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는 기본적으로 시행착오의 과정이다. 사람의 뇌는 약 5억 년에 걸친 진화의 산물이며, 이는 운영체제operating system가 50만 번 정도 개정된 것과 맞먹는다. 그리고 진화는 ‘변화를 동반한 대물림descent with modification’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지능은 지적(!) 설계의 결과물이 아니라 5억 년에 걸친 시행착오의 결과다. 그 결과물인 우리의 뇌에는 약 100조 개의 기능 단위가 들어 있다

우리가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신체에 ‘체화’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사회적·물리적 실재에 ‘속해 있기embedded’ 때문이다. 예를 들면 당신은 왼쪽 팔꿈치를 왼손으로 만질 수 있는지, 또는 인사를 나누거나 동의를 표현하려고 악수할 때 손을 얼마나 세게 쥐어야 하는지 같은 것을 언어로 옮겨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와 같은 ‘암묵적implicit or tacit’ 지식의 폭은 한이 없으며, 필요할 때마다 발견하거나 알아내는 지식이기 때문에 코드화할 수 없다.

문제는 모든 사람이 자기는 증거를 근거로 믿음을 형성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가짜 뉴스의 심각성도 그 때문이다. 페이스북에서든 트위터에서든 구글 검색 결과에서든,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거나 이미 믿고 있는 것에 부합하는 이야기들을 접하고 공유하고 나면 그것들을 믿음의 증거로 들이밀기 시작한다. 가짜 뉴스는 그저 빌미일 뿐, 믿음이 믿음의 증거로 쓰이게 되는 셈이다.

과학적 발견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하나는 기존의 패러다임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는 발견이고, 다른 하나는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을 적용해야 하는 발견이다.

앞에 설명한 메커니즘들, 즉 (1) 학생들을 무관심하게 만드는 환경 (2) 비판적 사고가 소속감과 연계되는 환경 (3) 권위자가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믿음을 비판적으로 사고하도록 유도하는 환경이 사라지면 학생들의 믿음은 곧 원래의 상태로 돌아올 것이다. 그러므로 비판적 사고 향상을 위한 강의를 수강한 학생들의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믿음이 약화된 것은 장기적이 아닌 단기적인 현상일 것이다.

드레이크 방정식은 결국 우리은하 내에서 탐지 가능한 지적 문명의 수(N)를 구하는 것이다. 별의 생성률(R*)과 별이 행성을 가질 확률(fp)과 생명이 살 수 있는 환경을 갖춘 행성의 수(ne)와 생명체가 실제로 행성에서 출현할 확률(fl)과 탄생한 생명체가 지적인 존재로 진화할 확률(fi)과 지적생명체가 성간교신이 가능한 문명으로 발전할 확률(fc)과 그 문명이 지속되는 시간의 길이(L)를 곱하면 드레이크 방정식의 결과 값 N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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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으로 가는 자는 절대로 화려한 복장을 하면 안 되었고, 이승에서 맺은 귀한 인연에 연연해서도 안 되었으며, 이쪽을 버리고 저쪽으로 가는 순간만큼은 지극히 겸손해야 했다.

어렵사리 획득한 하늘과 땅의 기득권을 다 버리고 선택한 모험이었다. 어느 누구도 다시 목숨 붙여 돌아오지 못하는 사지를 향한 지나친 욕망이었다. 인안나는 이미 죽어 있었다. 그녀는 하늘과 땅에서는 아무도 못 말리는 사랑과 풍요의 여신이자 전쟁의 여신으로 맹위를 떨쳤지만, 저승에 내려가자마자 송장이 되었다. 마지막 들숨과 날숨도 떨어졌다. 죽은 것이다.

죽은 자가 사흘 만에 부활했다. 산 채로 저승 원정길에 오른 일도 최초의 사건이고, 그곳에서 죽었다가 부활한 것도 최초의 사건이었다. 아니, 최초의 기적이었다.

