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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역사 - 하- 제8판
니콜라스 V.랴자노프스키.마크 D. 스타인버그 지음, 조호연 옮김 / 까치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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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역사 - 상- 제8판
니콜라스 V.랴자노프스키.마크 D. 스타인버그 지음, 조호연 옮김 / 까치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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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사 강의 2
세르게이 표도로비치 플라토노프 지음, 김남섭 옮김 / 나남출판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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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사 강의 1
세르게이 표도로비치 플라토노프 지음, 김남섭 옮김 / 나남출판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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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개혁가이기는 했지만 급진주의자는 전혀 아니었다. 그는 철저한 당원이었다. 1956년 스타브로폴 지구 공산주의청년동맹 제1서기를 시작으로 1970년 지역의 국영농장위원회 서기를 거쳐 최고 소비에트 의원에 이르기까지 당을 통해 성장했다. 새로운 지도자는 그 세대 공산주의자들의 많은 정서를 대표했다. 고르바초프는 당이나 당의 정책을 절대로 공개리에 비판하지 않으면서도 1956년 흐루쇼프의 스탈린 비판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곧 흐루쇼프 시대의 오류에 환멸을 느꼈고 이후 브레즈네프 시절의 억압과 무기력에 실망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이런 의미에서 고전적인 개혁 공산주의자였다. _ 토니 주트, <전후 유럽 1945 ~ 2005>2 , p144/465


 미하일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 1931 ~ 2022)가 어제(8월 30일) 세상을 떠났다. 1980년대 후반  글라스노스트(glasnost)와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 정책을 펼치면서 이후 탈(脫)냉전시기를 이끌어낸 지도자로 당시 세계인의 찬사와 존경을 받았던 것으로 그를 기억한다. 비록, 정권 말기 군부 쿠데타로 실각하고, 그를 대신하여 쿠데타에 맞선 보리스 옐친(Boris Yeltsin, 1931 ~ 2007)에게 밀려나 이후 다시 정계에서 쓸쓸하게 사라지지만. 한동안 잊고 있었던 그의 죽음 소식을 들으며, 한 시대가 끝났음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다만, 그의 죽음으로 진정한 냉전의 시대가 끝났음을 인지하기도 전에, 탈냉전의 시기가 진정한 평화의 시대가 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신냉전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깊이 체감하게 된다. 


 개혁의 본능은 절충에 있었다. 다시 말해 관료적 병폐에서 해방되고 원료와 숙련 노동력의 확실한 공급을 보장받은 소수의 인기 있는 사업을 실험적으로 (위로부터) 만들어 내야 했다. 그러면 이러한 사업이 다른 유사한 사업에 성공적인 모델의 기능을, 나아가 이윤을 내는 모델의 기능을 수행할 것이다. 목적은 통제된 현대화, 가격 결정 과정에 대한 점진적 적응, 그리고 수요에 부응하는 생산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법은 그 작동의 전제 때문에, 다시 말해 당국이 행정상의 허가를 통해 효율적인 사업을 설립해야 했기 때문에 실패가 예견되었다... 고르바초프는 소련 경제와 씨름하면서 두 발로 바로 서기 위해서는 소련의 경제적 난제만 따로 다룰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았다. 경제적 난제는 더 큰 문제의 증상에 불과했다. 소련은 중앙 통제경제의 정치적/제도적 기득권을 지닌 자들이 운영했다. 소련 특유의 작은 모순들과 일상의 부패는 권위와 권력의 원천이었다. 당이 경제를 개혁하려면 우선 당 자체를 개혁해야 했다. 그래서 총서기(고르바초프)는 당 기구의 장악력을 깨부수고 경제재건 계획을 추진하기 위해 '글라스노스트(공개)에 의존했다. _ 토니 주트, <전후 유럽 1945 ~ 2005>2 , p146/465


 고르바초프에 대한 평가는 사뭇 갈린다. 새시대를 연 세계적인 지도자로 바라보는 시선과 그의 정책으로 결과적으로 동유럽과 소련이 개방의 길로 접어들면서 겪은 혼란상으로 인해 실패한 지도자로 바라보는 관점. 그에 대한 평가는 이제 역사가 내릴 테지만, 분명한 것은 그의 죽음으로 20세기 후반 가장 큰 사건인 '탈냉전'은 이제 역사적 사실이 되었다는 점이다...


