 귀족계급 문화에 들어가는 둘째 길은 전통적으로 번영해온 공영예술의 후원을 통해서였다. 1890년대가 되면 중산계급 상류층이 떠받드는 영웅은 이제 정치 지도자가 아니라 배우, 화가, 평론가였다. 19세기가 끝날 무렵에는 빈의 중산계급 사회에서 예술이 발휘하던 기능이 변했고, 이 변화에서는 정치가 결정적인 역할을 맡았다.(p54)... 유럽의 다른 곳에서는 예술을 위한 예술이란 말에 예술에 몰두하는 이들이 한 사회 계급에서 고립된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하지만 빈에서만은 그런 예술이 사실상 한 계급 전체의 충성을 요구했다.(p55) <세기말 빈> 中


 이러한 오스트리아 사회의 특수성은 서유럽이 혁명의 분위기에 휩싸이던 시기에도 제국을 보호하는 힘이 되었다. 심지어, 1860년대 이후 19세기 후반까지 자유주의 세력이 주도권을 잡았던 시기에 이루어진 경제성장의 결과마저도 귀족문화의 확산으로 바꿀 정도였는데,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쇤베르크(Arnold Schonberg, 1874 ~ 1951)가 거부했던 오스트리아 전통의 힘 때문이었다.


 사회학적으로, 문화의 민주화란 중산계급의 귀족화를 의미한다. 예술이 그토록 중심적인 사회 기능을 수행한다는 사실은 예술 자체의 발전에 극히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오스트리아의 경제가 성장한 결과, 더 많은 가정에 귀족적 생활 스타일을 추구할 기반이 마련되었다.(p437) <세기말 빈> 中


 쇤베르크는 예술이 진리를 부패시키는 데 대한 분노를 쏟아낸다. 그 고발 속에서 오스트리아 전통을 성장시킨 주요한 힘들에 대한 전적이고도 포괄적인 거부의 음성이 울려나온다. 그 힘이란 말씀이 육화되고 육체로 가시화된 가톨릭의 은총의 문화, 부르주아들의 법 우선적 문화를 보충하고 승화시키기 위해 세속적으로 적용된 품위의 문화,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세기말의 자유주의의 위기에서 예술 그 자체를 가치의 근원으로, 종교의 대체물로 보려한 태도 등이다.(p522) <세기말 빈> 中


  나폴레옹 전쟁 이후 유럽 보수주의의 중심이었던 '비인 체제'와 이를 이끈 외상 메테르니히(Klemens Wenzel Lothar Furst von Met´ternich, 1773-1859)후작의 나라답게 오스트리아 제국은 혁명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나 이는 진정한 해결책이 아니었다. '게르만주의'와 '슬라브주의'의 충돌에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자유주의 정부의 붕괴는 제국 내 발칸반도를 '유럽의 화약고'로 만들었고, 반(反)자유주의 운동은 반(反)유대인 운동으로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사진]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 암살 사건(출처 : https://www.history.com/news/did-franz-ferdinands-assassination-cause-world-war-i)


 오스트리아 사회는 질서와 진보라는 자유주의적 좌표를 따라가지 못했다. 19세기의 마지막 사반세기 동안 자유주의자들이 상류계급에 대항하여 고안해낸 프로그램이 낳은 결과는 하층계급의 폭발이었다. 자유주의자들이 대중의 정치적 에너지를 해방시키는 데는 성공했겠지만, 그 저항 에너지는 그들의 숙적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들 자신을 향해 폭발했다. 귀족계급의 국제주의에 맞서기 위해 게르만 민족주의를 고안했지만, 그들에게는 슬라브 애국주의자들의 자치권 요구라는 응답이 돌아왔다.(p190)<세기말 빈> 中


  귀족계급 압제의 시녀라는 죄목으로 학교와 법정에서 발본색원되었던 가톨릭교는 농민과 장인들의 이데올로기라는 모습으로 복귀했는데, 이들이 볼 때 자유주의는 곧 자본주의였고 자본주의란 유대인을 의미했다... 자유주의자들은 위쪽에 있는 옛 지배계급에 대항하여 대중을 다시 불러 모으기는커녕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사회의 깊은 내면으로부터 전반적인 해체의 힘을 불러낸 것이다.(p191) <세기말 빈> 中


 <세기말 빈>에서는 이러한 시대 상황에서 자유주의 정부에서 이루어진 공공사업(건축)이 어떻게 빈을 변화시켰는지와 자유주의 정부의 붕괴가 시오니즘(Zionism )을 발생시켰는지, 유대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 ~ 1939)는 반유대주의라는 정치운동을 어떻게 정신분석을 통해 극복하려 했는지, 클림트(Gustav Klimt, 1862 ~ 1918)는 분리주의를 이끌면서 과거와의 단절을 주장했으며, 쇤베르크가 불협화음을 통해 기존 질서를 부정하려 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여러 분야에서 이루어진 서로 다른 변화가 정치와 긴밀하게 관계맺고 있음을 독자들을 깨닫게 된다. 


