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사는 데 뜻이 있는 거요. 부귀영화야말로 헛된 꿈이오."

 "실패한 사람의 자기 위안 아닌가요?" "나는 가끔 거지가 부러울 때가 있소. 그들은 자유인이니까." "정말 자유인일까요?" "아암, 자유인이지요. 그들에게는 집착할 집도 없고 가족도 없고 한 끼 걱정만 하면 되니까."

 "그들은 가진 자보다는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어요. 무형유형으로 가진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자유는 저당 잡히게 마련이니까, 내 얘기가 틀렸단 말인가요?"

 "그래도 모든 사람은 유형무형은 많은 것을 가지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인간들은 미망(迷妄)에 빠져서 고통스러워하지." _ 박경리, <토지 19> , p197/634


  <토지> 독서챌린지 37주차. 이번 주 독서챌린지 주제는 ''내가 만약 소설 속 인물이었다면?" 이지만, 이에 앞서 이번 주에 읽은 책 내용을 먼저 정리해보자. <토지 19>에서는 윤국과 양현의 결혼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찬하와 오가타가 아들 쇼지를 데리고 만주로 여행을 간다. 그 중에서 영광과 유인배와의 대화, 찬하와 오가타와의 대화 중에서 공통된 소재가 있는데 바로 '자유 自由'다. 이들이 말한 자유가 무엇일까? 나라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면 개인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일까. 그 중에서도 경제적인 자유일까, 정치적인 자유일까 등등. 


 용무가 없는 여행이란 항상 그러한 것이지만 그것은 일종의 탈출이다. 그러나 배를 탔을 때나 기차를 탔을 때는 그것이 탈출이기보다 유리(遊離)현상으로 나타난다. 탈출하는 대지를 잃기 때문에 개체에 응결되는 자각과 동시에 운명과의 수직선을 그리며 불확실한 의식의 세계는 확대된다. 그것은 죽음의 행로가 이러할지 모른다는 쓸쓸함이며, 자유의 개념이란 결국 개체에 대한 인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_ 박경리, <토지 19> , p290/634


 <토지>에서 언급된 자유가 '일체의 구속이 없음'이라는 사전적인 의미라면, 이들은 정말 '자유' 자체를 원했을까, 아니면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상태'를 원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거지는 가진 것이 없기에 오히려 구속받지 않을 수 있었던 반면, 찬하와 오가타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로 인해 속박될 수 밖에 없다는 역설. <토지>에서 말하듯 자유란 절대적인 상태가 아닌 관계에 대한 인식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에 대해 에리히 프롬 또한 연장선상에 있는 듯하다.


 에리히 프롬(Erich Seligmann Fromm, 1900~1980)은 <자유로부터의 도피 Escape From Freedom>에서  더 큰 자유가 오히려 사회에 대한 더 강한 결합으로 이끌기에 결과적으로 자신을 얽매이는 것으로 해석한다.  프롬의 결론에 따르면 마치 망망대해에서 갈증에 못 이겨 마신 바닷물이 더 큰 갈증을 불러오듯,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가 더 큰 강압으로 돌아오게 된다. 사회로부터의 분리불안이 사회의 간섭을 희망한다면,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 ~ 1873)의 <자유론 On Liberty>은 자유를 위한 사회의 간섭을 정당화한다.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에서 이뤄지는 사회의 간섭과 강제는 아이러니 하지만, 지금 우리가 직면한 현대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 책의 주요 주제는 인간이 타인이나 자연과의 원초적 일체감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에서 자유를 얻으면 얻을수록, 인간이 '개인'이 되면 될수록, 자발적인 사랑과 생산적인 일을 통해 자신과 세계를 결합시키거나 아니면 자신의 자유와 개체적 자아의 본래 모습을 파괴하는 끈으로 세계와 자신을 묶어서 일종의 안전보장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_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 p25/226


 인간의 개체화 과정 전체가 의존하고 있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상황이 방금 말한 의미에서 개성을 실현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지 못하면,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그때까지 그들에게 안도감을 주었던 기본적인 관계를 단절당하면, 이 불균형 때문에 자유는 견딜 수 없는 부담이 되어버린다. 그러면 자유는 의심과 동일해지고, 의미와 방향을 잃은 삶과 동일해진다. 그럴 때 어떤 사람이나 세계와의 관계가 개인의 자유를 박탈하더라도 불안을 없애주겠다고 약속하면, 자유에서 벗어나 그 관계 속으로 도피하거나 복종으로 도피하려는 강력한 경향이 생겨난다. _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 p34/226


