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년 4 - 공간과 사회 3.1운동 100주년 총서 4
한국역사연구회 3.1운동 100주년 기획위원회 지음 / 휴머니스트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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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년 4 : 공간과 사회>에서 1910년대를 전후한 시기에 이루어진 배경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바로 제1차 세계대전과 1918년 전 세계에 유행한 '스페인 독감'이다. 제1차 세계대전의 전승국으로서 일본은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었으며, 이러한 전쟁특수는 식민지 조선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의 인식과는 다르게 경제호황인 상황에서 이미 10년 전에 멸망한 나라의 독립을 외칠 수 있었을까? 또한, 세계적인 질병의 유행으로 많은 인명피해를 낸 직후 상황에서 거대한 시위 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날 수 있었을까?

우리에게 인식된 1910년대 전후 한국사회는 농토개혁으로 빼앗긴 농민 또는 지식인/학생들의 활동이 거의 전부지만, <3.1운동 100년 4 : 공간과 사회>에서는 전쟁특수로 급성장한 상업자본과 도시의 노동자 역할에도 주목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는 식민지 근대화론의 허구성에 대해서도 함께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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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인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 1923 ~ 2006)의 개념사 사전 11번째 주제는 위기(krisis)다. 한자로 위기(危機)가 위험(危險)과 기회(機會)가 합쳐진 의미라면, krisis 역시 이 안에 위험과 기회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다만, 이것은  krisis의 세 가지 해석 중 하나인 신학적 해석에 따른 것이다. 신학적 해석에 따르면 '위기'는 최후의 심판이라는 '위험'을 통해서 얻어진 '영원한 생명'을 향한 길이 된다.


 다가오는 위기 Krisis가 우주적인 사건으로 남아있지만, 그것은 영원한 삶으로의 해방을 보장하는 은혜의 확신 속에서 선취된다. 신의 심판이 예수의 고지 告知를 통해 이미 저기에 있지만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긴장 속에서 기대 지평이, 즉 다가올 역사적인 순간을 신학적으로 특징짓는 기대지평이 그려진다. _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1 : 위기>, p18


 이러한 신학적 해석 외에도 위기 krisis를 상황에 따라 내려지는 올바름과 통치질서를 조율하는 개념으로 바라보는 법률적 해석, 환자의 완치에 따라 위기 krisis의 성격을 규정하는 의학적 해석등이 역사 안에서 교차하고 있음을 본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병의 진행에서 규칙성을 진단하려면, 발병일을 정확하게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후 위기 Krise가 완치로 귀결되었는지 아닌지에 따라, 사람들은 완전한 위기와 재발을 배제할 수 없는 불완전한 위기를 구분했다. _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1 : 위기>, p19 


 이처럼 '위기'를 둘러싼 다양한 해석들 중 시선이 머무르는 곳은 단연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1729 ~ 1797)과 토머스 페인(Thomas Paine, 1737 ~ 1809)의 프랑스 혁명에 대한 논쟁이다. 각각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 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과 <상식, 인권 Common Sense, Rights of Man>을 통해 혁명에 대한 논쟁의 전형을 코젤렉은 '위기 crisis'에서 찾는다.


 '위기' 개념의 사용에 있어서, 진단과 예측적 기능은 페인과 버크에 있어서 동일하다. 그러나 진단 내용과 기대와 관련해서 그 둘은 극단적으로 다르다. 버크는 의학적 기원에 구속되어 있는 상태로, 페인은 신학적 기원에 구속되어 있는 상태로, 세계사적인 대안들을 해석 내지 제시할 수 있는 '위기'의 새로운 의미론적 특성을 사용한다. 이렇게 해서, 그 개념은 공통적으로 사용이 가능한, 그러나 서로 대립적으로 적용된 투쟁 개념 Kampfbegriff이 된다._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1 : 위기>, p46


 최후의 심판 이후 얻어질 구원에 대한 희망이 '신학적 해석'이라고 했을 때, 혁명(革命) 이후 앙시앙 레짐(Ancien Regime)의 붕괴와 새질서의 도래를 전망한 것이 페인의 예측이라면, 혁명 이후 정립되는 새로운 질서가 안정궤도에 들어선 후 혁명을 평가하는 '의학적 해석'은 버크의 것이 될 것이다. 자연스럽게 페인은 진보적 입장에, 버크는 보수적 위치에 놓이게 된다. 이처럼 코젤렉은 '위기'라는 단어를 통해 이들의 사상 차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토마스 페인 Thomas Paine은 '위기 The Crisis'라는 표현을 자신의 잡지의 제목으로 선택했다. 그는 이 잡지에서 1776년부터 1783년에 일어난 사건들에 도덕을 강제하는 도덕을, 즉 덕과 부덕, 자연법에 기초한 민주주의와 부패한 전제정치 사이에 필요한 도전이라는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하면서 평했다. "이것들은 인간의 영혼을 시험하는 추세들이다."... 식민지의 붕괴는 그에게 있어서 단순히 정치/군사적인 결과가 아니었다. 그것은 세계사적인 심판이 실현된 것이었다. 독재의 몰락, 생지옥에 대한 승리... 위기는 더 이상 혁명의 전조가 아니다. 페인에 있어서 그것은 미국혁명을 통해 실현됐으며, 미국혁명은 그것을 통해 자신의 전무후무한 특징을 획득한다. _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1 : 위기>, p43


