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타밈 안사리 지음, 류한원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이슬람의 눈으로 세계사를 보면 어떨까? 이슬람 세계는 스스로를 발육이 부진한 서구식 세계사를 발육이 부진한 서구식 세계사의 다른 판본이라고. 같은 목표를 향해 발전해가긴 하지만 효과적으로 가지 못하고 있다고 보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p30)... 무슬림 전통의 후계자들인 우리는 역사의 의미를 승리가 아닌 패배에서 찾도록 강요당해왔다. 우리가 생각하는 '문명화'의 개념을 역사의 흐름에 맞게 수정하거나, 아니면 그 역사의 흐름과 싸워서 우리가 생각하는 '문명화'의 개념에 맞추느냐다.(p31)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中


  타밈 안사리(Tamim Ansary, 1948 ~ )의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Destiny Distrupted>는 서유럽 중심의 역사관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시간(Time)적으로는 예수(Jesus Christ, BC 4(?) ~ AD 30 )의 죽음을 기준으로, 공간(Space)적으로는 영국 그리니치(Greenwich meridian)의 본초 자오선(本初子午線, prime meridian)을 통해 세상을 인식하는 우리에게 헤지라(Hijra, AD 622)를 시간의 중심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Makkah Al Mukarrammah)를 공간의 중심으로 하는 이슬람의 세계관은 낯설다. 


 이런 우리에게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는 이슬람 종교를 믿는 이들의 관점에서는 역사가 어떻게 보여지는가를 알기 쉽게 잘 보여준다. 책에서 저자는 우리가 이슬람에 대해 많이 들어봤지만, 내용을 잘 알지 못하는 사실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이야기하듯 풀어준다. 단순한 사실 설명뿐 아니라 그 사건이 이슬람에 있어서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제시하기에 어렵지 않게 독자들의 궁금함을 풀어가게 된다.


[사진] Muhammad goes to Hegira(출처 : https://www.freedomsystem.org/muhammad-goes-to-hegira-622/)


 히즈라는 무슬림 역사에 일어난 사건 중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 사건으로 이슬람에서 '움마'라고 부르는 무슬림 공동체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히즈라 이전에 무함마드는 개별 추종자들의 설교자였다. 히즈라 이후에 무함마드는 법 제정을 하고 정치 방향을 제시하며 사회 지도를 담당하는 한 공동체의 지도자가 되었다. 히즈라는 '단절'을 뜻한다.(p68)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中


 아부 바크르와 우마르가 분명하게 표현한 주류 교리에서는 무함마드가 신의 사도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지령들을 엄밀하게 전달했다고 말한다. 그가 전한 메시지는 위대하며 유일무이한 것이다. 쿠란을 전달한다라는 역할 이외에 무함마드의 종교적인 중요성은 순전히 순나(무함마드가 살아가는 방식으로 보여준 모범)에만 있으며 이는 신의 은혜 안에 살기를 원한다면 모든 이가 따라야 한다. 이러한 교리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나중에 수니파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수니파는 오늘날 무슬림 공동체 안에서 10분의 9를 차지한다(p137)... 이와는 대조적으로 시아파는 그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천국에 걸맞는 사람이 될수가 없다고 느꼈다. 지령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시아파는 영혼을 구원하는 은총으로 다른 무슬림들을 씻길 수 있는 선택받은 몇 명을 통해서 신이 여전히 세상에 직접적인 지시를 내려준다고 믿고 싶어 했다. 그들은 이처럼 위안을 주는 사람들을 '이맘'이라고 불렀다.(p138)... 알리 지지자들은 칼리프 지위를 차지하려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알리에게서 보았다. 그들은 알리를 '이맘'이라고 불렀다.(p136)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中


 현재 이란을 중심으로 하는 시아파와 그 외 지역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수니파에 대해 많은 이들이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단순히 4대 칼리프인 알리를 추종하느냐에 따라 이들을 나눈다는 사실 정도가 우리의 일반적 상식이라면,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에서는 조금 더 자세히 알려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성경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그리스도교의 개신교와 수니파가 통하는 바가 있으며, 구원을 위해서는 교회(敎會 ecclesia)를 통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리스도교의 천주교와 시아파의 교리가 통한다는 점을 알려준다. 이처럼 이슬람교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친절한 설명을 한다는 점은 이 책의 장점이다.


