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19단을 외우는 것이 coding 교육과 함께 유행하는 것 같다.

 이러한 유행의 배경은 인도 사람들이 IT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이 수학을 잘 하기 때문이라는 일반의 인식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교육학자 중 일부에 의해 인도인들이 9 * 9단이 아니라 19 * 19단을 외운다는 사실에 주목한 이들에 의해 주도된 흐름이라 생각된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외우는 것을 피하다보니, 머리가 많이 녹슨 것 같은 생각이 들어(딱히 녹슬 머리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19 * 19단을 외워볼까하는 마음에 19*19단을 출력해서 쳐다보지만, 상당한 압박감이 든다. 참고로 나는 10 * 10단까지는 외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님에도, 19 * 19단을 외울 생각을 하니 마음이 답답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예전에 9 * 9단을 외웠음에도 이러한 마음이 드는 것은 내가 외우고 있는 영역(9 * 9단)이 19 * 19단의 25%에 불과하기 때문인 것도 한 몫을 하는 것 같다. ([그림]의 붉은 색으로 표시한 영역이 9 * 9단 영역이다.)


[그림] 19 * 19단 (출처 : 디딤돌 수학) 


19 * 19단만을 놓고 생각해보자.

예전 국민학교(초등학교) 2학년 때 구구단을 외우는 것만으로도 꽤 진땀을 흘렸던 것을 생각해보면, 19 * 19단을 외워야 하는 지금 우리 아이들은 내가 어렸을 때보다 대략 4배 정도의 부담을 지고 있는 것 같다. 당시에도 주입식 교육의 폐해를 이야기했었는데, 30년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이러한 문제는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더 큰 부담을 아이들에게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론 남들이 할 때 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걱정이 드는 것이 부모 마음이라는 것을 나 역시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 전에 우리 아이들이 기존 세대보다 많은 부담을 가지고 있는 것 또한 객관적 사실이다. 이렇게 많은 부담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에게 더 많은 장난감을 사주고, 더 맛있는 음식을 사준다것만으로 우리가 부모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것만으로는 우리가 아이들에게 큰 부담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합리화시킬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보다는 우리가 우리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공감하는 것부터 시작해야할 것이다. 우리 자신은 퇴근 후 TV 앞에서 프로야구를 보면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을 것을 요구한다면 많은 부담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부모에게 어려움을 상의할 수 있을까. 보다 우리 아이들의 진로를 걱정한다면 이들이 피아노를 연주하기 위해, 영어 단어를 외우기 위해 얼마나 고생하는지 먼저 우리 자신이 함께 하면서 그 어려움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직접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지 않더라도 약간이라도 아이들과 함께 해본다면 우리는 아이들의 어려움과 문제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해보면, 아이들의 부족함에 대해 일방적으로 요구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아이들이 그러한 부담을 가지고 있다는 공감대 속에서, 왜 공부해야하는지, 왜 외워야 하는지 등에 대해 아이들에게 설명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소위 말하는 '부모의 인문학'이 아닐까. 우리 모두는 아이들과 함께 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도무지 잘 안외워지는 19*19단을 보며 요즘 아이들의 부담과 함께, 부모로서의 역할을 돌아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PS. 일반적으로 아이의 외모가 아빠, 엄마 닮았다고 했을 때는 그렇게 기뻐하면서, 공부하는 것은 엄마, 아빠 닮았다고 하면 왜 그렇게 싫어들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연의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연의가 공부에 어려움을 느낀다면 머리가 아빠를 닮았기 때문이고, 공부를 잘 한다면 엄마를 닮았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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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8 1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18 1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4-18 11: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기억력 향상을 위해서 19X19단을 외우게 하는 걸까요? 미혼이지만, 저걸 배우면서 힘들어하고 있을 아이들의 심정이 이해됩니다. 자녀에게 공부해야 할 이유를 가르치는 것이 좋지만,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알려주는 부모의 역할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겨울호랑이 2017-04-18 11:44   좋아요 2 | URL
^^: cyrus님의 좋은 지적을 해주셨네요. 직장에서도 유능한 상사는 업무 지시에서 방향을 제시해주는 반면, 무능한 상사는 별 말없이 toss해 주지요. 아마 우리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은 우리가 잘 모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먼저 부모의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어느 분야를 좋아하고 소질이 있는지를 안 후에 축구팀 감독처럼 같이 햇볕 아래서 공을 차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cyrus 2017-04-18 11:55   좋아요 2 | URL
부모도 직접 공부를 하다 보면, 공부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게 될 겁니다. 그러면 공부하는 아이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고, 더 나아가서 ‘공부해야 할 이유’와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까지 알게 됩니다. ^^

겨울호랑이 2017-04-18 12:14   좋아요 1 | URL
^^: 죽을 때까지 배워야하는데 쉽지 않은 건 사실이에요.ㅋ

2017-04-18 1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18 1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립간 2017-04-18 12: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제 아이를 비유할 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파란색, 안해는 빨간색, 아이는 보라색. ; 성격도 그렇고, 공부 성향도 그렇고. 저는 큰 테두리만 만들어주고, 그 안에서 알아서 하라고 하죠.