불행하게도, 고르바초프의 초기 시도 중 거의 어느 것도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경제는 단순한 권고에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사실, 정부 자체의 경제정책, 특히 재정정책은 예산 부족과 물가 상승을 초래했고,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행정부와 그것의 우유부단하고 혼란스러운 방향 때문에 경제는 브레즈네프 치하에서 가졌던 응집력을 상실하기 시작하면서도, 그 시대를 대체할 만한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상태가 되었다(p897)... 이것은 전적으로 위로부터의 혁명도 아니었고, 전적으로 일관성 있는 혁명도 아니었다. 고르바초프는 더 이상의 급진적인 조치를 앞두고서도 계속해서 머뭇거렸다. 그는 중도적인 입장을 유지하려고 시도하면서, 당의 급진파와 제휴할지 보수파와 제휴할지 오락가락 하다가 결국 양쪽 모두와 소원해졌다. 아무튼 당은 점점 더 사회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갔다. _ 니콜라스 V.랴자놉스키 외, <러시아의 역사 -하- > , p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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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8-31 22: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고르바초프, 한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이 갔네요. 평가는 갈리겠지만 어쨌든 역사에서 큰 전환점을 만들었던 것 만큼은 분명한 인물이지요.

겨울호랑이 2022-08-31 23:00   좋아요 1 | URL
네... 정말 20세기를 대표하는 한 인물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단순한 개인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마무리를 생각하게 됩니다...
 

세상엔 참과 거짓이 있고, 우리에겐 그것을 탐구할 능력은 있지만 그것들을 판정할 시금석 같은 것은 없다고. 따지고 들 것 없이 세상의 질서가 이끄는 대로 자신을 맡겨 두는 편이 우리에겐 더 낫다. 편견에서 벗어난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평정을 향해 놀라운 진전을 이룬 것이다.

인간 조건의 골칫거리는 흔히 우리 생각에 가장 진실한 것으로 보이는 것이 우리 삶에 가장 유용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가장 대담한 학파들, 에피쿠로스파, 퓌론파, 신아카데미아파도 종국에는 국가의 법에 허리를 굽히지 않을 수 없다.

멸할 인간의 모든 만족은 멸할 수밖에 없다. 저승에서 부모, 자식, 친구들을 알아보고, 그것이 우리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줄 수 있다면, 저승에서도 우리가 여전히 그런 기쁨에 집착한다면 우리는 지상적이고 유한한 즐거움 속에 있는 것이다. 저 지고하고 거룩한 약속들을 어떻게든 상상해 볼 수는 있더라도, 그 위대성에 합당하게 생각할 수는 없다.

그것을 정하는 것은 재판관이고, 재판관은 자기가 명하는 고통만을 형벌로 친다. 벌받을 자가 제 마음대로 집행하는 형을 재판관이 벌에 속한다고 여길 리 없다. 신의 보복은 그의 정의와 우리의 고통, 그 모두에 우리가 동의하지 않아야만 성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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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O에 관한 보고는 외계 우주선이 존재할 수 없다는 생각에 기초해서 평가해야 한다. 이는 편협하게 닫힌 마음이 아니라 시간, 항성 간 거리 그리고 가용한 에너지가 항성 간 우주여행에 부과하는 제한조건의 현실성을 직시하는 것이다.

