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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현대조선잔혹사 ㅣ 사탐(사회 탐사) 1
허환주 지음 / 후마니타스 / 2017년 2월
평점 :
이런 구조가 고착된 배경에는 자본의 속성이 자리 잡고 있다. 핵심은 ‘이윤의 극대화‘다. 적은 노력과 재화를 들여 많은 이윤을 창출해 내는 게 기업의 목적이다. 그리고 그 이윤은 주주에게 돌아간다. 이들은 하청에서 재하청으로 이뤄지는 구조를 만들었다. 하청을 쥐어짜서 생기는 이윤은 또다시 대주주들에게 돌아갔다(p279)... 이익이 날 때는 계열사를 확장하고 주주 배당금 잔치를 벌이는 등 회사가 이익을 독식하는 구조였지만, 적자가 발생할 때는 손실을 모두 하청 노동자에게 전가한 것이다. 수많은 하청업체가 무리한 기성 삭감으로 줄도산하고, 그 과정에서 하청 노동자들은 임금 체불과 정리 해고는 물론, 일하다 목숨까지 잃고 있었다. ‘이윤의 극대화‘라는 미명하에 수많은 노동자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고 있다. _ 허환주, <현대조선잔혹사> , p283/486
파업 51일만에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와 하청업체의 파업은 임금 4.5% 인상과 폐업 하청업체 노동자 고용승계 등의 사안에 합의하면서 마무리되었다. 그렇지만, 이런 합의에도 불구하고 이는 대기업을 정점으로 하는 원청-하청의 기업구조, 정규직-비정규직의 노동 구조 문제가 표출된 현상에 불과하고, 근원적인 원인은 달라진 것이 없기에 노사합의를 바라보는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와 관련하여 현직기자가 조선소 현실을 고발한 <현대조선잔혹사>를 정리한다.
<현대조선잔혹사>는 2022년 상반기 전세계 발주량 45.5%를 수주하며 국가 경제를 이끌고 있는 조선업의 어두운 면을 고발한다. 책이 나온 시점이 2016년이니, 처음 취재를 시작한 시점으로부터 1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스스로 자신을 1m 남짓한 철제우리에 가둔 유최안 노동자의 모습을 보면 조선소의 현실은 그렇게 나아지지 않는 듯하다.
원청 입장에서 하청 노동자는 고용 유연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노동비용을 낮출 수 있어 기업 경쟁력 확보에 도움이 되는 유용한 존재다. 불황기에는 하청 노동자를 감축해 고용 탄력성을 확보하고, 호황기에는 이를 증대해 인건비 절감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조선업 사내 하청과 원청은 ‘지휘-명령‘이 일원화된 단일 기업 조직에 가깝기 때문이다. 원청은 사내 하청업체에서 담당하는 공사 물량과 이와 관련된 임금, 자재비 등 비용 전반과 관련해 직영 생산 부서와 같은 수준의 통제력을 행사한다. 사내 하청업체의 경영 능력이란 주어진 물량에 필요한 노동력을 확보하는 것에 불과하다. _ 허환주, <현대조선잔혹사> , p384/486
‘이윤 극대화‘라는 명분으로 ‘이익의 사유화, 위험의 외주화‘되는 자본시장에서 결국 하청노동자는 비용(expense)에 불과하다. 대차대조표(Balance Sheet, B/S)와 손익계산서( Income Statement, I/S)에서 자산과 비용은 모두 차변(借邊)에 위치하지만, 이들 항목을 바라보는 투자자의 관점은 전혀 다르다. 자산(資産)은 경제적 가치를 가지지만, 비용(費用)은 당기에 떨어야 할 부분에 불과하다. 비용에 해당하는 하청노동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손실처리 항목이지만, 정규직 노동자는 인적 자원(Human Resources)으로 별도의 자산관리를 받는다. 원청기업 중 일부는 협력사로서 오랜 관계를 유지하겠지만, 하청기업은 애드호크라시(Adhocracy) 수준을 넘어서기 힘들다. 이런 구도를 통해, 계서제(階序制)가 대기업을 정점으로 한 중심부-주변부를 형성하고, 이로부터 원청-하청, 정규직-비정규직의 역학관계를 만들어 내는 하나의 체제(system)를 발견하게 된다.
