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윤리형이상학 ㅣ 대우고전총서 31
임마누엘 칸트 지음, 백종현 옮김 / 아카넷 / 2012년 3월
평점 :
목적의 의무와의 관계는 두 가지 방식으로 생각될 수 있다. 목적에서 출발해서 의무에 맞는 행위에 맞는 행위들의 준칙을 찾아내거나, 거꾸로, 이런 준칙에서 시작해서, 동시에 의무이기도 한 목적을 찾아내는 방식이 그것이다. - 법이론은 첫 번째의 길을 간다. 그의 행위에 대해 어떤 목적을 세우고자 하는가는 각자의 자유의사에 맡겨진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의 준칙은 선험적으로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윤리학은 반대의 길을 취한다. _ 임마누엘 칸트, <윤리형이상학> <덕이론 서론> (A7) , p461
자기 약속을 지키는 것은 덕의무가 아니라, 그것의 이행이 강제될 수 있는 법의무이다. 그러나 아무런 강제도 심려할 필요가 없는 곳에서도 역시 그것을 행한다는 것은 덕 있는 [유덕한] 행위(덕의 증명)이다. 그러므로 법이론[법학]과 덕이론[윤리학]은 그들 사이의 상이한 의무들로 인하여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는 오히려 법칙과 이 동기를 결합시키느냐 아니면 저 동기를 결합시키느냐하는 법칙수립의 상이함으로 인해 구별되는 것이다. _ 임마누엘 칸트, <윤리형이상학> <윤리 형이상학 서설>(B17), p135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의 <윤리형이상학 Die Metaphysik der Sitten 1: Metaphysische Anfangsgrunde der Rechtslehre>은 법(法)과 덕(德)의 형이상학 원리를 설명한 두 권의 내용을 담고 있다. 칸트는 '목적'과 '의무'의 관계를 서로 다른 방향점에서 출발하여 논증하는 방식으로 '법'과 '도덕'의 이론을 고찰해나간다. 이는 마치 <순수이성비판>에서 (사변적인) 순수 이성의 월권 행위에 대해 비판하며 선험적인 사항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는 반면, <실천이성비판>에서는 (경험적인) 실천이성의 월권 행위에 대한 비판이 다뤄지며, 인식과 경험의 다른 방향에서 출발한 이성 고찰이 이루어지는 구조를 연상시킨다. <윤리형이상학>의 두 권의 책 <법이론의 형이상학적 기초원리>와 <덕이론의 형이상학적 기초원리>는 이처럼 다른 방향을 통해 '목적'과 '의무'에 대해 논한다.
모든 의무는 법의무(法義務)들, 다시 말해 그에 대한 외적 법칙수립이 가능한 그런 의무이거나 덕의무(德義務 乃至 倫理學的 義務)들, 즉 그에 대한 외적 법칙수립이 불가능한 그런 의무이다. - 그러나 후자는, 그것이 (또는 그것을 갖는 것이) 동시에 의무인 목적에 상관하기 때문에 어떤 외적 법칙수립에도 종속할 수 없는 것이다. _ 임마누엘 칸트, <윤리형이상학> <법이론 서론> (V239), p164
목적이란 한 대상의 표상에 의해 의사가 이 대상을 산출하는 행위를 하도록 규정되는, (이성적 존재자의) 의사의 대상이다... 감성적 충동들에서 오는 목적에 대립될 수 있는 어떤 목적을 갖도록 구속되어 있다는 것, 이 사실이 그 자체로서 의무인 목적이라는 개념일 터이다. 그런데 이러한 것에 대한 이론은 법의 이론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법칙들에 따른 자기강제를 자기 개념 안에 동반하는 윤리학에 속하는 것이겠다. _ 임마누엘 칸트, <윤리형이상학> <덕이론 서론> (A5) , p459
칸트는 '의무-목적'의 관계를 통해 '법'과 '도덕'이론을 세우려하지만, '의무-목적'의 결합에 대한 고찰은 많은 부분이 '덕이론'에서 이루어진다. 이는 법이 '어떤 이의 의사가 자유의 보편적인 법칙에 따라 다른 이의 의사와 합일될 수 있는 조건들의 총체 <법이론 서론> (AB33)'로서 강제하는 권한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법은 강제력을 가진 최소한의 규정으로 이의 준수에 대해서는 '의무-목적'이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다. 때문에 사법에서는 물권(物權)과 점유(占有)에 대한 논의가, 공법과 국가법에서는 법 체계에 대한 논의가 주로 이뤄진다.