 빈을 지배한 자유주의자들이 이룬 가장 성공적인 업적 가운데 일부는 극적인 효과와는 전혀 거리가 먼 기술적인 작업으로 얻어졌고, 그 작업은 이 도시가 급속히 늘어나는 인구를 상대적으로 건강하고 안전하게 수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여러 세기 동안 도시를 괴롭혀온 범람을 막기 위해 다뉴브 강에 운하가 개설되었다. 그리고 1860년대에는 도시 전문가들이 우수한 상수도 공급 시설을 개발했다. 자유주의자들에게 장악되어 있던 시 당국은 1873년에 최초의 시립 병원을 개원하면서 공공 보건 시스템이 정비되자 심각한 전염병들이 사라졌다.(p79) <세기말 빈> 中


 프로이트의 정치 이론의 중심 원리란 모든 정치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일차적 갈등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이롭게도 '혁명적 꿈'의 시나리오에 바로 이 결론이 담겨 있다. 정치적 만남에서 학계로의 도피를 거쳐 툰 백작을 대체 한 아버지에 대한 정복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부친 살해가 권력 살해를 대체하고 정신분석이 역사를 극복한다. 정치는 반 反정치적 심리학에 의해 중립화된다.(p295)... 프로이트는 과학적 해방자가 되어 빚을 갚게 될 것이다. 그는 한니발의 서약을 자신의 반정치적 발견에 의해 해소했다. 즉 인간 행동을 결정하는 데서 유년기 경험이 차지하는 가장 중요한 위치의 발견이 그것이다.(p296) <세기말 빈> 中


[그림] Klimt, Pallas Athene(출처 : https://www.pinterest.co.kr/pin/348184614925603529/)


 클림트와 분리파는 두 방향으로 오토 바그너의 이상에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현대에 대한 몰입을 강화시켰고 링슈트라세의 역사적 스타일을 대체할 새로운 시각 언어를 그에게 제공했다... 현대 인간에 대한 클림트의 추구는 본질적으로 비교 秘敎적이고 내면적인, 1890년대 초반의 문학에 이미 나타나 있던 '심리적 인간 homo psychologicus'을 찾으려는 것이었다... 바그너의 거울에 비친 현대성의 얼굴은 이와 얼마나 다른가. 그것은 활동적이고 효율적이며 합리적이고 멋쟁이인 부르주아, 시간은 별로 없는 반면 돈은 많으며 기념비적인 것을 좋아하는 도시인의 얼굴이다.(p153) <세기말 빈> 中


 이 세기가 시작되기까지 서구의 전통적인 심미적 문화는 구조를 표면에 배치해 그 아래에 억눌려 있는 감정의 본성과 생명을 통제하도록 했다. 심리적 표현주의자인 쇤베르크는 표면이 깨지고 통제 불가능한 우주 속에서 떠돌아다니는 취약한 인간적 감정의 전 생명력으로 충만한 예술을 청중에게 제시한다. 하지만 그는 혼자 힘으로 그 혼란을 통합하게 될 잠재의식적이고 귀에 들리지 않는 합리적 질서의 세계를 그 아래쪽에 배치해두었다. 여기서 해방된 불협화음은 새로운 화음이 되고 심리적 혼란은 미적 감각을 뛰어넘는 질서가 된다.(p524) <세기말 빈> 中


 <세기말 빈>에서는 이와 같이 다양한 민족으로 이루어진 오랜 중부 유럽의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변화된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과거로 회귀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자유주의-반(反)자유주의'의 투쟁이 드러난다. 비록 19세기 후반 자유주의는 세력을 잃게 되지만, 그들이 집권과정에서 보여준 성과는 결코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실패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자유주의가 주도권을 잡았던 짧은 시기에 교양과 부의 통합은 놀랄 만큼 구체적인 사회 현실이 되었다. 행동과 성찰, 정치와 경제, 과학과 예술, 이 모든 것이 현재 안정적인 생활을 누리며 자기들이 지지하는 인류의 미래를 확신하는 사회적 계층의 가치 체계 속에서 통합되었다. 새로운 도시계획에서, 살롱의 생활에서, 가족의 에토스에서, 모든 곳에서 희망에 찬 합리주의적 자유주의의 통합적 신조가 구체적으로 표현되었다.(p438) <세기말 빈> 中


