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 지난 200년 동안 인류가 풀지 못한 문제
이언 모리스 지음, 최파일 옮김 / 글항아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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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 책에서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라고 묻는 것은 사실은 내가 '사회발전 social development'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질문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사회발전이란 기본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사회의 능력, 자신의 목표에 맞게 물리적, 경제적, 사회적, 지적 환경을 형성해내는 사회의 능력을 말한다.(p38)...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라고 묻는 것은 진짜로는 두 가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우리는 왜 서양이 세계의 다른 어느 지역보다 더 발전했는지와 왜 서양이 지난 200년간 그렇게 높은 수준으로 발전해서 역사상 최초로 소수의 나라가 전 지구를 지배할 수 있게 되었는지, 이 둘을 모두 알 필요가 있다. _ 이언 모리스,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 p39/719


 이언 모리스(Ian Morris)는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Why The West Rules - For Now>에서 '사회발전지수(Social Development Index)'를 통해 동양(東洋)과 서양(西洋)의 발전사를 비교하고 이를 통해 최근 서양의 우위를 설명한다. 생물학, 사회학 그리고 지리학의 관점에서 산정된 사회발전지수를 통해 저자가 도출한 결론은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을 깨뜨린다. 그동안 우리는 오랜 기간 동양이 서양에 비해 앞서 왔으며, 다만 계몽시대(enlightenment period)와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을 통해 극적인 발전을 이룬 서양이 최근 200년동안 급격한 성장을 통해 동양을 앞섰다는 것으로 인식해왔지만, 저자의 해석은 이와 다르다. 선사시대 이후 오랜 기간 서양의 우위는 지속되어왔으며, BCE 1000년 이후 계몽시대 이전까지의 동양의 우위가 오히려 예외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사회발전 수준이 상승하면서 핵심부는 때로는 이주를 통해 때로는 핵심부 이웃 지역 사람들의 모방이나 독자적 혁신을 통해 팽창한다. 구 핵심부에서 잘 작동하는 방식들은 새로운 사회와 환경으로 퍼져나갔다... 사회발전 과정에서는 흔히 더 선진적인 핵심부로부터 들여오거나 핵심부를 모방한 방법들이 잘 작동하지 않는 곳에서 가장 큰 진보가 일어난다. _ 이언 모리스,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 p47/719


 이렇게만 본다면, 저자가 '서양 문명'안의 본질적으로 우수한 요인이 있다는 주장을 펼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겠지만 실상은 이와 다르다. 저자는 본문에서 '후진성의 이점 advantages of backwardness'을 강조하는데, 이는 각 핵심부 안에서 가장 선진적인 지역은 정(靜)적인 것이 아니라 동(動)적으로 끊임없이 움직여왔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좋은 명당(名堂)은 없다는 이러한 내용에 비추어 본다면, 저자 이언 모리스가 결정론적 시각을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속적인 사회발전지수 산출을 통해 동서양의 발전사를 비교한 과정은 끊임없이 동서양의 우위가 바뀌었음을 설명한다. 그렇다면, 그의 주장대로 오랜 기간 서양의 우위는 끊임없는 생물학적, 사회적, 지리학적 움직임 속에서 만들어져왔는가?  개인적으로 이에 대해 다음의 두 가지 이유로 동의하지 않는다. 먼저는 그가 산출한 '사회발전지수'가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다른 논문에는 산출 근거들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수치화한 지수의 신뢰성 문제로 그가 내린 결론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언 모리스도 이 점에 대해 인정하고, 오차범위를 10~20% 정도 부여하면서 추세(trend)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가 누락한 변수 등에 다중공선성(多重共線性 Multicollinearity) 문제가 있다면 사회발전지수에 근거해 내린 결론 자체가 부인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앞서 추정과 추측을 거듭 언급했는데 추측과 추정을 하지 않고는 사회발전지수를 만들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우리가 '맞다'는 단어를 모든 세부 사항 하나하나가 틀림이 없다는 엄밀한 의미로 받아들이든 아니면 모든 전문가가 동일한 추정을 하리라는 뜻의 약한 의미로 받아들이든 간에 결국 어느 지수도 결코 '맞을' 수는 없다. 따라서 내가 계산한 사회발전지수가 맞는지 틀렸는지를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내 계산 결과는 물론 틀렸다. 진짜 문제는 이것이다. 얼마나 틀렸는가?  _ 이언 모리스,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 p641/719


