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의 역사 + 미의 역사 세트 - 전2권
움베르토 에코 지음, 오숙은.이현경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미(美)의 역사(Storia Della Bellezza)>와 <추(醜)의 역사(Storia Della Bruttezza)>는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1932 ~ 2016)의 서양 예술(특히, 미술)에 나타난 미(美)와 추(醜)에 대한 이야기다. <미(美)의 역사(Storia Della Bellezza)>는 고대 그리스부터 20세기까지 예술 작품 속의 미(美)를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시대에 따라 달라져온 '미(美)'의 개념을 살펴본다. 미(美)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미(美, beauty)

관념론은 미(美)란 정신에 의해 감지되는 것에 의해 성립된다고 본다. 칸트(Immanuel Kant, 1724 ~ 1804)가 미(美)는 이해(利害)를 떠난 순수한 감정에 있다고 본다든지,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 ~1831)처럼 이념의 직관적인 형식하에서의 파악으로 나타난다고 한 것이 그 예다. 유물론에서는 지금까지 미는 객관적으로  갖추어진 것이고, 대상이 갖는 전체와 부분의 균형, 조화에서 나온다고 했다... 미는 이러한 활동을 미술이나 예술 상의 작품 속에서 형상화하여 표현한 것이다. <철학사전>, 중원문화(2009)


미(美)라고 하는 개념은 정신에 따라 감지되는 것이며, 시대별로 미(美)가 다른 양상에서 시작된다는 관점은 사전적 의미일 뿐 아니라 이 책 <미의 역사>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이 책은 아름다움이란 절대 완전하고 변경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시기와 장소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가질 수 있다는 원리에서 출발한다. 이것은 물리적인 아름다움(남자, 여자, 풍경의) 뿐만 아니라 하느님, 성인, 사상 등의 아름다움과 관련되어 있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움베르트 에코, <미의 역사>, p14


여느 책과 마찬가지로 서문은 책을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특히, <미의 역사>에는 저자가 생각하는 미(美)의 개념과 책의 의도가 잘 요약되어 있기 때문에 서문의 중요성은 더해진다.


'다양한 미의 개념 뒤에는 모든 세기의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몇 가지 독특한 규칙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많은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그것을 발견해 내려고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그 차이들을 밝혀 보려할 것이다. 그런 차이 밑에 숨어 있는 통일성을 찾아내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 될 것이다.' 움베르트 에코, <미의 역사>, p14


'완벽함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이상은 칼로카가티아(kalokagathia)라는 한 단어로 대표된다. 이것은 칼로스(kalos, 일반적으로 "아름다운'으로 옮겨진다)와 아가토스(agathos, 대개 "선한"으로 옮겨지지만 일련의 긍정적인 가치를 모두 포괄한다)를 결합한 단어이다.' 움베르트 에코, <추의 역사>, p23


그리스인들의 '칼로카가티아(kalokagathia)' 라는 말에서 우리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생각하는 선(善)과 미(美)의 결합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선'과 '미'의 결합은 자연스럽게 '악(惡)'과 '추(醜)'의 결합으로 이어지면서 보다 복잡해진다.  그 결과 <미의 역사>의 후속편인 <추(醜)의 역사(Storia Della Bruttezza)>에서 추(醜)의 의미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을 것 같다. '반미(反美, 아름다움의 반대)', '비미(非美), 아름답지 않은 것 또는 아름다움에 미치지 못한 것)', 독자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추(醜)'.


'반미(反美)'라는 개념은 전통적인 관념으로 받아들여지는 절대적인 미(美)의 상대어이며 근대 이전에 주로 받아들여진 '추의 개념'이라 할 것이다. 한편, '비미(非美)'라는 개념은 아우구스티누스로 대표되는 초기 기독교 사상에서 '악(惡)'을 '선의 결핍'으로 정의한 초기 기독교 사상 속에서 나타나는 개념이다. 이러한 '비미(非美)'의 모습은 마치 '천국(天國)에 들어가기 위한 연옥(煉獄)'의 모습으로 잘 설명된다고 여겨진다. '추의 자율성' 부문에 대해서는 저자 움베르트 에코는 <미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추(醜)의 제시를 통해 독자들의 판단으로 미루고 있다. 서문에 나타난 대강을 살펴보면, '추(醜)의 자율성(自律性)' 에 대한 단초(緞綃)는  로렌크란츠의 <추의 미학>에서 찾을 수 있다.