 자신을 노예로 파는 것은 자유를 포기한다는 말이다. 한번 이렇게 하고 나면 나중에 다시는 자유를 누릴 수 없다. 그 결과 이는 자신을 팔아버리는 행위도 허용해주는 원리, 즉 자유의 목적을 자기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 사람은 이제 더 이상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이 자유 상태에 있을 때 누리는 이점을 향유할 수 없다. 자유의 원칙이 자유롭지 않을 자유 free not to be free까지 허용하지는 않는다. 자유를 포기할 자유는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자유의 원칙은 우리가 자유를 포기해서는 안 되며 자유를 버리는 것과 같은 의미의 자유는 함부로 누리지 못하도록 제한을 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원칙 안에서 각 개인은 행위자 자신에게만 관계되는 일에 대해서는 무제한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_존 스튜어트 밀, <존 스튜어트 밀 선집> <자유론> , p408/962


 이러한 역설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 1909~1997)의 설명이 이해에 도움이 된다. 벌린의 설명에 따르면, 소극적인 의미의 자유는 '상태'를 의미하지만, 적극적인 의미에서 자유는 '당위'가 된다. 자신의 자유뿐 아니라 타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적극적인 개입. 이러한 적극적인 의미에서 자유의 기원을 찾기 위해 우리는 계몽시대의 '도구적 이성'까지 거슬러 가야 한다..


 이사야 벌린 Isaiah Berlin의 정의에 따르면, 소극적 자유란 '타인에 의해 방해받지 않고 각자가 자기 뜻대로 행동할 수 있는 상태'이며, 이에 비해 적극적 자유란 '합리적으로 결정하고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개인의 상태나 능력'을 뜻한다. 그는 자유의 근본적인 의미는 타인들에 의한 사슬로부터, 감금으로부터, 노예 상태로부터의 자유에 있으며, 그 나머지는 이런 의미의 확장이거나 은유일 뿐이라고 본다.... 벌린이 적극적 자유를 문제 삼는 이유는, 그것이 함축하는 '이성에 따른 자기 지배 혹은 자기실현'의 의미가 자유를 이해하는데 혼란을 초래하고 나아가 자유를 억압하는 명분으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성의 주체로서의 '자기'의 범주를 국가나 민족 공동체로 확장하게 되면, '자유롭기 위한 강제'의 역설이 '참된' 자유의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_ 문지영, <자유> , p116/252


 국가에 봉사하는 '관직'의 의무에 합당하게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는 것을 이성의 '사적' 사용이라 일컫고, 반면 그런 관직의 의무에서 벗어나 단지 '식자'의 한 사람으로서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개진하는 것을 이성의 '공적' 사용이라 일컫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성의 '사적' 사용은 도구적 이성을 가리킨다. 그런 경우 공동체의 구성원은 '단지 수동적 태도만 취하게 하는 기계적 장치'의 일부로 기능하며, 이성 사용의 보편타당성 여부를 따져서는 안 되고 국가의 명령과 관직의 의무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반면 이성의 '공적' 사용에서는 생각과 표현의 자유가 전적으로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칸트의 입장이다._임마누엘 칸트 외, <계몽이란 무엇인가> , 해제, p254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의 정언명령(定言命令, Categorical Imperative)을  

'근대화(近代化)'라는 명목으로 국가 단위에서 이성(理性)을 강요했을 때 발생하는 도구적 이성의 문제. 이것은 근대화(Modernization)에서 비롯한 현대사회의 문제점이 아닐까. 현대사회의 불안과 소외, 이것을 <토지 19>에서 우리는 확인하게 된다. <토지> 초반부에서 목매달아 죽은 여인의 원혼이 서린 나뭇가지가 병에 효험이 있더라는 전근대적인 분위기가 사회 전반을 지배했다면, 작품의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사회분위기가 사뭇 달라져 현대사회의 문제로 대체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가 서희로 대표되는 1세대 남짓의 시간 동안 발생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변화가 우리 사회의 필요가 아닌, 외부의 필요에 의해 강제된 것이기에 충격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적 합의가 없었음도 당연할 것이다. 이러한 점을 생각하며, 작품 속 인물들을 다시 들여다 보자. 내가 만약 소설 속 인물이었다면?


 이성의 광기는 오늘날의 이성을 특징짓는 명백한 기형성을 훨씬 능가한다. 이성은 인간을 통해 생산되고 재생산되는 세계의 질병에 대해 반성해야만 자신의 합리성을 실현할 수 있다. 그러한 자기 비판 속에서 이성은 오로지 이성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는 진리의 원칙을 고수하고 그 밖의 어떠한 동기도 지향하지 않음으로써 동시에 스스로에게 충실하게 된다. 자연 지배는 인간 지배로 전환되고, 그 역도 마찬가지다... 이성의 자연성은 지배하려는 경향 속에 내재되어 있는데, 이러한 경향은 역설적으로 이성을 자연으로부터 소외시킨다. 따라서 이성은 화해의 도구가 되는 경우에만 동시에 도구 이상의 것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의 과정에서 진보와 퇴보라는 방향의 변화는 철학이 어떻게 정의되어왔는지를 반영한다. _ 막스 호르크하이머, <도구적 이성 비판> , p218