 사실 개인적으로 그의 이론에 의문을 던지는 것은 첫 번째보다는 두 번째 이유가 더 크다. 이언 모리스는 동양과 서양을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써진 글을 보면 언뜻 와닿지 않지만, 해당 지역을 지도에 표시하면 그가 설정한 지역 구분이 얼마나 불공평한 것인가를 쉽게 알 수 있다. 인류 4대 문명이라 했을 때, 그 중 2문명(메소포타미아, 이집트)을 서양이 가져가고, 1곳(인더스 문명)은 중립 지역으로, 황하 문명은 동양에 할당했을 때 서양이 앞선 결과가 나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할 것이다. 이러한 불공평한 출발에서 시작해 '후진성 이점'으로 서양 문명은 중심부 이동이 잦다. 축구로 따진다면, '운동장을 폭넓게 활용한다'가 될까. 이에 반해, 이언 모리스가 상정한 동양의 중심부는 결코 움직이지 않는다. 있다 해도 '황허'에서 '양쯔강' 정도의 움직임을 보이기에  거의 변화가 없다고 봐도 무방해 보인다. 한마디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더구나, 그가 서양에 포함한 지역이 '오리엔탈(oriental)'지역으로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야만인들이 사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옥시덴탈(Occidental)' 지역과 이들을 하나로 과감하게 묶는 것은 무리한 지역 설정이 아닐까. 이런 무리한 가정의 결과 이언 모리스의 '서양-동양'의 분석은 '비(非)중국 문명 -중국 문명'의 비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서양- 동양'의 비교를 위해서는 분명 동양의 범위는 더 넓어져야 하고, 서양의 범위는 줄어들어야 한다. 서양 문명의 뿌리를 메소포타미아에서 찾는다면, 동양 문명의 주요 원천인 불교(佛敎)의 발상지 인도를 당연하게 동양 문명권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 아닐까. 그리스- 페르시아의 적대적 관계로부터 '헬레니즘'이라는 문명의 통합을 발견했다라면, 파미르 고원을 넘어선 인도로부터의 불교 전래에 근거해 동양을 더 폭넓게 정의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모리스의 동서양의 지리적 정의는 제국주의 시대 유럽제국의 본국과 식민지 전체를 서양의 범주에 포함시킨 후 과거로 소급해 분석했다는 인상을 독자에게 심어준다.


이런 점에서 '오랜 기간 서양이 앞서왔다'는 이언 모리스의 분석 결과에 동의하기 어렵다. 그가 상정한 가정에 근거해 내린 적절한 결론은 '중국 문명이 항상 다른 모든 문명보다 우수했던 것만은 아니다' 정도가 될 것이다.



[그림] 이언 모리스의 동양과 서양(by 겨울호랑이)


 일반적으로 상식이라고 기대하는 것을 따라 이 책에서 나는 '서양'이라는 표현을 유라시아 중심부의 이 최서단(그리고 가장 이른 시기에 성립된) 지역에서 유래한 모든 사회를 가리키는 것으로 썼다. 서양은 오래전에 서남아시아에 있는 최초의 핵심부에서 팽창하여 지중해 분지와 유럽을 포괄하게 되었고 지난 몇 세기 동안에는 미국과 오스트랄라시아(오스트레일리아를 포함한 남태평양 제도 전체를 뜻한다)도 포함하게 되었다.(p45)... 같은 논리를 따라 나는 '동양'을 유라시아 핵심부 가운데 가장 동쪽에 위치한(그리고 두 번째로 오래된) 핵심부에서 유래한 모든 사회를 가리키는 용어로 쓴다. 동양도 오래전인 기원전 7500년경 작물 재배가 시작된 중국 황허 강과 양쯔 강 사이에 위치한 최초의 핵심부에서 확장되어 오늘날 북쪽의 일본부터 남쪽의 인도차이나 여러 나라까지 뻗어있다. _ 이언 모리스,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 p46/719


