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타밈 안사리 지음, 류한원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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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람의 눈으로 세계사를 보면 어떨까? 이슬람 세계는 스스로를 발육이 부진한 서구식 세계사를 발육이 부진한 서구식 세계사의 다른 판본이라고. 같은 목표를 향해 발전해가긴 하지만 효과적으로 가지 못하고 있다고 보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p30)... 무슬림 전통의 후계자들인 우리는 역사의 의미를 승리가 아닌 패배에서 찾도록 강요당해왔다. 우리가 생각하는 '문명화'의 개념을 역사의 흐름에 맞게 수정하거나, 아니면 그 역사의 흐름과 싸워서 우리가 생각하는 '문명화'의 개념에 맞추느냐다.(p31)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中


  타밈 안사리(Tamim Ansary, 1948 ~ )의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Destiny Distrupted>는 서유럽 중심의 역사관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시간(Time)적으로는 예수(Jesus Christ, BC 4(?) ~ AD 30 )의 죽음을 기준으로, 공간(Space)적으로는 영국 그리니치(Greenwich meridian)의 본초 자오선(本初子午線, prime meridian)을 통해 세상을 인식하는 우리에게 헤지라(Hijra, AD 622)를 시간의 중심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Makkah Al Mukarrammah)를 공간의 중심으로 하는 이슬람의 세계관은 낯설다. 


 이런 우리에게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는 이슬람 종교를 믿는 이들의 관점에서는 역사가 어떻게 보여지는가를 알기 쉽게 잘 보여준다. 책에서 저자는 우리가 이슬람에 대해 많이 들어봤지만, 내용을 잘 알지 못하는 사실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이야기하듯 풀어준다. 단순한 사실 설명뿐 아니라 그 사건이 이슬람에 있어서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제시하기에 어렵지 않게 독자들의 궁금함을 풀어가게 된다.


[사진] Muhammad goes to Hegira(출처 : https://www.freedomsystem.org/muhammad-goes-to-hegira-622/)


 히즈라는 무슬림 역사에 일어난 사건 중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 사건으로 이슬람에서 '움마'라고 부르는 무슬림 공동체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히즈라 이전에 무함마드는 개별 추종자들의 설교자였다. 히즈라 이후에 무함마드는 법 제정을 하고 정치 방향을 제시하며 사회 지도를 담당하는 한 공동체의 지도자가 되었다. 히즈라는 '단절'을 뜻한다.(p68)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中


 아부 바크르와 우마르가 분명하게 표현한 주류 교리에서는 무함마드가 신의 사도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지령들을 엄밀하게 전달했다고 말한다. 그가 전한 메시지는 위대하며 유일무이한 것이다. 쿠란을 전달한다라는 역할 이외에 무함마드의 종교적인 중요성은 순전히 순나(무함마드가 살아가는 방식으로 보여준 모범)에만 있으며 이는 신의 은혜 안에 살기를 원한다면 모든 이가 따라야 한다. 이러한 교리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나중에 수니파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수니파는 오늘날 무슬림 공동체 안에서 10분의 9를 차지한다(p137)... 이와는 대조적으로 시아파는 그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천국에 걸맞는 사람이 될수가 없다고 느꼈다. 지령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시아파는 영혼을 구원하는 은총으로 다른 무슬림들을 씻길 수 있는 선택받은 몇 명을 통해서 신이 여전히 세상에 직접적인 지시를 내려준다고 믿고 싶어 했다. 그들은 이처럼 위안을 주는 사람들을 '이맘'이라고 불렀다.(p138)... 알리 지지자들은 칼리프 지위를 차지하려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알리에게서 보았다. 그들은 알리를 '이맘'이라고 불렀다.(p136)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中


 현재 이란을 중심으로 하는 시아파와 그 외 지역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수니파에 대해 많은 이들이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단순히 4대 칼리프인 알리를 추종하느냐에 따라 이들을 나눈다는 사실 정도가 우리의 일반적 상식이라면,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에서는 조금 더 자세히 알려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성경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그리스도교의 개신교와 수니파가 통하는 바가 있으며, 구원을 위해서는 교회(敎會 ecclesia)를 통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리스도교의 천주교와 시아파의 교리가 통한다는 점을 알려준다. 이처럼 이슬람교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친절한 설명을 한다는 점은 이 책의 장점이다.


 그리고,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에서는 지난 역사에 대한 이슬람 세계의 해석을 보여준다. 빠른 시기에 이루어진 이슬람의 확장은 결코 폭력적이지 않았고, 자발적인 개종(改宗)에 의한 것이라는 해설과 성전(聖戰)을 의미하는 '지하드(jihad)'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이슬람의 시각도 잘 보여준다. 


