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 현상을 각각의 프로그램에서 조직하려고 하는 이유는 팬들은 어디로 오라고 하면 오고, 방송이 끝났다고 해서 방송을 끄지 않거든요. 반드시 이것을 공유하고 사람들에게 알려요. 그게 팬의 기본 자격이죠. 그래서 팬덤 비즈니스는 디지털 경제에서 굉장히 잘 작동하는 편입니다. 각각의 프로그램과 기자들에게 팬덤 현상을 만들어주기 위해 커뮤니티를 지원하고, 브랜드화하기 위해 캐리커처를 그려주는 등의 작업은 굉장히 필요하다고 봐요.

로봇이 잘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일기예보를 로봇 기자가 쓰고 있거든요. 스포츠에서도 단신 있잖아요. 대학 농구, 대학 야구 등 사람들이 여지껏 취재하던 것을 로봇이 쓰는 거예요. 또 수치가 많이 들어가는 증시 동향 같은 것은 로봇이 담당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국내에서는 어뷰징 기사 따위를 로봇이 담당할 수 있겠죠. 인간 기자는 분석과 인터뷰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기사 개수는 줄이고 퀄리티를 높이는 것. 여기에는 기자들의 개인적 열망도 반영된다고 봐요.

사실 언론의 자유라는 것이 성역 없이 누군가에게 질문하고 비판할 자유인 것은 맞지만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자유는 아니잖아요. 우리가 독자나 시청자들로부터의 비판에 어색한 반응을 보였던 것도 사실인 것 같아요. 언론의 자유가 무엇일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를 그 시국을 거치면서 굉장히 선명하게 느꼈어요. 저는 독자들 그리고 뉴스 수용자들이 끊임없이 언론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근에 여러 일이 있었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 감시하고 비판할 때 언론이 각성하고 자기가 해야 할 역할과 본질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됩니다. 이것도 수용자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해답은 간단하다. 특혜는 줄이고 있는 법은 잘 지키면 된다. 종편을 감시하고 규제하는 법과 제도를 엄격하게 적용하면 된다는 얘기다.

지금까지의 언론개혁은 부패한 권력과 싸워 독립성을 쟁취하는 것, 왜곡된 시장과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의 언론개혁에는 중요한 과제 하나가 더해질 것이다. 바로 언론인 스스로 엘리트 의식을 내던지고 시민과 소통하는 과제 말이다. 자성과 소통을 거부하는 언론은 독자와 시청자에 의해 도태되고 결국 사라질 것이다. 언론을 둘러싼 모든 상황이, 세상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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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이 실제로 대선 후보로 뛰겠다고 입장을 표명하기도 전부터, 마치 확정된 것처럼 분위기를 몰아갔고요. 간부들이 장난을 치는 건데, 누군가 제어하기가 굉장히 힘들어요.

방송기사는 보도국장, 편집부장, 편집주간, 취재주간 네명이서 조금만 장난을 치면 다른 사람들이 관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요. 그 사람들이 핵심이고, 큐시트를 짠다고 보면 되죠.

공영방송사라고 하면 영국의 BBC를 모델로 하잖아요. 그런데 BBC만큼의 방송을 했느냐는 질책이 나오죠. 방송 퀄리티의 문제가 아니라, 균형이나 정치권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그 정도의 노력을 했느냐는 의미에서요.

종편의 시사프로그램을 보면 일단 노인을 배려해서 목소리도 크고 자막도 굉장히 커요. 빨간색이나 검정색 굵은 글씨로 자막을 많이 쓰고요. 샷도 얼굴 위주로 크게 잡잖아요. 모든 것이 노인을 배려한 거죠. 세련된 것보다는 선명한 메시지 전달이라는 측면에 집중해서요. 호소력 강하게 만들어서 약간 북한 방송 같은 느낌이 들죠. 구호를 외치는 듯한 진행을 하고요. 지금 당장은 수익이 잘 안 나지만 신문으로 유지하고 있던 여론 장악력을 놓치지 않고 방송으로 가져가 확산시키고자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문제라고 저희가 많이 지적하는 것은 대화의 수준이 심각하게 낮다는 점이에요. 시사토크쇼면 시사 문제를 알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실시간으로 뉴스가 뜨면 그 뉴스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해요.