 시민으로서의 정치적 자유의 상실은 우리에게 남아 있는 선택권마저도 더 이상 시민으로서의 우리 자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책임을 물을 수 없는 보호 권력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문제들은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세 가지 불안 요인으로 종합된다. 첫 번째 두려움은 삶의 의미의 상실, 즉 도덕적 지평들의 실종에 관한 것이다. 두 번째는 만연하는 도구적 이성 앞에서 소멸하는 삶의 목표들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자유/자결권의 상실에 관한 것이다. _ 찰스 테일러 , <불안한 현대사회> , p32/294


 <토지 19>의 시대적 배경은 1940년 초중반이다. 급격한 사회 변화와 함께 전쟁이라는 한계 상황. 이러한 이중고 앞에서 등장인물들은 각각 저마다의 방식으로 대처해나간다. 남매로 자란 윤국과 양현에게 결혼을 강요하는 서희, 친구의 아들을 입양해 키우고 이 사실을 아들에게 알리지 않는 찬하. 이들의 모습이 긍정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이들에게 다른 좋은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 절박한 상황 속에서 가까운 이들과 헤어지지 않으려는 필사의 노력을 서희와 찬하의 모습에서 읽을 수 있기에 하나의 방편으로 이해하게 된다. 이후 전개되는 <토지>의 내용을 알고 작품 밖에서 안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이유다. <토지 19> 안에서 이야기되는 '자유'라는 근대 이데올로기와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함께 생각하며, 작품 속 인물들의 선택을 이해하며 이번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PS. '자유'와 관련해서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of Hippo, AD 354~430)는 '자유의지'를 선(善)과 악(惡)을 판단할 수 있는 중간선으로 생각한다. 다만, 인간은 한계가 있는 존재이기에 절대선에 이르기 위해서 인간이 따라야 하는 것이 '신의 길'임을 함께 말한다.  또한, 노자(老子, Laozi, BC571 ?~?)는 무위(無爲)를 통해 '도(道)'를 따를 것을 이야기한다. 이들 모두가 '분리'가 아닌 '따름'을 통해 더 좋은 결과를 지향한다면, '분리'를 통해 억압으로부터 탈출하려는 근대의 '자유'는 어쩌면 우리를 더 큰 강제로 이끄는 다른 수단일지도 모르겠다.  '~으로부터의(from ) 자유(freedom)'가 아닌 어떤 상태로의 자연스러운 귀의를 통한 궁극적인 자유가 우리에게 더 큰 자유를 주는 것은 아닐런지...


 48. 누구든지 넉넉한 정도 이상으로 바라면 물욕이다. 이러한 물욕은 곧 탐욕이고 탐욕은 곧 부정한 의지이다. 그러므로 부정한 의지야말로 모든 악의 원인이다. 만약 그것이 자연본성에 따라 존재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자연본성을 보존해 줄 것이고 자연본성에 해로울 리 없으며, 따라서 부정할 까닭이 없다. 따라서 모든 악의 뿌리가 자연본성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오고, 이 말로도 자연 사물들을 (나쁘다고) 공격하려는 사람들을 논박하기는 충분하다고 본다(p370)... 52. 그러니까 사람이 무지해서, 올바로 행할 것을 선택하는 자유의지를 갖추고 있지 못하거나, 육의 습관이 저항하기 때문에 죽음의 유산의 광폭한 위력이 어떤 면에서 천성적으로 뿌리를 내려 사람이 무엇을 해야 올바로 행함인 줄은 알고 그렇게 하기 원하면서도 정작 그렇게 할 능력이 없거나 한다. _아우구스티누스, <자유의지론> , p377


 도를 따름으로써 성인-군주는 이원성의 세계를 다스릴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뚜렷이 구분되는 측면들과 계기들은 서로를 해치려고 싸우지 않는다. 그보다는 상호 주고받음을 통해 협력한다. 이것은 유익한(그리고 리드미컬한) 효력의 교환으로 이어진다. 이 효력(德)은 군주에 의해 시작된다. 그리고 그것은 사회에서 펼쳐지고 공동체에 결실을 가져오기 때문에 점점 커지는 "위신(德)"의 형태로 "그에게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조차도 그가 주었던 것을 얻는 것이다. 도와 그것의 효력인 덕은 가장 넓은 차원에서는 세상 전체에 "작용하고" 있다. _ 한스-게오르크 묄러, <도덕경의 철학> , p70/27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보기에 해결책은 하나뿐이다. 우리의 사회생활에서 가장 본질적인 사실들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 인식은 우리가 돌이킬 수 없는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는 것을 막아주고, 객관성과 이성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조금이나마 높여준다. 가슴이 저지르는 대부분의 어리석은 짓과 그것이 우리의 상상력과 사고에 미치는 악영향을 겨우 한 세대 만에 극복하기를 바랄 수는 없다.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중세 사회의 붕괴로 생겨난 인간의 불안이라는 현상을 분석한 책이다. 중세 사회에는 많은 위험이 존재했지만, 인간은 그 안에서 보호를 받으며 안전하다고 느꼈다. 수백 년 동안 열심히 노력한 끝에 인간은 꿈도 꾸어보지 못했던 물질적 부를 쌓아올리는 데 성공했다. 인간은 세계 곳곳에 민주주의 사회를 건설했고, 최근에는 전체주의의 새로운 책동에 맞서 자신을 지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내가 분석하여 보여주려는 것은 근대인이 아직도 불안하다는 것이다. 불안한 인간은 온갖 부류의 독재자들에게 자신의 자유를 넘겨주거나, 스스로 기계의 작은 톱니가 되어 호의호식하지만, 자유로운 인간이 아니라 자동인형 같은 인간이 되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힌다.

