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유라시아 견문> 시리즈를 덮으며 함께 읽으면 좋을 책들을 나누며 이번 페이퍼에서는 마무리를 지으려 한다.

 

 처음 <유라시아 견문>을 읽으면서, 책의 구성이 낯설게 다가왔다. 보통 여행기의 경우, 저자의 여행 경로에 따라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다 보면, 시간에 따라 공간이 묶이는 구성이지만,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지역 별로 구분해서 '동북아시아', '동남아시아', '지중해' 등으로 묶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 권마다 '동 東 - 서 西'의 도시들이 서술되는 기준일까에 관심이 미친다. 그러다가, <유라시아 견문 2>의 도시들을 훑으며, 이들이 해안 도시라는 공통점을 찾게 되었고 대체적으로 '바다의 길'에 해당하는 경로임을 알아냈다. 그렇다면, <유라시아 견문 1>에서는 중국이, <유라시아 견문 3>에서는 러시아, 몽골이 배치된 이유가 보다 분명해진다. 각 권은 '비단길', '바닷길', '초원의 길'에 대응하고, 이를 의식한 편집임을 깨닫게 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견문록이면서도 문명사(文明史)의 관점에서 현대를 조망한 책이라 할 것이다. 때문에, 관련있는 책들을 고르자면, 정말 차고 넘치지만 그 중에서도 먼저 떠오르는 것들을 올려본다.

 











 먼저,  정수일 박사의 <실크로드 도록>이 도움이 될 것이다. 해당 경로의 도시와 과거 역사, 유물을 소개한 도록을 통해서 우리는 생각보다 긴밀하게 연결된 세계를 깨닫게 된다. 추가적으로 실크로드 사전도 함께 읽으면 좋겠다. 여기에 저자의 여행기도 있지만, 아직 읽지 않아 리스트에 포함하지는 않는다.


 여기에 더해 세계 4대 여행기인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오도릭의 동방기행>,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들이 곁들여 진다면, <유라시아 견문>에서 소개된 국가, 도시의 옛 모습 등을 확인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이들은 <유라시아 견문>을 시간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고전들이다.















  다소 아쉬움에 느껴진다면 여기에 더해 라시드 앗 딘의 <집사>까지 읽으면 어떨까. 이를 통해 낯선 중앙아시아 몽골 제국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서진>과, <신장의 역사>는 중국과 중앙아시아 역사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인도와 관련해서는  문학작품이지만 <마하바라따>를 추천한다. 물론 양이 방대하지만, 노력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중국 문화에 대해 '대륙은 스케일이 다르다'고 하지만, <마하바라따>는 양(量)이 아닌 차원(次元)이 다르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만든다.


























































 












 



 저자는 <유라시아 견문3>에서 서양 사상이 공자의 영향을 짙게 받았음을 말하면서,문명교류의 재개를 강조한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황태연 교수의 책들이 도움이 될 것이다. 분량도 제법 되니 쌓아놓고만 있어도 마음이 채워지는 책들이다. 만약, 양이 부담스럽다면 <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를 읽어도 대강의 내용을 잡는데 큰 무리는 없어 보인다.












 



 최근 저자는 서구 계몽주의의 영향을 국가별로 나눈 책들도 냈지만, 아직 읽지 않아서 지금은 이에 대해 평가하기 어렵다. 기회가 되면 후에 다루도록 하고 일단은 넘기자.


 또한, 저자는 문명 교류를 통해 새로운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말을 여러 곳에서 주장한다. 이는 문명의 성격이 지역적이고 고립적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변화와 생성에서 찾고 있다는 느낌을 받느다. 이런 역사관의 측면에서 아놀드 토인비의 책들과 듀런트의 책들을 비교해서 읽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더불어 서양 고대 철학에서 '변화'를 강조한 헤라클레이토스와 '정지'를 강조한 파르메니데스의 관점을 비교해 보면 어떨까...


























































































 물론, <유라시아 견문>에는 실크로드의 경로를 담고 있는 국가들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간략하게나마 담고 있기에 이들에 해당하는 책들을 넣는다면 분명 더 많은 책들을 담을 수 있겠지만, 개략적으로 읽거나 알고 있는 책들을 중심으로 리스트를 만들어 본다. 이 정도면 한 1년 동안은 심심하지 않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해당되는 책들의 리뷰는 정리가 되는 책들부터 차례로 올리기로 하고 <유라시아 견문>시리즈를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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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arkan 2021-02-21 17: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훌륭한 리뷰와 소개입니다!