 버크 역시 같은 표현을 사용했지만, 페인이 주문 呪文한 동일한 현상들을 분석적으로 기술하는 데 사용했다... 간단히 말해서 버크는 종교의례처럼 물려받은 모든 사회 조건들과 정치 규칙들을 파괴하는 유럽 내전에 대한 그림을 그렸다._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1 : 위기>, p45


 코젤렉의 개념사에서 '위기'라는 단어는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비로소 자리잡혔음을 말한다. 그래서일까. 12권은 <혁명 Revolution>이다. 코젤렉의 개념사를 읽다보면, 개념어가 의미를 확장하면서 최초의 의미 뿐 아니라 이와 반대되는 의미마저도 흡수하며 의미를 확장시켜 나가는 경우를 적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때로는 상충되는 의미가 한 단어 안에 담여 있는 모순된 상황. 마치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가 언어 안에 녹아든 것과 같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근대사의 극심한 혼란을 간접적으로 나마 실감하게 된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12권에서 논의되는 '혁명'은 '반혁명'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기대하는 마음을 갖고서, 11권을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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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3-10 0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위기는 선택 (받는)을 통해 기회이군요
상평형에서 상전이의 그 때로도 볼 수 있고요

겨울호랑이 2021-03-10 00:25   좋아요 1 | URL
이번에 개념어 사전을 통해 crisis를 위기로 번역한 것에 몇 번을 감탄했습니다. 정말 의미를 잘 살린 것 같아요.^^:)

초딩 2021-03-10 0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또한, 신 중심에서 인본으로 가면서 그 선택당함이 선택함으로 태가 바뀌어 해석해서 이용하는 것 같습니다

겨울호랑이 2021-03-10 00:26   좋아요 1 | URL
^^:) 초딩님 말씀처럼 그런 관점에서 바라볼 수도 있겠네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프랑스 <보편백과전서 Encyclopaedia universalis>의 1973년도 네 번째판의 광범위한 ‘근대성Modernite‘ 항목은 ‘근대적‘ 개념의 세 번째 의미가 언어규범 속으로 진입했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확인해준다.
이 항목은 마지막 현재로 우리의 근대성을 과거와 질적인  단절을 통해  규정하는  작업을  시도하지  않는다. 근대성은 오히려 운동 범주로, "변화에 대한 표준적인 도덕 morale canonique du changement"으로 정의된다. 변화의 필연성은 미래를 향한 과도기로 일시적인 현재에 대한 의식의 결과이다. 이러한 의식은 문명 타입의 토대로 전통에 대한 순응과 정반대로 대치된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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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9 1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09 1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간 삶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정말 중요한 것을 고르라고 한다면, 그것은 각자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류의  태반이 이 중요한 행복의 요소를 매우 불완전하게 향유하고 있거나 아니면 그것에 대한 접근이 아예 봉쇄되고 있다. 그런 것이 없다 보니 많은 여성들의 삶은 실패로 끝날 수 밖에 없다. 성공하는 모든 남성들의 삶 뒤편에는 실패에 신음하는 여성들의 삶이 있다. 사회가 아직 어떻게 할 수 없는 환경 때문에 그와 같은 실패가 불가피하다면, 적어도 사회가 그런 실패를 더 키워서는 안 된다. 부모는 무지하고 젊은이들 자신은 경험이 부족해서 또는 마음에 맞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외부 기회가 없어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해야 할 때, 수많은 남성도 마지못해 그런 일을 하면서, 결국 무능한 존재로서 한 인생을 보낼 수밖에 없다. _ 존 스튜어트 밀, <여성의 종속> 中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 ~ 1873)은 <여성의 종속 The Subjection of Women>에서 여성에 대한 불평등이 여성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도, 남성에게도 좋지 않다는 점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밀은 <여성의 종속>에서 어떤 근거로 위와 같은 주장을 하는가?