 그리고,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에서는 지난 역사에 대한 이슬람 세계의 해석을 보여준다. 빠른 시기에 이루어진 이슬람의 확장은 결코 폭력적이지 않았고, 자발적인 개종(改宗)에 의한 것이라는 해설과 성전(聖戰)을 의미하는 '지하드(jihad)'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이슬람의 시각도 잘 보여준다. 


 정복은 빠르게 이어졌지만 정복과 개종은 여전히 따로 이루어졌다. '칼에 의한 개종'은 없었다. 무슬림들은 정치적인 권력을 쥐었지만 정복민한테 무슬림이 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그 대신 무슬림 군대가 지나간 곳이라면 어디서든 문화 전파가 뒤따랐다.(p104)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中

 이슬람으로의 개종은 고무적인 사회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것은 바로 사회적 평등을 실현하는 정의로운 공동체 건설이었다. 공동체가 살아 있게 하려면 싸워야 했는데, 움마와, 움마가 전개하는 사회 프로젝트에는 화해할 수 없는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하드는 결코 '성전(聖戰)'이나 '폭력(暴力)'을 의미한 적이 없다. 지하드는 서구인들에게 익숙한 의미인 사회 정의 운동이라는 은유를 함축하고 있다. 투쟁은 공명정대한 목적을 위한 투쟁일 때 고귀하며, 만일 그 목적을 위해 '무장 투쟁'이 필요하다면 그래도 괜찮다. 그 목적을 위해 정당화된다.(p77)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中


 그렇지만, 이 책에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의 단점은 장점과도 맞닿아있다. 마치, 할아버지가 화롯가에 둘러앉아 동네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듯 풀어가는 쉬운 설명은 독자들을 끌어당기기도 하지만, 동시에 화자 스스로 몰입되어 흥분하는 어조가 느껴진다.


 잠시 상상해봐라. 무슬림 세력이 이슬람의 한창 전성기에 콘스탄티노플을 차지했더라면, 바그다드가 아니라 콘스탄티노플이 아바스 왕조의 수도였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흑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물길에 걸치고 서서, 에게 해와 지중해로 언제든 해군을 파견할 수 있는 항구들을 모조리 차지하고 그리스와 이탈리아, 더 나아가서는 스페인과 프랑스 해안, 그리고 지브롤터 해협을 통과해 대서양 해안선을 따라 영국과 스칸디나비아까지 항해했더라면, 게다가 육지전에서 이미 증명된 막강한 전투력까지 합세했다면, 유럽 전체가 이슬람 제국에 흡수되었을지도 모른다.(p289)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中


 만약,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우리의 영토가 광대했을 것이라는 가정과 다름없는 저자의 목소리를 듣다보면,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역시 객관적인 역사책이 될 수 없음을 확인한다. 사실, 역사(歷史)가 객관적일 수는 없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중심의 사관에 의해 이 책이 씌여졌음을 느낀 후에는 이 책을 비판적으로 읽게 된다. 그리고, 때로는 사실 자체가 틀리기도 한다. 레판토 해전이 1571년 이루어진 것은 맞지만, 키프로스의 파마구스타(Famagusta)가 오스만에 함락된 것은 그 직전인 1570년이다. 그렇지만, 저자는 레판토 해전 이후 오스만의 부활을 강조하고 싶어서인지, 사실 확인이 안 되어서인지 이들의 관계를 역전시켜 놓고 있으니 이는 비판할 지점이다.


[그림] The Battle of Lepant(출처 : http://www.ncregister.com/blog/kschiffer/the-pope-the-rosary-and-the-battle-of-lepanto)


 역사가들은 두 차례의 중대한 군사적 패배로 오스만 왕가의 몰락이 시작되었다고 보지만, 그 당시 오스만 튀르크는 두 번 모두 그것을 거의 알아차리지 못했다. 첫 번째는 1571년의 레판토 전투였다... 그때 이후로 6개월 안에 오스만 제국은 지중해 동부를 탈환했으며 키프로스 섬을 정복했고 시실리를 공략했다.(p355)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中