자유의 인간적 측면과 권위주의를 분석하려면 일반적인 문제, 즉 심리적 요인들이 사회 과정에 적극적인 영향력으로 참여하여 맡고 있는 역할을 고찰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사회 과정에서 심리적ㆍ경제적ㆍ이념적 요인들의 상호작용이라는 문제로 이어진다.

이 책에 제시된 분석은 프로이트의 관점과는 대조적이다. 심리학의 주요 문제는 이런저런 본능적 욕구 자체를 충족시키거나 좌절시키는 문제가 아니라 세계에 대한 개인의 관계가 구체적으로 어떤 종류의 것이냐가 문제라는 가정, 그리고 인간과 사회의 관계는 고정적인 게 아니라는 가정이 이 책에 제시된 분석의 기본 바탕이다.

인간의 본성에는 고정 불변의 요소들이 있는데, 생리적 요구를 충족시켜야 할 필요성, 고립과 정신적 고독을 피해야 할 필요성이 그것이다. 개인은 어떤 사회 특유의 생산과 분배 체제에 뿌리를 둔 생활양식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았다. 문화에 역동적으로 적응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행동과 감정을 유발하는 강력한 충동들이 수없이 생겨난다. 개인은 이 충동들을 의식할 수도 있고 의식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 욕구들은 강력하고, 일단 생겨나면 충족시켜줄 것을 요구한다. 그것들은 강력한 영향력이 되어, 이번에는 반대로 사회 과정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아이는 자신의 활동을 통해 자기 밖에 있는 세계를 경험한다. 교육 과정은 개체화 과정을 촉진한다. 이 과정은 수많은 좌절과 금지를 수반하고, 어머니는 아이와는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 아이의 소망과 상충하는 목적을 가진 적대적이고 위험한 사람으로 역할이 바뀐다. 교육 과정의 일부이긴 하지만 결코 전부는 아닌 이 적대감은 ‘나’와 ‘너’의 구별을 더 분명히 하는 데 중요한 요소다.

인간과 자유의 근본적인 관계를 특히 효과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인간이 낙원에서 추방되는 장면을 묘사한 성서의 신화다.

이 신화는 인류 역사의 시작과 선택 행동을 동일시하지만, 인간이 자유를 얻고 나서 맨 처음 한 이 행동의 죄와 그로 말미암은 고통을 강조한다. 남자와 여자는 에덴동산에서 서로 완전한 조화를 이루고 자연과도 조화롭게 살고 있다.

신의 명령을 거역한다는 것은 강제에서 자신을 해방시키는 것, 인간 이전 단계의 무의식적 존재에서 벗어나 인간의 수준으로 올라가는 것을 의미한다. 권위의 명령에 거역하고 죄를 짓는 것은 긍정적인 인간적 측면에서 보면 최초의 자유 행동, 즉 최초의 ‘인간적인’ 행동이다. 신화에서 인간이 지은 죄는 형식적 측면에서는 선악과를 먹은 것이다. 자유 행동으로 신의 명령에 거역한 불복종 행위는 ‘이성’의 시작이다.

하지만 인간의 개체화 과정 전체가 의존하고 있는 경제적ㆍ사회적ㆍ정치적 상황이 방금 말한 의미에서 개성을 실현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지 못하면,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그때까지 그들에게 안도감을 주었던 기본적인 관계를 단절당하면, 이 불균형 때문에 자유는 견딜 수 없는 부담이 되어버린다. 그러면 자유는 의심과 동일해지고, 의미와 방향을 잃은 삶과 동일해진다. 그럴 때 어떤 사람이나 세계와의 관계가 개인의 자유를 박탈하더라도 불안을 없애주겠다고 약속하면, 자유에서 벗어나 그 관계 속으로 도피하거나 복종으로 도피하려는 강력한 경향이 생겨난다.

