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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는 과거 청와대 민정수석산하 치안비서관을 없애는 대신, 행안부장관이 직접 경찰을 통제하기 위해서라도 경찰국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문재인 정부까지만 해도 청와대가 음성적으로 경찰의 인사 등에 개입했고, 그 주된통로가 민정수석실이었다는 주장이다.
핵심은 인사권이다. 7월26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행정안전부와 그 소속기관직제 개정안‘에 따르면, 경찰국은 경찰 관련 정책·법령 국무회의상정, 총경 이상경찰공무원에 대한 임용 제청, 자치경찰지원 등을 전담한다.  - P10

원·하청 구조는 한국 제조업이 직면한 중대한 과제다. 산업경쟁력의 핵심일숙련과 임금의 연결고리는 끊어진 지 오래다. 정규직은 속속 정년퇴직 중이고 신규 채용은 씨가 말랐다. 정규직과 하청의연대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았지만 위태롭다.  - P17

ILO 결사의자유위원회는 코레일이 철도노조에 대해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을 두고, 한국 정부에도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이 노동조합의 자유로운 운영에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영향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덧붙여 손해배상 소송이 노동조합의 존속 그 자체에 심각한 재정적 위협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정당한 조합활동을 위축시키는 효과를 갖는다는 노조의 지적에도 "우려를 표하고 유의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국회 비준 동의로 인해 국내법적 효력을 가진 ILO의 국제노동기준은, 파업 노조를 상대로 한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는 권장되는 일이 아니며 오히려 신중하라고 요구한다.  - P20

북한 이슈는 우선 보수 지지층을 결집하기에 용이한 사안이다. 두 번째는 정보의 독점성이 있다. 정부·여당이 정보를독점하게 돼 있다. 세 번째로는 NLL 대화록 사건 등 전례가 있다. 이번에는 윤석열정부의 기대에 못 미친 거 같다.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 다수가 윤석열 정부의 의도대로 따라가지 않고 있다. 과반이 공감하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 몰이로 전임 정부를 혼낼 수 있고 정치적으로 이득이 될 거로 생각하는데, 그건 선거 때나가능하다. 선거라는 특정 시기에 제한된정보를 가지고 정보 장난을 칠 때 재미를봤던 건데, 지금도 똑같은 생각을 하는게문제다. - P24

기후변화를 막고 곤충에 대한 인식을바꾸면 벌레 떼 문제는 해결된다. 다만
‘다음 신종 벌레 떼‘가 몰려올 때 대처할 단기적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박멸보다 관리‘가 낫다고 말한다. 도심에는 약을 뿌리되, 야산은 두고보자는것이다. 곤충에 대한 애정이나 생명존중때문이 아니다. 이유가 있는 전략적 접근이다.
DDT 부작용을 처음 맛본 뒤 30년, 미국 학계는 화학이 아닌 생물학적 방제를시작했다. 약을 뿌리는 대신 진드기를 잡아먹는 포식성 생물을 키웠다. 생물학적방제는 결과를 얻기까지 오래 걸린다. 살충제 살포와 병행하기도 까다롭다.  - P29

메타의 개인정보 처리방침은 의도치않게 SNS의 본질이 광고이고, 빅테크 기업의 수익원은 개인정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 P32

스테이블 코인을 규제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것이 트릴레마(Trillemma)다. 어떤 스테이블 코인이든 ‘탈중앙화‘, ‘안정성‘ 그리고 ‘효율성‘ 세 가지 중 하나는  반드시 포기해야만 한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여기서 안정성(stability)은 스테이블 코인의 가치가 얼마나 안정적이냐를 말한다. 특히 미국채등 담보자산과 연동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느냐 하는 것으로 변동성이 심한 시장에서 더욱 중요시된다. 효율성 (capital efficiency)은 코인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금이 필요한지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트릴레마에 따르면, 만약 어느 스테이블 코인이 적정한 수준의 자금을 투입해 높은효율성) 미국채와의 연동을 안정적으로유지할 수 있다면 (안정성이 높다), 그 코인은 탈중앙화된 코인일 수가 없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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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정부를 믿지 않는다. 새로운 현상도 아니다. 지배계급에 대한 절망은 지배계급 자체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그릇된 것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 ‘시대’, 즉 상황이며, ‘대인들’이 올바른 일을 한다고 믿을 수 있는 한 상황은 바뀔 수 있다. 대인들을 믿는 것말고 다른 방도는 없으며, 시대가 좋아지기를 기대해야 한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6장)에서 설명한 것처럼, 긍정적인 변화를 위한 조건은 두 가지가 있다. 포르투나fortuna, 즉 ‘운’이나 순조로운 상황이 결합되어야 하고 필요한 비르투virtu, 즉 이런 상황을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이나 기술을 갖춘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

오늘날의 병적 징후들은 앞선 수십 년간 이루어진 성장과 번영에 연결되어 있다. 대체로 현재의 불만은 환멸, 희망의 상실과 밀접히 관련되며, ‘담대한 희망’ 같은 슬로건으로도 희망을 되살리지는 못한다. 버락 오바마가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내세운 뒤 베스트셀러 저서의 제목으로 삼은 이 구절은 시카고의 목사 제러마이어 라이트가 한 설교에서 빌려온 것이다. 라이트는 영국 화가 조지 프레더릭 와츠가 그린 〈희망Hope〉(1886)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림 속 눈을 가린 여자는 허름한 옷차림으로 공 모양 위에 앉아서 현이 하나뿐인 리라의 희미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아무 희망도 없는 상황이지만 그 소리가 그나마 위안이 될지 모른다.

