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만과 중국 사이에 고조된 갈등은 모두 두 가지 원인에서 기인한다. 첫 번째는 대만해협 양안 관계의 지정학적 역사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두 번째는 미중 대결에서 대만이 차지하는 위상과 관련이 깊다. _ <르몽드디플로마티크 2021.10> <대만, '중국몽'의 모자란 퍼즐조각>


 시간이 조금 지나갔지만, <르몽드디플로마티크 Le Monde Diplomatique> 2021년 10월호에는 최근 읽은 책과 함께 정리하고 싶은 내용의 기사가 있어 늦게나마 페이퍼로 정리한다. <도해 타이완사>를 읽던 중 마침 10월호에는 '중국-대만' 관련 기사가 떠올라 한번에 정리한다.  10월호 기사에서는 중국-대만의 갈등 요인을  지정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한다. 겉으로 보기에 '하나의 중국'을 내세우는 중국과 '중국이 아닌 대만 독립'을 지향하는 현 여당인 민진당(民進黨)의 갈등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지정학, 역사적 문제등이 얽혀있어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


 네덜란드와 스페인, 정씨 정권을 거치면서 발전해온 타이완은 17세기 중반 동아시아로 진출한 유럽이 무역과 선교를 펼치는 거점이었습니다. 타이완은 지리적으로 명나라/청나라와 가까웠으며, 네덜란드/스페인 등의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필리핀 그리고 일본 사이에 위치했습니다. 즉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항로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동아시아 해역의 '사거리'라 할 수 있었습니다. _ 궈팅위 외, <도해 타이완사> , p129/434


 <도해 타이완사>에서는 일반적으로 중국의 섬이라고 생각되어 온 대만이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 본토, 인도네시아에 근거한 네덜란드, 필리핀에 자리잡은 에스파냐(스페인), 왜구(倭寇)로 알려진 일본 해적들의 각축장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들의 틈바구니에서 지배를 받던 대만인들의 입장에서는 중국 역시 외세(外勢)에 불과했다. 오랜 기간 중국 가장자리에 있던 낯선 섬 대만이 중심지가 된 것은 중국 국민당의 장제스(蔣介石, 1887~1975) 정부가 쫓겨오면서부터다. 국민당 정부로부터 대만인들은 중국인으로서 살아갈 것을 요구받으면서, '중국인 vs 대만인'의 정체성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정체성 문제는 '국민당-민진당'의 이념 대립의 문제이기도 했다. 


 중국공산당과의 이념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장제스와 국민당은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을 신성한 사명으로 삼는 본질주의적 민족주의에 널리 공감하며, 대만인들에게도 같은 사상을 주입했다. 중국 본토 출신자가 백만 명 이상, 다시 말해 섬 인구의 15%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그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말 이후 대만이 민주화의 길을 걷는 동안, 어느새 중화민족주의는 새로운 사조와 거센 경쟁에 부딪힌다. 대만은 중국에 일부 문화적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실상 고유의 역사적, 정치적 도정을 지닌 별개의 국가라는 정체성을 갖게 된 것이다. 정체성에 바탕을 둔 새로운 사조는 결국 대만에서 사상 처음으로 정권이 교체되고, 2000년 독립주의 성향의 정권이 들어서는 결과를 낳았다. _ <르몽드디플로마티크 2021.10> <대만, '중국몽'의 모자란 퍼즐조각>


 중국의 일부임을 강조하는 현재 야당인 국민당과 그 반대편에 있는 집권 여당인 민진당의 대립은 대만의 국내 문제이기도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이기도 하다.   1960년대 쿠바 미사일 위기를 겪었던 미국은 '카리브 해의 쿠바', '지중해의 크레타/키프로스'와 같은 대만의 중요성을 결코 간과하지 않았고, 1970년대 중국과 수교를 통해 대만과 단교(斷交)를 하면서도 미국-대만-일본을 잇는 트라이앵글 경제 체제를 유지하고, 비밀리에 소수의 미군을 파병하면서 중국을 견제하는 한 방편이 되었다. 이러한 미국의 전략은 점(点)으로 연결되는 '해양 기지 제국'인 미국의 대(對)중국 전략에서 '대륙을 향한 항공모함'인 대만의 중요성을 고려했을 때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미국이 타이완을 원조한 배경에는 타이완을 반공(反共) 동맹으로 만들기 위한 정치적 계산이 있었습니다. 사실 미국은 타이완이 문화, 교육, 일상생활에서 미국식 삶의 가치를 받아들여 모든 영역에서 미국을 추종하고 미국이 제공하는 자원에 의존하게 되기를 바랐습니다._ 궈팅위 외, <도해 타이완사> , p385/434


