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경한글역주
김용옥(도올) 지음 / 통나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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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孝經>은 나에게 다소 생소한 문헌이었다.
부끄럽게도 13경(經) 중 하나라는 사실도 잘 몰랐다. 이처럼 내게 인지도가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논의하는 효(孝)는 나에게,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개념이기에 선뜻 손이 가지 않은 책이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조선시대을 지배했던 "孝"라는 개념이 어떻게 지배의 이데올로기가 되었는지, 치밀하게 밝히고 있다.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국가를 지배하는 통치 이데올로기로 막연한 충(忠)보다, 더 개인에게 와닿는 효(孝)를 강조하였다.
단순히 강조하기만 하면, 외면당할 수 있어서, 일종의 캠페인(campaign)을 벌리게 되는데 그것이 '열녀문'이 전국에 세워지게 된 배경이며, '삼강행실도'가 조선 전국에 보급된 배경이라고 한다. 이렇듯 국가에 대한 "忠"의 축소된 사상으로, 가문에서의 "孝"라는 이념이 어떻게 왜곡되었는지, 우리가 알고 있는 '효'가 어떻게 성립되었는지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효경>에서 말하는 효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효'는 단순히 '자식의 부모에 대한 사랑의 표현'을 넘어선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과 '자식의 부모에 대한 공경과 사랑'의 쌍방적 관계에서 형성된다는 것을 <효경>에서는 말한다.

그리고, 더 나가서 자신의 부모만이 아니라, 천자, 제후, 공경, 대부, 서민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위치에서 다른 이들을 넓게 사랑하는 이념이 <효경>에서 말하는 효의 개념이다.
이러한 효는 결코 위에서 아래로 강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지도자들이 자신의 내면을 효성스럽게 하여 주변을 감화시켜 나갈 때, 사회 전반으로 효가 퍼져 나가게 되고, 효의 진정한으로 실현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효경>의 주요 내용이다.

자식의 부모에 대한 일방적인 효도를 강제하는 것이 아닌 부모-자녀간의 따뜻한 관계그리고, 따뜻한 관계의 자연스러운 사회적 확대를 '효(孝)'라고 할 때, 가정의 달인 5월에 우리의 부모와 우리, 그리고 우리의 자녀와우리와의 관계를 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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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7 - 연산군일기, 개정판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7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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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폭군으로 길이 남아 있는 연산군.

연산군에 대한 평가는 대체적으로 폐비 윤씨의 죽음의 진실을 밝힌다는 이름하에 여러차례의 사화를 일으킨 폭군이면서, 어린 시기에 아버지에 의한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비극적 운명을 살게된 왕. 공적으로는 무능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불행했던 인물이라고 내려진다.

모든 책을 읽을 때는 목적이 있듯이, 이번에 조선왕조실록을 읽으면서 내 자신에게 항상 되물어 보는 것은 `이 사건은 지금의 나에게 어떤 점을 일깨워주는가?` , `나는 이 사건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가?`하는 질문을 계속 하면서, `소통`과 `민의(民意)`이라는 관점에서 역사를 보고 싶었다. 역사를 어느 특정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을 교양서적으로 하기에 무리한 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왕조실록을 원본으로 볼 수 있는 소양이 내게는 없기 때문에, 만화를 통해 큰 줄기를 파악한다는 한계점도 있지만, 잔가지 대신 큰 맥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내가 주제를 잡아가기에는 더 좋은 것 같다.

연산군을 바라볼 때 어머니 죽음으로 많은 상처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시대의 지도자로서 이를 극복하지 못한 실패한 왕이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그가 겪은 불행은 결코 일반적인 상황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의 개인적 불행에 가슴아파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위치 때문에, 그의 영향력 때문에 그의 무능력과 비이성적인 정치에 대해 비판하게 된다.

우리는 연산군처럼 자신의 아버지를 잃은 비극적인 상황을 겪은, 아니 어쩌면 더 힘든 시기를 보냈을 같은 왕조의 정조를 알고 있다.
연산군은 자신의 어머니는 비참하게 죽었지만, 자신은 신변의 위협이나, 왕위계승에 대해 의심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반면, 후대의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과 이로 인해 어린 시절을 숨죽이며 10여년의 세월을 `역적의 자식`으로 살아가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조선 후기 성군으로 이름을 남기고 있지 않은가. 무릇 지도자는 자신의 처지가 불우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스스로 극복해야하는 운명을 가지는 것 같다.