저희가 보기에는 이 사람들이 방송심의 규정을 모르는 것 아닌가 싶어요. 방송은 신문과 다르거든요. 왜 종편이 이렇게 됐느냐를 봤을 때, 신문을 만들던 사람들이 방송을 만들게 돼 그렇다고 생각해요. 지금 TV조선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방송보다는 신문 출신이고, 신동아·월간조선·조선일보에 글 쓰던 기자가 패널로 많이 나오죠. 그런데 본인들은 신문에서는 그 정도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니까, 방송에서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을 자꾸 넘어가는 거예요

JTBC의 변화에는 회장의 리더십이 작용한 것 같고요, 얄밉게 말하면 중앙미디어는 양쪽에 보험을 들어놨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말하는 조·중·동 프레임에서 중앙일보가 완전히 빠졌다고 볼 수는 없어요. 중앙일보를 통해서 조선일보·동아일보처럼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보수의 색채를 이어가고, JTBC는 저널리즘의 본령을 보여주는 굉장히 진보적인 방송을 만들고 있죠. 이렇게 양쪽을 다 가지고 있어서 정권이 어떻게 되더라도 안정적으로 굴러갈 수 있게 해둔 거죠.

이재명(李在明) 성남시장 같은 경우 사드 문제에 대해 적극적이고, 복지 문제에서도 왼쪽에 가 있는데도 종북 프레임을 씌우지 않았습니다. 문재인의 대항마이기 때문이죠. 만일 이재명 시장이 대선 후보가 되면 또 프레임을 씌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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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도사는 길고도 긴 밤이 끝나가고 있는 것을 느낀다. 어쩌면 그것은 밤이기보다 깊이 모르게 파여 내려간 계곡 이쪽 저쪽에 매어 놓은 동아줄을 타고 가는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계곡 바닥에서는 용의 혓바닥 같은 지열이 솟아오르고 하늘에는 먹장구름이 달려오고, 방금 보았던 광경이 긴 밤 저쪽에서, 긴 동아줄 저쪽에서 마치 서산 마루에 가라앉기 시작하는 불덩어리, 붉은 해같이 떠오른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이 함께 혼합된 것이었으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어우러짐, 그 광경은 혈흔같이 축소되기도 했고 시뻘건 탁류같이 확대되어 소용돌이치기도 한다. 온통 붉은 빛, 미친 빛깔, 진홍의 제전 같은 것, 붉은 광무(狂舞)...... 밤은 가는데 어둠이 내려온다. 서서히 안개비가 내리듯이 어둠이, 정수리에서 발끝을 질러나가는 점막이, 모든 것이 정지된다. _ 박경리, <토지 20> , p562/608(4/29)


 <토지> 독서챌린지 40주차이자 마지막 페이퍼. 이번주 미션 주제는 '토지를 마무리하는 소감'이다. <토지 20>의 마지막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해방처럼 끝난다. '온화, 원망, 이끄시는 대로'의 꽃말을 갖는 해당화를 서희가 휘어잡으며 마무리되는 모습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친일과 독립투쟁의 지원이라는 양면을 모두 갖는 서희 자신이 짊어졌던 삶의 고뇌가 끊어지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까. 많은 인물들의 화해가 사람들간의 만남을 통해서 또는 관음상을 통해서 이루어졌지만, 산에 숨어든 사람들 사이에 빚어진 갈등은 이어질 민족간의 대참상의 암시일지도 모르겠다.


 얼마나 시간이 지나랐을까. 둑길에서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중 한 사람이 앞서가며, "일본이 항복했소!" 하고 외쳤다(p584)... 서희는 해당화 가지를 휘어잡았다. 그리고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정말이냐......" 속삭이듯 물었다. 그 순간 서희는 자신을 휘감은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_ 박경리, <토지 20> , p586/608


 그러나 인생이란 겨울 햇볕과도 같이, 쏟아지는 폭설과도 같이, 쩡! 하고 굉음을 지르며 스스로 몸을 가르는 빙하(氷河)와도 같이, 그리고 동천에 얼어붙은 달과도 같이, 물론 봄의 환희와 여름의 정열도 있지만, 어디 사람의 삶만이 그러했겠는가. 삼라만상, 억조창생 생명 있는 것은 그 모두가 시간[縱]과 자리[橫], 혹은 공간이라는 엄연한 십자가 밑에서 만나고 이별하며 환희와 비애를 밟고 지나가는 것이다. 욕망의 완성은 없다. 그것은 인간의, 생명의 불행인 동시 축복이다. 종말이 없는 염원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_ 박경리, <토지 20> , p342/608