노조란 조합원의 이익을 대변하는 조직이다. 사실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의 이익까지 ‘굳이‘ 챙겨야 할 의무가 없다. 정규직 노조가 하청 노조와 연대하고 결속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p261)... 이런 구조에서 ‘노조가 비정규직 노동자와 연대해야 한다‘고 당위적으로 역설하는 것은, 지금 상황을 극복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노조가 계급적 대표성,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사회운동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정규직 조합원을 설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p262)... 정규직 노조가 연대의 일환으로 비정규직 문제에 나서는 것은 자신의 이익과 연관이 있을 때다. 즉, ‘비정규직을 조직해야 한다‘는 대의명분과 ‘현실적으로 비정규직까지 같이 안고 가야 도움이 된다‘라는 노조의 이해관계가 결합되었을 경우다. _ 허환주, <현대조선잔혹사> , p263/486
<현대조선잔혹사>에서 원청-하청, 정규직-비정규직 저마다 자신들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모두가 자신이 피해자이며, 자신의 절박함을 기자에게 말한다. 그러는 와중에 저마다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피해자들의 움직임도 가감없이 설명된다. 자신에게 주어진 압력에 맞서기보다 피하고 넘기는 과정에서 결국 그 압력은 가장 아래로 흘러들어가게 된다.
언뜻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집단의 행동이 경제적으로 현명한 선택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른바 ‘계급투쟁‘의 관점에서는 이러한 대처가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비춰진다. 그렇지만, 그것이 전부일까. 우리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지만, 잊고 있는 것이 있다.
‘자산의 비용화‘. 모든 자산은 계속 자산으로 남아있는 것이 아니다. 감가상각(減價償却, depreciation)을 통해 자산의 일정부분은 끊임없이 정기적으로 비용화된다. 현재 자신의 위치가 ‘자산‘에 속한다고 항상 그곳에 있을 수 있을까. 부분의 최적화가 전체의 최적화가 아닐 수 있음을 떠올린다면, 지금 한국조선업의 원인과 문제가 결코 우리의 삶과 멀리 떨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사실 영국 등에서 산업재해 사망률이 우리보다 훨씬 적은 이유는 이미 오래전 제3세계로 위험을 외주화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런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한진중공업의 경우 필리핀에 수빅 조선소를 건설했다. 그러면서 부산 영도 조선소에서는 고부가가치 산박, 즉 잠수선 등 특수선을 제작하는 방식으로 이원화했다. 필리핀 노동자에게 위험을 전가한 셈이다. _ 허환주, <현대조선잔혹사> , p407/486
마지막으로, <현대조선잔혹사>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선진국-후진국 사이에 일어나는 위험의 외주화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는 생각할 필요가 있다.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등의 ‘배들의 무덤‘이라고 불리우는 조선소에서 안전모와 마스크, 안전화 없이 수작업으로 철판을 다루는 이들이 글로벌공급망체인의 바닥에서 소리없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도 또다른 세계의 현실이라는 점을 떠올리며 책을 덮는다...
PS. 계급 투쟁과 부분 최적화와 관련해서 드는 또다른 생각. 재산세, 종합부동산세를 깎아준다는 공약이 개인의 이익에 부합하기에 계급투표를 했지만, 선택의 결과 다른 자산인 해외펀드, 주식 등이 폭락해서 전체 자산이 손실이 났다면, 이는 부분최적화문제일 것이고, 계급투표가 아닌 그저 잘못된 선택에 불과할 것이다.
[사진] 민주노총 유최안 부지회장 농성 사진(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5126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