한편으로, 조선전반에 걸쳐서 백성이 가장 살기 좋은 시대는 아이러니하게도 `연산군 초기 10년간`이라고 한다. 그 당시에는 왜구, 명나라의 무리한 요구 등이 없어서, 백성들은 더할 나위없이 좋았다고 하니, 마치 우리나라에서 1980년대 후반 정치적으로는 `군사독재정권` 하에 암울한 시기를 보냈어도, 경제적으로는 `3低`로 한동안 흑자를 기록하여 호황기를 보냈던 상황과 비슷한 것 같다.

그렇게 본다면 `좋은 시절`이란 어느정도의 운(運)도 따라줘야하는 것 같다. 이런 외부적 요인인 운과 내부의 여러 요인에 의해 복합적으로 이루어진 결과가 `경제성장`, `민주화` 일 것이다. 이러한 결과를 자신들의 치세에 이루어졌다고 자신들만의 공으로 돌리는 요즘의 정치인들의 모습은 별로 좋게 보여지지 않는다.

연산군 일기를 통해서, 외로운 지도자의 길과 민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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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6 - 예종.성종실록, 개정판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6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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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 9대 임금 성종

그는 세종과 더불어 조선 초반기 대표적인 성군으로 일컬어지며 그의 치세 이후 조선은 안정적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렇지만, 왕에게 초점을 맞추어 `왕의 내면 역시 그의 치세만큼 안정적이었을까?`라는 의문을 던지게 된다.

조선이 유교중심의 사회가 되면서, 신하들의 신권(臣權)이 크게 강화되고, 임금의 왕권(王權)은 이에 비례하여 약화된다. 특히, 성종 시대에 조선의 법전인 `경국대전`이 반포되었기에, 이러한 법적인 제약은 상대적으로 컸으리라.
실제로, 성종이 자신의 주장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자신의 입장을 강변하다 결국 신하들의 요청대로 일처리한 후 불만을 가슴에 쌓아두는 개인적으로는 답답한 모습이 반복적으로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자신의 치세에 위대한 업적을 쌓은 군주들은 자신의 독단으로 처리하는 경우보다, 주위의 견제 속에서 그 업적을 이룬 경우가 상대적으로 더 많았다. 당태종 이세민도 대신 위징으로 인해 여러차례 부딪히는 경우가 많았음을 우리는 <정관정요>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들이 전제군주로 행동하지 않고, 스스로 `균형과 견제`의 길로 찾아간 것은 그것이 천하를 위해 더 나은 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리라. `小我`를 버리고 `大義`를 취하는 것이 지도자의 바른 길임을 ˝성종실록˝ 을 통해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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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5 - 단종.세조실록, 개정판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5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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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시대는 치세가 짧지만 참 가슴아픈 시기다.
군주의 기개는 있었지만, 시대가 기다려 주지 않아 숙부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삶을 마감한 소년왕 단종.

단종 실록을 읽으며, 가슴이 저려오는 것은 왜 일까?
전 시대를 풍미했던 많은 인재들이 단종을 지키기 위해 애쓰다 사라져갔고, 그들의 이름 하나하나를 눈물을 흘리며 새기게 된다. 시대가 다름에도 애잔하게 다가오는 것은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운 많은 시조의 작자와 배경이 이 시대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들의 `신념`이 내게 더 가슴 깊이 느껴지기 때문인 듯하다.

사육신, 생육신 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처절하게 투쟁을 했다.
현재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왕조의 정통성`이란 큰 의미가 없을 지 모르지만, 15세기를 살았던 그들에게는 소중한, 어쩌면 `전부` 였을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키 위해 멸문지화(滅門之禍)도 두려워 하지 않았던 조정시대 지식인, 관료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는 `행동하는 지식인`의 전형을 보게 된다. 이러한 행동하는 지식인의 모습은 후에 임진왜란 , 구한말 의병투쟁, 독립투쟁을 통해서도 발견할 수 있다. 조선시대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당파만 앞세워 파벌싸움만 하던 시대가 아니라, 행동을 통해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는 `행동하는 지식인의 사회`였음을 사육신, 생육신과 당시 벼슬을 거부한 수많은 선비등을 통해 발견하게 된다.