  <토지>를 읽으며 계속 들었던 의문이 있었다. 월선의 죽음과 간도로부터 돌아오는 옛 평사리 사람들의 이야기로 끝나는 토지 2부와 진주로 돌아온 이후 이야기 사이의 간극이 크다는 점이었다. 2부 이전과 3부 이후에서 느껴지는 작품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평사리에서 간도로 이주해서 다시 진주로 돌아오는 2부에서는 공간적인 이동이 주된 흐름이라면, 3부 이후에서는 일제 하에서 시간적 흐름이 강조된다. 또한 2부에서는 공간적 이동 속에 개인 감정과 행동이 미시적으로 보여진다면, 3부 이후에서는 시간의 흐름 속에 개인의 존재는 작아지는대신 새로운 주체로서 민족, 국가의 이데올로기와 일본 문화에 대한 비판 등의 하나의 축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2부와 3부 사이에 갈라진 '틈'을 발견한다. 결코 작지 않은 틈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지>를 하나의 작품으로 묶을 수 있다면 일이관지(一以貫之)하는 그 무엇이 있을까?


 천수를 다하고 간 늙은이 죽음이 뭐 그리 애절할 리도 없고 가족을 제외하고, 영팔노인으로서는 동료들을 다 먼저 보낸 처지인 만큼 인연 맺은 사람도 드문 터에, 더더구나 애통해할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심정은 착잡했다. 누구의 죽음이라서가 아니라 죽음 그 자체를, 땅 속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목숨의 명운을 너 나 할 것 없이 생각하며 말없이, 더러 떠드는 사람이 있어도 그 음성은 공허하게 텅 빈 것만 같은 산속에서 울리다간 사라진다. _ 박경리, <토지 20> , p408/608


 이에 대한 하나의 답(答)을 <토지> 독서챌린지 직전에 이뤄진 작품 해설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해설 후 Q&A 시간에 김연숙 교수는 (여러 답이 있겠지만) 자신은 '인간(人間)'이라는 답을 주셨다. 토지에 등장하는 600여 명의 사람들이 각기 저마다의 생각과 행동으로 <토지>의 전반을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빛내고 있기에 <토지>를 관통하는 주제는 '인간'이라는 설명이었다. 개인적으로 더 고민해야 할 부분이지만,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부분이었다.


 이를 받아들여,  <토지>의 구도에서 시간을 '하늘(天)'로, 공간을 '땅(地)'으로 치환한다면, 그 사이 인간이 있는 구도가 될 것이다. 천/지/인이 만드는 작품 세계. 이것이 <토지>의 세계일까. 더 나아가 이로부터 건(乾)괘와 곤(坤)괴로 시작하는 <주역(周易)>을 떠올리게 된다. 세상 만물의 근원인 하늘과 땅의 힘들이 인간들에게 작용해서 펼쳐지는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은 나머지 62괘에 대응하는 세상의 모습이 아닐런지.  그렇게 본다면, <토지>를 <역易>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반드시 이러한 관점과 맞는 것은 아니지만, <토지> 해설서 중 하나는 음(陰)과 양(陽)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법도 있음을 알려준다. 


 <역 易>은 건괘와 곤괘로부터 시작한다. 건괘와 곤괘 그리고 나머지 62괘. 총 64괘다... 건곤은 <역> 이라는 책으로 들어가는 문이면서 동시에 '변화'로 들어가는 문이기도 하다. 건곤은 변화를 일으키는 어떤 힘이다. 정이천은 건괘에서 건을 이렇게 정의한다. "건은 천天이다. 천은 하늘의 형체를 말하는 것이고, 건은 하늘의 성질이다. 건이란 강건함이니, 강건하여 쉼이 없는 것을 건이라고 한다."... 하늘이 기능하는 성질이 건乾이며 건建 이다. 그렇다면 땅이 기능하는 성질이 곤坤이고 순順이다. 그러므로 건곤이란 천지라는 우주가 작용하는 힘과 기능이다. 이 두 가지 힘이 천지만물의 변화를 일으킨다. 그러므로 건곤은 전체 생명의 궁극적 근원으로서 모든 생명의 원천이란 뜻이다. 동시에 건곤은 우주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다양한 사물과 현상에 적용될 수 있는 대립적인 개념쌍이기도 하다. _ 정이천, <주역 역전> , p18 범례