오늘날 ‘국제적인’ 것은 ‘인류’가 아니라 세계화된 시장이다. 그리하여 대기업과 소수 부자들이 세금을 피하기 위해 나라끼리 싸움을 붙이는 한편 노동조합을 약화시키고 정부 간섭을 비난하면서 밑바닥을 향한 경쟁을 부추긴다. 각국이 다른 나라에게서 투자를 빼앗아오기 위한 경쟁이다. 마틴 울프가 『파이낸셜타임스』 칼럼에서 쓴 것처럼, "자유주의의 국제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한 가지 이유를 들자면, 이 질서가 우리 사회의 사람들을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20

오늘날 우리는 그렇게 확신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며, 지옥이 바로 코앞에 다가온 것은 아니라고 여전히 희망을 품는다. 어쨌든 지난 여러 세기 동안 우리의 삶이 좋아졌다면, 그것은 바로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들,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 아무리 시대가 병들었어도 계속 끈질기게 싸움을 이어간 사람들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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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생제를 너무 자주 사용하면 세균은 항생제에 적응하여 결국 항생제에 듣지 않는 균이 된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안다. 그런데 역시 세 가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1) 항생제 내성균은 항생제를 썼을 때만 생긴다. 해열제나 감기약을 먹는다고 항생제 내성균이 생기지는 않는다. 2) 항생제 내성은 인간의 몸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세균이 변하는 것이다.

이런저런 주장에 현혹되어 백신을 맞지 않기로 한 부모에게 꼭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 백신을 맞지 않아 질병이 유행할 경우 자신의 자녀가 가장 먼저 피해를 보게 된다는 사실이다.

왜 백신을 맞으면 질병 자체가 없어질까? 집단면역herd immunity이란 현상 때문이다. 한 사회나 국가에서 충분히 많은 사람이 백신을 맞아 면역을 갖추면 병이 발병해도 걸린 사람만 앓고 끝나기 때문에 전염되지 않는다. 전염되지 않으니 유행할 수 없다. 이런 집단면역이 오랜 기간 유지되면 원인균 자체가 서식지를 잃고 결국 영원히 소멸된다

의학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신 성공을 거둔 지금, 뜻밖에도 네 가지 모순적인 현상이 관찰된다고 진단한다. 1) 점점 많은 의사가 자신의 직업에 환멸을 느끼고 있으며, 2) 대중은 갈수록 자신의 건강을 염려하고, 3) 의학의 테두리를 벗어난 대체의학의 인기는 점점 더 커지고, 4) 모든 국가에서 의료비 지출액이 끝 간 데 없이 치솟고 있다는 것이다. 대중, 의사, 국가 등 모든 주체가 불만족 상태에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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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우리 능력의 한계를 벗어나는 사건들이 덮쳐 올 때, 우리를 얼어붙게 하는 저 눈앞이 아득하고 말문이 막히며 귀가 먹먹한 혼미 상태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사실 불행의 충격이 극에 달했다고 하려면 온 영혼을 뒤흔들어 영혼으로부터 활동의 자유를 앗아 가야 할 것이다.

생생하고 불에 굽듯 최고조의 열광 상태에서는 탄식을 늘어놓고 생각을 펼쳐 놓을 수 없다. 그럴 때는 영혼이 깊은 상념에 짓눌리고, 육신은 사랑으로 녹초가 되어 기운이 쑥 빠져 버린다. 바로 그 때문에 때로 쾌락의 제단 바로 앞 계단에서, 그토록 시의적절치 않게 연인들을 덮치는 뜻밖의 침체가 야기되고, 극도로 뜨거운 열정의 힘이 오히려 그들을 얼어붙게 하는 것이다.

닥쳐올 일에 대해 우리는 전혀 힘을 쓸 수 없고, 심지어 지난 일에 대해서보다 더 속수무책이니, 사람들이 늘 미래의 일에만 급급한 것을 나무라며, 현재의 복을 붙들어 그것에 만족하라고 가르치는 이들은 인간의 과오 중 가장 보편적인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우리는 편안하게 제 집에 머무는 적이 없고 늘 저 너머로 나가 있다. 두려움, 욕망, 희망은 우리를 미래로 집어던지며, 지금 있는 것을 느끼고 생각하지 못하게 하며 앞으로 올 일, 심지어 우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의 일에까지 정신을 팔게 한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힘과 수단을 넘어서까지 책임질 수는 없다. 일의 결과나 이행은 완전히 우리 능력 밖의 것이고, 우리 능력 안에 있는 것은 정녕 우리의 의지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이 지켜야 할 의무의 모든 원칙들은 의지에 근거를 두고 세워진다.

사람들은 기억력과 이해력을 구별하지 못한다. 그것이 나를 훨씬 더 불리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것은 부당하다. 경험에 비춰 보면 오히려 빼어난 기억력이 한심한 판단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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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심으로 마음 아파하는 것은 만만하고 유순하며 무른 심정의 탓으로, 여자나 어린애, 그리고 속인들처럼 성품이 나약하기 그지없는 자들이 빠져든다. 하지만 눈물과 간청을 경멸하고 미덕이 지닌 성스러운 이미지에 대한 경외심으로만 마음을 바꾸는 것은 강력하고 완강한 영혼들이 하는 바로서, 이는 남성적이고 꿋꿋한 힘을 사랑하고 존중하기 때문이다.

확실히 인간이란 놀라우리만치 헛되고 가지가지이며 물결치듯 변화하는 존재이다. 인간에 대해 변함없이 일관된 판단을 내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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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2-08-05 13: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기 자신의 새로운 점에 놀라기도 하는 게 인간이지요.
어쩌면 죽을 때까지 자기 자신에 대해 다 알 수 없을 거란 생각을 해요.

겨울호랑이 2022-08-06 04:26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마치 인류가 지구 밖의 우주에 대해 모르는 것만큼 어쩌면 그 이상 잘 알지 못하는 바다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페크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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