우루크 왕 길가메쉬는 대홍수로 영생을 얻은 지우쑤드라를 만나 대홍수 이전에 신들이 벌인 비밀을 알게 되었다. 어떤 인간도 알지 못하고 알아내지 못한 천기였다. 우루크의 왕권과 왕좌를 버리고, 스스로 거지 신세가 되어 광야에서 방황하고, 죽음의 강을 건너 얻은 귀중한 정보였다. 길가메쉬의 삶은 기록으로 남겨졌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최초의 영웅이고, 최고의 영웅이었다. 하지만 그는 필멸의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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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권능을 걸고 말하노라. 내 신성한 성전을 걸고 말하노라. 네가 가지고 간 ‘메’는 네 도시의 거룩한 성소에 남아 있을 것이다. 사제장이 그 거룩한 성소에서 찬송하며 일생을 보내도록 하겠다. 네 도시 사람들은 번영을 누릴 것이다. 우루크 아이들은 기쁨이 넘치리라. 우루크 사람들은 에리두 사람들과 동지로다. 우루크는 위대한 곳으로 부활하리라!"

그러나 인안나는 자신이 저승에 내려가자마자 이내 곤경에 처할 것이며, 그 곤경은 죽음일 것이며, 그것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올 것이며, 그렇게 되면 자신이 처한 상황을 어떤 식으로든 ‘웃어른들’에게 알려야 할 것이며, 그 역할을 할 존재는 오직 닌슈부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저승이었다.
죽은 자들의 땅이었다.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의 땅이었다.
한번 강을 건너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형벌의 땅이었다.
저승의 음산한 기운이 서서히 인안나에게 닥치고 있었다.

인안나가 저승으로 내려온 이유로 구갈안나의 장례식 참석을 댄 것은 그럴듯했다. 그렇지만 정작 그의 죽음을 몰고 온 장본인이 누구였던가. 길가메쉬와 엔키두가 그를 죽였지만, 에레쉬키갈의 남편을 죽게 만든 근본적인 이유는 인안나의 기질 때문이었다. 멋진 남성을 보면 참지 못하는 사랑의 병 때문이었다. 저승으로 내려온 변명은 그럴싸했지만, 여신의 앞날은 여전히 어두운 장막에 가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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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안나는 신성한 권능을 갖고 있었고, 삼라만상의 총체적인 질서를 잡고 있었으며, 지혜의 정수를 누리고 있었다. 인간의 창조주이자 구세주인 엔키에게서 넘겨받은 권위와 권능이었고, ‘신물(神物)’이었다. 그랬음에도 여신은 하늘과 땅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저승으로 내려갔다. 더 큰 운명결정권을 손에 쥐기 위해 현실의 권세와 욕망을 버리고 저승으로 내려갔다. 여신은 저승에서 죽었고,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했다. 그리고 가장 위대한 신이 되었다.

태양신 미트라를 섬기고 있던 로마 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유대인 예수를 새로운 태양신으로 옹립하여 그리스도교의 실질적인 창시자가 되었다. 곧이어 로마교회는 수메르의 신년 축제와 제의로부터 시작된 고대 태양신들의 탄생을 축하하는 제전을 그리스도교의 크리스마스와 부활절로 바꾸어놓았다.

세상천지의 기운을 몽땅 손아귀에 넣고도 성이 차지 않았다. 그것이 인안나였다. 권세와 부귀를 모조리 누려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것이 인안나의 심보였다. 사랑을 차지하고 야망을 이루기 위해 남신과 남성 들을 한껏 농락했어도 멈추지 않았다. 그것이 인안나의 삶이었다. 수메르의 운명을 제 마음대로 좌지우지했다. 그래도 속이 근질거렸고, 그래도 오금이 쑤셨으며, 그래도 안달이 났다. 그것이 인안나의 기질이었다.