 <토지>의 경우, 외적 행동과 대비되는 말씀과 대화와 지적 담론의 역할에 대한 작가의 사고가 치밀하게 형상화에 작용하고 있음을 보아야 한다. 구체적으로 작품은 1부에서 가장 행동이 치열하고 2부에 이르면 그 정도가 완화되며 3부에서는 사건들이 분산된다는 느낌을 준다. 이와 대조적으로 1부와 2부의 사건 전개에서 말씀과 대화는 하나의 초점으로 집중되지 못하고 흩어져 있다. 이에 비해 4부와 5부에서 말씀과 대화는 왕성하게 펼쳐지고 하나로 통일되며 행동의 측면은 약화된다. 행동과 말씀이 서로 간에 밀물과 썰물처럼 들고 나면서, 또는 태극의 음양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듯이 한쪽이 강화되면 다른 쪽이 약화되고 다른 쪽이 강화되면 반대쪽이 약화되면서 작품이 진행되는 것이다. _ 최유찬, <박경리의 <토지> 읽기> , p135


 겨우 1번 읽은 것으로 작품의 의미를 온전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때문에,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는 더 깊이 고민해야 할 부분응로 여겨진다. 여태까지 읽은 <토지>가 완독(完讀)에 치중했기에 큰 흐름에서 소외된 이들에 대한 부분, 작품 안에 담긴 여러 소주제에 대한 고민은 독서 챌린지를 마무리하는 지금 아쉽게 느껴진다. 이에 대해서는 틈틈히 보완하는 것으로 하고, 10개월에 걸친 독서 챌린지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새롭게 다시 시작한다... 생생지위역 生生之謂易.


 역易에 최종적인 끝과 완성은 없다. "끝이 곧 새로운 시작이다 終則有始". 그래서 마지막 64번째 괘가 미제(未濟)다. '아직 강을 건너지 못했다' 혹은 '아직 다스리지 못했다'는 의미다. 기제가 곧 미제인 것이다. 완성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미완성이다. 끝일아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시작해야 한다. 다시 처음의 건곤으로 돌아가 새로운 창조와 실천으로 혁신해야 한다. 건곤은 모든 변화와 생성을 일으키는 시초다. 역에는 완성과 종말이 없다. 끊임없이 생성하고 다시 생성하는 역동적인 과정만이 있을 뿐이다. _ 정이천, <주역 역전> , p18 범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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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2-05-01 11: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거의 10개월에 이르는 긴 여정으로 토지를 읽으셨네요. 읽어 내시는것도 힘든데 거기에다 챌린지로 글도 쓰셔야하는 여정인데도 아주 입체적인 책읽기를 계속 하신 겨울호랑이님!
그동안 수고하셨고 좋은 글 많이 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겨울호랑이 2022-05-01 14:40   좋아요 1 | URL
페넬로페님 감사합니다. 매주 과제에 강제로 끌려왔네요 .덕분에 겨우 읽었습니다만, 부족함이 많습니다... 다만, 부족함을 알게된 것을 소득이라 한다면 더 채우도록 과제를 부여받은 독서챌린지였다고 정리하게 됩니다. 참 갈길이 멉니다... ^^:)

북다이제스터 2022-05-01 16: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근래 주역을 어설프게 어슴푸레 알게 되었는데요, 알수록 참 매력있는 사상인 것 같습니다. ㅎㅎ
서양 사상보다 훨 깊은 것 같습니다. ^^

겨울호랑이 2022-05-01 16:10   좋아요 1 | URL
저도 잘 알지 못하니 참 조심스럽습니다만, 철학이라는 부분에 한정해서 본다면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다만, 서양에 전래된 주역이 이진법과 같은 부분으로 서양과학에 영향을 미쳤고, 이러한 부분이 컴퓨터, 파동이론, 양자학까지 확장/연결된다고 본다면 (그래서, 서양철학+서양과학 vs 동양철학 구도로 본다면) 쉽게 가늠하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