  1970년대에서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장기간 지속되던 태평양 제도 신탁통치령이 종료됐다. 마셜 제도 공화국, 미크로네시아연방, 팔라오공화국은 미국과 '자유 연합 협정'을 맺어 주권 국가로 독립하면서도 미군기지용 부지를 제공하는 대가로 경제적 지원을 받게 됐다. 그러나 북마리아나 제도는 푸에르토리코와 유사하게 연방에 편입됐다. _ 대니얼 임머바르, <미국, 제국의 연대기> , p403/519


  대만문제가 국민당과 민진당의 정치 대립에서 '미중 갈등'으로 양상이 바뀐 것은 시진핑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이 표면화되면서 부터였다. '중국몽(中國夢)'이 추상적인 방향이라면, '일대일로'와 '중국제조 2025'는 구체적 움직임이었다고, 중국을 견제하려는 트럼프 정부와 이에 반격하는 미중간의 대립은 이 지역의 갈등을 가속화시켜 최근에 이르고 있다.


 수십 년간 미국은 중국을 에워싸며 중국이 가는 곳마다 존재했다. 미국은 중국이 원하는 곳마다 와서 그 옆자리를 차지하고 않아있는 양상이었다. 중국은 눈길을 주는 모든 곳에서 미국의 존재를 제거해야만 했다. 중국의 핵심 목표를 명확히 규정하고, 이제는 중국을 상징하는 하나의 특징으로 자리 잡은 중국의 정치체제를 강조하고, 남해의 섬들과 타이완에 대한 중국의 관심이 지극히 합법적임을 강력히 선언함으로써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_  케리 브라운, <시진핀의 중국몽> , p95/158 


 호르무즈(Hurmuz) 해협과 아라비아 해로부터 말라카(Malaka) 해협을 통과해 중국 남부를 연결하는 해상 실크로드(Silk Road)의 부활이 '일대일로'의 두 목표 중 하나라 했을 때, 대만은 출발점 취안저우(泉州) 건너편에서 이를 견제할 수 있는 핵심 지역이라 하겠다. 지중해의 지브롤터 해협과 같은 대만에서 강대국들의 경제 이권과 민족주의가 부딪쳤을 때 나타나는 긴장. 그것이 오늘의 대만 문제가 아닐까.


 2019년 7월 9일, 미 의회는 대만에 대해 다목적 전투기 F-16V 66대, M1A2T 에이브람스 전차 108대, 스팅어 대공 미사일 250대, 그 밖에 각종 무기 판매를 승인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심지어 대만의 군수 수요에 조금 더 긴급히 대응할 수 있도록 '수요 평가 시스템'까지 개발했다. 2020년 11월, 4주간 대만 병사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역사상 처음으로 대만 남부 쭤잉 해군기지에 미국의 (퇴역 군인이 아닌) 현역 해군이 파견됐다고 대만 해군 참모부는 확인'해줬다. 하지만 미 정부는 중국 전투기에 맞대응할 능력을 지닌 F-35 판매만은 끝내 거부했다. 역내 유일무이한 지정학 균형의 수호자가 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_ <르몽드디플로마티크 2021.10> <대만을 관할하는 미국의 은밀한 '대사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0월호에서는 대만을 둘러싼 중국과 미국의 지정학적 갈등이 다루어졌다면, 아직 배송받지 못한 11월호에서는 금융을 둘러싼 미중 갈등이 다뤄질 모양이다. 여기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지는 다 읽고 나서 정리해야겠지만, 마무리 전에 킨들버거(Charles Kindleberger, 1910~2003)의 이론으로 미국과 중국의 현재 상황을 잠시 살펴보도록 하자.

 

 오늘날 미중 대결이 투키디데스 함정(Tuchididdes Trap)의 표현이라면, 야심차게 출발했던 일대일로의 정체는 새롭게 강국으로 등장한 중국이 공공재(public goods)를 제대로 공급하지 못한 킨들버거 함정(kindleberger trap)에 빠졌기 때문일 것이다. 좀 더 엄밀하게 말하면, 자신들의 자금으로 자국의 자본재를 구입하도록 강제하면서 막대한 무역수지 적자로 달러 공급을 한 미국만큼의 역할도 수행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주변의 유목제국들과 공존을 위해 조공무역의 형식으로 평화를 샀던 대국(大國)이 지난날의 중국이었다면, 군사력, 경제력 등 모든 면에서 주변을 압도하려는 오늘날 중국의 야욕이 유라시아의 교류에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닌지. 저물어가지 않으려는 제국과 아직 떠오르지 못한 제국. 이들이 빚는 갈등 상황에서 새로운 핀테크(Fin Tech)를 둘러싼 금융패권 싸움을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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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1-11-02 16: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0월호, 11월호에 이런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니. 확인해봐야겠네요. 안 그래도 이번달에 도해 타이완사를 읽을 계획이라. 연계해서 읽을 포인트를 짚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21-11-02 16:28   좋아요 1 | URL
저도 이번 10월호, 11월호의 제목들을 보면서 연재 소설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거리의화가님 즐거운 독서 되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