뒤를 이어 즉위한 세조는 정통성이 부족했기 때문에 강력한 왕권 구축이 필요했다.
반정으로 자리를 차지한 인물인 태종과 세조의 공통점은 자신의 사람을 철저히 챙겼다는데 있다. 정통성이 없기에 자기 주변만 챙기는 세조는 국방에 있어서도 중앙군만 정예화시키고, 지방군을 무력화시키는 정책을 추진하게 되었고, 그 결과 조선의 국방력은 현저하게 약화되었다. 이는 후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참담함을 겪게 된 하나의 원인이 된다. 세조가 이러한 결과를 알고 그렇게 행동하지는 않았겠지만, 권력에 대한 비뚤어진 욕망의 결과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진 못하리라.

단종과 세조의 시대를 보면서 시대의 비극이 주는 아픔과 함께, 조선 지식인들의 신념과 행동, 그리고 권력의 욕망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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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4 - 세종.문종실록, 개정판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4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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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조선 시대 임금 중 성군이라 일컬어지는 세종.

나는 과거에 세종의 시기에 조선은 훈민정음 창제, 물시계인 자격루, 측우기 등 과학
기술을 활용한 농경정책의 개선, 4군 6진의 개척 등으로 각종 업적이 빛나는 조선의 전성시기로 배웠다.
그 이후 조선은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게 되고500년 왕업의 기초가 이 시기에 세워졌다고 나는 알고 있다.
너무도 당연하게 당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나는 믿어왔다.

그렇다면, 과연 그 시대의 백성들은 행복했는가?
안타깝게도 이 시기는 중국과의 관계정책인 사대정책으로 강화되는 시기로, 백성의 부담이 가중되었고, 북방정책으로 넓어진 영토에 강제 이주정책인 사민정책이 실시되어 백성들의 불만은 커진 불행한 시기였다.

또한, 선진사회로 이행을 위한 화폐개혁 등은 당시 백성에게 불만을 가져와 각종 업적이 백성의 행복과 연결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반드시 들어 맞는 비유는 아니겠지만, 요즘으로 치면 금융실명제, 전쟁, 철거 등으로 인한 강제 이주등의 일련의 변화가 일부 계층이 아닌 사회 전반에 한번에 몰아닥친 혼란의 시기 정도가 이에 해당되지 않을까 싶다.

비록 업적은 빛나지만, 지배층을 위한 업적인 한정된 성공.그리고, 이러한 성과와 관계없이 피폐한 다수의 백성들.그것이 이 시기의 한계라 생각된다.

왕조 중심의 사관에서는 황금시대였지만, 민중들의 관점에서 이 시기는 고난의 시기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의 역사학자들은 우리 시대를 어떻게 바라볼까?

어떤 관점에서는 마치 소크라테스가 살던 아테네 시대처럼, 정치적으로는 혼란스러웠지만, 시민의식이 점차 깨어나는 계몽의 시대로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관점에서는 사회 역량을 토목, 건축 공사에 쏟아 부어 민생에 피폐해진 시기로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다른 관점에서는 사회가 가치관을 잃어버리고 향락에 빠진 시기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 모든 시각이 다 옳을 것이다. 역사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역사는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후대에 어떤 역사관을 가지고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를 바라본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달라지는 것은 없다. 역사관과 무관하게 우리 삶은 오늘도 흘러갈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도 `貞觀之治` 또는 `開元之治`라 해서 성군이 다스리던 시대를 태평치세라 칭한단다. 그 시기에 많은 업적과 문물이 일어나서였으리라. 그러나, 우리는 당시를 살아갔던 백성들은 고구려 원정이나 안록산의 난 등으로 힘들어 했던 사실은 외면하고 역사를 기억한다. 그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은 자신이 살던 시대를 행복한 시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세종실록편을 읽으면서, 진정으로 `행복한 정치`, `진정한 聖君`에 대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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