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들들아, 인간은 그 금단의 열매를 맛본 이래 우리들 중의 하나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되었도다. 그러나 그들로 하여금 잃은 선과 얻은 악의 지식을 자랑케 하라... 이제 한층 대담해진 그 손이 생명나무에도 뻗쳐 그 열매 따 먹고 영원히 살 수 있지 못하도록 적어도 그렇게 망상하지 못하도록 그를 낙원에서 쫓아내어 그가 태어난 땅, 그 적합한 흙을 갈아먹도록 명령하노라."(제 11편 84 ~ 98)


 "O sons, like one of us man is become 

  To know both good and evil, since his taste 

  Of that defended fruit ; but let him boast

  His knowledge of good lost, and evil got...

  Lest therefore his now bolder hand

  Reach also of the tree of life, and eat,

  And live forever, dream at least to live

  Forever, to remove him I decree,

  And send him from the garden forth to till

  The ground whence he was taken, fitter soil.


 존 밀턴(John Milton, 1608 ~ 1674)의 <실락원 Paradise Lost>에는 인간들이 에덴 동산에서 쫒겨나 노동과 함께 할 것을 명령받는 장면을 위와 같이 묘사되고 있다. 이처럼 노동(勞動)은 태초부터 인류와 함께 하면서 문명(文命)을 만들어왔지만, 이제 우리는 노동과 이별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노동 없는 세계는 과학자, 엔지니어, 기업주들에게는 고되고 정신 없는 반복적인 작업으로부터 인간이 해방되는 역사상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대량 실업, 전세계적인 빈곤, 사회적 불안과 격변이라는 우울한 미래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의 의견이 일치하는 지점이 있다. 그것은 제조와 서비스 제공 과정에 있어서 기계가 인간 노동을 대체하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다는 것이다.(p31) <노동의 종말> 中  


 우리는 지금 세계 시장과 생산 자동화라는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거의 노동자 없는 경제로 향한 길이 시야에 들어 오고 있다... 노동의 종말은 문면화에 사형 선고를 내릴 수도 있다. 동시에 노동의 종말은 새로운 사회 변혁과 인간 정신의 재탄생의 신호일 수도 있다.(p375) <노동의 종말> 中


 <노동의 종말 The End of Work>를 통해서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 1945 ~ )은 1994년에 이미 자동화된 기계에 의한 인간 노동이 소외된 현실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은 이미 우리 주변에서 보편화 되고 있는 인공지능(AI)의 도입 등으로 현실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최근 인공지능이 의사자격시험에 높은 점수로 합격하면서, 인공지능의사에 의한 진료는 가까운 미래가 된 듯 하다.

 

2017년 한 해 동안 중국에서 인공지능(AI)의 상업화가 폭발적으로 이뤄졌다. 의료와 인공지능의 결합은 다양한 기업을 끌어들였다. '빅3'인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는  물론 아이플라이텍과 뉴소프트도 전국 각지에서 기반을 다졌다. 의료 인공지능과 스마트병원에 기대치가 높다. 의료서비스 개선을 넘어 전체 의료체계를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p62) <Economy Insight> 3월호 '중국의 스마트병원 구축 열풍'  中


 인간의 노동이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되는 세상은 이미 1994년에 저자 리프킨에 의해 예견되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는 자동화로 인한 인간 소외, 노동 소외의 문제가 제기 되고 있다. 미래의 노동 없는 세계가 <노동의 종말>의 주제다. 


 우리는 이미 제3차 산업 혁명과 거의 노동력이 필요 없는 세계로의 역사적 전환을 경험하고 있다. 실리콘에 기초한 새로운 문명화에로의 길을 열어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해결되지 않은 과제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이로부터 소외될 것이고, 이들 앞에는 과연 어떤 세계가 펼쳐질 것인가라는 문제이다.(p369) <노동의 종말> 中


 그렇지만, 노동에 있어 인간 소외 문제의 기원은 이보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칼 맑스(Karl Heinrich Marx, 1818 ~ 1883)는 그의 저서 <1844년의 경제학 철학 초고 Okonomisch-philosophische Manuskripte aus dem Jahre. 1844>를 통해서 소외된 노동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맑스는 노동을 인간임을 나타내고 사회를 형성하기 위한 본질적인 생명활동이라고 규정(출처 : 맑스 사전)한다. 문제는 노동자들의 생명활동의 결과인 생산물이 자신이 아닌 자본가에게 속하는 것에서 발생하며, 이로인해 노동자들의 소외가 발생하게 된다고 맑스는 해석하고 있다.  

