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으로 가는 자는 절대로 화려한 복장을 하면 안 되었고, 이승에서 맺은 귀한 인연에 연연해서도 안 되었으며, 이쪽을 버리고 저쪽으로 가는 순간만큼은 지극히 겸손해야 했다.

어렵사리 획득한 하늘과 땅의 기득권을 다 버리고 선택한 모험이었다. 어느 누구도 다시 목숨 붙여 돌아오지 못하는 사지를 향한 지나친 욕망이었다. 인안나는 이미 죽어 있었다. 그녀는 하늘과 땅에서는 아무도 못 말리는 사랑과 풍요의 여신이자 전쟁의 여신으로 맹위를 떨쳤지만, 저승에 내려가자마자 송장이 되었다. 마지막 들숨과 날숨도 떨어졌다. 죽은 것이다.

죽은 자가 사흘 만에 부활했다. 산 채로 저승 원정길에 오른 일도 최초의 사건이고, 그곳에서 죽었다가 부활한 것도 최초의 사건이었다. 아니, 최초의 기적이었다.

우루크 왕 길가메쉬는 대홍수로 영생을 얻은 지우쑤드라를 만나 대홍수 이전에 신들이 벌인 비밀을 알게 되었다. 어떤 인간도 알지 못하고 알아내지 못한 천기였다. 우루크의 왕권과 왕좌를 버리고, 스스로 거지 신세가 되어 광야에서 방황하고, 죽음의 강을 건너 얻은 귀중한 정보였다. 길가메쉬의 삶은 기록으로 남겨졌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최초의 영웅이고, 최고의 영웅이었다. 하지만 그는 필멸의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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