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경쟁 시장에서 가격이 하락하는 것을 방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외부의 개입'이다... 한 경쟁적 산업이 그 생산물의 가격을 유지하는 데에 어떻게 정부의 도움을 받게 되는가? 경쟁적인 한 산업을 가정해 보자. 그 산업에 속한 생산자 대부분이 생산물의 가격을 인상하기 위해 관세, 가격지지 프로그램, 또는 그 밖의 다른 형태의 정부 개입을 바란다고 가정해 보자. 정부로부터 이러한 지원을 받기 위해 당해 산업의 생산자들은 아마 로비 조직을 결성해야만 할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압력단체로서 활동해야만 할 것이다. 이 조직은 상당한 캠페인 campaign을 벌여야만 할 수도 있다. _ 멘슈어 올슨, <집단행동의 논리, 공공재와 집단이론>, p14


 멘슈어 올슨(Olson, Mancur, Jr., 1932 ~ 1998)은 <집단행동의 논리, 공공재와 집단이론 The Logic of Collective Action: Public Goods and the Theory of Groups>에서  공동이익(共同利益)을 공유한 개인들이 각자의 이익을 위해 조직 활동의 비용을 어떻게 부담하는 것이 최선인가를 분석한다. 먼저, 개인들은 공동이익의 추구를 위해 로비(lobby) 조직을 만들고, 여기에는 비용이 발생한다. 그렇지만, 공공재(公共財) 성격을 가지는 조직의 특성상 로비 집단은 구성원들에게 마치 세금과 같은 강제 과세, 의무가입을 요구하게 된다.


 마치 한 특정 생산자가 그 산업 전체로서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도록 자신의 산출량을 제한하는 것이 비합리적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가 산업 전체를 위한 정부의 지원을 얻어내기 위해서 시간과 자금을 들여 로비 조직을 결성하고 유지하는 것도 합리적인 것은 아닐 것이다._ 멘슈어 올슨, <집단행동의 논리, 공공재와 집단이론>, p15


 국가가 자발적 부담 또는 납부로는 생존해 나갈 수 없고 반드시 '강제적인' 조세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는 국민국가가 제공하는 가장 기본적인 서비스들이 어떤 측면에서는 경쟁시장에서의 높은 가격과 같다는데 있다.... 정보가 제공하는 공동의 혜택 혹은 집합적 혜택을 일반적으로 경제학자들은 "공공재 public goods"라고 부른다. 이에 대해서는 강제적 과세 課稅가 필요하다._ 멘슈어 올슨, <집단행동의 논리, 공공재와 집단이론>, p19


 저자 올슨은 정부의 공공재와 같은 성격을 노동조합이나 전문직종의 협회에서도 발견하면서, 이들이 강제 가입을 통해 통제력과 협상력을 강화했음을 말한다. 일반 노동조합의 영향력보다 이들 전문가 협회는 지식의 배타성으로 해당 분야에서 테크노크러시(Technocracy)를 하는 집단이니만큼 이들이 가진 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의 대한의사협회도 길드를 지향하는 '소정부'라는데 다른 의견이 없을 듯하다.


 법조인과 의사처럼 번창하는, 그리고 명예스러운 전문 직종을 대표하는 많은 조직도 '강제 가입제'라는 금단의 과일에 손을 뻗쳐왔다. 사실 전문 직능단체 전반에서 '강제성'에 의존하는 경향이 넘친다. 딜런시 Frances Delancey는 "심지어 이 경향은 직업적 길드 guild를 향하고 있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현대의 전문 직능단체나 길드는 "소 小 정부" miniature government(정부의 축소판)와 유사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정부가 행사하는 모든 유형의 권력이 있다. 공공재와 집단이론>_ 멘슈어 올슨, <집단행동의 논리, 공공재와 집단이론>, p217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와의 최종 협상이 결렬되면서, 21일부터 의사 총파업이 예정되어 있다. 공공의대 설립, 저수가 등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맞물린 이번 사태의 본질을 보는 것은 쉽지 않다. 의사들을 제외한 절대 다수의 이해관계가 반대편에 있기 때문이다. 선뜻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공공의대설립과 관련한 문제점과 파업에 나설 수 밖에 없는 의사의 입장에도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비록, 내가 의사 집단에 속하지 않지만, 노동 3권이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이상 이들은 단체행동을 할 정당한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결정적으로 파업을 하는 시기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15일 극우세력의 광화문 집회로 인해 확진자 수가 급증하며, 하루 종일 확진자 동선 안내 문자를 받으며 코로나 19의 대규모 재유행을 걱정하는 시기에 이들이 벌인 행동은 의료인들의 손길이 필요한 결정적 순간에, 자신의 몸값을 높여 이익을 챙기려는 얕은 술수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전 국민이 위기감을 느낄 때, 의료인들이 보인 행태는 제2차 포에니 전쟁 당시 칸나에 전투(Battle of Cannae, BC 216)에서 대참패를 당한 로마의 뒤통수를 가격한 카푸아(Capua)의 배신을 떠올리게 한다. 