겨울호랑이 2021-02-21 17:32   좋아요 0 | URL
ddarkan님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유라시아 견문 2 - 히말라야에서 지중해까지 유라시아 견문 2
이병한 지음 / 서해문집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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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세와 시류를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다. 서세동점의 말기이다. 서구적 근대의 말세이며, 미국적 세계화의 끝물이다. 그러나 탈근대도 아니요, 반세계화도 아니다. 구미적 근대에서 지구적 근대로 이행하고 있다. 미국적 세계화에서 세계적 세계화로 진입하고 있다. 지구적 근대화와 세계적 세계화의 최전선에 유라시아가 자리한다. 구 舊 제국들은 귀환하고, 옛 문명들은 복원된다. 동서고금이 사통팔달 회통한다._ 이병한, <유라시아 견문 2>, p338

<유라시아 견문> 시리즈 전체 주제를 요약한다면, 아마도 위 문단으로 정리될 것이다. <유라시아 견문 2>에서는 미얀마의 양곤부터 그리스의 아테네까지 여정을 다루고 있다. 동남아시아에서 서남아시아, 동부 유럽에 이르는 이 여정에서 저자는 제국주의 시대의 아픔을 공유하는 이들의 모습을 제시한다.

아웅산과 수치 사이에 네읜 Ne Win(1911 ~ 2002)이 있었다. 아버지의 옛 동료이자, 딸의 정적이었다. 그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접수한 것이 1962년이다. 1988년까지 장장 26년을 집권했다. 유별난 일만은 아니다. 한국에서 박정희가 등장한 것이 1961년이다.(p30)... ‘아웅산 수치‘라는 이름, 혈통이야말로 최대의 정치 자산이었다.(p59)... 다시 출발하는 미얀마 또한 ‘다른 백 년‘의 든든한 동반자이기를 바란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따져봐도 그녀의 삶과 사상은 영국산이다. 새 시대를 여는 맏딸이기보다는 구시대의 막내이지 십상이다._ 이병한, <유라시아 견문 2>, p67

제국주의 시대를 마치고 독립을 쟁취했지만, 지배계급은 새시대를 준비하는 이들이 아니라, 지난 세대를 마무리하는 이들이었다. 미얀마의 수치 가문, 인도의 간디 - 네루 가문 모두 제국주의 모국에서 교육받은 최후의 지배세력이었고, 최근까지도 제국주의 지배의 연장선상에서 나라를 운영하고 있었다. 저자는 유라시아 견문을 통해 세력 교체라는 변화의 움직임을 발견했다. 2016년 당시는 우리에게도 역시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던 시기였기에, 유라시아 대륙에 부는 변화의 바람을 지적한 저자의 혜안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독립인도의 주역은 단연 네루였다. 펀자브주의 브라만 출신인 그의 사회주의 또한 영국의 페이비언 사회주의를 계승한 것이었다. 네루 본인도 말년에 스스로를 ‘인도를 다스린 마지막 영국인‘이라고 묘사한 바 있다.(p99)... 영국 독립 이후 인도에서 민주주의를 자연스럽게 실시할 수 있었던 것도 식민지 제도를 크게 변경치 않고 계승했기 때문이다. 정치적 불안정을 초래하는 급진적 개혁 또한 실행하지 않았다. 국민회의의 주요 구성원들이 식민지 시대부터 대두한 중앙의 중간층 또는 지방의 농총 지주 및 부농층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기득권을 보호하기에는 의회제 민주주의가 안성맞춤이었다._ 이병한, <유라시아 견문 2>, p102

이와 함께, 저자는 우리가 유라시아 시대를 맞이할 준비가 안되어 있다는 사실도 함께 지적한다. 우리가 동남아시아와 무슬림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은 서구에 의해 번역되고, 왜곡된 사실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러한 기억의 왜곡이 과거 역사에만 한정되지 미디어에 의해 진행중에 있기에, 현실과 인식의 괴리는 점차 커지고 있다는 것도 함께 알려준다.