 먼저 사회 전체적인 불이익 문제는 <여성의 종속>에서 인류의 절반이 자신이 불행하다는 감정을 갖고 산다는 것이 사회 전체 이익에 맞지 않는다는 공리주의(功利主義, Utilitarianism)관점에서 설명된다. 또한 남성에 대한 불이익의 경우 여성의 불평등은 자신의 덕성(德性)에 해롭기 때문에 좋지 않다는 점을 말한다. 간략하게, 능력이 뛰어난 여성이 능력이 부족한 남성의 지배를 받는 부조리한 상황은 결국 그의 삶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처럼 공리주의에 기반한 밀의 주장의 근거는 대체적으로 추상적인 윤리 위에 놓인다.


 이에 반해,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 ~ 1883)은 <자본론 Das Kapital>을 통해 남여간의 불평등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산업자본재의 발달로 노동의 난이도가 낮아지면서, 남성이 여성으로, 여성이 어린이로 대체되는 과정은 '동일임금 동일노동'이라는 원칙이 깨졌을 때 생겨나는 중산계급의 붕괴를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 만연한 남여 간 임금격차의 불평등 문제가 어떤 결과를 갖게 되는가는 <자본론>에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능력을 가진 저렴한 노동력(여성)이 있다면 왜 굳이 남성을 써야 하는가? 결국 끊임없이 실질임금 하락의 상황에 몰린다는 것이 <자본론>이 주는 교훈일 것이다.


 밀과 마르크스가 사회를 바라보는 접근방식은 서로 달랐지만, 이들은 각기 다른 방법을 통해 불평등 문제의 현실 인식과 개선방향을 조명이라는 큰 틀에서는 대체로 일치된 견해를 보인다. 불평등은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시기적으로 하루 늦었지만, 어제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불평등의 문제가 직접 당사자 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좋지 않은 우리의 문제임을 생각한다. 당장 남성들의 어머니, 아내, 자매, 딸로서 관계를 맺는 이들이 불행하게 느낀다면 가족으로서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월평균 가구 소득이 줄어든다는 현실적인 문제까지 들지 않더라도 불평등은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여성 뿐 아니라, 연령, 인종, 종교, 성 정체성 등 여러 문제로 차별받는 이들이 사회에 없도록 우리 모두가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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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9 1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09 1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21-03-09 19: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첫문장에서 밀이 말한 ‘행복=자신이 하고 싶은 일의 추구’는 ‘공리주의=자유주의(자본주의)’의 전형처럼 보입니다.
그만큼 결론이 마르크스와 같을지라도 본질은 크게 다를 수 있다고 생각듭니다. ^^

겨울호랑이 2021-03-09 19:36   좋아요 1 | URL
동감입니다. 밀의 주장을 들여다보면 생존에 대한 처절함보다는 더 나은 삶을 추구한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에 반해 마르크스 기록은 처절함으로 가득차 있다는 점에서 다소 이론적이고 당위적인 느낌을 받게 됩니다. 지향해야할 평등과 불평등이 가져온 비극이 밀과 마르크스의 차이 중 하나는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바람돌이 2021-03-09 19: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밀의 얘기는 너무 추상적이어서 공감을 받기는 좀 어려워보여요. 그럼에도 머나먼 19세기에 평등에 대한 논의를 저만큼 제기할수 있었던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마르크스의 생각이 훨씬 더 와닿지만요.

겨울호랑이 2021-03-09 19:39   좋아요 0 | URL
저 역시 밀의 주장을 들으면서 조금은 진부한 논리 전개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보다는 자신이 비참한 마르크스의 기록이 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들의 차이는 이론과 현실의 차이는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존 스튜어트 밀 선집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서병훈 옮김 / 책세상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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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 ~ 1873) 선집에는 <공리주의 Utliltarianism>, <종교론 Three Essays on Religion>, <자유론 On Liberty>, <대의정부론 Considerations on Representative Government>, <사회주의론 Chapters on Socialism>, <여성의 종속 The Subjection of Women>등이 실려 있는데, 이들을 연결시켜주는 핵심은 ‘공리주의‘다. 공리주의를 중심에 놓고, 공리주의가 지향하는 사상의 정점을 <종교론>에서, 공리주의 실현의 전제가 되는 사회 계약을 <자유론>에서, 이를 실현하는 정체 체제는 <대의정부론>에서 말한다. <여성의 종속>에서는 사회의 절반을 차지하는 사람들(여성)이 행복한 상태에 놓여 있지 않다는 것이 여성 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님을 말한다는 점에서 공리주의 사상의 연장선에 놓인다.

