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의지와 일반의지 사이에는 대체로 커다란 차이가 있다. 일반의지가 공동이익만을 고려하는 반면, 전체의지는 사적 이익을 고려하는 개별의지들의 총합일 뿐이다. 그러나 이런 개별의지들에서 서로 상쇄하는 넘치거나 부족한 의지들을 빼면 그 차이들의 총합으로서 일반의지가 남는다... 일반의지는 언제나 옳고 항상 공익을  지향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인민이 심의 deliberations du peuple가 언제나 그처럼 공정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언제나 자기에제 좋은 것을 원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를 항상 알지는 못한다. 인민은 절대로 매수되지 않지만, 종종 속아 넘어간다. 인민이 자기에게 나쁜 것을 원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때뿐이다. _루소, <사회계약론>, p46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 ~ 1778) <사회계약론 Du Contrat Social ou Principes du droit politique)에서 사회를 '의지의 결합'으로 바라본다. 인간이 이성(理性)을 갖추게 된다면 자기보존과 자기에 대한 관심으로 자유롭게 판단을 내릴 수 있으며, 계약을 통해 사회를 구성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사회 구성원들인 인민의 의지는 대체적으로 공익(公益)으로 수렴한다.


 (과두정 이후) 타락의 다음 단계는 플라톤이 '민주정'이라고 부른 것이었다. 그는 사회 질서와 권위가 완전히 땅에 떨어지고 사람들은 자기 원하는 대로 뭐든 할 수 있는 무법 상태를 기술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민주정적 품성은 무법적인 것이며 무질서한 것이다. 그 품성은 '불필요한' 욕구들, 즉 모든 일시적인 욕구와 변덕의 통제되지 않은 난잡한 추구에 의해 지배받고 있다._숀 세이어즈, 플라톤 <국가> 해설, p250


 이에 반해, 플라톤(Platon, BC 428 ~ BC 348)의 국가(Politeia(는 '필요(chreia)'에 의해 구성된다. 사회구성원들이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성향(physis)에 맞게 사회적 분업을 할 필요를 느끼고, 이것이 활성화되면서 공동체는 커져간다. <국가>에서는 이렇게 만들어진 정체 중 과두정(oligarchy)이 민주정(demonkratia)로 옮겨가고, 민주정이 다시 참주정(tyrannos)으로 옮겨가는 과정이 설명된다. <국가>에서 플라톤은 소크라테스(Socrates, BC 470 ~ BC 399)의 입을 빌려 민주정의 특성을 무질서와 무법으로 보고 이 체제를 긍정하지 않는다. 


 첫째로, (민주 정체에서) 이들은 자유로우며, 이 나라는 자유(elutheria)와 언론 자유(parrhesia)로 가득 차 있어서, 이 나라에는 자기가 하고자 하는 바를 '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exousia)'가 있지 않겠는가?"... "적어도 '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는 각자가 어떤 형태로든 제 마음에 드는 자신의 삶의 개인적인 대책을 마련할 게 명백하이... 이렇게 되면, 이 정체에서는 무엇보다도 온갖 부류의 인간들이 생겨날 것이라 나는 생각하네.(557b)... 민주 정체는 즐겁고 무정부 상태의(anarchos) 다채로운 정체이며, 평등한 사람들에게도 평등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일종의 평등(isotes)을 배분해 주는 정체인 걸로 보이네." _ 플라론, <국가>, 제8권, 558c


 루소의 사회가 자유로운 의지들의 결합이라면, 소크라테스(또는 플라톤)의 국가는 필요에 의한 결합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러한 사회 공동체의 성격 규정이 두 철학자들의 정체(政體)에 대한 평가를 가른 요인이 된 것은 아닐까.


 지난 8.15 광복절 집회 시 나타난 무질서와 혼란을 보면서 공동체의 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되었음을 느낀다. 무정부 상태에서 나타난 혼란과 방종의 모습 속에서 지난 시간 공동체의 가치와 안정을 지키려 했던 노력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려가는 것을 바라보는 마음은 무겁다. 이 과정에서, 플라톤이 느꼈던 민주주의에 대한 혐오의 감정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이해된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포스(Force)의 어두운 측면과 함께, 밝은 면을 향한 가능성도 발견한다. <국가>에서 플라톤이 말한 사회적 분업이 서로 다른 성향(physis)을 전제로 한 것이며, 그가 지향한 것이 4주덕(4主德)에 근거한 철인(哲人)지배체제라는 점과루소가 말한 '부분적인 사회'(분파)도 함께 생각해보자. 사회 계급의 장벽이 높고, 빈곤의 악순환이 계속 되었을 때, 사회는 구성원들의 자유로운 의지 결합이 아닌, 피라미드 사회가 될 것이고, 이때 민주정의 어두운 면이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때문에, 우리 사회가 밝은 면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사회 불평등 해소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고, 이러한 출발이 일반의지에 대한 낙관적 기대를 가능케 하지 않을까. 때문에, 우리 사회의 태어날 때부터 넘을 수 없는 계급장벽을 없애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지 않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사회의 불평등이 보다 깊어질 때 극우 세력이 힘을 키웠음을 생각한다면, 이와 같은 해석이 크게 무리하지 않다 생각된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이들이 맹목적인 믿음과 결합되어 파시즘의 전사로 거듭나지 않도록 사회안정망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한 사회의 과제임을 <사회계약론>과 <국가>를 통해 생각해 본다...


 일반의지가 올바르게 표현되기 위해서는 국가 내에서 어떤 부분적인 사회도 존재하지 않고 시민 각자가 자신만의 소신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위대한 리쿠르고스의 유례없이 탁월한 제도가 바로 이것이었다._루소, <사회계약론>,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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