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보도를 쭉 이어가는 과정에서, 자연히 저널리스트로서 우리가 사건을 어떤 프레임으로 바라봐야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간단한 것, 명칭의 문제부터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간단하지 않을 수도 있는 문제죠.

국가에 대한 실망이 표출되는 과정에서 드러난 대표적인 레토릭이 ‘이게 나라냐’였지요. 이것은 국정개입 사건에 대한 문제제기였고, 헌법수호라는 프레임으로 넘어갔습니다. 동시에 ‘이게 나라냐’와 ‘헌법수호’라는 프레임 속에서 ‘세월호 7시간’이라는 프레임이 등장했습니다. 이번 사건의 주체들이라고 할 수 있는 광장, 언론, 헌재(헌법재판소), 특검 등 네 집단을 한번에 모두 연결하는 아주 강력한 프레임이었죠. 아시다시피 ‘세월호 7시간’이 탄핵 사유로 인용되지는 않았지만, 인용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그 네 주체에게 가장 큰 압력으로 작용했던 프레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린다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과정은 여러 세력 간에 일어난 프레임 싸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언론, 특히 방송뉴스의 경우 각 방송마다 보도의 논조나 방향성에서 스펙트럼이 다양했죠.

대통령 차량이 이동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건 좋아요. 그러면 그때는 다른 얘기를 해도 되거든요. 예를 들어 이동하는 장면은 자료화면처럼 보여주면서 오늘 일정이라든가 국정운영에 대해 대선 전에 밝혔던 대통령의 계획을 말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 식의 중요한 팩트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해야 하는데, 앵커가 기자한테 ‘저 경로를 택한 이유가 뭐냐’라고 물어보면 ‘직선으로 가까울 뿐 아니라, 경호실에서 여러차례 검증된 도로를 택하는 거다, 신호 조작을 해서 몇분 만에 도착한다’ 이런 쓸데없는 얘기를 해요.

대형 사고나 큰 이벤트가 생기면, 항상 취재윤리를 염두에 두고 취재를 해야 한다고요. 당시 용어가 없었을 뿐이지 ‘기레기’라고 비난받을 상황이었던 건 마찬가지죠. 또 이런 것도 있어요. 기레기라고 하면 자사의 이익, 혹은 권력이나 광고주를 위해 기사를 쓰는 거죠. 독자를 위해서 쓰는 게 아니라요.

독자들이 봤을 때 뭔가 문제가 있다 싶으면 진보언론이든 보수언론이든 상관없이 바로 ‘기레기’라는 소리가 나와요. 기레기라는 단어가 한국 언론 전체를 상징하는, 굉장히 보편적인 용어가 된 거예요.

저는 출입처 중심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기본적으로 어떤 사안이 불거지면 사실인지 확인부터 해야 하는데, 우리 출입처 시스템에서는 정당·정부부처에서 보도자료나 성명이 나오면 일단 무조건 써요. 거기에 대한 비판이나 반박이 있으면 그걸 또 쓰고요. 쓰고, 또 쓰고, 나중에 ‘공방’이라는 타이틀을 달아서 내버려요.

말씀하신 것처럼 대선과 얽힌 이해관계가 각 언론사와 기자에게 있는 거예요. 자기가 출입하는 정당, 부처가 잘되어야 자기가 잘되거든요.

그리고 정치부는 정보 보고가 무척 중요해요. ‘유능한 기자’는 ‘정보 보고를 잘하는 기자’라고 할 정도로, 기삿감이 되든 안 되든 데스크에 보고를 많이 할수록 좋은 점수를 받아요. 청와대·여당의 정보를 윗선에 보고하는 게 기자들에게 중요한 일이 되는 거죠. 공영방송사에서는 고위 간부들이 보고를 받지만 일반 신문사나 민영언론사에서는 사주가 보거든요. 그래서 KBS·MBC보다 SBS 기자들이 훨씬 정보 보고도 많이 하고 잘해요. 조·중·동의 정보 보고 능력은 대단하죠. 기자들이 고급 정보에 가장 깊숙이 들어갈 수 있으니까요.

청탁금지법을 강화할 필요는 있어요. 선거법을 위반하면 안 되니까 선거 때와 정권 초기에 몸을 사리고 있지만 기업 간부들의 접대는 아직 있고, 시간이 좀더 지나면 슬슬 구태가 다시 드러날 거라고 봅니다.

예전에는 신문 전체를 봤단 말이에요. 지금은 핸드폰으로 기사 하나만 보는 거예요. 그런데 전체 논조를 보려면 종이신문을 다 넘겨봐야 해요. 그러면 A면에 이런 기사가 실렸고 B면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고, 문재인은 이쪽에서 다루고 안희정이나 안철수는 저쪽 면에서 다루는 게 다 보이거든요. 그런데 인터넷에 특정 기사만 딱 올라오면 ‘어, 문재인 비판 기사인데 한겨레네. 이놈들 옛날 버릇 못 고치고 있어’라는 식으로 흘러가기 쉬워요.

한겨레·경향신문·오마이뉴스 기자들도 어느 순간 언론 기득권 체제에 순화되고 동화된 측면이 있어요. 출입처 체제에 굉장히 안주했잖아요.

‘우리 사회에 리영희 같은 기자가 없다, 젊은 기자들의 표상이 될 수 있는 기자가 없다’고 하죠. 손석희 씨는 조율을 굉장히 잘하고 공정함과 중립의 표상이기는 하지만 리영희 선생처럼 언론과 사회가 가야 할 비전을 제시하는 분은 아니잖아요.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난 건가요?

요즘 한겨레·경향신문·오마이뉴스 등 진보언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많이 커졌어요. 그중에서도 특히 한겨레에 집중되는 감이 있고요. 문제는 이 비판이 보수진영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같은 진영에서 같은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해왔던 독자·수용자들로부터 나오고 있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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