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2-2 - 집단적 운명과 전체적 움직임 - 하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3
페르낭 브로델 지음, 남종국.윤은주 옮김 / 까치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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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명이라는 존재 속에서 변화하는 것, 움직이는 것이 꼭 문명을 구성하는 전부도, 가장 좋은 면도 아니다. 결코 아니다. 문명 속에는 단기적인, 지속적인, 때로는 장기지속적인 콩종튀르와 구조가 있다. 하나의 문명이 다른 문명의 영역으로 의미 있는 침투를 하기 위해서는 의식적이든 의식적이지 않든 난폭한 무력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는, 혹은 역사의 사건들이 만드는 우연이라는 변수들만을 통해서는 가능하지 않다. 하나의 패턴이 처음부터 너무나 굳건하게 정해져 있었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2-2>, p516


 페르낭 브로델 (Fernand Braudel, 1902 ~ 1985)의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2-2 - 집단적 운명과 전체적 움직임 La Mediterranee a l'epoque de Philippe II vol.2>는 16세기 지중해 시대의 문명(文明 Civilisation)에 초점을 맞춘다. 앞선 2-1권에서는 시간적, 공간적 제약이 가져다 준 정치, 경제가 주제였다면, 2-2권에서는 그러한 정치, 경제체제의 결과물인 사회의 변화가 주제다.


 우리는 경제적 콩종튀르와 비경제적 콩종튀르를 분리해야만 한다. 후자 역시 시간의 길이에 따라서 측정되어야 하고, 위치가 정해져야 한다. 세기적인 트렌드와 유사한 것으로는 장기적인 인구 변동, 국가와 제국의 크기 변화, 한 사회에 존재하는 사회적 유동성의 유무, 산업 성장의 강도가 있다. 장기적인 콩종튀르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것은 산업화, 국가 재정, 전쟁 등이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2-2>, p713


 결과적으로 브로델은 본문을 통해 자연의 만들어낸 구조사(構造史)의 큰 흐름이 이미 결정적인 흐름을 만들어냈고, 이러한 흐름은 국면사((局面史)를 통해 사회의 모습을 만들어냈음을 말한다. 서로 다른 상황과 움직임 속에서 여러 계층, 집단은 저마다의 입장에서 각 상황에서는 최선의, 또는 그럴 수밖에 없는 선택을 한다. 다만, 부분의 최적화가 전체적인 최적화를 달성할 수 있는가는 다른 문제였고, 그에 따라 지중해의 역사 속에서 부르주아, 귀족, 왕, 유대인, 베네치아 등등의 세력은 흥망성쇠(興亡盛衰)를 거듭하며 당대의 시대상을 만들어왔다.


 문명은 번영의 시기 ,단기적으로 혼란을 가중시키는 창조의 시기, 경제적인 승리를 구가하는 시기, 단기적인 사회적 시련의 시기를 거치며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 그러나 토대는 그대로이다. 토대는 결코 파괴되지 않는다.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적어도 천 배는 더 견고하다. 문명이 천 번을 죽는다고 해도 토대는 견뎌낸다. 수세기 동안 단조로운 이동이 계속되지만, 전체적인 토대는 변하지 않는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2-2>, p540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2-2>에서 브로델의 결론은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는 더이상 세계의 중심, 세계의 바다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제조업에서의 주도권이 북유럽으로 넘어가고, 영국-에스파냐 전쟁(1585 ~ 16045) 이후 동지중해를 중심으로 교역이 다시 활성화되고 있었지만, 이미 콩종튀르(Conjoncture) 관점에서 분명 지중해는 활력을 잃고 있었다. 이 시기 지중해의 번영과 쇠퇴는 다른 중심지에 의해 종속되는 변수였다는 사실은 세계 패권(hegemony)를 둘러싼 전쟁은 대서양과 북유럽 플랑드르 지역에서 치뤄지고 있었으며, 지중해 연안국들은 이러한 흐름을 되돌릴 힘을 이미 상실했음이 브로델에 의해 상세하게 논증된다.