 

인간은 다름아닌 대상적 세계의 가공 속에서 비로소 현실적으로 자신을 유적 존재로서 증명한다. 이 생산은 그의 활동적인 유적 생활이다. 이 생산에 의하여 자연은 인간의 작품으로서 그리고 인간의 현실로서 나타난다. 따라서 노동의 대상은 인간의 유적 생활의 대상화이다.... 따라서 소외된 노동은 인간에게서 그의 생산의 대상을 빼앗음으로써 그의 유적 생활, 그의 현실적인 유적 대상성을 빼앗고, 동물에 대한 그의 장점을 단점으로 변화시켜 그의 비유기적 몸, 즉 자연이 그에게서 떨어져 나가게 된다. 마찬가지로 소외된 노동은 자기 활동, 자유로운 활동을 수단으로 격하시킴으로써 인간의 유적 생활을 그의 육체적 실존을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 버린다.(p79) <1844년의 경제학 철학 초고> 中


 노동자는 자신의 생명을 대상 속으로 불어넣는다; 그러나 그 생명은 이제 더 이상 그에게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게 귀속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활동이 더 크면 클수록 노동자에게는 더욱더 대상이 없게 된다.(p73)... 그의 생산물 속에서의 노동자의 외화가 지니는 의미는 그의 노동이 하나의 대상, 하나의 외적 실존으로 된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의 노동이 그의 외부에, 그로부터 독립되어, 그에게 낯설게 실존하며, 그에게 적대적이고 낯설게 대립한다는 것이기도 하다.(p74) <1844년의 경제학 철학 초고> 中

 

 노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비단 맑스주의자들에게 한정된 문제는 아니다. 6세기 초 이탈리아의 누르시아 성 베네딕트(St.Benedict of Nursia ; AD 480 ? ~ AD 543) 역시 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베네딕트 수도원의 수도승들은 영웅적인 단식이나 기묘한 형태의 자학적인 고행을 하도록 요구되지 않았으나, 청빈과 순결 그리고 복종의 이상에 따라 매우 규율이 엄격한 삶이 영위하여야 했다... 베네딕트의 계율은 수도승으로 하여금 매일매일을 노동과 기도로 보내도록 규정하였다. 게으름을 방지하기 위해 수도승은 매일 여러 시간 육체 노동을 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처음부터 대부분의 힘든 밭일은 예능(villein ; serf)에게 맡겨졌음이 분명하다.(p112) <서양 중세사> 中


 이처럼 노동은 단순히 고된 작업이상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에,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은 우리에게 희망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렇다면, 노동이 없는 미래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노동의 종말>에서는 이에 대한 해답을 독립된 소규모의 공동체로 운영된 베네딕트 수도원으로부터 찾고 있는 듯하다.


 수도원 행정은 "수도원의 가장 家長"인 수도원장이 떠맡았다. 각 수도원은 수도승들의 생활을 유지하는 데 충분한 토지를 기증받고 있었다. 이처럼 베네딕트 수도원은 주변의 사회가 아무리 크게 붕괴된다 하더라도, 자체의 질서잡힌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자급자족적이고 독자적인 공동체가 되었다.(p112) <서양 중세사> 中


 미국 정치에는 공동체에 기반을 둔 강력한 제3의 힘의 토대가 이미 존재하고 있다. 근대에 접어들면서 공공 부문과 사적 부문에만 협소하게 주의가 집중되었지만 미국인의 생활에는 제3부문이 존재하고 있다.(p315).. 제3부문은 공동체 연대가 금전적 장치를 대체하고 <자신의 시간을 남에게 주는 것>이 자신과 자신의 서비스를 타인에게 판매하는 데 근거한 인위적인 시장 관계를 대체하는 영역이다... 제3부문의 부흥 및 변형 가능성과 이것을 활기찬 탈시장 시대의 창조를 위한 견인차로 이용할 가능성을 신중하게 탐색하여야 한다.(p316)<노동의 종말> 中


 제3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재난은 수백만의 노동자들이 보다 효과적이고 수익성 있는 기계에 의해 대체됨으로써 막을 올리기 시작하고 있다... 제3부분은 좌절하고 있는 수많은 실업 대중들에게 희망의 빛이 되고 있다. 민주주의의 참가 정신의 점화 및 공동체 의식의 재건 노력은 탈시장 시대에 있어서 독립 부문이 변혁의 주체로서 성공할 것인지의 여부를 상당 정도 결정할 것이다.(p368)<노동의 종말> 中


 

<노동의 종말>에서는 공적 부문, 사적 부문을 대체하는 제3부문의 공동체 연대를 통해 노동 없는 세상을 대비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노동의 종말>을 통해 제안된 공동체 연대는 이후 저작들인 <소유의 종말>을 통해 공유(共有)경제를, <3차 산업혁명>을 통해서는 원자력과 석유 에너지를 대체하는 소규모 태양 에너지 발전으로 논의가 확대되어 간다. 비록 지금은 여러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지만, 우리 나라에도 소규모 태양광 발전 사업이 진행되는 것을 보면, 리프킨의 전망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관련기사 : 소규모 태양광 발전 사업자를 위한 변명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85894