 그렇지만,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책 자체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동시대 동양과 서양에 어떤 사건들이 있었는가를 비교사적으로 분석했다는 점과 함께 문명을 정(靜)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동(動)적으로 해석하려 했다는 점에서 앞서 말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사건 중심으로 가볍게 읽기에 좋은 책이라 여겨진다. 리뷰를 마치기 전에 저자가 구분한 전통적인 역사 해석의 관점을 소개한다. '결정요인'을 찾으려는 장기고착이론과 이를 부인하는 단기우연 모델 속에서 자연과학, 신학과 마찬가지로 '필연'과 '우연'의 문제를 발견한다. 서양의 거의 모든 학문은 법칙과 자유의지의 틀에서 크게 자유롭지 않은 듯하다...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라는 질문을 시작하는 최적의 방식은 두 가지 개략적인 사고 진영으로 나누는 것일 텐데, 나는 이 두 진영을 각각 '장기고착 long-term lock-in' 이론파와  '단기우연 short- term accident' 이론파라고 부르겠다.... 장기고착이론 뒤에 놓인 공통적 관념은 태곳적부터 어떤 결정적 요인이 동양과 서양 사이에 대단히 크고 변경 불가능한 차이를 만들어내 산업혁명이 서양에서 일어나도록 결정했다는 것이다. _ 이언 모리스,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 p28/719


 일부 서양 역사가는 왜 서양이 과거에는 지배했지만 지금은 지배하지 않는지를 설명하는 완전히 새로운 이론을 발전시켰다. 나는 이 이론을 단기우연 모델이라고 부른다. 단기 논의들은 장기 논의들보다 더 복잡한 경향이 있고 이 진영 내부에는 격렬한 이견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단기론자들이 모두 동의하는 것이 하나 있다. 장기론자들의 주장이 상당히 많이 틀렸다는 것이다. _ 이언 모리스,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 p32/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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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1-11-03 16: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맞는 말씀이세요. ㅎㅎ
양질 전화의 법칙…^^

겨울호랑이 2021-11-03 17:11   좋아요 2 | URL
그렇습니다. 각자의 방향성은 차이가 있었겠지만, 각기 문명이 꽃피우기 전까지 유무형의 변화가 있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북다이제스터님 감사합니다^^:)
 

양휴지가 왕우(王友) 왕희(王晞)에게 말하였다.
"옛날 주공(周公)은 아침에는 100편의 책을 읽고 저녁에는 70명의 선비를 만나보고도 오히려 부족하였을까 두려워하였는데, 녹왕(錄王)께서는 무엇을 꺼리고 의심하여 마침내 이처럼 빈객을 막고 끊으시려고 합니까?"

중서령 조언심(趙彦深)으로 양음을 대신하여 기밀에 관한 업무를 총괄하게 하였다. 홍려소경 양휴지가 개인적으로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장차 천리를 가야 하는데 기린(麒麟)을 죽이고 절뚝거리는 당나귀를 채찍질하여야 하니, 애달픔이 크구나!"

제의 주군이 앞에서 사람의 목을 베며 왕희에게 물었다.
"이 사람을 응당 죽여야 하는가?" 왕희가 말하였다.
"응당 죽여야 하지만 다만 죽이는데 그 알맞은 장소를 얻지 못하는 것을 한스러워 할 따름입니다. 신이 듣건대 ‘사람을 저자에서 사형하는 것은 무리와 더불어 그를 버리는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궁전의 뜰은 살육(殺戮)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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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대만과 중국 사이에 고조된 갈등은 모두 두 가지 원인에서 기인한다. 첫 번째는 대만해협 양안 관계의 지정학적 역사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두 번째는 미중 대결에서 대만이 차지하는 위상과 관련이 깊다. _ <르몽드디플로마티크 2021.10> <대만, '중국몽'의 모자란 퍼즐조각>


 시간이 조금 지나갔지만, <르몽드디플로마티크 Le Monde Diplomatique> 2021년 10월호에는 최근 읽은 책과 함께 정리하고 싶은 내용의 기사가 있어 늦게나마 페이퍼로 정리한다. <도해 타이완사>를 읽던 중 마침 10월호에는 '중국-대만' 관련 기사가 떠올라 한번에 정리한다.  10월호 기사에서는 중국-대만의 갈등 요인을  지정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한다. 겉으로 보기에 '하나의 중국'을 내세우는 중국과 '중국이 아닌 대만 독립'을 지향하는 현 여당인 민진당(民進黨)의 갈등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지정학, 역사적 문제등이 얽혀있어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


 네덜란드와 스페인, 정씨 정권을 거치면서 발전해온 타이완은 17세기 중반 동아시아로 진출한 유럽이 무역과 선교를 펼치는 거점이었습니다. 타이완은 지리적으로 명나라/청나라와 가까웠으며, 네덜란드/스페인 등의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필리핀 그리고 일본 사이에 위치했습니다. 즉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항로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동아시아 해역의 '사거리'라 할 수 있었습니다. _ 궈팅위 외, <도해 타이완사> , p129/434