 결론적으로,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는 새로운 역사관,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제시한다는 장점과 함께 이슬람 중심에서 감정이 듬뿍 담긴 역사 입문서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서구(西區) 편향의 세계관에 익숙한 우리가 '기계적인 보편성'이 아닌 '진정한 보편성'을 얻기 위해서는 비판적으로 읽을 가치가 있는 책으로 생각된다. 이스람의 역사에 관심있는 이들은 이후 마셜 호지슨(Marshall G.S. Hodgson, 1922 ~ 1968)의 <마셜 호지슨의 세계사론 : 유럽, 이슬람, 세계사 다시 보기 Rethinking World History : Essays on Europe, Islam and World History>로 나아갈 것을 권하면서 이번 리뷰를 갈무리한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18934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그만 메모수첩 2019-07-28 1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니파 시아파 구분을, 권력 투쟁 중의 분열 정도로 알고 있던 제가 부끄럽네요. 추천해주신 마셜 호지슨 책부터 읽어야 할까봐요.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9-07-28 12:39   좋아요 1 | URL
아닙니다. 이슬람에 대해 저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잘 모르는 것이 현실이기에 조그만 메모수첩님께서 부끄러워 하실 일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더 알아가시기 위해 노력하시는 모습 응원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9-07-28 18: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든 역사학이란 저자 나름대로 정당성 원리란 측면에서 쓴 책이라고 본다면 정말 잘 쓴 재미있는 책 인 것 같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9-07-28 18:49   좋아요 1 | URL
네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처럼 역사란 사실의 나열이 아닌 해석이기 때문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의미있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피할 수 없는 주관의 한계 또한 독자들은 염두에 두고 읽어야할 것 같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19-07-28 18:54   좋아요 1 | URL
네 맞습니다.
역사학을 주관의 한계를 피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주는 책인 것 같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9-07-28 21:24   좋아요 1 | URL
네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처럼 역사는 끊임없이 재해석되어야 하고, 그런 의미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다 자신만의 역사관을 가지고 있고, 가져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화폐전쟁 화폐전쟁 1
쑹훙빙 지음, 차혜정 옮김, 박한진 감수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세계기축통화의 위상을 확립하는 것은 모든 주권국가가 화폐를 발행하는 최고의 경지다. 기축통화는 절대적인 권위를 상징하며 세상의 신뢰를 받는다... 사실 중국에 가격 결정권이 없는 결정적 이유는 금융의 전략적 통제권이 없기 때문이다.(p418)... 한마디로 국제 시장에서 금융의 제공권을 장악하지 않으면 상품의 가격 결정권도 갖지 못하며, 경제 발전 전략의 주도권도 빼앗긴다. 이것이 바로 중국 화폐가 세계의 기축 통화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p419)

저자의 예상과는 달리 미 • 중무역전쟁이 기축통화 전쟁이 아닌 제조업에서 일어났다는 것은 중국의 금융산업이 기축통화를 논할 수준에 와 있지 못하다는 반증이 아닐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07-27 18: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7 19: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개항 이후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비록 이민족(異民族)에 의한 타율적인 과정으로 이루어지기는 하였지만 당시의 각종 경제제도의 근대화과정이나 경제성장 및 구조적 변동이 얼마나 격렬하게 일어났는가 하는 점 등에 대한 실증적 연구성과가 그것이다. 이러한 실증적 경제사 연구성과를 토대로 하여 17~19세기 조선 후기 이후 오늘에 이르는 한국경제의 긴 역사적 전개과정을 놓고 어떤 측면에서든 기존의 통설과는 다른 시각에서 그것을 재평가/재해석해 보고자 한 것이 이 책을 기획하게 된 주체적 동기라 할 수 있다.(p22) <새로운 한국 경제 발전사> 中


 <새로운 한국경제발전사>는 한국경제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 경제사책이다. 일제 식민지 시대를 수탈의 시대로 알고 있는 일반의 생각과는 달리 이를 통해 근대화를 달성할 수 있었다고 해석하는 이른바 뉴라이트(New Right) 사관에 입각해 쓰여진 경제사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바라보고 있는 근대화란 무엇일까. 이 책의 공동저자 중 한 명인 서울대 이영훈 교수의 <시장경제제도의 성립과 발전>의 내용을 들여다 보자. 