 개인적으로 자유주의자들의 실패는 가진 민중에 대한 선입견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민중을 구원하는 수단으로서 제시한 '예술'과 경제의 번영은 중산층의 귀족계급에 대한 열망을 부추겼을 뿐으로 이들을 자유주의 지지자로 만들지는 못했다. 반면, 시오니즘의 창시자 헤르츨(Theodor Herzl, 1860 ~ 1904)의 대중에 대한 관점은 사뭇 다르다. 수동적인 민중과 능동적인 대중. 다중에 대한 지도층의 이러한 의견 차이가 오스트리아-헝가지 제국의 해체와 이스라엘의 건국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지테의 민중 개념은 리하르트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 1813 ~ 1883)의 개념을 정확하게 뒤따르고 있다. 즉 '민중 Volk'은 보수적이고 속물주의에 빠지기 쉽지만 또한 천재의 호소에 부응할 수 있고 가장 심오한 가치를 깨달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바그너와 지테에게서 민중은 프랑스 혁명 이론가들이나 마르크스에게서처럼 정치에서의 능동적 요소가 아니다. 그들은 수동적이고 보수적이며, 현대적이고 파괴적인 하향식 전복자를 필요로 하는 존재다. 구원자인 예술가는 파우스트처럼 보수적(산업 시대 이전의)민중을 무자비하게 파괴함으로써가 아니라 그들과 연대함으로써 진보를 이뤄낼 것이다.(p135) <세기말 빈> 中


 헤르츨의 시오니즘의 원래 전략에서 대중은 두 가지 기능을 수행한다. 한편으로 그들은 엑소더스의 기동타격대가 되고 약속의 땅에 정착하게 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부유한 유럽 유대인들을 강요하여 시오니스트 해결책을 지원하도록 만들 몽둥이가 될 것이다. 즉 그들은 새로운 국가의 운반자인 게토의 유대인, 무기로서의 게토 유대인이다.(p257) <세기말 빈> 中


 <세기말 빈>은 이처럼 우리에게 생소한 중부 유럽 제국의 황혼(黃昏)을 배경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프로이트, 클림트, 쇤베르크가 어떻게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하나의 실로 꿰는 이들의 사상과 작품 속에서 진(眞)과 미(美)가 어떻게 현실 속에서 구현되는지를 확인하면서 리뷰를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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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4-27 16: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부터 인스타 이웃님의 리뷰를 보고
쟁여둔 요제프 로트의 <라데츠키 행진곡>
을 읽기 시작했는데, 겨호님이 읽으신
<세기말 빈>과 시대상이 비슷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소설이 오스트리아-헝가리 합스부르크
제국의 몰락이라는 정치적 차원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세기말 빈>은 좀 더 문화적
측면이 강조된 게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이
드네요.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슬라브 삼중제국
까지 고려했다는 점은 미처 몰랐습니다.
티토의 유고 이전에 이미 합스부르크 제
국의 민족 통합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도
한 수 배웠습니다.

겨울호랑이 2020-04-27 18:01   좋아요 1 | URL
레삭매냐님 말씀을 듣고 <라데츠키 행진곡>을 찾아보니 말씀하신대로 제1차 세계대전 직전 작품이네요. 저 역시 좋은 작품을 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문학작품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뼈대 위에 입힌 살갗과 같기에, 시대에 대한 이해가 작품을 깊이 감상하는데 필수적이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정치적, 경제적 이해 없이 단순히 이념만으로 민족과 나라를 통합하려는 노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도 레삭매냐님 글을 통해 생각해봅니다.^^:)
 
세기말 빈 현대의 고전 5
칼 쇼르스케 지음, 김병화 옮김 / 글항아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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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에서는 대부분의 분야에 자유주의 이후 post-liberal 시대의 특징인 문화의 ‘현대성 modernism‘이 나타난 것이 1890년대인데, 그 후 20년 만에 완전히 성숙한 단계에 이르렀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새로운 고급문화가 마치 온실에서 자라듯 빠른 속도로 자라났으며 그 온실의 열기를 공급하는 것은 정치적 위기였다. - 머리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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