 <도해 타이완사>에서는 일반적으로 중국의 섬이라고 생각되어 온 대만이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 본토, 인도네시아에 근거한 네덜란드, 필리핀에 자리잡은 에스파냐(스페인), 왜구(倭寇)로 알려진 일본 해적들의 각축장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들의 틈바구니에서 지배를 받던 대만인들의 입장에서는 중국 역시 외세(外勢)에 불과했다. 오랜 기간 중국 가장자리에 있던 낯선 섬 대만이 중심지가 된 것은 중국 국민당의 장제스(蔣介石, 1887~1975) 정부가 쫓겨오면서부터다. 국민당 정부로부터 대만인들은 중국인으로서 살아갈 것을 요구받으면서, '중국인 vs 대만인'의 정체성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정체성 문제는 '국민당-민진당'의 이념 대립의 문제이기도 했다. 


 중국공산당과의 이념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장제스와 국민당은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을 신성한 사명으로 삼는 본질주의적 민족주의에 널리 공감하며, 대만인들에게도 같은 사상을 주입했다. 중국 본토 출신자가 백만 명 이상, 다시 말해 섬 인구의 15%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그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말 이후 대만이 민주화의 길을 걷는 동안, 어느새 중화민족주의는 새로운 사조와 거센 경쟁에 부딪힌다. 대만은 중국에 일부 문화적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실상 고유의 역사적, 정치적 도정을 지닌 별개의 국가라는 정체성을 갖게 된 것이다. 정체성에 바탕을 둔 새로운 사조는 결국 대만에서 사상 처음으로 정권이 교체되고, 2000년 독립주의 성향의 정권이 들어서는 결과를 낳았다. _ <르몽드디플로마티크 2021.10> <대만, '중국몽'의 모자란 퍼즐조각>


 중국의 일부임을 강조하는 현재 야당인 국민당과 그 반대편에 있는 집권 여당인 민진당의 대립은 대만의 국내 문제이기도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이기도 하다.   1960년대 쿠바 미사일 위기를 겪었던 미국은 '카리브 해의 쿠바', '지중해의 크레타/키프로스'와 같은 대만의 중요성을 결코 간과하지 않았고, 1970년대 중국과 수교를 통해 대만과 단교(斷交)를 하면서도 미국-대만-일본을 잇는 트라이앵글 경제 체제를 유지하고, 비밀리에 소수의 미군을 파병하면서 중국을 견제하는 한 방편이 되었다. 이러한 미국의 전략은 점(点)으로 연결되는 '해양 기지 제국'인 미국의 대(對)중국 전략에서 '대륙을 향한 항공모함'인 대만의 중요성을 고려했을 때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미국이 타이완을 원조한 배경에는 타이완을 반공(反共) 동맹으로 만들기 위한 정치적 계산이 있었습니다. 사실 미국은 타이완이 문화, 교육, 일상생활에서 미국식 삶의 가치를 받아들여 모든 영역에서 미국을 추종하고 미국이 제공하는 자원에 의존하게 되기를 바랐습니다._ 궈팅위 외, <도해 타이완사> , p385/434


  1970년대에서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장기간 지속되던 태평양 제도 신탁통치령이 종료됐다. 마셜 제도 공화국, 미크로네시아연방, 팔라오공화국은 미국과 '자유 연합 협정'을 맺어 주권 국가로 독립하면서도 미군기지용 부지를 제공하는 대가로 경제적 지원을 받게 됐다. 그러나 북마리아나 제도는 푸에르토리코와 유사하게 연방에 편입됐다. _ 대니얼 임머바르, <미국, 제국의 연대기> , p403/519


  대만문제가 국민당과 민진당의 정치 대립에서 '미중 갈등'으로 양상이 바뀐 것은 시진핑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이 표면화되면서 부터였다. '중국몽(中國夢)'이 추상적인 방향이라면, '일대일로'와 '중국제조 2025'는 구체적 움직임이었다고, 중국을 견제하려는 트럼프 정부와 이에 반격하는 미중간의 대립은 이 지역의 갈등을 가속화시켜 최근에 이르고 있다.