  1840년대 프랑스 앙뜨완 다블뤼(Antoine Daveluy)주교에 의하면 19세기 조선 사회는 양반 지배계급에 의한 지독한 폭정 아래 놓여있었다. 양반은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평민들을 마음대로 구금하고 그들의 재산을 약탈하였다. 다블뤼 주교의 기록에는 다소간의 과장도 있어 보이지만, 유사한 내용의 관찰은 이후 조선왕조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기까지 여러 서양인들의 기록에서도 쉽게 발견된다.(p193) <새로운 한국 경제 발전사> 中


 서양인들이 남긴 이러한 기록들은 당시 조선왕조 시대에는 근대적인 재산제도가 성림되어 있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와 더불어, 최근 일련의 연구에 의하면 조선왕조의 경제는 19세기 내내 침체하고 하강했던 것으로, 즉 산림의 황폐, 미곡생산성의 하락, 물가의 상승과 노동자 실질임금의 감소, 그리고 농촌시장의 분열이 행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조선왕조는 이러한 심각한 경제 침체의 결과로 일제의 침략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패망하고 말았다.(p194) <새로운 한국 경제 발전사> 中


 이영훈에 의하면 19세기 조선은 세도정치 하에서 지배계급의 수탈, 자원과 생산성의 부족 등으로 붕괴되고 있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지배층인 조선왕조는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고, 그 결과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 하강의 주요 원인은 심한 수탈로 인한 사유 재산의 부재였다고 진단을 내린다. 사유재산에 대한 인식부족은 자본축적을 어렵게 만들었고, 결국 근대화는 일제 식민치하에서 겨우 달성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 '식민지 근대화론'의 골자다.


 경제를 이처럼 장기적으로 침체시킨 요인에 대해서는 여러 측면에서의 설명이 가능하겠으나,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를 꼽으라면 근대적인 '재산제도'의 결여가 아닐까 한다.(p194)... 경제 성장 요인은 생산과 혁신을 위해 자본을 투자하도록 유도하는 효율적인 제도(institutions)와 기구(organizations)의 존재이다. 이러한 제도와 기구를 통틀어 여기서는 '시장경제제도'라고 부르기로 한다. 식민지기에 개시된 근대적 경제성장은 그 전제조건으로서 그에 합당한 시장경제제도의 정비가 있었기에 가능하였다.(p195) <새로운 한국 경제 발전사> 中


 조선의 경제는 19세기에 걸친 장기의 침체를 경과한 뒤 20세기 전반 일제하의 식민지기에 근대적 경제성장의 경로를 밟기 시작했다. 그러한 전환이 있게 된 데는 근대적인 사유재산제도의 확립을 중핵(中核)으로 하는 시장경제제도의 성립이 커다란 요인으로 작용하였다.(p216) <새로운 한국 경제 발전사> 中


 그렇다면, 이러한 식민지 근대화론이 타당한가.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 반론이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한국독립운동사 강의>에서 확인할 수 있으니, 여기서는 그 중 일부의 내용만 간략히 다뤄보자.

 

 먼저 경제발전(經濟發展)에 대해 생각해보자. 경제발전이 단순히 전년 대비 몇 %의 경제성장을 이루었는가를 뜻한다면, 식민지 근대화론에서 근거로 제시하는 통계수치에 의해 조선 시대보다 일제하에서 우리가 근대화를 이루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렇지만,  근대화가 경제 측면에서만 바라볼 수 있는 것인가? 일제 식민지 기간을 통해 여러 문제점이 생겨났고,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가 깊은 후유증을 앓고 있다면 우리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 만만찮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한 고려를 했을 때에도 우리는 식민지를 통해 근대화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일까? 

 

사실 이러한 수량화 문제는 최근 GDP(國內總生産, Gross domestic product)가 가지는 한계(비시장상품 측정 불가, 소득 분배 상황 미반영 등)나 원자력 발전의 발전 단가 산정 시 고준위방사성 폐기물 비용을 고려해야 하는가 등에 대한 논란과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때문에, 이러한 비용-편익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본다. 우리 사회에서 변화의 움직임이 없었다면 비용이 아무리 많이 지불되더라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갈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본다면, 조선말 시기에 변화의 움직임이 있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세기로 들어서면서 시작된 세도정권 시기에는 봉건 지배계층의 농민에 대한 수탈이 절정을 이루었다. 농민 수탈의 내용은 전정(田政), 군정(軍政), 환정(還政) 등 소위 삼정문란으로 집약되었다.(p51)...  세도정권의 횡포 앞에 방치된 농민들은 이를 타개할 수 있는 합법적 방법과 통로를 갖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세도정권의 손발이 된 부패한 아전을 포함한 지방관에 대한 대한 합법적 고발의 길이 막혀 있었다.(p56) <고쳐 쓴 한국 근대사> 中


 <고쳐 쓴 한국 근대사>에서 바라본 19세기 상황은 <새로운 한국 경제 발전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까지 팩트(fact)지만, 지금부터 조금 달라진다.