1988년부터 카슈미르의 무장투쟁도 본격화되었다... 그러나 인도는 총력전으로 응징했다. 1989년 한 해에만 8만 명이 학살되었다. 700만 카슈미르 인구의 1 퍼센트가 죽은 것이다. 같은 해 텐안먼 사태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폭압이었다. 실제로 북쪽으로 이웃한 신장위구르 자치구와 견주어도 억압의 강도가 훨씬 높고 가혹하다. 국가폭력도 만연하다. 무슬림에 대한 고문과 강간이 숱하게 자행된다. 그럼에도 잘 부각되지 않는다. 프레임 탓이다. ‘민주주의 인도‘와 ‘이슬람 파키스탄‘ 구도로 접근한다. 카슈미르에 내재하지 못하고 대분할체제의 균열을 투영하는 것이다._ 이병한, <유라시아 견문 2>, p232

여론조사의 신빙성 또한 갈수록 의심받고 있습니다.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도, 미국의 대선 결과도 주류 언론의 여론조사는 줄곧 잘못된 정보를 발신해왔습니다._ 이병한, <유라시아 견문 2>, p573

대표적인 왜곡된 인식 사례로 저자는 무슬림의 ‘히잡‘ 문화를 든다. 흔히 여성 억압의 도구로 알고 있는 히잡이지만, 무슬림들에게 히잡은 여성들의 적극적 투쟁 문화의 소산임을 저자는 밝힌다. ‘자신의 몸을 보여주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며, 외부 시선으로부터의 자유를 주장하는 무슬림 문화를 우리는 제대로 보고 있는가를 비판하는 저자의 지적이 자못 날카롭게 느껴진다.

무슬림 문화에 대한 오만과 편견이 켜켜이 쌓여 있다. 히잡도 그 가운데 하나다. 흔히 여성 억압의 상징처럼 간주된다. 그러나 사정이 그리 간단치가 않다. 20세기 내내 무슬림 여성이 히잡을 썼던 것이 아니다. 이란과 터키 같은 개발독재형 우파 국가에서도, 수카르노의 인도네시아나 나세르의 이집트 같은 좌파 독재국가에서도 히잡 착용은 ‘여성 해방‘의 상징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국가가 국책으로 히잡을 벗겨냈던 것이다. 그 독재권력에 맞서서 민주화 운동에 투신한 열혈 여성들로부터 히잡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억압은 커녕 저항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의상을 통한 인정투쟁은 민주주의가 착근하면서 남성 지도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갈수록 남성들도 전통적 복장으로 갈아입고 있다._ 이병한, <유라시아 견문 2>, p559

<유라시아 견문 2>에서 저자는 궁극적으로 유라시아가 새로운 시대의 무대가 될 것임을 말하면서도,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사실도 함께 지적한다. 유라시아 각국들이 과거 암울한 제국주의 시대의 굴레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거나, 힘겹게 빠져 나왔기에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우리부터 먼저 이웃을 바르게 보자는 저자의 울림이 간절하게 느껴진다.

PS. 이제서야 겨우 눈치챘지만, 지금 저자의 <유라시아 견문> 3권은 그냥 씌여진 것이 아니다. 각각 ‘비단길‘(1권) , ‘바닷길‘(2권), ‘초원의 길(3권)‘에 대응하는 것임을 책을 다 읽은 후에야 간신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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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전경쟁 시장에서 가격이 하락하는 것을 방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외부의 개입'이다... 한 경쟁적 산업이 그 생산물의 가격을 유지하는 데에 어떻게 정부의 도움을 받게 되는가? 경쟁적인 한 산업을 가정해 보자. 그 산업에 속한 생산자 대부분이 생산물의 가격을 인상하기 위해 관세, 가격지지 프로그램, 또는 그 밖의 다른 형태의 정부 개입을 바란다고 가정해 보자. 정부로부터 이러한 지원을 받기 위해 당해 산업의 생산자들은 아마 로비 조직을 결성해야만 할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압력단체로서 활동해야만 할 것이다. 이 조직은 상당한 캠페인 campaign을 벌여야만 할 수도 있다. _ 멘슈어 올슨, <집단행동의 논리, 공공재와 집단이론>, p14


 멘슈어 올슨(Olson, Mancur, Jr., 1932 ~ 1998)은 <집단행동의 논리, 공공재와 집단이론 The Logic of Collective Action: Public Goods and the Theory of Groups>에서  공동이익(共同利益)을 공유한 개인들이 각자의 이익을 위해 조직 활동의 비용을 어떻게 부담하는 것이 최선인가를 분석한다. 먼저, 개인들은 공동이익의 추구를 위해 로비(lobby) 조직을 만들고, 여기에는 비용이 발생한다. 그렇지만, 공공재(公共財) 성격을 가지는 조직의 특성상 로비 집단은 구성원들에게 마치 세금과 같은 강제 과세, 의무가입을 요구하게 된다.


