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견문 2 - 히말라야에서 지중해까지 유라시아 견문 2
이병한 지음 / 서해문집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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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세와 시류를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다. 서세동점의 말기이다. 서구적 근대의 말세이며, 미국적 세계화의 끝물이다. 그러나 탈근대도 아니요, 반세계화도 아니다. 구미적 근대에서 지구적 근대로 이행하고 있다. 미국적 세계화에서 세계적 세계화로 진입하고 있다. 지구적 근대화와 세계적 세계화의 최전선에 유라시아가 자리한다. 구 舊 제국들은 귀환하고, 옛 문명들은 복원된다. 동서고금이 사통팔달 회통한다._ 이병한, <유라시아 견문 2>, p338

<유라시아 견문> 시리즈 전체 주제를 요약한다면, 아마도 위 문단으로 정리될 것이다. <유라시아 견문 2>에서는 미얀마의 양곤부터 그리스의 아테네까지 여정을 다루고 있다. 동남아시아에서 서남아시아, 동부 유럽에 이르는 이 여정에서 저자는 제국주의 시대의 아픔을 공유하는 이들의 모습을 제시한다.

아웅산과 수치 사이에 네읜 Ne Win(1911 ~ 2002)이 있었다. 아버지의 옛 동료이자, 딸의 정적이었다. 그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접수한 것이 1962년이다. 1988년까지 장장 26년을 집권했다. 유별난 일만은 아니다. 한국에서 박정희가 등장한 것이 1961년이다.(p30)... ‘아웅산 수치‘라는 이름, 혈통이야말로 최대의 정치 자산이었다.(p59)... 다시 출발하는 미얀마 또한 ‘다른 백 년‘의 든든한 동반자이기를 바란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따져봐도 그녀의 삶과 사상은 영국산이다. 새 시대를 여는 맏딸이기보다는 구시대의 막내이지 십상이다._ 이병한, <유라시아 견문 2>, p67

제국주의 시대를 마치고 독립을 쟁취했지만, 지배계급은 새시대를 준비하는 이들이 아니라, 지난 세대를 마무리하는 이들이었다. 미얀마의 수치 가문, 인도의 간디 - 네루 가문 모두 제국주의 모국에서 교육받은 최후의 지배세력이었고, 최근까지도 제국주의 지배의 연장선상에서 나라를 운영하고 있었다. 저자는 유라시아 견문을 통해 세력 교체라는 변화의 움직임을 발견했다. 2016년 당시는 우리에게도 역시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던 시기였기에, 유라시아 대륙에 부는 변화의 바람을 지적한 저자의 혜안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독립인도의 주역은 단연 네루였다. 펀자브주의 브라만 출신인 그의 사회주의 또한 영국의 페이비언 사회주의를 계승한 것이었다. 네루 본인도 말년에 스스로를 ‘인도를 다스린 마지막 영국인‘이라고 묘사한 바 있다.(p99)... 영국 독립 이후 인도에서 민주주의를 자연스럽게 실시할 수 있었던 것도 식민지 제도를 크게 변경치 않고 계승했기 때문이다. 정치적 불안정을 초래하는 급진적 개혁 또한 실행하지 않았다. 국민회의의 주요 구성원들이 식민지 시대부터 대두한 중앙의 중간층 또는 지방의 농총 지주 및 부농층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기득권을 보호하기에는 의회제 민주주의가 안성맞춤이었다._ 이병한, <유라시아 견문 2>, p102

이와 함께, 저자는 우리가 유라시아 시대를 맞이할 준비가 안되어 있다는 사실도 함께 지적한다. 우리가 동남아시아와 무슬림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은 서구에 의해 번역되고, 왜곡된 사실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러한 기억의 왜곡이 과거 역사에만 한정되지 미디어에 의해 진행중에 있기에, 현실과 인식의 괴리는 점차 커지고 있다는 것도 함께 알려준다.

1988년부터 카슈미르의 무장투쟁도 본격화되었다... 그러나 인도는 총력전으로 응징했다. 1989년 한 해에만 8만 명이 학살되었다. 700만 카슈미르 인구의 1 퍼센트가 죽은 것이다. 같은 해 텐안먼 사태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폭압이었다. 실제로 북쪽으로 이웃한 신장위구르 자치구와 견주어도 억압의 강도가 훨씬 높고 가혹하다. 국가폭력도 만연하다. 무슬림에 대한 고문과 강간이 숱하게 자행된다. 그럼에도 잘 부각되지 않는다. 프레임 탓이다. ‘민주주의 인도‘와 ‘이슬람 파키스탄‘ 구도로 접근한다. 카슈미르에 내재하지 못하고 대분할체제의 균열을 투영하는 것이다._ 이병한, <유라시아 견문 2>, p232

여론조사의 신빙성 또한 갈수록 의심받고 있습니다.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도, 미국의 대선 결과도 주류 언론의 여론조사는 줄곧 잘못된 정보를 발신해왔습니다._ 이병한, <유라시아 견문 2>, p573

대표적인 왜곡된 인식 사례로 저자는 무슬림의 ‘히잡‘ 문화를 든다. 흔히 여성 억압의 도구로 알고 있는 히잡이지만, 무슬림들에게 히잡은 여성들의 적극적 투쟁 문화의 소산임을 저자는 밝힌다. ‘자신의 몸을 보여주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며, 외부 시선으로부터의 자유를 주장하는 무슬림 문화를 우리는 제대로 보고 있는가를 비판하는 저자의 지적이 자못 날카롭게 느껴진다.

무슬림 문화에 대한 오만과 편견이 켜켜이 쌓여 있다. 히잡도 그 가운데 하나다. 흔히 여성 억압의 상징처럼 간주된다. 그러나 사정이 그리 간단치가 않다. 20세기 내내 무슬림 여성이 히잡을 썼던 것이 아니다. 이란과 터키 같은 개발독재형 우파 국가에서도, 수카르노의 인도네시아나 나세르의 이집트 같은 좌파 독재국가에서도 히잡 착용은 ‘여성 해방‘의 상징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국가가 국책으로 히잡을 벗겨냈던 것이다. 그 독재권력에 맞서서 민주화 운동에 투신한 열혈 여성들로부터 히잡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억압은 커녕 저항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의상을 통한 인정투쟁은 민주주의가 착근하면서 남성 지도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갈수록 남성들도 전통적 복장으로 갈아입고 있다._ 이병한, <유라시아 견문 2>, p559

<유라시아 견문 2>에서 저자는 궁극적으로 유라시아가 새로운 시대의 무대가 될 것임을 말하면서도,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사실도 함께 지적한다. 유라시아 각국들이 과거 암울한 제국주의 시대의 굴레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거나, 힘겹게 빠져 나왔기에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우리부터 먼저 이웃을 바르게 보자는 저자의 울림이 간절하게 느껴진다.

PS. 이제서야 겨우 눈치챘지만, 지금 저자의 <유라시아 견문> 3권은 그냥 씌여진 것이 아니다. 각각 ‘비단길‘(1권) , ‘바닷길‘(2권), ‘초원의 길(3권)‘에 대응하는 것임을 책을 다 읽은 후에야 간신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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