'1853년 카를 로젠크란츠(Karl Rosenkrantz)가 쓴 최초이자 가장 완벽한 <추의 미학 Aesthetik des Hasslichen>은 추와 도덕적 악(惡)사이의 유추를 끌어낸다. 악(惡)과 죄(罪)가 선(善)의 반대이고, 선의 지옥(地獄)을 나타내는 것처럼, 추는 '미의 지옥이다. 로렌크란츠는 전통적인 관념으로 돌아가서, 추는 미의 반대이며 미가 그 자체 내부에 지니고 있는 일종의 오류이기 때문에, 미학이론이나 미의 학문은 추의 개념을 함께 다룰 의무를 함께 갖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추상적 정의에서 추의 다양한 구현에 대한 현상학으로 옮아가는 그 순간에, 일종의 "추의 자율성'을 얼핏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 자율성은 추를 더욱 풍부하고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 그저 다양한 미의 형식에 반대되는 일련의 것 이상이 되게 한다.' 움베르트 에코, <추의 역사>, p16


저자는 서문의 마지막에서 '추(醜)'에 대해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가져오는 반응"이라고 정리한다. '미(美)란 정신에 의해 감지되는 것'이라고 볼 때 이 역시 당연한 것이겠지만, 한편으로는 '추(醜)'의 자율성 역시 우리의 자연스러운 반응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것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 이런 추들은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추를 조화나 비례, 완전무결함으로 이해되는 미의 반대라고 할 수 없다... "아름다운"의 모든 동의어들은 무관심적 평가의 반응으로 여겨질 수 있는 반면, "추한"의 동의어들 거의 모두는 격렬한 거부감이나 공포, 두려움까지는 아닐지라도, 어떤 혐오감의 반응을 포함하고 있다(p16)... 앞으로 온갖 다양성과 복합적 양상을 띤 추, 이 추의 역사를 따라가면서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할 점은 다양한 그 추의 형상들이 일으키는 여러 가지 반응들, 그리고 우리가 그것들에 반응할 때의 뉘앙스이다.' 움베르트 에코, <추의 역사>, p16


<미의 역사>와 <추의 역사>는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품과 이를 이해할 수 있는 당대 문헌 내용이 풍부하게 인용되고 있다. 책에서는 분량의 제한이 있기에 시대별 상세한 서술은 이루어지지 않지만, 미학사(美學史)의 흐름과 미학의 중요 두 개념 미(美)와 추(醜)에 대해 윤곽을 잡을 수 있다는 내용면에서 좋은 미학 입문서라 생각된다. 미와 추 전체를 한 편의 리뷰에서 정리하는 것은 무리가 있기에 마지막으로 고대 그리스에서 생각하는 미(美)의 개념을 '조화'와 '비례'의 개념에서 살펴보면서 본 리뷰를 마친다.


조화(造化, Harmony)


'조화는 미덕이다. 건강과 모든 선(善) 그리고 신성(神性) 역시 마찬가지다. 결과적으로 모든 사물들 역시 조화에 따라 구성된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우스, <철학가들의 생애> (BC 6세기 ~ BC 5세기)


[그림] 라오콘과 아들들 (출처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aeyun4542&logNo=220622925372)


비례(比例, proportionality)


 '모든 사물들은 아름답고 어떤 식으로든 즐거움을 준다. 그런데 비례가 없는 미와 즐거움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물은 수적인 비례가 맞아야 한다. 따라서 "숫자는 창조주의 머리 속에 들어 있는 중요한 모델"이며 사물들 속에서 지혜로 이끄는 중요한 흔적이다.' 바뇨레조의 보나벤투라, <하느님에게 이르는 정신의 순례> (13세기)


[그림] 비트루비우스의 비례도( 출처 : http://blog.daum.net/orteauc/6916958)


부분들의 비례


'미는 개별적 요소들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 부분의 조화로운 비례 속에, 즉 한 손가락과 다른 손가락들과의 비례, 손가락들과 손의 나머지 부분과의 비례, 손의 나머지 부분과 손목과 팔뚝과의 비례, 팔뚝과 전체 팔의 비례, 그리고 마지막으로 폴리클레이토스의 <카논>에 쓰여 있듯이 한 부분과 나머지 다른 모든 부분들과의 비례 속에 있다고 단언한다.' 클라우디우스 칼레누스 < 히포크라테스와 플라톤의 가르침> (2세기)


PS. 개인적으로는 헤라클레이토스가 미(美)'에 대해서 '아름다움'와 '아름다움의 대립자'간의 균형이 조화라고 해석했다는 면에서 '미의 상대성'을 잘 설명했다는 생각이 든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이와 다른 해답을 제시했다. 그는 우주에 통일성과 다양성, 사랑과 증오, 평화와 전쟁, 정지와 운동처럼 서로 양립할 수 없듯 보이는 실재들인 대립자들인 존재한다면 이 대립자들 간의 조화는 그중 하나가 사라짐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둘이 계속 긴장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게 하는데서 성취된다고 말한다. 그럴 경우 조화는 대립자들의 부재가 아니라 그들간의 균형이다.' 움베르트 에코,<미의 역사>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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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6 1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16 1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르케스 찾기 2017-03-16 12: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제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라,,
꼼꼼히
진심 잘 읽고 갑니다....