 마치 한 특정 생산자가 그 산업 전체로서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도록 자신의 산출량을 제한하는 것이 비합리적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가 산업 전체를 위한 정부의 지원을 얻어내기 위해서 시간과 자금을 들여 로비 조직을 결성하고 유지하는 것도 합리적인 것은 아닐 것이다._ 멘슈어 올슨, <집단행동의 논리, 공공재와 집단이론>, p15


 국가가 자발적 부담 또는 납부로는 생존해 나갈 수 없고 반드시 '강제적인' 조세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는 국민국가가 제공하는 가장 기본적인 서비스들이 어떤 측면에서는 경쟁시장에서의 높은 가격과 같다는데 있다.... 정보가 제공하는 공동의 혜택 혹은 집합적 혜택을 일반적으로 경제학자들은 "공공재 public goods"라고 부른다. 이에 대해서는 강제적 과세 課稅가 필요하다._ 멘슈어 올슨, <집단행동의 논리, 공공재와 집단이론>, p19


 저자 올슨은 정부의 공공재와 같은 성격을 노동조합이나 전문직종의 협회에서도 발견하면서, 이들이 강제 가입을 통해 통제력과 협상력을 강화했음을 말한다. 일반 노동조합의 영향력보다 이들 전문가 협회는 지식의 배타성으로 해당 분야에서 테크노크러시(Technocracy)를 하는 집단이니만큼 이들이 가진 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의 대한의사협회도 길드를 지향하는 '소정부'라는데 다른 의견이 없을 듯하다.


 법조인과 의사처럼 번창하는, 그리고 명예스러운 전문 직종을 대표하는 많은 조직도 '강제 가입제'라는 금단의 과일에 손을 뻗쳐왔다. 사실 전문 직능단체 전반에서 '강제성'에 의존하는 경향이 넘친다. 딜런시 Frances Delancey는 "심지어 이 경향은 직업적 길드 guild를 향하고 있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현대의 전문 직능단체나 길드는 "소 小 정부" miniature government(정부의 축소판)와 유사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정부가 행사하는 모든 유형의 권력이 있다. 공공재와 집단이론>_ 멘슈어 올슨, <집단행동의 논리, 공공재와 집단이론>, p217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와의 최종 협상이 결렬되면서, 21일부터 의사 총파업이 예정되어 있다. 공공의대 설립, 저수가 등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맞물린 이번 사태의 본질을 보는 것은 쉽지 않다. 의사들을 제외한 절대 다수의 이해관계가 반대편에 있기 때문이다. 선뜻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공공의대설립과 관련한 문제점과 파업에 나설 수 밖에 없는 의사의 입장에도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비록, 내가 의사 집단에 속하지 않지만, 노동 3권이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이상 이들은 단체행동을 할 정당한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결정적으로 파업을 하는 시기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15일 극우세력의 광화문 집회로 인해 확진자 수가 급증하며, 하루 종일 확진자 동선 안내 문자를 받으며 코로나 19의 대규모 재유행을 걱정하는 시기에 이들이 벌인 행동은 의료인들의 손길이 필요한 결정적 순간에, 자신의 몸값을 높여 이익을 챙기려는 얕은 술수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전 국민이 위기감을 느낄 때, 의료인들이 보인 행태는 제2차 포에니 전쟁 당시 칸나에 전투(Battle of Cannae, BC 216)에서 대참패를 당한 로마의 뒤통수를 가격한 카푸아(Capua)의 배신을 떠올리게 한다. 

