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인류가 한 무리로 머물러 있을 수 없듯이 매한가지로 전 인류가 단 하나의 언어를 유지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다양한 민족 언어의 형성이 이루어진다...동물이 단지 자기 땅과 자신들의 비교적 협소한 영역만을 가질 수 있음으로 인해, 인간은 지구 어디에서나 거주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 지구의 거주자는 지구 어디에서나 관찰되며 이렇게 되면, 그의 언어는 또한 지구의 언어가 되고, 모든 새로운 세계에는 새로운 언어가, 모든 민족에게는 민족의 언어가 있게 된다.'(p154) 요한 고트프리트 폰 헤르더 (Johann Gottfried von Herder, 1744 ~ 1803)<언어의 기원에 대하여> - 제 3 자연법칙 中 -
우리가 이처럼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지고 있기에 외국어(특히 영어) 공부를 초등학교부터 시작해서 사회인이 되어서까지 해왔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10년 이상의 시간을 영어 공부를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영어를 편하게 구사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예전보다 영어 실력은 좋아졌다고 하지만, 사교육 私敎育에 들어간 비용 대비 효과를 생각한다면 예전보다 썩 좋아진 것 같지 않다. 영어 공부는 우리에게 왜 이렇게 힘든 것일까? 이번 페이퍼에서는 최근에 읽은 외국어 학습 관련 서적을 통해 한국인이 영어를 배울 때 겪는 어려움과 학습법에 대해 생각해보려 한다.
<플루언트>에서 저자는 한국인이 영어를 배울 때 겪는 어려움을 다음과 같은 5가지 요인으로 정리하고 있다. 영어는 한국어와 언어 言語의 차이를 가지며, 영문화와 한국 문화의 문화 文化의 차이에 의해서 우리는 영어를 배울 때 어려움을 겪게 된다. 언어를 잘 한다는 것은 언어안에 포함된 문화를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인이 영어를 배울 때 가장 큰 걸림돌 5가지를 분석해 보았다. 다시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첫째, 한국인과 미국인은 생각의 순서가 반대다. 미국인은 작은 것에서 크 것 순으로, 한국인은 큰 것에서 작은 것 순으로 생각한다. 둘째, 한국어에 비해서 영어는 빌트인된 뉘앙스 숫자가 너무나 적어서 단어를 꼬아 모자라는 표현을 보중한다. 셋째, 한국어 단어는 직관적이고 영어 단어는 추상적이다. 넷째, 영어는 주어의 선택이 제한적이고 동사가 방향을 결정한다. 다섯째, 영어 단어는 같은 단어라 해도 그 모양이 여러 가지다.'(p111)
'언어를 진정으로 마스터 했다는 것은 그 언어가 내포한 인생관과 철학을 이해하는 것이다. 철학은 개념을 정리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차원 높은 대화를 하면 굳이 염두에 두지 않아도 철학적인 단어가 툭툭 튀어나오는 것이다.'(p285)
한편, 다른 책에서는 영어 문장을 이해하는 방법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플루언트>는 Top- Down 방식으로 접근한다면, <대한민국 영어교육이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진실>에서는 Bottom-up 방식의 학습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영어를 한국어에 맞춰 해석하지 말고, 언어 그대로 받아들일 것을 말한다.
'자, 영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정리해 보자.
1. 영어는 주어에서부터 확장되는 단어 순서대로 이해한다.
2. 영어는 주어에서부터 확장되는 단어 순서대로 펼쳐지는 그림이다.