겨울호랑이 2017-03-16 12:13   좋아요 1 | URL
마르케스 찾기님 감사합니다^^: 아직 제가 미학에 대해 잘 모르기에 다른 미학책과 함께 읽으면 더 새로운 것을 찾을 것 같아요..

cyrus 2017-03-16 15: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의 역사>와 <추의 역사>를 따로 읽었지, 같이 읽어본 적은 없었어요. 두 권의 책을 같이 읽어보면 흥미로운 관점들을 발견할 수 있겠어요. 개인적으로 <추의 역사>가 좋았어요. 제가 어두운 분야를 좋아합니다. ^^;;

겨울호랑이 2017-03-16 15:28   좋아요 0 | URL
네, cyrus님 개별적으로 읽다가 흥미로운 부분을 서로 대조해서 읽는 것도 독서의 집중도와 흥미 둘 다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추의 역사>는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아서일까요. 한 번 생각하고 펼쳐보게 되네요.. 이런 것도 일종의 편견이겠지만요..^^:

cyrus 2017-03-16 15:32   좋아요 1 | URL
<추의 역사>에 잔인하고, 혐오스러운 느낌의 그림 도판이 있어서 읽기 부담스러울 수 있어요. 저는 이 책을 맨 처음 읽었을 때 그림 보고 깜짝 놀란 적 있어요. ㅎㅎㅎ


겨울호랑이 2017-03-16 15:37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그런것 같습니다. 특히, 다른 그림보다 <추의 역사> 뒷 부분에서 나무에 목매달린 아이들을 소재로 한 작품은 충격적으로 다가오네요.. 물론 저자는 ‘공포‘라는 감정도 ‘추‘의 한 갈래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지만, 충격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오거서 2017-03-16 19: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의 역사, 추의 역사 두 책을 같이 읽으시는군요. 저는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일이라서 이런 시도는 그저 부러울 따름입니다. ^^;

겨울호랑이 2017-03-16 20:31   좋아요 2 | URL
^^: 세트가 생겨서 읽다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앞뒤로 연결해서 책을 읽으니 또 다른 것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오거서님의 글을 읽다 보니, 국악과 클래식을 교차해서 듣는다면 더 좋은 음악감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만 해봅니다.. ㅜㅜ ..음악의 길은 참 멀다는 생각을 합니다. 쉽게 되지 않네요..^^:

오거서 2017-03-16 21:29   좋아요 3 | URL
책을 읽는 방법이 다양하면 그만큼 책읽기가 즐겁고 활자가 지식으로 경험으로 부뢀시키는 것이 쉬워지리라고 봅니다. 물론 책읽기와는 다르지만 음악 감상에도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좋아하는 음악을 셀 수 없을 정도로 반복해서 듣기도 하지만, 같은 곡의 다른 연주를 모아서 한 연주자씩 듣거나 한번에 두 연주를 플레이 하기도 합니다. 비교감상법이라고 하지요. ^^

겨울호랑이 2017-03-16 20:49   좋아요 2 | URL
요즘은 조성진의 피아노 연주가 귀에 잘 들어옵니다.^^: 19세기 쇼팽음악을 21세기의 시각으로 해석했다는 의미를 잘 알지 못하지만, 그냥 좋아 계속 듣고 있습니다. 아직은 비평할 입장이 되지 못해 당분간 좋은 연주자 음악을 즐길 계획입니다. 지금처럼 오거서님의 좋은 가이드 계속 부탁드립니다^^:

samadhi(眞我) 2017-03-18 1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남편의 평소 지론(?)과 꽤 비슷하네요. 우리 남편은 아무리 예뻐도 좀 쎄 보이면 못 생겼다고 치어다도 안 보거든요. ㅋㅋ 우리 남편이 선에 집착하는 편이라 아주 단순하게 해석해 봅니다. ㅎㅎ

겨울호랑이 2017-03-18 20:00   좋아요 1 | URL
그렇게 ‘진-선-미‘가 연결되네요^^: 단순히 이론만이 아님을 samadhi님의 사부님 지론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