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의 상당수는 이 두 진영의 바깥에 있으며 빈곤하고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고 최근에 독립하여 비동맹 노선을 추구하던 제3세계에서 일어났다

탈냉전 세계에서 사람과 사람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이념이나 정치, 경제가 아니다. 바로 문화다. 민족과 국민은 ‘우리가 누구인가’라는 인간이 직면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물음에 답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그리고 인류가 지금까지 그런 질문 앞에서 내놓았던 전통적인 방식으로 답변을 제시하고 있다. 바로 자신들에게 가장 의미 있는 대상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조상, 종교, 언어, 역사, 가치관, 관습, 제도를 가지고 스스로를 규정한다

문화의 스펙트럼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화적으로 동과 서를 양극화하는 것은 유럽 문명을 서구 문명이라고 부르는 불행한 관습의 또 다른 귀결이라고 볼 수 있다. ‘동양과 서양’이라고 부르지 말고 ‘서양과 나머지’라고 부르는 것이 수많은 비서구 사회의 존재를 암시한다는 점에서 차라리 적절하다.

세계를 7개나 8개의 문명으로 이해하면 이런 난점의 상당수를 피할 수 있다. 이것은 단일 세계나 양분 세계의 패러다임처럼 경제성을 위해 현실성을 희생시키지 않으며, 그렇다고 국가 패러다임이나 혼돈 패러다임처럼 현실성을 위해 경제성을 희생시키는 방식도 아니다.

국가 패러다임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가능성을 강조하는 반면 문명 패러다임은 그런 가능성을 희박하게 보고 오히려 우크라이나의 분리 가능성을 점치며, 문화적 요인을 감안할 때 그 갈등 양상은 체코슬로바키아보다는 심각하겠지만 유고슬라비아처럼 유혈 분쟁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런 상이한 전망은 다시 상이한 정책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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