자본주의와 개인주의의 본질적 특징들을 그 뿌리에서 분석하면, 우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경제 체제나 성격과 대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조 자체가 근대 사회 체제의 특수성을 이해하기에 더 좋은 시각을 제공해주고, 근대 사회 체제가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성격 구조를 어떻게 형성했는지, 그리고 이 성격 변화가 낳은 새로운 정신은 어떤 것인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람을 시켜서 정탐을 해보니 그러한 것이 모두 없었으니, 나는 이로써 멀리까지 말을 몰아 깊숙이 들어가면 큰일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으로 알았소. 군사들이 이미 서로 접전하게 되면 우리의 기세는 바야흐로 예리하였으며 저들의 기세는 바야흐로 꺾여 있어서 만약 이 기회를 타고 신속히 그들을 치지 않고 오랜 세월을 견디게 한다면 이기고 지는 것은 알 수 없었소. 이는 내가 빠르게 싸워서 승리한 까닭이며 피로해있고 편안하게 있는 것으로 대처하는 보통의 이론을 가지고 하였다면 불가능하였을 것이오."

석경당이 심히 탄복하였다.

유(幽, 북경시)·계(?, 천진시 계현)·영(瀛, 하북성 하간시)·막(莫, 하북성 임구시 북쪽 막주진)·탁(?, 하북성 탁주시)·단(檀, 북경시 밀운현)·순(順, 북경시 순의현)·신(新, 하북성 탁록현)·규(?, 하북성 회래현)·유(儒, 북경시 연경현)·무(武, 하북성 선화현)·운(雲, 산서성 대동시)·응(應, 산서성 응현)·환(?, 산서성 삭주시)·삭(朔, 산서성 삭주시)·울(蔚, 하북성 울현) 16주(州)를 잘라서 거란에 주고 이어서 매년 비단 30만 필을 보내주기로 허락하였다.

황제는 거란과 더불어 우호관계를 맺었으나 그들이 다시 영무(靈武, 영하성 영무현)를 빼앗을까 두려워하여 계사일(9일)에 다시 장희숭을 삭방절도사로 삼았다.

송제구(宋齊丘)가 이덕성(李德誠)의 아들인 이건훈(李建勳)에게 말하였다. "존공(尊公)은 태조의 원훈(元勳)인데 오늘 땅을 쓰는군요."

이에 오의 궁중(宮中)에서 괴이한 일이 많이 일어나자, 오주가 말하였다. "오의 운명이 그 끝에 왔구나!"

좌우에서 말하였다. "이는 마침내 하늘의 뜻이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고려의 왕건(王建)이 군사를 부려서 신라(新羅)와 백제(百濟)를 쳐서 깨뜨리니, 이에 동이(東夷)의 여러 나라들이 모두 그에게 귀부하게 되어 2경(京), 6부(府), 9절도(節度), 120군(郡)이 있었다.

무릇 제왕(帝王)이 천하를 통어하는 데는 믿음보다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지금 주상께서는 영공(令公, 석경당)에게 큰 믿음을 잃었으며 가까이하거나 귀한 사람들도 또 스스로 보전할 수 없는데 하물며 소외되고 비천한 사람이겠습니까? 그가 멸망하는 것은 발돋움하고 서서 기다릴 정도이니, 어찌 강함이 있겠습니까?" 석경당이 기뻐하며 군사에 관한 일을 맡겼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상에 숟가락 하나
현기영 지음 / 창비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금, 나의 얼굴은 점점 내 방에 걸린 아버지의 영정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아버지의 죽음은 당신과 나 사이에 놓여 있던 세월의 간격은 물론 불편했던 여러 과정들을 일시에 제거하면서 나를 바로 아버지의 그 자리에 옮아가게 만들었다. 그리고 아버지를 잃음으로써 나는 아무 완충 없이 죽음과 직접 연관 지어졌다. 그러니까 내 얼굴 모습이 영정 속의 아버지를 닮아간다는 것은 그다음의 죽음은 내 차례라는 뜻이기도 한 것이다. 죽음이 궁극적으로 나를 자연으로 데려다줄 것이다. _ 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 , p538/542


 나이 오십 줄에 들어 머리털이 헤실헤실 벗어지고 있는 지금, 나는 그동안 잊고 지냈던 그 흉측한 흉터가 다시 드러남을 본다. 그와 함께 그 옛날 땜통 시절의 소심증도 되살아나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칼로 흉터를 가려보려고 자꾸만 머리에 손이 올라간다. 그렇다. 어릴 적 흉터가 늙어서 다시 드러나고 그 흉터를 통해서 잊혔던 그 시절이 다시 되살아나는 것이다. _ 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 , p43/542


 <지상에 숟가락 하나>는 현기영(玄基榮, 1941~ )의 자전소설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한 저자. 아버지의 죽음 후 다음 순서는 자신임을 직감하며, 아버지가 걸었던 길을 따라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죽음의 길. 그렇지만, <지상에 숟가락 하나>는 인간이라는 한 개체의 소멸만을 말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죽음은 역설적으로 묻혔던 공동체의 기억의 소생으로 이어진다.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죽음'의 의미를 깨달은 이제는 오십 살의 장년이 된 소년. 그가 바라봤던 제주 4.3의 모습이 작품 속에서 그려진다.