 지배층의 부패와 수탈에 대해 일부 민중은 비밀결사로 저항을 기도했다.1684년에 발생한 검계(劍契), 살주계(殺主契) 사건 등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이러한 유형의 범죄들이 이 시기에 와서 크게 증가한 것은 기존의 사회질서와 가치관에 대한 민중의 저항과 함께 집권층의 반동화가 동시에 심해지고 있었음을 뜻한다. 이같은 각종 범죄는 점점 빈번히 발생하고 또 극렬화해서, 크게는 농민전쟁으로 작게는 민란으로 발전했다.(p58)... 임술민란 후부터 갑오농민전쟁이 일어나기까지 무려 40여건의 크고작은 민란이 계속되었다. 안동김씨 세도정권 말기에 우발적이고 산발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한 민란이 30년 후의 갑오농민전쟁으로 연결되까지 농민들의 끊임없는 투쟁이 계속된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전봉준(全琫準, 1854~ 1895) 과 같은 몰락양반층을 중심으로 한 지도세력이 비로소 형성되어갔다.(p65) <고쳐 쓴 한국 근대사> 中


 <고쳐 쓴 한국 근대사>의 저자 강만길 교수는 조선 시대 세도 정치의 폐단을 바로잡는 움직임이 민중으로부터 있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이 홍경래의 난(洪景來의 亂, 1811 ~ 1812)부터 우리가 동학 농민 운동으로 알고 있는 갑오농민전쟁(甲午農民戰爭, 1894)까지 이어져왔음을 지적한다. 


[사진] 녹두장군 전봉준의 압송사진(출처 : https://www.pinterest.co.kr/pin/688417493019697683/)


 정리하면, <고쳐 쓴 한국 근대사>에서는 조선 말에 지배층의 문제를 아래에서부터 고치려는 자발적인 움직임이 있었으나, 이는 일본의 무력개입으로 좌절되었던 것으로 식민지를 겪지 않아도 근대화를 이룰 가능성이 충분했다고 논증한다. 그리고, 이 경우 기회비용(opportunity cost) 측면에서 일제를 겪지 않았을 때의 비용이 겪은 후보다 더 저렴하다는 설명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식민지 근대화론과 이를 뒷받침하는 실증주의 역사학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세기 일본 역사학은 랑케(Leopold von Ranke, 1795 ~ 1886)와 청나라 고증학(考證學)의 영향을 받으며 탄생하는데, 이에 대한 특성과 한계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사료편찬계의 사업이 확정된 것은 제국대학을 중심으로 한 아카데미즘실증주의 일본 역사학의 성격이 시게노 야스쓰구, 구메 구니타케 등의 실증주의를 이어받아 국정의 추이를 중심에 두는 편년체식 정치사/외교사를 명확한 기본으로 삼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여기서 사료편찬계(뒷날 사료편찬소)를 중심으로 한 일본사 연구 체제 확립의 의미를 조금 더 다각도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고대와 중세, 특히 중세사 연구의 기초가 되는 사료의 독점 체제가 성립된 점이다. 둘째, 사회, 경제, 문화 등 정치 과정에 직접 관련이 없는여러 측면에 대한 연구가 불리하고 곤란해지거나 일차적으로는 중시되지않는 경향을 낳은 점이다. 셋째로 사료 고증과 고문서 연구가 역사학의 근간에 자리함으로써 역사가가 현대를 살아가는 자기의 주체성과 사상성을 통해 역사인식과 씨름하는 것을 탐탁찮게 여기는 풍조를 낳았다는 점도 놓칠 수 없다.(p56) <20세기 일본의 역사학> 中


 동경제국대학을 중심으로 한 실중주의 역사관이 경성제국대학(서울대 전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전제에서 위의 글을 읽는다면 <새로운 한국 경제 발전사>에서 보여지는 뉴라이트 사관의 개략적인 모습이 설명된다.