법이란 그 아래서 어떤 이의 의사가 자유의 보편적인 법칙에 따라 다른 이의 의사와 합일될 수 있는 조건들의 총체이다. "행위가 또는 그 행위의 준칙에 따른 각자의 의사의 자유가 보편적 법칙에 따라 어느 누구의 자유와도 공존할 수 있는 각 행위는 법적이다/권리가 있다/정당하다/옳다." 그러므로 나의 행위가, 또는 일반적으로 나의 상태가 보편적인 법칙에 따라 어느 누구의 자유와도 공존할 수 있을 때,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을 방해하는 자는 나에게 불법/부당함을 행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방해(저항)는 보편적 법칙등에 따라 자유와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_ 임마누엘 칸트, <윤리형이상학> <법이론 서론> (B34 Vi231 A34), p151
나의 의사의 외적 대상으로는 오직 셋만이 있을 수 있다. 1) 나의 밖에 있는 (물체적) 물건; 2) 특정한 행동(給付)을 하려는 타인의 의사; 3) 나와의 관계에서 타인의 상태. 이것들은 자유의 법칙들에 따르는 나와 외적 대상들 사이의 실체, 원인성, 상호성의 범주에 의한 것이다. _ 임마누엘 칸트, <윤리형이상학> <법이론 서론> (AB59), p174
나의 밖의 어떤 것을 나의 것으로 갖는 방식은 주체의 의지가 저 대상과, 공간 시간상의 그것과의 관계와는 독립적으로, 예지적 점유라는 개념에 따라서, 순전히 - 법적으로 결합함이다. - 지상의 한 장소는 내가 내 몸으로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외적인 나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그 장소에서 떨어져 다른 곳으로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장소를 점유하고 있다면, 그때에만 그것은 나의 외적 권리에 관계한다. _ 임마누엘 칸트, <윤리형이상학> <법이론> (VI254 A70 B70) , p184
칸트에게 법은 행위를 의무에 맞게 규제하는 것이며, 자유의 외면과 관계하는 최소한의 것이다.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상태에서 상호 간의 자유를 타당한 범위 내에서 제한하는 것. 공동체 유지를 위한 외적 강제력을 부여받은 것이 '법'이라면, 이러한 법이 지향하는 바는 '시민적 상태(市民的 狀態)'다. 칸트는 각자 자신의 생각에 따르는 '자연상태(自然狀態)'에서 벗어나 선험적으로 필연적인 '근원적 계약(contractus originarius)'에 스스로 복종하는 '시민적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고 보았으며, (민족) 국가 내의 시민적 상태를 국제법으로 확장시켜 나간다. 칸트의 다른 저작 <영원한 평화>는 '시민적 상태'에 이른 국가들 상호간의 긴밀한 관계가 국제적으로 '영원한 평화'에 있음을 보여주며, 법이론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봤을 때 그 내용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다.
법적 상태를 만들어 내기 위해 일반적 공포를 필요로 하는 법칙[법률]들의 총체가 공법이다. - 그러므로 공법은 한 국민, 다시 말해 다수의 인간들을 위한, 또는 다수의 국민들을 위한 법칙[법률]들의 체계이다. 이들은 서로 간에 교호적인 영향을 주고받는 가운데 법적인 것을 분유하기 위해서 그들을 합일시키는 의지 아래에서의 법적 상태, 즉 하나의 [헌정] 체제/헌법(憲法)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 상호 관계 속에 있는 국민 중의 개인들의 이러한 상태는 시민적 상태(市民的 狀態)라고 일컬어지며, 그 개인들의 전체는 그 자신들의 구성원들과의 관계에서 국가(國家)라고 일컬어진다. 국가는 법적 상태에 있고자 하는 모든 이의 공동의 이해관심을 통해 결합되어 있는 것으로서 그 형식으로 인하여 공동체(廣義의 共同體/共和國)라고 불리며, 다른 국민들과의 관계에서는 지배력(支配力)이라고 단적으로 일컬어진다. 이것은 또한 상속된 통합체이기도 해서 민족(民族)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그래서 공법의 보편적 개념 아래에서 국가법뿐만 아니라 국제법(國際法/萬民法)도 생각할 계기를 제공한다. 그리고 이것은, 지면(地面)은 한계 없는 [무한정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둘러싸는 [폐쇄적인] 평면이기 때문에, 이 둘을 합하여 제민족국가법(萬民法) 내시 세계시민법(世界人法)의 이념으로 불가피하게 이끈다. _ 임마누엘 칸트, <윤리형이상학> <법이론>(B192 A162) , p263
그렇다면, 도덕적으로 의무와 목적은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가. 칸트에게 '도덕'은 강제적인 것이다. 순수이성의 강제에 대한 자발적이고 절대적인 복종이 행동으로 일어났을 때 그 행위는 '도덕적'인 것이며, '동시에 의무인 목적'들만이 오직 '도덕적'인 행동이 될 수 있다.