고통으로부터의 자유와 쾌락이야말로 목적으로서 바람직한 유일한 것이며, 바람직한 모든 것은 그 자체에 들어 있는 쾌락 때문에, 또는 고통을 막아주고 쾌락을 늘려주는 수단이 되기 때문에 바람직하다는 것이 공리주의의 핵심 명제다.... 결론적으로 공리주의 철학은 일반 행복을 해치지 않고 그것을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한도 안에서 사람들이 습득하는 다른 욕구들을 용인하고 받아들이는 한편, 일반 행복을 달성하는 데 그 무엇보다 중요한 덕을 최대한 사랑하며 쌓을 것을 명령하고 요구한다._ 존 스튜어트 밀, <공리주의> 中

밀은 경제적으로는 시장주의자이면서,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자다. 그가 민주주의 특히 대의민주정치를 강조하는 것은 ‘교육‘에 의한 ‘이성 질서의 확산과 문명의 진보‘가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반이 되는 사상이 ‘공리주의‘인 것은 물론이다. 이런 점에서 바라봤을 때, 밀이 전통적인 사회주의에 비판적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단순한 비판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주의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힌다. 즉, 사회주의에서 제시한 당시 사회의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그 해결은 시장에서의 자율적인 해결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수정 자본주의‘의 원형을 보여준다. 이런 전체 구도를 가지고 선집 안에 실린 각론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리뷰, 페이퍼를 통해 상세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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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7 1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07 1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21-03-07 17: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존 스튜어트 밀은 알듯 하면서도 좀 이상한 사람인듯 합니다.
하긴 대부분 모든 사람이 그렇기에 그런 면에서 전형적인 평범한 사람인 듯도 합니다. ^^

겨울호랑이 2021-03-07 17:27   좋아요 1 | URL
나름 조기교육이 낳은 세계적인 천재라 자타공인 하는 인물인데 북다이제스터님 평가가 다소 박하십니다 ㅋ 그래도 같은 영국사람이라 그런지 흄에게 상당히 우호적이고, 칸트에 대해 비판적인 면이 있는 것을 보면(「공리주의」, 「종교론」) 북다이제스터님께서 완전히 이해못할 사람은 아닐 것 같아요^^:)

북다이제스터 2021-03-07 17:56   좋아요 1 | URL
절 넘 단순하게 보셨습니다. ㅋㅋ
밀이 이상한 건 아상한 것이고 흄이 탁월한 건 탁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 어떤 측면은 몹시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

겨울호랑이 2021-03-07 18:16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 말씀처럼 흄과 밀은 다른 사람이지요. 다만, 밀이 흄의 관점을 많이 인정했다는 면에서 이들 사이에 공통분모를 발견할 수 있다 생각했을 뿐입니다. 북다이제스터님의 생각처럼 이들의 사상에 차이점도 물론 있을 것이고, 이 지점을 크게 생각할 수도 있다 여겨집니다.

북다이제스터 2021-03-07 18:26   좋아요 1 | URL
후대 사상가가 이전 사상을 일정 부분 계승하겠지만, 밀이 흄 어떤 사상을 정확히 계승했는지 제 공부가 짧습니다.
하여튼 제 느낌으론 밀이 자신 처지 때문에 애매모호한 이론을 펼쳤다면, 흄은 틀리던 맞던 자기 입장을 확고히 명확하게 밝힌 사람인 것 같습니다. ^^

겨울호랑이 2021-03-08 00:01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저도 밀이 흄의 어느 부분을 인정하고 계승했는지, 이들이 어떤 점에서 차이가 났는지 비교해 보면서 더 공부해봐야겠습니다. 북다이제스터님 감사합니다.^^:)

바람돌이 2021-03-07 19: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어지는 리뷰 페이퍼를 기다립니다. 솔직히 제가 이 책을 읽을거같지는 않은데 그래도 겨울호랑이님 글이라도 읽으면 이 무지가 좀 나아질 거 같아서요 ㅎㅎ

겨울호랑이 2021-03-07 22:34   좋아요 0 | URL
에고 아닙니다. 나름대로 밀을 이해하려고 하지만, 제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오해하는 부분은 분명히 있을 것이기에 자칫 잘못된 정보를 드리지 않을까 걱정되네요. 제 글을 읽으시고 관심있으면 직접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저도 오해가 없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noomy 2021-03-08 17: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대됩니다~ 개인적으로 공리주의에 관심이 많은데, 가장 널리 알려진 사상이면서 가장 많은 공격과 오해를 받는 사상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돼서요. 윤리학에서 공리주의 비판은 뭐 공식과도 같은거라서. 어쨌든 화이팅입니다~^^;; (부담갖진 마시길)

겨울호랑이 2021-03-08 14:0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noomy님. 제가 공리주의에 대해 다 정리하기에는 분명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조금이나마 이웃분들께 도움이 되면 좋겠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