 

 대규모의 군대가 적에게 이토록 적은 손실만 입힌 채, 전쟁에서 이처럼 완벽하게 전멸한 사례는 칸나이의 로마군이 유일할 것이다. 한니발은 6,000 명이 채 못 되는 병력을 잃었지만, 그 가운데 2/3은 로마군단의 첫 공격이 집중되었던 켈트족이었다. 반면 전선에 배치된 로마군 7만 6,000명에서, 집정관 루키우스 파울루스와 대리집정관 그나이우스 세빌리우스, 장교들의 2/3, 원로원 의원 80명을 포함한 시신 7만 구가 전장을 덮었다. 집정관 마르쿠스 바로만 재빨리 판단해 베누시아로 말을 몰아 목숨을 부지했다. _ 테어도르 몸젠, <몸젠의 로마사 3>, p188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힘들었던 것은, 힘들었던 전쟁 초기 2년 동안의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고 버틴 로마 연방이라는 건축물이, 마침내 결속력이 약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로마 식민도시 루케리아와 브룬디시움 때문에 심한 피해를 받았던 오래된 두 도시, 그러니까 아풀리아의 아르피와 메사피아이 우젠툼이 한니발 측으로 넘어갔다... 마지막으로 이탈리아 제2의 도시였던 카푸아는 3만 명의 보병과 4,000명의 기병을 전장에 배치할 수 있었는 바, 한니발 측으로 넘어감에 따라 주변 도시 아텔라와 칼라티아에도 영향을 미쳤다._ 테어도르 몸젠, <몸젠의 로마사 3>, p192


 여러가지로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내고, 하반기에는 나아지겠지라는 바람이 눈 앞에서 깨지는 것을 보고 참담함을 느끼지 않은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내세우며, 전선에서 이탈하는 이들을 보면서 느끼는 배신감이 대한의사협회를 바라보는 일반 국민들의 공통적인 감정이 아닐까.


  의사들은 누구나 의사가 될 때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of Cos, BC 460 ? ~ BC 375 ?)의 선서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는 <선서> 이외에도 여러 저술을 남겼는데, 그 중 <의사의 마음가짐>에는 사례금과 관련한 이야기가 나온다. 의료 수가 문제, 의사 수 확대 문제 모두 경제 문제와 연관되어 있고, 이는 환자들의 진료비와 건강보험과 직결된 문제라 했을 때, 히포크라테스가 남긴 말은 의미 심장하다.


 다음은 사례금에 관한 것이다. 만일 당신(의사)이 치료에 앞서 환자에게 사례금에 대한 얘기를 꺼내고 환자와 당신 사이에 의견이 모아지지 않으면, 액수가 너무 많다고 생각하는 환자가 진료를 거부하거나, 아니면 당신이 응급 처치를 하지 않거나 환자를 돌보는 것을 소홀히 할 수가 있다. 따라서 보수에 대하여 환자와 입씨름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염려는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 특히 급성 환자에게 매우 해로운 것이다. 질병이 진행되는 동안 사례금 문제로 치료의 적절한 시기를 놓쳐 눈물을 흘리게 하는 행위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모름지기 훌륭한 의사가 추구해야 할 것은 금전적 이익이 아니라 명예이기 때문이다. 질병을 않고 있는 환자를 조속히 처치하는 것은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으로부터 유산을 받는 것보다 유익한 일이다._ 히포크라테스, <의학이야기>, <의사의 마음가짐>, p13


 의사(醫師)는 다른 직종과는 달리 선비 사(士)를 쓰지 않고, 스승 사(師)를 쓴다. 이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일에 대한 존중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최근 의사협회에서 보이는 모습을 보면, 스승이 아닌 '사(邪)'를 느끼게 되어 유감이다. 마지막으로, 의사들이 초심을 가지고 <선서>에 충실하길 바란다. 그리고, <선서>을 의학(醫學)의 신(神) 아스클레피오스(Asklepios)가 그대로 이뤄 주기를 희망한다. 특히, 마지막 대목의 실현을...


[사진] hippocrates oath(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Hippocratis_jusiurandum.jpg)


 마지막으로 신들께 바라나니, 만일 내가 이 선서를 지키고 파괴하는 일이 없다면 영원히 모든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얻고 생애와 기술을 즐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또한 만일 이 선서를 파괴하고 지키지 않는 일이 있다면 그 반대의 보답이 있도록 하십시오._ 히포크라테스, <의학이야기>, <선서>, p10


PS. 로마를 배신한 카푸아는 그로부터 6년 뒤 처절한 응징을 받게 된다...