 사회적으로는 노동 없는 사회를 소규모 공동체가 주축이 된 제3부문의 활성화를 통해 극복할 것을 <노동의 종말>에서는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미래를 개별 노동자들은 어떻게 대응해야할 것인가. 유례없는 장기 호황 속에서 자동화되지 못한 영역에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독일 수공업자들의 모습 속에서 <노동의 종말> 시대를 대처할 노동자들의 대응책을 찾을 수 있을 듯 하다. <Economy Insight> 의 해당 기사를 마지막으로 노동없는 미래에 대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18세기 1차 산업혁명은 수공업에서 대규모 기계공업으로 산업의 기초를 전환했다. 기술혁신으로 생산양식의 기계화가 급속히 진행되며 수공업자들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세기를 뛰어넘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은 지금 수공업자들이 뜨고 있다면 말장난처럼 들리겠지만 독일에서는 엄연한 현실이다.. 독일의 장기 호황을 등에 업은 건설업을 중심으로 업종마다 수공업자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일감을 주는 쪽이 일감을 받는 수공업자의 번호표를 받고 대기하는 진풍경도 연출된다.(p16)... 독일 수공업계가 요즘 최고 호황기를 누리지만, 전문가들은 디지털 기술을 수공업에 접목해 더 효율적인 작업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p20) <Economy Insight> 3월호 '산업의 역주행' 수공업자 전성시대 中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4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다이제스터 2018-03-21 2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태초의 노동과 현재의 노동 성격이 같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용의 노동과 거래의 노동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태초의 노동이 아닌 현재의 노동 종말에 쌍수를 들고 환영합니다. ㅋㅋ

겨울호랑이 2018-03-21 23:05   좋아요 1 | URL
^^:) 북다이제스터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노동시장에서 노동의 가치는 정당하게 평가받고 있지 못한 현실을 생각하면 ‘노동의 종말‘은 해피엔딩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에 ‘호모 루덴스‘수준의 노동을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 같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3-21 23:11   좋아요 1 | URL
호모 루덴스 수준이 절대 불가능 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 같습니다. ^^

2018-03-21 2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21 2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bookholic 2018-03-23 0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동없는 미래에 대한 해결책으로 기본소득은 어떨런지요?

겨울호랑이 2018-03-23 07:07   좋아요 0 | URL
네 bookholic님 말씀처럼 기본소득도 노동 없는 미래를 살아가는 또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다만, 현재 적용되는 것처럼 많은 복지 혜택이 폐지된다면 나이가 많이 든 후에도 노동을 해야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드네요... 이러한 상황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다른 면에서 우리가 삶의 보람을 찾을 수 있다면 기본소득은 좋은 방안 중 하나라 생각됩니다^^:)

나와같다면 2018-03-25 00: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이 생각하시는 키워드랑 저랑 겹치네요. 토지 공개념. 노동..

이번 개헌안에서 ‘근로의 의무‘ 삭제하고 ‘노동은 의무가 아닌 권리‘ 라는 문구를 넣는 부분에 대해서 뭉클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3-24 23:15   좋아요 2 | URL
^^:) 사회문제에 많은 관심이 있으신 나와같다면님과 키워드가 같다니, 영광입니다. 대통령이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지만,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음을 요즘 느끼고 있습니다. 조금은 살기 좋은 사회가 되었고, 되어가고 있음도 함께 느낍니다.

雨香 2018-03-27 10: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레미 리프킨에 대한 비판도 많이 들었고, 그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사회를 읽어내는 그의 혜안에는 항상 감탄하고 있습니다.
˝<노동의 종말>에서는 공적 부문, 사적 부문을 대체하는 제3부문의 공동체 연대를 통해 노동 없는 세상을 대비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노동의 종말>을 통해 제안된 공동체 연대는 이후 저작들인 <소유의 종말>을 통해 공유(共有)경제를, <3차 산업혁명>을 통해서는 원자력과 석유 에너지를 대체하는 소규모 태양 에너지 발전으로 논의가 확대되어 간다. ˝라고 리프킨의 사상을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노동이 삶의 필요조건이 된 산업사회에서 노동없는 사회는 어떻게 될지 막막합니다. 인간소외에 대해 고민없이 단순히 효율만을 사회에서 이제 세상을 바꾸나 생각합니다만, 아침마다 직장에서 마주하는 경제신문과 보수신문들은 1면부터 현정권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입니다. ㅠㅠ

겨울호랑이 2018-03-27 11:22   좋아요 2 | URL
예전에는 제레미 리프킨을 언론에서 띄우는 미래학자 중 한 명으로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엔트로피>(1984) 이후 최근 <한계비용 제로 사회>(2014)까지 30년 동안 큰 줄기를 가지고 우리의 갈 길을 제시하는 것을 보면서 많이 놀랐습니다. 많은 미래 전망서가 금리변동, 트렌드의 변화 등을 통해 한탕주의 식으로 사회를 설명하는 것에 비하면, 논조와 내용이 설득력있게 다가와 요즘 정리하고 있습니다... 우향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소위 보수 언론들의 프레임 만들기가 요즘 더 심해진 듯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와는 달리 시민들이 많이 깨어 있어서 거를 것을 거르고 수용하고 있는 요즘이라 희망 또한 같이 느끼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