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3 - 사건, 정치, 인간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3
페르낭 브로델 지음, 임승휘.박윤덕 옮김 / 까치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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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들에 대한 콩종튀르(conjoncture)의 역사를 파악하기 위해서도 종종 구조(structure)의 더딘 역사를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을 이 기준이 되는 수면(水面)과 비교해야 한다(p446)... 더디게 움직이는 것과 빠르게 움직이는 것 사이를, 그리고 구조와 콩종튀르 사이를 분리하는 것은 여전히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논쟁의 한복판에 남아 있다... 결국 문제는 모순되는 연대기들을 조율하는 것이다. 콩종튀르에 따라서 국가와 문명들, 그 국가와 문명의 주역들, 그들의 한계와 의지들이 어떻게 부침했는가? 난세는 국가의 팽창에 유리한 것으로 보였다. 문명의 번성은 종종 경기가 하강하던 시기에 나타났다. 강대한 제국의 문명들이 자신을 과시한 시기는 거대한 해상제국들의 가을이었다. 이스탄불, 로마, 마드리드의 제국이 그러했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3>, p447


 페르낭 브로델 (Fernand Braudel, 1902 ~ 1985)의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3 - 사건, 정치, 인간 La Mediterranee a l'epoque de Philippe II vol.3>은 <지중해> 3부작의 마지막이면서, 구조-콩종튀르-사건의 가장 표면에 있는 역사를 그린다. 대중들에게 사건(event)로 기억되는 역사적 사실. 저자 브로델은 상세하게 이 시기의 역사적 사실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사실 보셀 화약(和約)의 체결은 로마의 입장에서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교황의 온갖 시도에도 불구하고 평화조약에 체결되었다는 소식은 빠르게 전파되었다. 협정이 깨어진 것은 어쨌든 교황 덕분이다. 아직 남아 있던 전쟁의 불씨가 이토록 신속하게, 그것도 단 한 사람에 의해서 다시 타올랐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는 거센의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개인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를 상기시켜준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3>, p62


 브로델이 그려낸 사건사에서 개인의 비중은 결코 작지 않다. 프랑스 발루아 왕조와 오스트리아-에스파냐의 합스부르크 왕조 간 화의를 내용으로 한 보셀 화약을 파기시킨 파울루스 4세 교황(Papa Paolo IV, 1476-1559)이나, 북유럽 저지대에서 수많은 전공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는 네덜란드 독립운동을 제압하지 못한 알바 공작(Gran Duque de Alba, 1507-1582), 레판토 해전을 승리로 이끈 돈 후안 데 아우스트리아(Don Juan de Austria, 1547-1578)의 경우는 개인의 의지, 능력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력이 결코 작지 않음을 잘 보여준다. 


 펠리페 2세는 이 계획에 동조했지만, 알바 공작은 예산 부족과 유럽의 상황을 이유로 반대하면서 국왕을 설득하는 데에 성공했다. 이 가짜 위인은 사실 소인배였고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만 공격할 줄 알았던 근시안적인 정치가였다. 그가 내린 총사면령은 너무 뒤늦은 조치였다. 결국 스코틀랜드 여왕은 잉글랜드로 망명했고 스코틀랜드는 프로테스탄트 국가가 되고 말았다. 끝으로 알바 공작은 불안한 잉글랜드를 공격하기는커녕, 결코 유리한 입장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협상이나 술책에 의존하려고 했다. 1569년, 먼 거리와 상황으로 인해서 사태를 책임졌던 것은 에스파냐 국왕이 아니라 신중한 알바 공작이었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3>, p206