19단의 경우도 외우겠냐고 물으니, 싫다고 하더군요. 동기가 생기면 외우라고 했죠. 저는 외우지 않았지만, 아이에게 충분한 자발적 동기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겨울호랑이 2017-04-18 12: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네 마립간님 말씀처럼 아이들이 자신만의 색깔로 인생을 칠하게 하는 것이 어린 시절의 교육이라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이 성장해 가면서 자신만의 스케치도 하겠지요.. 저같은 성인도 뒤늦게 19단을 외워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스스로 할 가능성은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때까지 부모들은 충분히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주는 것‘이 필요하겠지요. 부모의 공부는 이 부분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커피소년 2017-04-18 15: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평소 겨울호랑이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공부를 잘 한다면 아빠를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더군요. 공부는 암기도 암기지만 이해력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어떠한 문제도 풀어나갈 수 없을테니까요.. 머리가 좋다는 것은 잘 외우는 것이 이니라 이해를 잘 하는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어린 시절 구구단도 노래를 외워서 암기했다고 하지만 답이 왜 나왔는지도 모르고 외우기만 했다면.. 어땠을지요.. 어려운 학문에 대한 이해력이 뛰어난 겨울호랑이님을 닮았다면 따님은 똑똑할겁니다..

저도 겨울호랑이님을 따라서 19단을 외워볼까 했는데 머리와 눈이 아픈 것을 보니.. 이번 생은 구구단으로 만족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겨울호랑이 2017-04-18 16:17   좋아요 1 | URL
^^: 김영성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다만, 제가 사실 머리가 좋은 편은 못됩니다.ㅋㅋ 다만, 모르는게 많아 이것 저것 생각을 하는 편이긴 합니다. 연의 엄마가 머리가 좋고, 노력도 많이 하는 편이랍니다.. 김영성님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오후 되세요^^:

AgalmA 2017-04-18 18: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9x19단 은근 도전의식 일으키네요ㅋ 9x9단 단기간에 외우던 고통이 생각나서 천천히 외워볼까 싶기도 하네요ㅎㅎ

우리집엔 그림그리는 사람도 책읽는 사람도 없는데 저혼자 맨땅에서 메뚜기뛰기였다능ㅎ 지원받기도 힘들었던.... 그래서 제가 유전자 타령을 더 신뢰하지 않아요.ㅎ 풍족한 환경의 아이들이 참 부러웠죠. 그 때문인가 나홀로 공부하고 그린다는 여전한 거 같은ㅎㅎ;

겨울호랑이 2017-04-18 19:06   좋아요 2 | URL
^^: AgalmA님처럼 그림도 그리면서 책도 좋아하시는 분은 저도 별로 주변에서 본 적이 없는듯 하네요^^: 그만큼 AgalmA님만의 색이 글에 나타나 좋습니다^^: 19단 외우기는 치매예방에 좋은 두뇌 운동이 되리라 믿으며 오늘도 ㅋㅋ

오거서 2017-04-18 20: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인도의 프로그래밍 수업에서 페이퍼 컴퓨터를 사용한다고 들은 바가 있습니다. 프로그래밍을 통해 만들어지는 프로그램은 임의의 입력를 받아들이고 적절한 처리 과정을 거쳐 정해진 결과를 보여야 하는데요, 페이퍼 컴퓨터는 실제 컴퓨터가 아니기에 프로그램에서 필히 처리해야 하는 조건 뿐만 아니라 성공하는 경우와 실패하는 경우를 모두 따져서 결과를 예상해보게 된다는 겁니다. 제 생각에 19x19단이 효과가 있을 것 같지 않고 차라리 페이퍼 컴퓨터의 위력을 믿어야 한다고 봅니다. ^^

겨울호랑이 2017-04-18 21:01   좋아요 2 | URL
^^: 그렇겠네요.. 오거서님 말씀처럼 페이퍼 컴퓨터를 통해 알고리즘을 이해하고 논리적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보다 수학의 본질인 것 같습니다. 생각하는 과정을 중시하는 교육으로 개편되어야할 것 같은데, 우리의 현실은 아직 여기와 멀리 떨어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