‘메’의 본질은 신성한 권능이고, 삼라만상의 총체적인 질서이며, 지혜의 정수였다. ‘메’를 통해서 문명이 일어났고, 문화가 형성되었으며, 미개와 무질서가 사라졌다. 도시가 생겼고, 신전과 가옥이 높고 튼튼하게 올라갔으며, 길이 넓혀졌고, 재물이 쌓였고, 직업이 늘어났고, 강의 물줄기가 잡혔으며, 단단한 그릇을 빚어냈고, 멋진 옷을 지어 입었고, 좋은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메’로부터 얻은 혜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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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UM(숙명)에 관한 논쟁도 우리의 여러 다른 논쟁거리 가운데 섞여 든다. 그리고 미래의 일들과 우리의 의지까지 결정적이고 불가피한 필연성에 결부시키려고 우리는 여전히 해묵은 논리에 의지한다.

신중하고 분별 있게 벌을 내려야 벌을 받는 사람이 더 잘 수용하고 더 좋은 결과를 낳는다. 반면 벌주는 사람이 노여움과 분노에 사로잡혀 있으면 벌받는 자는 정당하게 처벌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행동과 말이 함께 간다면 그것은 분명 아름다운 조화이고, 말이란 행동이 따를 때 가장 권위 있고 효과적이라는 것을 나는 부인하고 싶지 않다

분노란 저 혼자 장구 치고 북 치며 부풀어 오르는 정념이다. 그릇된 이유로 흥분한 나머지, 누가 우리에게 정당하게 반박하거나 변명을 제시해도, 진실 자체에 대해, 그리고 엉뚱한 것에 대해 분통을 터뜨린 일이 얼마나 많은가?

정념은 밖으로 표출됨으로써 약화된다. 감정의 화살촉이 안을 향해 꺾이게 하기보다 밖으로 작용하게 하는 편이 낫다. "밖으로 드러나는 결함은 가장 가벼운 것들이다. 그것들이 건전한 척하는 외양 뒤에 숨어 있을 때 제일 위험하다."(세네카)

모든 여성과의 관계를 딱 끓고 사는 것이 아내와 함께 모든 면에서 올바르게 처신하는 것보다 아마 더 쉬울 것이다. 꼭 알맞게 절제하며 풍요 속에 사는 것보다 가난하게 살 때 더 근심 없는 나날을 보낼 수도 있다. 합리적으로 쓰는 일이 아주 없이 지내는 것보다 더 고달프다. 절제는 고통을 겪는 것보다 더 힘이 드는 덕목이다.

많은 탁월한 인물들이 그랬듯이, 남을 위해 삶으로 돌아오는 것, 그것은 마음이 위대하다는 증거요. 늙은 생명(그것의 가장 큰 이점은 얼마나 더 살 것인가에 대한 조바심이 없고, 목숨을 보다 하찮게 여겨 더욱 과감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오.)을 보존한다는 것은, 그 봉사가 지극히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달갑고 기쁘고 유익하다고 생각된다면 특별한 선행이 되는 것이오.

우리를 이렇게 눈멀게 만드는 것은 죽음과 고통에 대한 공포, 아픈 것을 참지 못하는 조급함, 낫고 싶은 광적이고 과도한 욕망, 바로 그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그렇게 물러터져서 조종당하기 쉬운 것은 순전히 비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전히 대다수는 의학을 믿는다기보다 그저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의학에 대해 불평하며 우리처럼 말하는 소리가 들리니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어쩔 수 있나?" 하면서 결정을 내린다. 여하간 안달이라도 하는 것이 참는 것보다 좀 나은 치료법이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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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2-09-07 16: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꾸준히 열독하시는군요. 저도 에세1을 오늘 몇 장 읽었어요. 아침마다 읽고 하루를 시작해야겠단 생각을 했어요.
사례가 풍부하여 읽는 재미를 더하는 것 같아요. 인용한 문장도 명언처럼 빛나 보이더군요. 인용의 대가라 할 만해요.
읽다 보면 인간의 민낯을 보게 되어 인간에 대한 공부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인간에 대한 통찰력이 대단해요.^^

겨울호랑이 2022-09-07 18:27   좋아요 0 | URL
페크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에세>는 마치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걷는 느낌을 주는 책이라 빠르게 읽기보다 행간 사이에 머물며 잠시 머무는 재미를 느끼게 됩니다. 분량은 적지 않지만, 완독하는 재미보다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