 그렇다면, 사실에 근거한 실증주의 사관은 문제가 없는 것일까. 통계자료와 객관적 근거를 중시하는 실증사관은 수리 모형을 중시하는 오늘날의 경제학의 모습과도 통하는 바가 있는데, 이에 대해 피게티(Thomas Piketty)는 <21세기 자본>에서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너무나 오랫동안 경제학자들은 이른바 과학적 방법이라는 것으로 스스로를 규정하려 했다. 사실 그 방법들은 수학적 모형의 과도한 이용에 의존하는데, 이런 모형들은 흔히 자기 영역을 지키고 내용의 공허함을 가리는데 대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오늘날 경제학자들은 통제된 실험에 바탕을 둔 실증적 방법에 대한 열의로 가득하다. 그러나 이 같은 새로운 접근 방식들 자체가 이따금 어떤 과학적 환상에 빠져들게 한다. 학자들은 예컨대 문제 자체는 그다지 큰 관심거리가 아니라는 것을 잊어버린 채 순수하고 참된 인과관계의 존재를 증명하는 데 엄청난 시간을 보낼 수 있다.(694) <21세기 자본> 中


 한편, 피게티는 <21세기 자본>에서 세계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안으로 민주주의 국가들의 국제자본에 대한 과세, 누진적인 글로벌 자본세를 주장한다. 


 우리가 주목한 것은 20세기에 창안되었지만 미래에도 틀림없이 핵심적인 역할을 계속 수행해야만 할 사회적 국가와 누진적 소득세라는 두 가지 기본 제도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현 세기의 세계화된 금융자본주의를 다시 통제하려면, 오늘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을 개발해야만 할 것이다. 여기서 이상적인 수단은 매우 높은 수준의 국제적 금융 투명성과 결부된 누진적인 글로벌 자본세가 될 것이다.(p617)<21세기 자본> 中


 그리고, 이 속에서 우리는 과거 제국주의 시대 한 팀(국가, 자본, 종교, 과학)이 깨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가 민주주의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붙지만, 피게티에 따르면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를 넘는 권력을 가진 글로벌 기업과 국가 연합간의 대립이 필요하다.


 다국적 기업은 복수의 나라의 기업가, 노동자, 소비자가 연결되어 만들어 낸 커뮤니티다. 문자 그대로 다국적 네트워크는 본래의 국가라는 개념이나 단위만으로 파악할 수 없는 초국가적(transnational)인 현상이다. 그리고 복수의 나라의 자본이나 노동을 결합하는 커뮤니티인 이상, 다국적 기업이 추구하는 것은 본래와 같은 특정 국가의 '국익'과는 다른 것이다. 전통적인 국가라는 틀 속에서 결코 해결될 수 없다. 그와 가은 글로벌한 존재는 비국가 행위자들(nonstate actors)로 한 국가의 거버넌스를 넘어설지도 모른다. 각 국가라는 구조와 법률 체계만으로 완전히 규제하기는 불가능하다.(p107) <역사가가 보는 현대 세계> 中


 그런 관점에서 최근(2019년 7월) 일본의 한국 수출 규제는 상당히 흥미롭다(?). 일본 강제징용피해 배상에 대한 일본 정부의 불만으로 한국 반도체 기업인 삼성과 SK 하이닉스에 대한 수출규제는, '국가'의 '글로벌 기업'에 대한 도발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피게티 모형과 비슷해 보인다. 물론, 다른 점도 있다. 피게티의 글로벌 기업이 글로벌 금융 자본을 의미하는 반면, 삼성전자/SK 하이닉스는 산업 자본이고, '민주주의 국가 연합'이 '정치 후진국 1개국'이라는 부분은 다소 차이나지만.(다시 생각해보니, 삼성그룹에서 금융계열사인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등이 지배구조에서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하면, 삼성을 금융자본으로 구분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도 같다.) 


 피게티는 <21세기 자본>에서 금융자본을 잡기 위해서는 국가들이 연합해서 긴밀하게 정보를 공유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면에서, 1개국에 의해 이루어진 이번 봉쇄는 비록 대상이 산업자본이기는 하지만, 상당히 허술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중장기적으로 경제봉쇄령이 효과가 없을 것과 복잡하게 얽힌 국제 공급망(Global Supply Chain)에 타격을 입은 자본의 복수가 이어질 것이라는 것은 뻔한 결론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삼성과 SK 하이닉스를 일개 한국기업으로 생각하는 일본 정치인의 인식 수준은 20세기에 머물러있다 판단된다. 그런 일본의 도발에 대응하는 일본 상품 불매 운동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개인적으로는 이번 일을 계기로 일본이 싫어져 본의 아니게(?) 불매 운동에 동참하고 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이 문제에 대해 짚어볼 필요가 있다 여겨진다.