물리학은 속도, 가속도, 힘, 질량, 시간과 같이 기본적으로 관측 가능한 양들에서 유도된다. 이들은 일work의 정의로 결합되고 거기에서 운동에너지 및 위치에너지라는 용어가 나온다. 물리학자는 총에너지 방정식을 세움으로써 물리계를 기술한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에서 나온 빛이 결코 우리에게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 천문학자들은 이것을 ‘과거의 지평선past horizon’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장 멀리 떨어진 물체의 한계선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서 나온 빛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한계선도 존재한다. 이것을 ‘미래의 지평선future horizon’이라고 한다. 과거의 지평선과 미래의 지평선 사이에 갇혀 있는 우리는 우리가 관찰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우주의 한 부분만을 차지하고 있으며, 우주에는 우리가 결코 알아낼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

아주 먼 곳에서 우리 지구 대기의 스펙트럼을 측정해보면 아마도 화학적 비평형 상태에 놓여 있는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지구 대기에는 산소와 오존이 메탄과 함께 존재하며, 수증기가 이 혼합물에 윤활 작용을 해준다. 죽은 행성에서는 분자 상태의 산소와 완전히 환원된 탄소(메탄처럼)가 공존할 가능성이 낮다. 이것은 생명의 존재를 말해주는 생명지표다. 생명은 자신의 가장 근본적인 과정인 호흡과 생장을 위한 재료를 확보하기 위해 이런 성분들을 대기 중에 고농도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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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정으로 가는 길 - 구국위원회와 헌정의 유보 Liberte :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9
주명철 지음 / 여문책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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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 되어서 프랑스가 더욱 불안해진 이유는 벨기에 지방의 전황이 나빠졌다는 소식 때문만은 아니었다. 영국에 이어 에스파냐에도 선전포고를 한 뒤, 덴마크와 스위스를 제외하고 유럽 전체를 상대로 전쟁을 수행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2월 24일 '30만 징집법'을 통과시켜 전방으로 병력을 보내는 가운데 만만치 않은 반발을 부딪쳤다. "하나이며 나눌 수 없는 공화국"을 굳건히 세워야 하는 시기에 국내외에서 분열을 조장하는 적들과 싸워야 했다. _ 주명철, <공포정으로 가는 길> , p113/414

사실상 파리에 밀가루가 부족하지 않으며, 국민공회가 수도의 생필품을 확보하려고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음을 누구나 안다. 국민공회는 이 문제에만 800만~900만 리브르를 쏟아부었다. 이 돈을 원래 목적대로 썼다면 생필품이 부족할 리 없다. 그런데도 파리의 모든 구역에서 새벽 3시부터 시민들이 빵집 문으로 몰려드는가? 대부분의 시민이 동요하지 않고 질서를 지키려고 노력하는데도 악의에 찬 사람들이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소요사태를 조장하기 때문에 품귀현상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_ 주명철, <공포정으로 가는 길> , p240/414

주명철 교수의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중 제9권 <공포정으로 가는 길 - 구국위원회와 헌정의 유보 Liberte>는 만만치 않은 과제로 험난한 출발을 하는 국민공회의 모습이 그려진다. 국외적으로는 루이 카페의 처형 뒤 제1차 대프랑스 동맹(First Coalition - Seventh Coalition)이 결성되면서 전쟁 상태로 치닫게 되고, 국내적으로 왕정이 무너지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된 식량난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아 민중의 불만이 임계점을 향해 치달으면서 신생 공화국 프랑스는 험난한 출발을 해야 했다.