 죽음이 곧 완전한 소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죽음이 인간 개체를 완전히 파괴하지는 못한다. 죽어서도 내 마음속에 뚜렷이 살아 있는 아버지 모습이 그것을 증거한다. 돌아가신 후로 아버지는 내 의식에 자주 출몰하고 있는데 마치 당신이 내 마음속으로 이사해와 거주하고 있는 느낌이다. 아니, 그보다 아버지는 다름 아닌 나 자신이 아닌가. 나의 얼굴 모습도 점점 아버지와 닮은 꼴이 되어간다. 아버지의 목숨은 단절된 것이 아니다. 자식인 나에게 이어진 것이다. 종말은 단절이 아니라 그 속에 시작이 있다는 것, 따라서 나의 존재는 단독의 개체가 아니라 혈족이라는 집단적 생명의 한 연결 고리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_ 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 , p10/542


 어쨌거나, 이제 죽음의 계절은 끝이 났다. 죽음을 뚫고 솟구치는 생명의 부활, 엄청난 수의 인명 파괴에 맞먹는 종족 번식의 대공사가 바야흐로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타버린 잿더미 속에서 새 생명의 푸른 불씨를 일궈내어 마침내 초토의 검은 땅을 푸르게 덮어야 했다. _ 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 , p436/542


 <지상에 숟가락 하나>에 그려진 제주4.3사건은 철없는 아이의 눈에 비춰진 의미없는 끔찍한 기억이다. 죽음의 의미에 대해 알지 못하는 소년의 눈에 학살은 잔혹함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나는 아직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어린 나이였다. 아무 뜻도 없이 그냥 재미로 벌레를 죽이는 어린애가 어찌 인간의 죽음을 이해하겠는가. _ 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 , p39/542


 3.1사건 이후 일년 동안, 육지부에서 파견된 경찰과 서청이 자행한 무자비한 탄압이 마침내 "앉아서 죽느니 일어나서 싸우자"라는 절망적 항쟁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4.3의 봉기는 곧바로 5.10선거 보이콧으로 이어졌는데, 이러한 사태의 전개는 어린 나에게는 단지 풍문일 따름 별로 실감이 없었다.(p61)...  그리하여 한라산과 해변 사이 주우산간 지대의 백삼십여개의 마을들이 불에 타 사라졌다. 불바다와 함께 대살육극이 시작되었으니, 주민들 절반은 산으로 달아나 폭도라는 누명 아래 사살의 대상이 되고 절반은 명령에 따라 해변으로 소개했으나, 그중의 많은 부로(父老), 아녀자들의 폭도 가족이라고 처형당했다. 사람들뿐만 아니라 마소도 닥치는 대로 학살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물정을 잘 모르는 읍내 아이였다. _ 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 , p68/542


 잿더미가 되버린 마을터의 참혹한 현실들이 수풀에 덮히듯, 제주 4.3의 아픈 기억들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절박한 현실에 덮여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은 소년에게 넘어야 할 벽이었고 장애물이었으며, 떠나야 할 변경이었다. 아픔의 기억은 잔흔처럼 남겨졌지만, 이 역시도 극복의 대상이었기에 무시당하며 무의식의 내면으로 소리없이 유폐당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그 움막의 어둠을 밝히던 접시부의 조그만 불방울과 지예의 머루알같이 빛나던 그 눈망울, 그리고 검은 재와 숯더미 속에 푸르게 솟아난 어린 오동나무는 훗날 생명의 강한 상징으로서 나의 심중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렇다. 아이는 무조건 자라나야 한다. 무조건 자라는 것이 아이의 의무이므로, 아이는 결코 과거에 붙들리지 않는다. 그래서4.3의 유복자들은 막무가내로 자라나서 4.3의 저 검은 폐허를 푸른 풀로 덮게 되는 것이다. _ 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 , p102/542


 물론 그 가혹한 시절은 어린 내 가슴에도 좀처럼 지울 수 없는 죽음의 어두운 이미지와 우울증을 심어놓은 게 사실이다. 그 우울증의 결과로 나는 오랫동안 말을 더듬었는데 그 흔적은 아직도 내 혀에 남아 있다. 그러나 아이들이란 자신의 성장에 해로운 것은 본능적으로 피해가게 마련이다. 슬픔, 외로움이야말로 성장에 유해한 물질이 아닌가. 몸 가벼운 만큼이나 마음 또한 가벼워 울다가도 금방 웃을 줄 아는 것이 아이들이니, 어떠한 슬픔에도 기쁨의 양지를 향하여 새털처럼 가볍게 날아오르는 것이다. _ 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 , p104/542