 수십 년간 미국은 중국을 에워싸며 중국이 가는 곳마다 존재했다. 미국은 중국이 원하는 곳마다 와서 그 옆자리를 차지하고 않아있는 양상이었다. 중국은 눈길을 주는 모든 곳에서 미국의 존재를 제거해야만 했다. 중국의 핵심 목표를 명확히 규정하고, 이제는 중국을 상징하는 하나의 특징으로 자리 잡은 중국의 정치체제를 강조하고, 남해의 섬들과 타이완에 대한 중국의 관심이 지극히 합법적임을 강력히 선언함으로써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_  케리 브라운, <시진핀의 중국몽> , p95/158 


 호르무즈(Hurmuz) 해협과 아라비아 해로부터 말라카(Malaka) 해협을 통과해 중국 남부를 연결하는 해상 실크로드(Silk Road)의 부활이 '일대일로'의 두 목표 중 하나라 했을 때, 대만은 출발점 취안저우(泉州) 건너편에서 이를 견제할 수 있는 핵심 지역이라 하겠다. 지중해의 지브롤터 해협과 같은 대만에서 강대국들의 경제 이권과 민족주의가 부딪쳤을 때 나타나는 긴장. 그것이 오늘의 대만 문제가 아닐까.


 2019년 7월 9일, 미 의회는 대만에 대해 다목적 전투기 F-16V 66대, M1A2T 에이브람스 전차 108대, 스팅어 대공 미사일 250대, 그 밖에 각종 무기 판매를 승인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심지어 대만의 군수 수요에 조금 더 긴급히 대응할 수 있도록 '수요 평가 시스템'까지 개발했다. 2020년 11월, 4주간 대만 병사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역사상 처음으로 대만 남부 쭤잉 해군기지에 미국의 (퇴역 군인이 아닌) 현역 해군이 파견됐다고 대만 해군 참모부는 확인'해줬다. 하지만 미 정부는 중국 전투기에 맞대응할 능력을 지닌 F-35 판매만은 끝내 거부했다. 역내 유일무이한 지정학 균형의 수호자가 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_ <르몽드디플로마티크 2021.10> <대만을 관할하는 미국의 은밀한 '대사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0월호에서는 대만을 둘러싼 중국과 미국의 지정학적 갈등이 다루어졌다면, 아직 배송받지 못한 11월호에서는 금융을 둘러싼 미중 갈등이 다뤄질 모양이다. 여기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지는 다 읽고 나서 정리해야겠지만, 마무리 전에 킨들버거(Charles Kindleberger, 1910~2003)의 이론으로 미국과 중국의 현재 상황을 잠시 살펴보도록 하자.

 

 오늘날 미중 대결이 투키디데스 함정(Tuchididdes Trap)의 표현이라면, 야심차게 출발했던 일대일로의 정체는 새롭게 강국으로 등장한 중국이 공공재(public goods)를 제대로 공급하지 못한 킨들버거 함정(kindleberger trap)에 빠졌기 때문일 것이다. 좀 더 엄밀하게 말하면, 자신들의 자금으로 자국의 자본재를 구입하도록 강제하면서 막대한 무역수지 적자로 달러 공급을 한 미국만큼의 역할도 수행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주변의 유목제국들과 공존을 위해 조공무역의 형식으로 평화를 샀던 대국(大國)이 지난날의 중국이었다면, 군사력, 경제력 등 모든 면에서 주변을 압도하려는 오늘날 중국의 야욕이 유라시아의 교류에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닌지. 저물어가지 않으려는 제국과 아직 떠오르지 못한 제국. 이들이 빚는 갈등 상황에서 새로운 핀테크(Fin Tech)를 둘러싼 금융패권 싸움을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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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1-11-02 16: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0월호, 11월호에 이런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니. 확인해봐야겠네요. 안 그래도 이번달에 도해 타이완사를 읽을 계획이라. 연계해서 읽을 포인트를 짚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21-11-02 16:28   좋아요 1 | URL
저도 이번 10월호, 11월호의 제목들을 보면서 연재 소설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거리의화가님 즐거운 독서 되세요! 감사합니다^^:)
 

점묘주의 제국을 일군 미국의 중요한 특성이었다. ‘점’들은 툴레나 비키니 환초, 스완 제도와 같은 섬이나 외딴 장소에 찍혀 있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인구가 극도로 밀집된 지역에 점이 찍히기도 했다. 기지에서 군인들이 쏟아져나와 술을 마시고 클럽을 드나들고 암시장에서 거래를 하고 밀회를 즐겼다. 그리고 근방에 사는 사람들은 기지에서 일자리를 구하거나 군인들을 상대로 물건을 팔았다. 기지와 주변 지역은 다시 말해 미국인들이 외국인과 빈번하게 접촉하는 부산한 국경지대인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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