 (카푸아 반란에 대한) 벌은 가혹했다. 하지만 카푸아 반란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그리고 바람직하지는 않아도 당시의 일반적인 전쟁 관례를 고려하면, 납득이 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로마가 이 기회를 빌미로, 캄파니아 주정부를 철폐함으로써 이탈리아의 두 대도시 간에 오래도록 팽팽히 내재되어 있던 경쟁심을 충족시키고,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던 경쟁자를 정치적으로 완전히 와해한 일은 온당하지 않았다._ 테어도르 몸젠, <몸젠의 로마사 3>,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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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0-08-21 2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평생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그리고 의료행위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이 살다가 최근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수술과 치료를 받으면서 처음으로 의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여러 복합적인 원인이 엮여 있으니 섣불리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 맞겠고, 또 말씀처럼 시기가 잘못된 것도 맞는 것 같아요.

겨울호랑이 2020-08-21 20:46   좋아요 0 | URL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 모로 어수선한 요즘입니다. 걱정이 되지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각자의 자리에서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감은빛님 건강하게 주말 보내세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읽기 강대진의 고전 산책 3
강대진 지음 / 그린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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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를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파괴적인 분노를.

지금껏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을 읽으며 부끄럽게도 저 문장 너머를 바라볼 수 없었다. 그렇지만, 아킬레우스는 전체 24권 중 1권에서 아가멤논에게 화를 내고 자기 진영에 틀어박힌 후 제16권 파트클로스가 죽은 후에서야 싸울 준비를 하고 제20권에 이르러서야 겨우 자신의 분노를 표현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일리아스>의 주인공은 아킬레우스가 아니다. 그보다 절대적인 용맹을 지닌 아킬레우스의 빈 자리를 메꾸는 인물들 - 불멸의 신들마저 격퇴한 디오메데스, 자신의 한계를 알면서도 트로이아를 위해 묵묵히 헌신하는 헥토르이며, 복수를 위해 모든 것을 건 메넬라오스와 겁에 질려 헬레네 곁으로 도망치는 파리스, 아가멤논과 아이아스 등 -의 공동주연이라고 보는 편이 더 타당하게 느껴진다.

이들을 주인공으로 바라보면 작품이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이들은 필멸의 인간이기에 각자 한계를 갖고 있으며, 이러한 한계가 저마다 죽음의 원인이 된다. 죽음은 제약 조건으로 작용한다.

‘어둠이 눈 앞을 가리면‘ 인간들은 더이상 전장에 나설 수 없다. 때문에 항상 죽음을 걱정해야 하는 인간의 영웅들은 신들은 물론 반신반인의 아킬레우스에 비해서도 한없이 미약한 존재에 불과하고 끊임없이 감정에 휩쓸린다.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그들은 자신이 가진 인간적인 한계로 인해 불멸의 삶을 부여받는데, 그것은 각자의 삶을 배경으로 한 작품(그리스 비극)안에서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읽기>는 영웅 아킬레우스가 아닌 필멸의 인간들이 불멸의 인간으로 우리 곁에 남을 수 있는 이유를 작품 해설을 통해 친절하게 알려준다. 그리고, 그 설명을 통해 우리는 영화 <트로이>의 왜곡된 이미지가 아닌 호메로스 작품 안에서 살아 있는 인물의 모습을 온전히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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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의지와 일반의지 사이에는 대체로 커다란 차이가 있다. 일반의지가 공동이익만을 고려하는 반면, 전체의지는 사적 이익을 고려하는 개별의지들의 총합일 뿐이다. 그러나 이런 개별의지들에서 서로 상쇄하는 넘치거나 부족한 의지들을 빼면 그 차이들의 총합으로서 일반의지가 남는다... 일반의지는 언제나 옳고 항상 공익을  지향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인민이 심의 deliberations du peuple가 언제나 그처럼 공정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언제나 자기에제 좋은 것을 원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를 항상 알지는 못한다. 인민은 절대로 매수되지 않지만, 종종 속아 넘어간다. 인민이 자기에게 나쁜 것을 원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때뿐이다. _루소, <사회계약론>, p46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 ~ 1778) <사회계약론 Du Contrat Social ou Principes du droit politique)에서 사회를 '의지의 결합'으로 바라본다. 인간이 이성(理性)을 갖추게 된다면 자기보존과 자기에 대한 관심으로 자유롭게 판단을 내릴 수 있으며, 계약을 통해 사회를 구성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사회 구성원들인 인민의 의지는 대체적으로 공익(公益)으로 수렴한다.