 정복은 빠르게 이어졌지만 정복과 개종은 여전히 따로 이루어졌다. '칼에 의한 개종'은 없었다. 무슬림들은 정치적인 권력을 쥐었지만 정복민한테 무슬림이 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그 대신 무슬림 군대가 지나간 곳이라면 어디서든 문화 전파가 뒤따랐다.(p104)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中

 이슬람으로의 개종은 고무적인 사회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것은 바로 사회적 평등을 실현하는 정의로운 공동체 건설이었다. 공동체가 살아 있게 하려면 싸워야 했는데, 움마와, 움마가 전개하는 사회 프로젝트에는 화해할 수 없는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하드는 결코 '성전(聖戰)'이나 '폭력(暴力)'을 의미한 적이 없다. 지하드는 서구인들에게 익숙한 의미인 사회 정의 운동이라는 은유를 함축하고 있다. 투쟁은 공명정대한 목적을 위한 투쟁일 때 고귀하며, 만일 그 목적을 위해 '무장 투쟁'이 필요하다면 그래도 괜찮다. 그 목적을 위해 정당화된다.(p77)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中


 그렇지만, 이 책에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의 단점은 장점과도 맞닿아있다. 마치, 할아버지가 화롯가에 둘러앉아 동네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듯 풀어가는 쉬운 설명은 독자들을 끌어당기기도 하지만, 동시에 화자 스스로 몰입되어 흥분하는 어조가 느껴진다.


 잠시 상상해봐라. 무슬림 세력이 이슬람의 한창 전성기에 콘스탄티노플을 차지했더라면, 바그다드가 아니라 콘스탄티노플이 아바스 왕조의 수도였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흑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물길에 걸치고 서서, 에게 해와 지중해로 언제든 해군을 파견할 수 있는 항구들을 모조리 차지하고 그리스와 이탈리아, 더 나아가서는 스페인과 프랑스 해안, 그리고 지브롤터 해협을 통과해 대서양 해안선을 따라 영국과 스칸디나비아까지 항해했더라면, 게다가 육지전에서 이미 증명된 막강한 전투력까지 합세했다면, 유럽 전체가 이슬람 제국에 흡수되었을지도 모른다.(p289)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中


 만약,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우리의 영토가 광대했을 것이라는 가정과 다름없는 저자의 목소리를 듣다보면,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역시 객관적인 역사책이 될 수 없음을 확인한다. 사실, 역사(歷史)가 객관적일 수는 없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중심의 사관에 의해 이 책이 씌여졌음을 느낀 후에는 이 책을 비판적으로 읽게 된다. 그리고, 때로는 사실 자체가 틀리기도 한다. 레판토 해전이 1571년 이루어진 것은 맞지만, 키프로스의 파마구스타(Famagusta)가 오스만에 함락된 것은 그 직전인 1570년이다. 그렇지만, 저자는 레판토 해전 이후 오스만의 부활을 강조하고 싶어서인지, 사실 확인이 안 되어서인지 이들의 관계를 역전시켜 놓고 있으니 이는 비판할 지점이다.


[그림] The Battle of Lepant(출처 : http://www.ncregister.com/blog/kschiffer/the-pope-the-rosary-and-the-battle-of-lepanto)


 역사가들은 두 차례의 중대한 군사적 패배로 오스만 왕가의 몰락이 시작되었다고 보지만, 그 당시 오스만 튀르크는 두 번 모두 그것을 거의 알아차리지 못했다. 첫 번째는 1571년의 레판토 전투였다... 그때 이후로 6개월 안에 오스만 제국은 지중해 동부를 탈환했으며 키프로스 섬을 정복했고 시실리를 공략했다.(p355)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 中


 결론적으로,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는 새로운 역사관,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제시한다는 장점과 함께 이슬람 중심에서 감정이 듬뿍 담긴 역사 입문서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서구(西區) 편향의 세계관에 익숙한 우리가 '기계적인 보편성'이 아닌 '진정한 보편성'을 얻기 위해서는 비판적으로 읽을 가치가 있는 책으로 생각된다. 이스람의 역사에 관심있는 이들은 이후 마셜 호지슨(Marshall G.S. Hodgson, 1922 ~ 1968)의 <마셜 호지슨의 세계사론 : 유럽, 이슬람, 세계사 다시 보기 Rethinking World History : Essays on Europe, Islam and World History>로 나아갈 것을 권하면서 이번 리뷰를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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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메모수첩 2019-07-28 1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니파 시아파 구분을, 권력 투쟁 중의 분열 정도로 알고 있던 제가 부끄럽네요. 추천해주신 마셜 호지슨 책부터 읽어야 할까봐요.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9-07-28 12:39   좋아요 1 | URL
아닙니다. 이슬람에 대해 저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잘 모르는 것이 현실이기에 조그만 메모수첩님께서 부끄러워 하실 일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더 알아가시기 위해 노력하시는 모습 응원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9-07-28 18: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든 역사학이란 저자 나름대로 정당성 원리란 측면에서 쓴 책이라고 본다면 정말 잘 쓴 재미있는 책 인 것 같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9-07-28 18:49   좋아요 1 | URL
네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처럼 역사란 사실의 나열이 아닌 해석이기 때문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의미있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피할 수 없는 주관의 한계 또한 독자들은 염두에 두고 읽어야할 것 같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19-07-28 18:54   좋아요 1 | URL
네 맞습니다.
역사학을 주관의 한계를 피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주는 책인 것 같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9-07-28 21:24   좋아요 1 | URL
네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처럼 역사는 끊임없이 재해석되어야 하고, 그런 의미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다 자신만의 역사관을 가지고 있고, 가져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