 그럼에도 개인이 거둔 빛나는 승리는 두드러진 사건에만 머무르게 된다. 사건의 역사적 의미는 결국 콩종튀르나 구조에 의해 결정된다. 최후의 갤리선 간 해전이라는 레판토 해전(1571)에서 거둔 에스파냐-베네치아 연합함대가 거둔 것은 의심의 여지없는 완승(完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판토 해전의 의미가 과대평가되었다는 것은 레판토의 패전이 오스만 투르크 해군의 궤멸을 의미하거나 에스파냐의 우위가 확정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놀랍게도 이 예기치 않은 승리는, 1571년 10월 7일에 벌어졌다. 그러나 이듬해 동맹군은 모돈[메토네]에서 패퇴했다. 1573년에 재정이 바닥난 베네치아는 전쟁을 포기했다. 1574년 투르크는 라 굴레트와 튀니스에서 승리했다. 십자군의 모든 꿈은 이렇게 역풍을 맞아 산산조각이 났다. 그러나 우리가 사건들, 즉 빛나는 역사의 외피에만 집착하지 않는다면, 수천 가지의 새로운 현실이 팡파르 없이 조용히 나타나서 레판토 너머로 이어진다. 투르크의 마법은 깨졌다(p245)... 결국, 1574년의 승리 이후, 특히 1580년대 이후에 투르크의 대함대는 안으로부터 해체되었다. 1591년까지 지속되는 바다의 평화가 투르크 함대에게는 최악의 재앙이었다. 그 평화로 말미암아 투르크 함대는 항구에서 썩어나갈 것이었기 때문이다. 레판토 해전 하나가 이렇게 많은 결과들을 야기했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감이 있다. 그러나 레판토 해전은 분명히 이것들에 기여했다. 역사적 경험으로서 그 사건이 우리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아마도 "사건사(histoire evenementielle)"의 한계를 보여주는 두드러진 사례이기 때문일 것이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3>, p246


 단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레판토는 해전에서의 승리일 뿐이고, 육지로 둘러싸인 지중해라는 물의 세계에서 한 번의 승리로 대륙으로 길게 뻗은 투르크의 뿌리를 잘라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신성동맹의 운명은 로마에서만큼이나 빈에서,  폴란드의 새로운 수도인 바르샤바에서, 그리고 모스크바에서 결정되었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이 이 지상의 국경에서 공격을 받았다면...... 그렇지만 그런 일이 가능했겠는가? 결국 에스파냐는 필요한 만큼 오랫동안 철저하게 지중해에 개입할 수 없었다. 언제나 핵심은 거기에 있었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3>, p268


 중요한 것은 지중해의 양대 세력이 거의 같은 시기 서로의 시선을 각자 다른 방향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에스파냐 제국은 신대륙에서 얻어지는 막대한 금은과 함께 포르투갈 합병으로 인해 거대해진 대서양 영토로, 오스만 투르크는 발칸 반도로부터 시작되는 중부유럽으로의 확장과 아프리카-인도 항로에 관심을 가지면서 지중해는 더 이상 찾지 않은 평화로운 쇠퇴의 시기를 맞게 된다. 돈 후안의 빛나는 사건은 콩종튀르의 분기에서 전환점이 아닌 과정으로 전락되었던 것이다. 


 브로델은 <지중해> 3부작을 통해 역사의 거대한 흐름으로부터 인간이 만들어낸 작은 사건을 구조에서 보여준다. 역사를 만드는 것은 인간인가, 아니면 환경인가. <지중해>를 읽으면서 역사적 사건을 만들어 내는 것은 개인으로 현현한 시대정신(Zeitgeist)이지만, 그러한 시대정신을 만들어 내는 것은 말로 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수많은 요소의 합(合)임을 생각하게 된다...


 에스파냐가 지중해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투르크는 지중해에서 그들의 노력을 유지했을 것이다. 평화, 16세기 말의 준(準)평화는 서로가 적을 내버려둠으로써 성립되었다. 내 생각으로는 에스파냐가 북아프리카에서 기회를 놓쳤다면, 그것은 레판토 해전 이후 몇 년 동안이라기보다는 오히려 16세기 초였다. 당시에 에스파냐는 자신이 추구하지 않았던 아메리카를 획득했기 때문에, 아프리카 땅에서는 과거에 에스파냐의 "역사적" 임무라고 불렀던 것, 그리고 오늘날 한층 더 새로운 표현인 에스파냐의 "지리적" 임무를 저버리고 새로운 그라나다 전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일 것이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3>, p315


 이는 투르크의 강력한 전쟁을 전제로 하는가? 그런 정책은 존재한다. 술레이만 대제의 죽음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보는 이른바 쇠퇴는 잘못된 평가이다. 투르크는 막강한 세력으로 남아 있었고, 야만적이지 않고 오히려 잘 조직되고 훈련된 신중한 세력이었다. 투르크가 갑자기 지중해의 잘 알려진 땅들을 포기하고 동쪽으로 향했을지라도, 이것은 투르크가 "쇠퇴하고" 있음을 알리는 징조가 아니다. 투르크는 단지 운명을 따랐을 뿐이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3>, p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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