 그러한 영육의 불화, 분리는 자연의 한 부속물이었던 내가 거기서 떨어져나옴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제 자연은 야만, 무지, 변경과 같은 말이었고, 내가 극복해야 할 장애물일 뿐이었다. 그러나 나의 미래는 가난 때문에 극히 의심스러운 것이 되어 있었다. 변경을 벗어난다는 것은 가난한 소년에게는 너무도 버거운 꿈이었다. 고교 공부도 어려운 처지에, 과연 대학 공부를 하기 위해 저 수평선을 넘을 수 있을까? 나를 키운 모태인 바다가 도리어 비상하려는 나의 발목을 잡는 질곡이라는 뼈아픈 자각, 그랬다, 수평선은 내 목에 걸린 올가미였다. _ 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 , p536/542


 그리고, 이런 아픔은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비로소 자리를 찾게 된다. 소년이 극복하고자 했던 변경이 사실은 세상의 중심이고, 자신이 되돌아가야할 원초적 생명임을 깨달으면서 건조한 사건의 의미를 돌아보게 된다. 한 개인의 죽음이 불러낸 집단의 기억. 이것이 아버지 죽음이 가져온 진정한 의미다.


 허리까지 잠기는 풀밭을 이리저리 거니노라면 내 영혼에 예리하게 침투하는 야초의 독한 향내...... 거기에서 나는 내 존재에 대한 강렬한 의식과 함께 내 죽음 자체에도 관대해진다. 내 아버지, 내 조상들이 묻힌 곳, 그 초원은 모든 섬사람들이 태어났다가 죽어서 다시 돌아가는 어미의 자궁인 것이다. 그러나 피맺힌 한으로 해서 조금도 관대해질 수 없는 무자, 기축년의 그 주검들은 어찌할 것인가. 그들도 거기로 돌아가 푸른 초원을 이루고 있지만 그들의 삭일 수 없는 여한은 어찌할 것인가. _ 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 , p94/542


 이처럼 <지상에 숟가락 하나>에서는 소년의 눈에 비친 제주 4.3사건을 그린다. 때문에, 사건의 잔혹함이나 긴박감 등을 작품에서 느끼기 어렵지만, 대신 사건이 현대인에게 주는 의미와 함께 하나의 사건이 역사가 되기 위해서, 그 사건은 먼저 우리 안에 온전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교훈을 독자들은 전달받는다. 이런 면에서 <지상에 숟가락 하나>는 <순이 삼촌>에서 미처 말하지 못한 메세지를 전달하는 제주 4.3사건을 소재로 한 또 하나의 좋은 작품이라 여겨진다... 


 삶이란 궁극적으로 그러한 아침에 의해 격려받고, 그러한 아침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리라. 아침 빛으로부터 병든 자는 삶의 의욕을 얻고, 절망한 자는 용기를 얻고, 그리고 용기 있는 자가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따라 더 밝고 더 아름다운 아침을 위해 기꺼이 목숨 바칠 결심을 하는 순간도 그러한 아침의 햇빛 속에서일 것이다. _ 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 , p252/542


 내가 떠난 곳이 변경이 아니라 세계의 중심이라고 저 바다는 일깨워준다. 나는 한시적이고, 저 바다는 영원한 것이므로. 그리하여 나는 그 영원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모태로 돌아가는 순환의 도정에 있는 것이다. _ 현기영, <지상에 숟가락 하나> , p539/542 



자연의 일부였으므로 부끄럼 없고 죄 없이 무구한 시절, 그리하여 나에게 그 시절만이 진실이고 나머지 세월은 모두 거짓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 섬 땅에서 정작, 내가 태어나 그 탯줄을 묻은 함박이굴 마을은 지금 지도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메타포를 통해서 세상 보는 일에 익숙한 글쟁이여서 그런지, 1948년 토벌대의 방화로 소진된 이래 그 부락은 오직 검은 재의 폐허로만 내 의식에 각인되어 있다. _ p14/542

한창 자라나는 어린 나에게 한달 넘게 계속되는 결식은 참기 어려운 괴로움이었다. 처음에 어머니는 아침밥을 반쯤 남겼다가 점심에 먹는 게 어떠냐고 권했지만, 오히려 허기만 더 자극할 뿐이어서 아예 점심을 굶어버렸다. 한사발의 밥이 제대로 배 속에 들어가야 한때나마 그 무서운 허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이다. 무서운 허기, 정말 그랬다. 허기는 본능적인 공포, 살이 조금씩 깎여들어간다는 두려움을 예리하게 일깨워주곤 했다. 굶주림의 그 생생한 감각은 나의 성장하는 정신에 지워지지 않은 상처를 남겨, 지금도 나는 공복상태가 두려워 어쩌다 한끼라도 때를 놓치면 사뭇 안절부절못하는 버릇이 있다. _ p166/542

그러나 죽음의 시절은 이제 일단락 났다. 그해 여름, 보리 풍작과 함께 그보다 더 큰 기쁨이 날아들었으니, 그것이 바로 휴전 소식이었다. 드디어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온 것이다. 모든 전선에서 총성이 멎고 휴전선이 획정되었다는 소식이었는데, 과연 그것을 입증하듯이 도두봉의 기총 사격도 그쳤다. _ p350/542