국민공회는 첫 회의를 시작한 뒤부터 루이 16세를 처형하는 날까지 왕정을 청산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과제인 것처럼 매진했다. 1793년 1월 말부터 국민공회는 국내외의 긴급현안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공화국을 설립하는 일이 시급했다. 정부를 조직하고 행정관리와 군대도 정비하며, 국가안보가 걸린 전쟁을 치르는 동안 생필품과 개인의 안전을 책임져야 했다. _ 주명철, <공포정으로 가는 길> , p25/414

보급 물자, 무기, 병력 등 모든 여건이 부족한 상황에서 훈련과 무장이 잘된 다수의 적들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국민공회는 시민들의 애국심에 호소하면서 자발적인 참전을 독려하는 한편, 투기세력이 상품과 화폐를 독점하면서 생겨난 경제위기에 대해서는 가격통제정책을 통해 대처하는 노력을 기울였으나 역부족이었다. 점차 가중되는 문제의 심각성으로 공화정의 위기는 심각해져갔다.

도르도뉴의 라마르크 Francois Lamarque가 다른 의원 두 명과 함께 아르덴의 중부군을 시찰한 결과를 보고했다. 1만 5,000명이 9만 명 이상의 적을 막아야 하는데, 탄약은 말할 것도 없고 거의 헐벗은 상태로 궤멸 직전이었다. 그래서 파견의원들은 그 사실을 국민공회에 즉시 알렸지만, 국방위원회는 그런 중대한 사실을 경솔하게 공표했다고 파견의원들을 질책했다. 파견의원들은 국민 2.700만 명 가운데 시민 300만 명을 무장상태에 둔 현실에서 위험을 숨겨서는 안 된다고 국방위원회에 회답했고, 그 뒤에 파견의원들이 바라던 대로 10만 명이 적을 무찌르겠다고 전방으로 달려갔다. _ 주명철, <공포정으로 가는 길> , p77/414

모든 생필품의 품귀현상은 아시냐의 가치가 형편없이 떨어졌기 때문에 나타났다. 투기와 매점매석이 횡행했다. 국민공회/파리 코뮌/정치클럽에서 '악당 malveillants'이라 부르기 시작한 국내의 반혁명분자들, 그중에서 투기꾼들이 온갖 나쁜 소식을 이용해서 혁명의 성과를 부인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정화 正貨를 빼돌리고, 혁명의 산물인 지폐의 가치를 하락시켰다. 정부의 신용을 떨어뜨릴수록 이익을 얻는 세력은 언제나 존재한다. 혁명기에도 그들은 증권거래소와 시장을 오가면서 사재기를 한 뒤 막대한 시세차익을 보고 되팔았다. 늘 '개미들'만 피해자가 되게 마련이었다. _ 주명철, <공포정으로 가는 길> , p357/414

이러한 프랑스의 위기는 국외 전제군주정과 국내 왕당파의 범(凡)반혁명세력 때문이었을까? 그렇게만 보기는 어렵다. <공포정으로 가는 길>에서는 이러한 위기상황에서도 정국의 주도권을 잡기위한 지롱드파와 몽타뉴파의 치열한 주도권 다툼이 그려진다. 공화국이 직면했던 어려운 상황은 외부로부터의 위협과 이전 시대의 부채로 인한 것이었지만, 위기에 대한 대처보다는 치열한 주도권 다툼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국민공회 의원들 역시 위기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단결이냐, 분열이냐? 국민공회의 지롱드파와 몽타뉴파는 모두 통일성/일체성/동질성을 뜻하는 '위니테 unite'라는 말을 썼다. 여러 요소가 하나로 뭉치는 것을 전제로 한 말이다. 국민공회 밖에서도 지롱드파와 자코뱅파는 모두 이 말을 쓰면서 상대방이 분열을 부추긴다고 공격했다. 그러므로 통일성이라는 말에 상반된 뜻이 생겼다. 말에는 고유한 의미가 있지만, 맥락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얻기 때문이다. _ 주명철, <공포정으로 가는 길> , p261/414

