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7월 25일 - 29일 충북 영동 인근노근리 마을로 가는 쌍굴다리에서 미군 제7기갑여단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이 발생한다. 사망자는 약 400여명. 인근 마을 주민이 500-600명 중 일부만 살아남은 그 날의 기록이다.
「그 여름날의 기억」은 한국 전쟁 이후 신속하게 도망간 이승만 정부의 모습과 보도연맹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무기력한 정부와 극심한 혼란 속에서 7월 23일 미군이 임계리로 들어온다.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 국민들한테 서울을 사수하자고 그처럼 떠들던 정부가, 국민들 몰래 서울을 버리고 도망쳐 왔단 말인가. 겨우 사흘밖에 버티지 못하고 서울을 적 앞에다 내던진 무책임한 정부. 겨우 그런 정부에게 속고 버림받은 불쌍한 국민들...‘(p55)
주민들은 정부에 대한 배신감을 느꼈지만, 마을로 들어온 미군들에의해 주민들은 강제로 피난하게 된다. 공산주의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주민들과는 달리 미 제1기갑사단과 제25보병사단은 피난민 속에 적이 있을지 모르니, 모든 피난민을 적으로 간주해 ‘총격‘을 가하라는 명령을 이미 받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 가운데 누구도 공산주의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었다.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없이 고루 나눠 갖고, 고루 잘 살게 해 주는 나라를 만드는 게 공산주의라는 것이 그이들이 아는 전부였다.‘(p91)
사흘 동안 계속된 총격, 폭격과 기총소사 후 미군은 살아남은 일부 생존자를 치료해 주지만, 노근리 굴다리에서의 학살은 계속 되었다. 정작 굴다리에서 생존자들을 구출해 준 것은 그들이 그토록 피해가고자 했던 ‘인민군‘이었다.
‘군의관들은 창자가 들여다보일만큼 살점이 뭉텅 떨어져 나간 아내의 오른쪽 옆구리를 꿰매고 수액을 꽂아 주었다... 한 쪽에서는 죽이고, 다른 한 쪽에서는 치료해주는 이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자들인가? 두 얼굴을 한 이방인들.‘(p514)
「그 여름날의 기억」은 3일 동안 일어난 한국전쟁의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그 안에는 한국현대사가 담겨 있다. 노근리 사건속에 그려진 무책임한 정부, 미군문제, 민간인 학살과 피해 등의 문제는 지금도 우리와 연관된 문제다. 위안부 문제, 제주 4.3 사건, 보도연맹사건, 베트남 파병, 5.18민주화 운동, 6.10 민주화 항쟁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흐름. 그 일련의 흐름속에서 우리는 때로는 가해자로, 때로는 피해자로 살아왔다.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는 이런 역사 문제에 대한 해결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현대사의 문제 해결은 이에 대한 ‘응시‘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너무 가슴아프지만, 상처를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과거의 상처를 치유할 수 없으리라.
2017년 5월 18일.
「5.18 기념식」에서의 대통령 연설을 통해 해결되지 않은 현대사의 상처 치유에 대한 희망을 품어본다. 마지막으로 노근리에서 숨져간 모든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편안한 안식을 기원하며, 이번 리뷰를 마친다.
ps. 「그 여름날의 기억」은 흑백채색의 만화책이라 가독성이 좋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