 전쟁은 없었다. 이것은 또한 지중해가 더 이상 전쟁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다는, 즉 전쟁비용을 치를 수 없었다는 증거였다... 전쟁은 만물의 아버지이고, 만물의 자식이며, 수많은 수원을 가진 강이고, 해안이 없는 바다였다. 전쟁은 모든 것의 창조자이지만, 평화 그 자체의 창조자는 아니었다(p700)... 이제 대전쟁은 대서양을 따라 북쪽과 서쪽으로 자리를 옮겼고, 전쟁의 거점은 세계의 심장이 뛰는 그곳에서 수세기 동안 머물렀다. 이러한 이동 자체가 지중해의 후퇴를 말해주었고, 두드러지게 보여주었으며, 확고하게 만들었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2-2>, p701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2-2>를 통해 우리는 '지중해의 황혼(黃昏)'을 보게 된다. 에스파냐의 칼레 해전 패배 이후 다시 돌아온 듯한 베네치아의 번영도, 유대인에 대해 적대적일 수밖에 없었던 에스파냐의 움직임도 이미 거대한 판 위에서 결정된 수에 불과했다. 이러한 구조적 움직임에 대한 고려가 없는 가정, 예를 들면 '에스파냐가 네덜란드에 자치권을 부여하고 제국을 유지했더라면 어떠했을까?'라는 물음은 마치 체스(Chess)에서 폰(pawn)이 여왕(queen)처럼 움직이는 것을 가정하는 것만큼 무의미할 것이다. 이제는 지중해에서 1권 구조사와 2권 국면사를 넘어 이제 마지막 사건사를 다룬 3권으로 넘어갈 차례다...


 문명의 첫 번째 실체가 경계를 설정하는 지리적 공간이라는 것 외에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문명은 공간이자 영역이다. 이때 공간이라는 말은 인류학자들이 양날도끼 혹은 깃이 달린 화살 지역이라고 말할 때에 사용하는 의미에서의 공간일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한계를 부여하지만 그 인간에 의해서 끝없이 변화하는 공간이기도 하다(p536)... 변화는 분명히 일어난다. 그러나 오랜 기간에 걸쳐 그 과정을 느낄 수도 없는 속도로 변화한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2-2>, p537


 이베리아 반도를 강타했던 곡물 위기로 인해서 이베리아 반도는 북유럽 국가들에게 막대한 양의 정화를 지불해야 했고, 이렇게 북유럽은 또다시 에스파냐의 "적이지만 꼭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이 대변동은 에스파냐, 베네치아, 피렌체, 심지어는 프랑스에서까지 가격 변동을 일으켰고, 교역량에도 영향을 미쳤다. 베네치아에서는 티에폴로 피사니 은행이 파산했다. 단기적인 위기, 경제생활의 극심한 혼란, 혼란의 전파와 변화무쌍한 성격이 지중해의 경제 변화의 새로운 지표가 될 것이다. _ 페르낭 브로델, <지중해 :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 2-2>, p714


느리고 강력한 하나의 근본적인 움직임이 1550년부터 1600년까지 지중해 사회를 조금씩 뒤틀고 변화시켰다. 그것은 길고 고통스러운 변신이었다. 점차 커져가는 사회 전반의 불안은 공공연한 반란으로만 드러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회의 모습 전체를 바꾸는 사회적 성격을 가지는 격변이었음에 틀림없다... 사회는 나날이 광대해지는 토지재산을 보유한 부유하고 강력한 대귀족 가문과 점점 더 늘어나는 대다수의 비참하고 가난한 사람들로 분명히 양극화되어가고 있었다. - P512

지중해라는 혼합의 영역 속에서 많은 문명 집단들이 번성했기 때문에 그 결과는 더욱 풍성했다. 한편으로는 문명 간의 교류와 새로운 요소의 유입이 다소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가운데에서도 각각의 집단들은 독자성을 유지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낭만파 작가들이 오리엔트의 항구를 그릴 때와 같은 분위기의 너무나도 혼잡한 항구들에서 문명들은 서로 뒤섞였다. - P523

주는 자가 지배한다. 베풂의 이론은 개인이나 사회뿐만 아니라 문명에 대해서도 적용될 수 있다. 베풂은 장기적으로는 궁핍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러나 베풂이 계속되는 한, 그것은 우위의 표지가 된다. - P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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