이 두 가지가 "문법 없이, 암기 없이 바로바로 말 만들 줄 아는 영어"의 절대 핵심이다.'(p128)
'우리는 너무나 완벽을 꾀하는 공부를 해온 것이 문제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영어를 대했으면 한다. 이것이 바로 원어민이 영어를 통해 새로운 것을 배워나가는 방법이다... 우리도 이렇게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영어를 배워야 한다.'(p229)
두 권의 책에서 말하는 바를 종합해보면, 언어는 문화의 소산 所産이기 때문에 이러한 차이를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을 조언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의 영어 학습 경향인지는 모르겠지만, 공통적으로 두 책 모두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발음 pronunciation은 별로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외국 악센트가 있는 사람은 그 나라의 매너를 조금 어겨도 용서가 되지만 그 나라 언어의 발음을 마스터 한 사람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모든 문화적, 관용적 태도까지 마스터 했을 것으로 보고 만약 사소한 문화적 행동이나 매너라도 어기면 무례하거나 의도적으로 그랬을 것으로 여겨 적대감을 갖게 된다.'(p48)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왔던 발음 문제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자. 발음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지금까지 해왔던 학습법을 생각하면 다소 생소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 문제를 외국인과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쉽게 이해된다. 어떤 외국인을 만났을 때, 그가 서툰 한국어를 말하다가 갑자기 다음과 같이 <상춘곡 賞春曲>을 읊는다고 상상해보자. 그런 경우에 우리는 그의 한국어 발음을 비웃을 것인가. 나는 그의 한국어를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그를 다시 볼 것 같다. 같은 기준으로 외국인들 역시 우리의 영어 실력을 평가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는 보다 근원적인 것으로 우리의 학습법을 바꿔야할 이유를 한 가지 더 가지게 된다.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 두 책에서는 외우기보다 이미지 image 를 통해 학습하는 방법, 유사 어휘를 활용한 학습법 등을 효과적인 학습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책에서 제시한 이러한 방법들은 분명 언어를 공부할 때 장점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내용이 마음에 크게 와닿지는 않는다. 외국어 학습법의 책이 대동소이 大同小異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보다 근원적인 문제를 내가 찾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내게 있어 문제는 외국어 학습 동기 incentive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된다. 영어를 공부하는 상황이 나의 선택이라기보다는 해야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나의 마음이 멀어졌고, 그래서 영어 공부를 부담스럽게 느꼈던 것은 아니었는지. 최근에는 영어를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다. 번역본과 영문본을 같이 보고 있는데, 병행해서 읽다보니 시간은 다소 걸리지만, 두 가지 면에서 장점이 있다고 생각된다. 첫 번째 장점은 저자의 의도를 보다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다. 일례로 아담 스미스(Adam Smith, 1723 ~ 1790)의 <국부론 Wealth of Nations> 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보이지 않는 손'이 언급된 단락을 살펴보자.
'사실 그는, 일반적으로 말해서, 공공의 이익(public interest)을 증진시키려고 의도하지도 않고, 공공의 이익을 그가 얼마나 촉진하는지도 모른다. 외국 노동보다 본국 노동의 유지를 선호하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고, 노동 생산물이 최대의 가치를 갖도록 그 노동을 이끈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이익(gain)을 위해서다. 이 경우 그는, 다른 많은 경우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손(an invisible hand)에 이끌려서 그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p552)
'He generally, indeed, neither intends to promote the publick interest, nor knows how much he is promoting it. By preferring the support of domestick to that of foreign industry, he intends only his own security ; and by directing that industry in such a manner as its produce may be of the greatest value, he intends only his own gain, and he is in this, as in many other cases, led by an invisible hand to promote an end which was no part of his intention'(p292)
한국어 번역본은 우리에게 모국어임에도 불구하고, 용어가 생소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런 경우 원서를 옆에 두고 함께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영어로 쓰여진 단락은 상대적으로 쉬운 표현이 사용되게, 외국어임에도 때로는 영어 원서가 이해를 돕는다고 생각된다. 두 번째로 원문 표현에 대한 호기심을 해소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영어로 쓰여진 작품의 멋진 표현이 궁금해서 영어책을 읽는다면 우리의 영어 실력은 저절로 늘지 않을까.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 ~ 1616)의 비극 < 리어왕 King Lear> 중 일부를 번역본과 현대 영어로 풀이된 단락을 살펴보자.
'이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짓이 아닌가. 나쁜 운명에 처할 때, 그것은 대개 우리 자신의 행동이 지나친 탓이건만, 그 재난을 해나 달, 별의 탓으로 돌리다니. 마치 우리가 필연에 의해 악당이 되고, 하늘의 뜻에 의해 바보가 되며...'(p35)
'This is a classic example if the idiocy of the world : when we're down and out - often because of our own excesses -we put all the blame on the sun, the moon, ans the stars, as if they forced us, to be bad, or the heavens compelled us to be villainous or stupid.'(p37)
자신이 멋지게 생각되는 표현을 찾아보고 수 차례 읽다보면 머리와 가슴 깊이 남게 되고, 그런 과정을 통해 내 것이 되어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장점을 스스로 느끼게 되니, 보다 편하게 영어를 대하게 된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영어뿐 아니라 다른 언어도 마찬가지라 생각된다. 정말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영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찾아내는 것이라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영어 학습법에 관한 책을 이외에도 여러권을 읽었지만, 가슴에 크게 와닿지 않았던 것은 '내가 왜 영어 공부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해서가 아닐까. 최근 읽은 영어 학습법에 관한 책을 덮으면서 내게 필요한 것은 '영어 공부의 왕도 王道'가 아니라 '영어를 배워야 하는 목적 目的'임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학습법은 그 다음 과제로 넘겨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