북다이제스터 2022-05-01 17:40   좋아요 1 | URL
괘가 서양 이진법의 기원이군요. ^^
그런거 같습니다. 괘가 웬지 모르스 부호를 닮았습니다. ㅋ

겨울호랑이 2022-05-01 17:43   좋아요 1 | URL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렇네요. 과거 문명교류의 흔적들이 여러 곳에서 남아 있는 듯 합니다.^^:)

mini74 2022-05-01 16: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40주라니 대단하세요. 토지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군요. 겨울호랑이님이 소개하신 인간이란 주제, 음양의 주역, 재미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더 호랑이님 *^^*

겨울호랑이 2022-05-01 17:2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미니님. 토지를 읽은 사람들만큼 해석의 길이 저마다 다를 것 같아요. 또, 같은 사람이 읽어도 읽을 때마다 분명 시선이 멈춰지는 부분이 다를 것 같네요. 그런 면에서 토지는 분명 여러 번 읽을 작품이라는 생각을 이번 독서 챌린지를 통해 배웠습니다.^^:)
 

첫번째는 개신교의 권력화 메커니즘이 보수주의와 불가분 연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권력의 장치로서 개신교는 보수주의를 재생산하며, 거꾸로 개신교의 보수주의가 권력의 메커니즘으로서 개신교를 작동시킨다. 두번째는 개신교 권력의 장치는 대형교회와 불가분 연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대형교회가 없다면 개신교는 권력의 장치가 될 수 없었을 것이며, 거꾸로 개신교의 권력화는 대형교회를 탄생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다. 또한 개신교의 권력화는 주로 지적·사회적 자원을 과점한 이들의 현상이지만, 한편으로 개신교는 권력에서 소외된 이들의 반지성주의적 신앙을 동원해 정치화함으로써 그런 권력자원의 과점세력이 될 수 있었다. 이 책의 세번째 주제는 바로 이 점을 이야기한다.

한국 교회 신도의 절대 다수가 여성이지만, 여성이 교회사역자가 되기는 쉽지 않아요. 여성 목사를 허용하지 않는 교단은 말할 것도 없고, 여성 목사 제도가 있는 교단도 실제로 교회 내에서 여성 신도조차 여성 목사 부임을 원치 않는 경우가 많아요. 여성은 어쨌든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생각 때문에, 여성 지도자를 여성들 스스로도 거부하는 거죠. 제도화된 종교로서의 기독교를 움직여나가는 두가지 권력구조가 있습니다. 강단권력(preaching power)과 교수권력(teaching power)이에요.

너무 쉽게 들키는 조야한 권력이 한국 개신교와 깊게 결합되어 있어서 한국 시민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포함한 전통적 권력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틀이 마련된 것 같습니다. 동성애 혐오주의에서 드러나는 모습은 교인들조차 자기 종교를 신뢰하지 못하도록 하고, 실제로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한편으로 의문이 드는 것은 ‘성직자중심주의가 정말로 실재하는가’라는 부분입니다. 의전상으로는 분명 존재하죠. 그런데 대형교회에서 강한 권력을 장악하던 이들이 속속 은퇴하고 있고, 그 후임자들은 아직 실권을 제대로 갖지 못한 채 창업자들의 후광을 입고 있죠.

교회의 재정 문제는 단지 교회만이 아니라 사회의 부당한 재정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있습니다. 대개는 숨어서 비자금을 조성하더라도 적발될 가능성이 있는데 교회는 감사를 받지 않아 그럴 가능성이 극히 낮은 거예요. 교회의 재정을 담임목사와 재정장로, 그리고 특권적인 교인 몇 사람 정도만 알아요. 일반 신자는 말할 것도 없고, 일반 장로도 교회 장부를 열람할 수 없죠.

한국의 전체 인구 가운데 개신교·가톨릭 등을 포함한 기독교인의 비율이 높지 않다고 하더라도, 정치나 민주주의 구조를 만드는 데에는 강력한 영향을 미쳐요. 차별금지법 문제만 해도 개신교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죠. 민주국가에서는 전부 받아들여진 기본적인 인권 조항이 개신교 세력 때문에 통과되지 못하고 있고, 이것이 통과되면 동성애자가 많아질 거라는 둥 너무나 비논리적인 이야기들이 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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