 

 대규모의 군대가 적에게 이토록 적은 손실만 입힌 채, 전쟁에서 이처럼 완벽하게 전멸한 사례는 칸나이의 로마군이 유일할 것이다. 한니발은 6,000 명이 채 못 되는 병력을 잃었지만, 그 가운데 2/3은 로마군단의 첫 공격이 집중되었던 켈트족이었다. 반면 전선에 배치된 로마군 7만 6,000명에서, 집정관 루키우스 파울루스와 대리집정관 그나이우스 세빌리우스, 장교들의 2/3, 원로원 의원 80명을 포함한 시신 7만 구가 전장을 덮었다. 집정관 마르쿠스 바로만 재빨리 판단해 베누시아로 말을 몰아 목숨을 부지했다. _ 테어도르 몸젠, <몸젠의 로마사 3>, p188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힘들었던 것은, 힘들었던 전쟁 초기 2년 동안의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고 버틴 로마 연방이라는 건축물이, 마침내 결속력이 약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로마 식민도시 루케리아와 브룬디시움 때문에 심한 피해를 받았던 오래된 두 도시, 그러니까 아풀리아의 아르피와 메사피아이 우젠툼이 한니발 측으로 넘어갔다... 마지막으로 이탈리아 제2의 도시였던 카푸아는 3만 명의 보병과 4,000명의 기병을 전장에 배치할 수 있었는 바, 한니발 측으로 넘어감에 따라 주변 도시 아텔라와 칼라티아에도 영향을 미쳤다._ 테어도르 몸젠, <몸젠의 로마사 3>, p192


 여러가지로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내고, 하반기에는 나아지겠지라는 바람이 눈 앞에서 깨지는 것을 보고 참담함을 느끼지 않은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내세우며, 전선에서 이탈하는 이들을 보면서 느끼는 배신감이 대한의사협회를 바라보는 일반 국민들의 공통적인 감정이 아닐까.


  의사들은 누구나 의사가 될 때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of Cos, BC 460 ? ~ BC 375 ?)의 선서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는 <선서> 이외에도 여러 저술을 남겼는데, 그 중 <의사의 마음가짐>에는 사례금과 관련한 이야기가 나온다. 의료 수가 문제, 의사 수 확대 문제 모두 경제 문제와 연관되어 있고, 이는 환자들의 진료비와 건강보험과 직결된 문제라 했을 때, 히포크라테스가 남긴 말은 의미 심장하다.


 다음은 사례금에 관한 것이다. 만일 당신(의사)이 치료에 앞서 환자에게 사례금에 대한 얘기를 꺼내고 환자와 당신 사이에 의견이 모아지지 않으면, 액수가 너무 많다고 생각하는 환자가 진료를 거부하거나, 아니면 당신이 응급 처치를 하지 않거나 환자를 돌보는 것을 소홀히 할 수가 있다. 따라서 보수에 대하여 환자와 입씨름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염려는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 특히 급성 환자에게 매우 해로운 것이다. 질병이 진행되는 동안 사례금 문제로 치료의 적절한 시기를 놓쳐 눈물을 흘리게 하는 행위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모름지기 훌륭한 의사가 추구해야 할 것은 금전적 이익이 아니라 명예이기 때문이다. 질병을 않고 있는 환자를 조속히 처치하는 것은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으로부터 유산을 받는 것보다 유익한 일이다._ 히포크라테스, <의학이야기>, <의사의 마음가짐>, p13


 의사(醫師)는 다른 직종과는 달리 선비 사(士)를 쓰지 않고, 스승 사(師)를 쓴다. 이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일에 대한 존중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최근 의사협회에서 보이는 모습을 보면, 스승이 아닌 '사(邪)'를 느끼게 되어 유감이다. 마지막으로, 의사들이 초심을 가지고 <선서>에 충실하길 바란다. 그리고, <선서>을 의학(醫學)의 신(神) 아스클레피오스(Asklepios)가 그대로 이뤄 주기를 희망한다. 특히, 마지막 대목의 실현을...


[사진] hippocrates oath(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Hippocratis_jusiurandum.jpg)


 마지막으로 신들께 바라나니, 만일 내가 이 선서를 지키고 파괴하는 일이 없다면 영원히 모든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얻고 생애와 기술을 즐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또한 만일 이 선서를 파괴하고 지키지 않는 일이 있다면 그 반대의 보답이 있도록 하십시오._ 히포크라테스, <의학이야기>, <선서>, p10


PS. 로마를 배신한 카푸아는 그로부터 6년 뒤 처절한 응징을 받게 된다...


 (카푸아 반란에 대한) 벌은 가혹했다. 하지만 카푸아 반란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그리고 바람직하지는 않아도 당시의 일반적인 전쟁 관례를 고려하면, 납득이 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로마가 이 기회를 빌미로, 캄파니아 주정부를 철폐함으로써 이탈리아의 두 대도시 간에 오래도록 팽팽히 내재되어 있던 경쟁심을 충족시키고,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던 경쟁자를 정치적으로 완전히 와해한 일은 온당하지 않았다._ 테어도르 몸젠, <몸젠의 로마사 3>,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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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0-08-21 2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평생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그리고 의료행위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이 살다가 최근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수술과 치료를 받으면서 처음으로 의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여러 복합적인 원인이 엮여 있으니 섣불리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 맞겠고, 또 말씀처럼 시기가 잘못된 것도 맞는 것 같아요.

겨울호랑이 2020-08-21 20:46   좋아요 0 | URL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 모로 어수선한 요즘입니다. 걱정이 되지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각자의 자리에서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감은빛님 건강하게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