누구나 사춘기 열병을 앓게 마련이지만, 고교 시절의 나는 아무래도 남보다 더 갈등이 심했던가보다. 영과 육의 불화. 영혼도 육체도 제각기 뭔가를 몹시 갈구하건만, 영혼이 바라는 바를 육체가 따르지 못하고, 육체의 요구를 영혼이 들어주지 못했다. 무구하던 영혼이 격정과 불만으로 들끓던 그 악바리 소년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온다. _ p536/542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리의화가 2022-04-07 16: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올해 4월 3일은 제주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의미깊고 좋았어요. 어린 아이가 이념이 무엇인지 어찌 알았겠어요 동네 사람들이 도망가고 죽는 끔찍한 현장을 목도했을 때는 충격 그 자체였을테구요. 그 당시 이념 뿐 아니라 가난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가 있었을텐데 참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습니다ㅠ 이제 4.3하면 현기영님이 저는 가장 먼저 떠올라요^^

겨울호랑이 2022-04-07 16:33   좋아요 1 | URL
^^:) 그러셨군요. 거리의화가님께 더 의미있는 4.3이었겠습니다. 마치 롤스가 ‘정의‘라는 한 주제에 천착한 것처럼, 현기영 작가는 4.3사건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한 작가라 생각되기에, 저 역시 4.3과 현기영 작가를 떨어뜨려 생각할 수가 없네요. 거리의화가님 말씀에 매우 공감합니다.

그레이스 2022-04-07 2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현기영씨도 너무 마음 아픈 소설가예요.
글을 너무 잘 쓰는데, 과거의 사건에 매여 있어서,,,
이책의 글들은 소름돋게 좋은데 너무 가슴아팠던 기억이 나요

겨울호랑이 2022-04-07 23:20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의 말씀처럼 4.3 사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작가의 모습이 여러 작품에 투영되어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같은 불행이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겠지요...
 

신 사마광이 말씀드립니다. "손광헌은 미세한 것을 보고 간할 수 있었고, 고종회는 좋은 의견을 듣고 고칠 수 있었으며, 양진은 공로를 이루고 물러날 수 있었으니, 예로부터 국가를 가진 사람이 이와 같이 할 수 있다면 무릇 어찌 나라를 망하게 하고 가정을 무너뜨리며 몸을 죽게 하는 일이 있었습니까?"

비록 무궁한 재물이 있다고 하더라도 끝내는 교만한 사졸들의 마음을 채울 수 없으니, 그러므로 폐하께서는 위급하고 곤란한 속에서 손을 잡고 천하를 얻었습니다. 무릇 나라의 존망(存亡)은 오로지 후한 상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고 역시 법도(法度)를 닦고 기강(紀綱)을 세우는 데에 있습니다.

황제가 학사(學士) 마윤손(馬胤孫)에게 말하였다.

"짐은 새로 천하에 다가갔으니 의당 언로(言路)를 열어야 할 것이며, 만약 조정의 인사들이 말한 것으로 죄를 짓는다면 누가 감히 말할 사람이겠는가! 경이 짐을 위하여 조서를 짓고 짐의 뜻을 선포하도록 하시오."

마침내 조서를 내려서 말하였는데, 그 대략이다.
"옛날에 위징(魏徵)은 황보덕참(皇甫德參)에게 상을 내리라고 요청하였는데, 지금 유도 등은 사재덕을 물리치라고 요청하고 있으니, 일은 같은데 말은 다르니 어찌 그것이 차이가 크단 말인가! 사대덕의 마음이 가슴에 품은 것을 기울여 충성을 다하고 있으니 어찌 책망할 만하겠는가?"

가만히 앞의 왕조를 보면 상원(上元, 당 숙종의 연호) 이래로 연영전(延英殿)을 설치하고 혹은 재상이 주문을 올려 논의하려고 하는 것이 있거나 천자가 자문하려고 하는 것이 있으면 옆에는 시위를 없앴으니 그러므로 사람들은 모두 말할 수 있었습니다. 바라건대 이 옛날에 있었던 일을 회복시키고, 오직 추요(樞要)의 신하들만이 옆에서 시중들도록 허락하십시오.

노왕이 성에 올라 울면서 밖에 있는 군사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관례를 올리지 않은 나이에서부터 돌아가신 황제를 좇아 백번 싸워 삶과 죽음을 넘나들며 온 몸이 쇠붙이에 상처를 입으면서 오늘의 사직을 세웠는데, 너희들이 나를 좇았으니 눈으로 그 일을 보았을 것이다. 지금 조정에서는 참소하는 신하들을 신임하고 골육(骨肉)을 시기하는데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죽임을 당하겠는가?"
이어서 통곡하였다. 듣던 사람들이 이를 슬퍼하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