 (과두정 이후) 타락의 다음 단계는 플라톤이 '민주정'이라고 부른 것이었다. 그는 사회 질서와 권위가 완전히 땅에 떨어지고 사람들은 자기 원하는 대로 뭐든 할 수 있는 무법 상태를 기술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민주정적 품성은 무법적인 것이며 무질서한 것이다. 그 품성은 '불필요한' 욕구들, 즉 모든 일시적인 욕구와 변덕의 통제되지 않은 난잡한 추구에 의해 지배받고 있다._숀 세이어즈, 플라톤 <국가> 해설, p250


 이에 반해, 플라톤(Platon, BC 428 ~ BC 348)의 국가(Politeia(는 '필요(chreia)'에 의해 구성된다. 사회구성원들이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성향(physis)에 맞게 사회적 분업을 할 필요를 느끼고, 이것이 활성화되면서 공동체는 커져간다. <국가>에서는 이렇게 만들어진 정체 중 과두정(oligarchy)이 민주정(demonkratia)로 옮겨가고, 민주정이 다시 참주정(tyrannos)으로 옮겨가는 과정이 설명된다. <국가>에서 플라톤은 소크라테스(Socrates, BC 470 ~ BC 399)의 입을 빌려 민주정의 특성을 무질서와 무법으로 보고 이 체제를 긍정하지 않는다. 


 첫째로, (민주 정체에서) 이들은 자유로우며, 이 나라는 자유(elutheria)와 언론 자유(parrhesia)로 가득 차 있어서, 이 나라에는 자기가 하고자 하는 바를 '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exousia)'가 있지 않겠는가?"... "적어도 '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는 각자가 어떤 형태로든 제 마음에 드는 자신의 삶의 개인적인 대책을 마련할 게 명백하이... 이렇게 되면, 이 정체에서는 무엇보다도 온갖 부류의 인간들이 생겨날 것이라 나는 생각하네.(557b)... 민주 정체는 즐겁고 무정부 상태의(anarchos) 다채로운 정체이며, 평등한 사람들에게도 평등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일종의 평등(isotes)을 배분해 주는 정체인 걸로 보이네." _ 플라론, <국가>, 제8권, 558c


 루소의 사회가 자유로운 의지들의 결합이라면, 소크라테스(또는 플라톤)의 국가는 필요에 의한 결합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러한 사회 공동체의 성격 규정이 두 철학자들의 정체(政體)에 대한 평가를 가른 요인이 된 것은 아닐까.


 지난 8.15 광복절 집회 시 나타난 무질서와 혼란을 보면서 공동체의 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되었음을 느낀다. 무정부 상태에서 나타난 혼란과 방종의 모습 속에서 지난 시간 공동체의 가치와 안정을 지키려 했던 노력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려가는 것을 바라보는 마음은 무겁다. 이 과정에서, 플라톤이 느꼈던 민주주의에 대한 혐오의 감정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이해된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포스(Force)의 어두운 측면과 함께, 밝은 면을 향한 가능성도 발견한다. <국가>에서 플라톤이 말한 사회적 분업이 서로 다른 성향(physis)을 전제로 한 것이며, 그가 지향한 것이 4주덕(4主德)에 근거한 철인(哲人)지배체제라는 점과루소가 말한 '부분적인 사회'(분파)도 함께 생각해보자. 사회 계급의 장벽이 높고, 빈곤의 악순환이 계속 되었을 때, 사회는 구성원들의 자유로운 의지 결합이 아닌, 피라미드 사회가 될 것이고, 이때 민주정의 어두운 면이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때문에, 우리 사회가 밝은 면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사회 불평등 해소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고, 이러한 출발이 일반의지에 대한 낙관적 기대를 가능케 하지 않을까. 때문에, 우리 사회의 태어날 때부터 넘을 수 없는 계급장벽을 없애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지 않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사회의 불평등이 보다 깊어질 때 극우 세력이 힘을 키웠음을 생각한다면, 이와 같은 해석이 크게 무리하지 않다 생각된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이들이 맹목적인 믿음과 결합되어 파시즘의 전사로 거듭나지 않도록 사회안정망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한 사회의 과제임을 <사회계약론>과 <국가>를 통해 생각해 본다...


 일반의지가 올바르게 표현되기 위해서는 국가 내에서 어떤 부분적인 사회도 존재하지 않고 시민 각자가 자신만의 소신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위대한 리쿠르고스의 유례없이 탁월한 제도가 바로 이것이었다._루소, <사회계약론>,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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