자코뱅협회에서는 지도자들이 날마다 지롱드파를 규탄하면서 혁명을 이끌어갈 집단을 급진적으로 정화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혁명이 폐지한 특권계급 출신에게는 민간이건 군인이건 공직을 맡기지 말자는 제안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이론상 절대적 평등에 한걸음 더 다가섰다(p82)... 2월과 3월 초의 위기를 겪으면서 국민공회는 기존의 모든 법원이 너그럽기 때문에 위험에 처한 공화국을 구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특별형사법원'을 빨리 조직해서 혁명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노력했고, 결국 혁명의 산물인 배심원단을 두는 법을 통과시켰다. _ 주명철, <공포정으로 가는 길> , p97/414

결국 1793년 7월 마라(Jean-Paul Marat, 1743~1793)의 사망과 8월 로베스피에르(Maximilien Francois Marie Isidore de Robespierre, 1758~ 1794)가 국민공회 의장직에 오른 후에야 정쟁(政爭)은 마무리되었고, 그동안 쌓인 자신들에 대한 민중들의 분노를 돌리기 위한 수단으로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d'Autriche, 1755 ~ 1793)를 처형하면서 공포정으로 선회하게 된다.

당초 주명철 교수는 우리나라의 2016년 촛불혁명을 염두에 두고 프랑스 혁명사를 집필했음을 밝히고 있다. 혁명을 통해 겪는 여러 어려움과 시행착오를 역사속의 프랑스 대혁명 과정에서 발견하고 이를 교훈삼아 실패한 프랑스 혁명 대신 성공하는 촛불 혁명이 되길 기원하는 저자의 절절한 마음이 10부작 전반에 묻어나온다.

저자는 9권의 머리말에서 성공하는 촛불혁명의 결과가 이어지는 마음으로 우리가 걸어야 할 새로운 길을 말하지만, 이 책을 읽는 2022년 시점에서 독자들은 이어지는 혁명의 어려움을 지켜보게 된다. 이전 정부를 부정하고, 외교 정책은 방향을 못잡고, 가속화되는 경제위기 속에서도 시행하는 정책은 반대파를 제거하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우리의 심정은 18세기 말 프랑스 민중들의 심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 혁명사 9권 <공포정으로 가는 길>의 마지막은 오늘날의 공안정국(公安政局)과 같은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를 느낀 급진 상퀼로트 계층에 의한 공포정 요구로 마무리된다. 이로부터 몽타뉴파는 반대편인 지롱드파를 제거와 함께 마리 앙트와네트까지 처형하면서 혁명은 '혁명체제'를 지키기 위해 보수적인 '반혁명'정책을 펼쳐나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혁명세력이 개혁을 하지 않고 스스로 보수화되었을 때 어떤 결과가 빚어지는가를 깊이 체감하는 현실에서 마지막 10권 <반동의 시대>로 향해가면서 기시감(旣視感)이 드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혁명기에 서민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말이 삶의 질을 높여주리라고 기대하면서 전보다 더 많은 희생을 강요하는 현실을 견뎠다. 그러나 정치적 평등을 실현함에 따라 상대적인 박탈감을 더욱 절실히 느꼈다. 급기야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리라 믿었던 국미공회와 시 정부에 불만을 표출했다. 그들은 자기 힘으로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들고일어났다. 그것이 처음이 아니었듯이 마지막도 아니었다. 그들도 경험으로 배우고 행동방침을 세울 줄 알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은 더욱 효과적인 방식으로 권력이건 재물이건 가진 자들을 압박하고 자기 의지를 관철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_ 주명철, <공포정으로 가는 길> , p69/414

수감자 수가 늘어나면서 국민공회가 하는 일이 신속하게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시민들이 한마음으로 도왔다. 그렇지 않으면 반혁명혐의자가 될 뿐이었으니 달리 외면할 길도 없었다. 예전에는 공무원을 자주 바꾸면 혼란이 발생하고 행정이 마비될 지경이었지만, 이제는 사람만 바뀔 뿐 모든 일이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었다. 공포의 힘이다. 혁명/반혁명 모두 자신의 자유와 목숨을 걸고 싸웠다. _ 주명철, <공포정으로 가는 길> , p40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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