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정부를 믿지 않는다. 새로운 현상도 아니다. 지배계급에 대한 절망은 지배계급 자체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그릇된 것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 ‘시대’, 즉 상황이며, ‘대인들’이 올바른 일을 한다고 믿을 수 있는 한 상황은 바뀔 수 있다. 대인들을 믿는 것말고 다른 방도는 없으며, 시대가 좋아지기를 기대해야 한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6장)에서 설명한 것처럼, 긍정적인 변화를 위한 조건은 두 가지가 있다. 포르투나fortuna, 즉 ‘운’이나 순조로운 상황이 결합되어야 하고 필요한 비르투virtu, 즉 이런 상황을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이나 기술을 갖춘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

오늘날의 병적 징후들은 앞선 수십 년간 이루어진 성장과 번영에 연결되어 있다. 대체로 현재의 불만은 환멸, 희망의 상실과 밀접히 관련되며, ‘담대한 희망’ 같은 슬로건으로도 희망을 되살리지는 못한다. 버락 오바마가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내세운 뒤 베스트셀러 저서의 제목으로 삼은 이 구절은 시카고의 목사 제러마이어 라이트가 한 설교에서 빌려온 것이다. 라이트는 영국 화가 조지 프레더릭 와츠가 그린 〈희망Hope〉(1886)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림 속 눈을 가린 여자는 허름한 옷차림으로 공 모양 위에 앉아서 현이 하나뿐인 리라의 희미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아무 희망도 없는 상황이지만 그 소리가 그나마 위안이 될지 모른다.

오늘날 ‘국제적인’ 것은 ‘인류’가 아니라 세계화된 시장이다. 그리하여 대기업과 소수 부자들이 세금을 피하기 위해 나라끼리 싸움을 붙이는 한편 노동조합을 약화시키고 정부 간섭을 비난하면서 밑바닥을 향한 경쟁을 부추긴다. 각국이 다른 나라에게서 투자를 빼앗아오기 위한 경쟁이다. 마틴 울프가 『파이낸셜타임스』 칼럼에서 쓴 것처럼, "자유주의의 국제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한 가지 이유를 들자면, 이 질서가 우리 사회의 사람들을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20

오늘날 우리는 그렇게 확신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며, 지옥이 바로 코앞에 다가온 것은 아니라고 여전히 희망을 품는다. 어쨌든 지난 여러 세기 동안 우리의 삶이 좋아졌다면, 그것은 바로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들,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 아무리 시대가 병들었어도 계속 끈질기게 싸움을 이어간 사람들 덕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