  

 많은 다국적 기업들이 점점 더 많이 자신의 생산 활동을 글로벌 경제 내 특정한 거시지역 내에서 조직하고 있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 ASEAN에서 통합 과정은 일본과 보다 최근에는 한국의 다국적기업들에 의해 주로 추동되고 있다... 삼성은 ASEAN에서 광범위한 거시지역적 생산 네트워크를 발전시켜 왔다. 삼성코닝(말레이시아)은 말레이시아에서 컬러 브라운관 생산을 위해 중요한 요소인 튜브 유리를 삼성전관의 공장에 제공한다. 삼성코닝은 또한 삼성전자(태국)와 인도네시아(컬러텔레비전), 말레이시아(컴퓨터 모니터), 베트남(컬러텔레비전) 등의 계열사에 중간제품과 조립품을 판매한다.(p284) <현대 경제지리학 강의> 中


 페이퍼가 다소 길어졌는데, 여기서 내용을 정리해 보자. 식민지 근대화론은 외세에 의한 조선의 문제 해결이 당연한 과정이었고, 이를 통해 우리가 발전을 이루었다는 이론이다. 이에 대해 우리는 경제외적 측면에서 시대를 바라보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이 있었는가를 통해 식민지 근대화론을 반박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는 글로벌 대자본(산업자본)에 대한 의미없는 봉쇄이며, 이제는 일본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탈피해야겠지만, 이제는 글로벌 대자본이 된 재벌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 또한 이번 기회에 점검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뉴라이트 사관의 지향점을 잘 표현한 <새로운 한국 경제 발전사>의 결론을 소개하며 길었던 페이퍼를 마치고자 한다. 


 종합해 보면, 결론적으로 한국경제의 국제화 전략의 기본은 '새 모델'을 어떻게 발전시키느냐 하는데 주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곧 美, 日, 中 3국과의 국제적 분업관계를 어떻게 하면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느냐하는 문제로 귀착된다.(p545)... 결론적으로 오늘의 한국경제가 당면한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경제 내부의 구조조정이나 거시정책적 수단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대외분업적 측면에서 경제의 '국제화 전략'을 올바로 수립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을 강조해두고 싶다. 대국적 견지에서 경제의 글로벌化를 가로막는 反시장주의적이면서도 시대역행적인 편협한 민족주의 이념으로부터 탈피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선결과제라고 함을 여기에 강조해두고자 한다.(p547)  <새로운 한국 경제 발전사> 中


PS, 어쩌면, 이 결론은 우리보다 현재 일본에 더 필요한 조언이 아닐까. 뉴라이트 역사가들에게는 식민지 시절 근대화에 대한 답례를 할 기회가 주어진 듯 하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07-27 08: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7 08: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7 1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7 1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7 0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7 1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출처 : 겨울호랑이 > 케이건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와 투키티데스(천병희 譯)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얼마 전 읽은 「파이데이아」와 연관하여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관한 리뷰를 올려봅니다. 3년 전 글인 것을 보니 비슷한 시기에 그리스 관련 책을 읽었군요. 그런 면에서 독서의 계적적 요인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웃분들께 작은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19-07-26 0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6 1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교육 (천줄읽기) 지만지 천줄읽기
빌헬름 딜타이 지음, 손승남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플라톤의 유명한 대화편 「프로타고라스 Protagoras」에서 아이들은 읽기를 배워 시인들의 시를 읽는다. 또한 노래하듯이 시를 암송하는 음유시를 다룰 때 속도와 음색이 아동의 영혼에 익숙하도록 했다. 이러한 기초 위에서 문법수업이 전개되었다. 이미 초등교사에게서 사람들은 정확한 발음과 멋진 강연을 들을 수 있었다. 문자 혹은 문법 학교에서 기술적인 문법과 수사학을 가르쳤다. 시인들이 해석되었다. 언어와 화술의 기술적 관점들이 발전하면서 그의 과제 또한 증가했다. 이것이 바로 테미스토클레스(Themistocles)를 빼어난 오성의 소유자로 만들었던 수업의 총체다.(p97)

그리스 교육의 근원을 돠돌아볼 때 그것이 개별 인간의 의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전체 정신에 기원을 둔 그리스적 정신의 결과임을 알 수 있다.(p104)... 파이데이아는 민족성의 내면에서 탄생된 이념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즉 그것은 감각적 현상에서의 내면적인 것과 시각적 영상 속에서의 사고, 신체적 운동 속에서의 의지 행위, 언행과 몸짓에서 영혼의 과정을 소유하는 것 등이다.(p105)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07-26 1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6 1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