자연의 충동들은 인간의 마음 안에서 의무수행의 장해물들 그리고 (때로는 강력한) 반항하는 힘들을 함유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런 것들과 맞서 싸우고, 이성을 통해 비리소 장래에가 아니라 바로 지금 (동시에 사상적으로) 그것들을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곧 인간은, 인간이 행해야만 한다고 법칙이 무조건적으로 명령하는 바를 행할 수 있다고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릇 하나의 강력하되 부정한 적에 저할할 수 있는 능력과 숙고된 결의가 용기(勇氣)이며, 우리 안의 윤리적 마음씨의 적과 관련해서는 덕(德)이다. 그러므로 외적 자유가 아니라 내적 자유를 법칙 아래에 두는 편(篇)의 일반 의무이론이 덕이론이다. _ 임마누엘 칸트, <윤리형이상학> <덕이론 서론> (A4) , p459
의무개념은 그 자체로서 이미 법칙에 의한 자유의사의 강요(강제)에 대한 개념이다. 그런데 이 강제는 외적 강제 또는 자기강제일 수가 있다. 도덕 명령은 그것의 정언적 단언(무조건적인 당위)을 통해 이 강제를, 그러므로 이성적 존재자들 일반 - 그 가운데는 가령 신성한 존재자들도 있을 수 있겠는데 - 에게가 아니라, 이성적 자연존재자인 인간들에게만 상관되는 이 강제를 고지한다... 그것을 내키지 않아 하면서/마지못해한다. 바로 이 점에 본래 강제의 본질이 있다. _ 임마누엘 칸트, <윤리형이상학> <덕이론 서론> (A3) , p457
인간의[적] 의사는 그에 반해 충동에 의해 촉발되기는 하지만 그러나 규정되지는 않는 것이며, 그러므로 그 자체로 (이성의 획득된 숙련/습성없이) 순수하지는 않으나, 그럼에도 순수한 의지에 의한 행위들로 규정될 수 있다. 의사의 자유란 저러한 감성적 충동에 의한 의사 규정의 독립성이다. 이것이 자유의 소극적 개념이다. 적극적 개념으로, 자유는 그 자체만으로 실천적인 순수 이성의 능력이다. 그러나 순수 이성이 그 자체만으로 실천적인 순수 이성의 능력이다. 그러나 순수 이성이 그 자체만으로 실천적임은 다름 아니라 각 행위의 준칙을 그 준칙을 보편적인 법칙으로 적합하게 하는 그 조건 아래에 종속시킴으로써만 가능하다. _ 임마누엘 칸트, <윤리형이상학> <윤리 형이상학 서설> (AB6 VI214), p124
강제에 대한 자발적인(자유롭게) 복종이자, 의무인 동시에 목적인 행동은 무엇이 있을까. 칸트는 이에 대해 '자신의 완전함(성)'과 '남의 행복'을 든다.(이들의 역易은 성립하지 않는다). 자신의 완전함은 모든 의무 일반을 충족시킬 수 있는 '의지'개발이 될 것이며, 남의 행복은 타인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의무가 여기에 해당된다. 선험적으로 주어진 보편법칙에 따르려는 후천적인 노력과 함께 자신의 주변에 대한 올바른 마음가짐. 이것이 칸트의 덕이론의 체계를 이룬다.
의무로부터의 행위는 행위가 단지 객관적으로 실천법칙과 일치할 뿐만 아니라 주관적으로 법칙에 대한 존경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어야 한다... 의무로부터의 행위는 도덕적 가치를 행위를 통해 달성해야 할 의무에서 갖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따라 행동이 결정되는 준칙에서 갖는다. 그러므로 도덕적 가치는 행동의 대상의 실재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욕구의 대상 일체를 고려함 없이 행위가 그에 따라 발생하는 '의지의 원리'에 달려 있는 것이다. _ 임마누엘 칸트, <윤리형이상학> <덕이론 해제> , p402
칸트의 <윤리형이상학>은 이처럼 의무-목적의 도식을 바탕으로 준칙과 목적의 관계를 밝혀낸다. 선험적으로 주어진 보편적인 법칙에 대해 자신의 내적 규칙인 준칙을 자발적으로 일치시키는 '자신의 완전함'을 위한 노력과 타인에 대한 사랑과 존경. 이것이 도덕적인 사회로 이끌 것이다. 그리고, 보편적인 법칙과 일치할 수 있는 준칙의 기준은 <실천이성비판>에서 끌어낸 '너의 의지의 준칙이 항상 동시에 보편적인 법칙 수립의 원리로서 타당할 수 있도록 행위하라' 또는 '그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될 것을, 그 준칙을 통해 네가 동시에 의욕할 수 있는, 오직 그런 준칙에 따라서만 행위하라.'는 정언명령이 될 것이다. 이처럼 '덕'은 준칙을 법칙에 합일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도덕적인 개인들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것이 강제력을 가진 최소한의 규정인 법으로, 이를 통해 공동체는 '자연 상태'에서 국가의 '시민적 상태'로 갈 수 있게 되는 조건을 갖추게 되며, 한 걸음 더 나아가 국제적으로 '영원한 평화'에 가까워질 수 있음을 <실천이성비판>, <윤리형이상학>, <영원한 평화>의 구조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칸트의 윤리철학이 후대에 미친 영향이 큰 만큼 이에 대한 비판점도 적지 않지만, 이번 리뷰에서는 <윤리형이사항학>의 전체 얼개를 대강 훑어보는 것으로 이만 줄이도록 하고, 비판점 등에 대해서는 별도의 페이퍼에서 다른 이론들과 함께 살펴보는 것으로 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