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를 말하다 - 가라타니 고진의 민주주의론 가라타니 고진 컬렉션 6
가라타니 고진 지음, 고아라시 구하치로 들음, 조영일 옮김 / 비(도서출판b)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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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타니 고진의 최신작 <정치를 말하다>(2009)는 전작 대담집으로, 잡지 등에 실린 것을 묶은 것이 아니다... 독자들은 대중서로 씌여진 <세계공화국으로>의 자매편으로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나는 독서 순서로 <정치를 말하다>-><세계공화국으로>를 추천한다. 그리고 관심영역에 따라 <일본근대문학의 기원>, <트랜스크리틱>, <역사와 반복>, <네이션과 미학> 으로 확장해가면 좋다. 아마도 이것이 '선이해 부족'으로 인한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막는 길일 것이다.' - 옮긴이 -


가라타니 고진(Karatani Kojin)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얼마되지 않았다. 알라딘 이웃분들의 리뷰를 통해 간간이 접해면서 그의 이름을 알게 되었고, 북다이제스터님께서 쓰신 고진의 <세계사의 구조>리뷰를 읽고 그의 작품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막상 고진을 읽으려하니 사상가, 문학비평가로서 그의 방대한 저작에 기가 눌려서, 결국 고진 입문서라 일컬어지는 <정치를 말하다>부터 읽기 시작했다. 


<정치를 말하다>는 가라타니 고진의 1960년대 이후 사상가, 비평가로서의 생애를 통해 그의 사상과 활동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대담형식으로 정리한 책이다. 그래서, 옮긴이의 말처럼 고진의 사상에 대한 전반 흐름을 개략적으로 파악하게 해주는 입문서(入門書) 성격이 잘 나타난 글이다. 여기에 언급된 주요 사상가와 현대 사회의 문제점, 그리고 고진이 제시하는 해결방안등을 정리해 본다.


1.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 ~ 1883)


가라타니 고진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를 '신용사회'로 인식한다. 그리고, 신용으로 이루어진 자본주의 사회는 구조적으로 120년 주기의 순환 구조 속에서 끊임없이 확대재생산하려는 성격을 가지는 것으로 파악한다.


'<자본론>은 제1권 유통과정, 제2권 생산과정, 제3권 신용과정으로 구성된 체계적인 저작입니다. 제1권, 제2권만 읽으면 <자본론>이 자본주의 경제가 '신용체계'라는 것을 논하고 있다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p45) ...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경제 전체계를 파악하려고 했습니다. 마르크스는 초기부터 화폐 또는 자본제경제를 종교비판을 응용하여 비판하려고 했습니다.. 이 과제를 <자본론>에서 완수하려고 했지요.(p46)'


'자본주의가 신용체계라는 것은 신용공황이 일어나면 알게 됩니다. 그런데 왜 그것은 신용에 의해서만 성립하는가? 그것은 교환의 실현이 용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신용에 의해 교환이 증대되고 확대됩니다. 따라서 자본주의 경제는 근본적으로 신용에 기초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경제는 무수한 신용강목으로 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일단 터진 곳이 생기면 덜컹거리게 됩니다. 그것이 "위기(공황)"입니다. 신용에 기초하는 버추얼한 세계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불량기업이 도태되면서 호황으로 향하게 됩니다. 자본주의에는 그런 "경기순환"이 불가피하게 존재합니다.'(p47)


2. 칸트(Immanuel Kant, 1724 ~ 1804)


고진은 칸트의 사상을 '이념'으로 제시한다. 칸트를 통해 우리사회가 지향해야할 이념을 제시하고 있으며, 칸트의 철학은 '자본-네이션-국가'라는 교환양식 속의 이데올로기 극복을 위한 대안으로 제기된다.


'칸트는 "구성적 이념"과 "규제적 이념"을 구별했습니다. 또는 이성의 "구성적 사용"과 "규제적 사용"을 구별했습니다. 구성적 이념은 현실화되어야 하는 이념입니다. 규제적 이념은 결코 실현될 수 없지만 지표로서 존재하고, 그것을 향해 서서히 나갈 수 밖에 없는 이념입니다.'(p71)


'그러나 칸트는 윤리를 주관적인 문제로만 생각한 게 아닙니다. 오히려 경제적 문제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칸트에게 있어서 도덕성은 선악의 문제가 아닙니다. 자유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자유란 자발성이라는 의미입니다.(p75) ... 칸트는 상인자본을 개재시키지 않는, 생산자들의 어소시에이션(association, 협동조합)을 제창했습니다. 프루동보다 50년 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프루동도 마르크스도 칸트 윤리학의 연장으로서 존재합니다.'(p76)


자본=네이션=국가


기초적인 교환양식(가) (p82)

A :  증여의 호수제           /  B : 수탈과 재분배

C :  화폐에 의한 상품 교환 / D  : X


'나는 "생산양식"이 아닌 "교환양식"의 관점에서 그것을 재고했습니다. 즉 증여와 호수(A), 수탈과 재분배(B), 화폐에 의한 상품 교환(C)라는 교환 양식의 접합으로서 말입니다. 사회구성체의 차이는 어떤 교환양식이 지배적인가에 의해, 또 그 결합의 정도와 농도에 의해 결정됩니다...자본주의 사회는 (C)가 지배적인 모드인 사회구성체인데, 당연히 A도 B도 남아있습니다. 그것이 자본=네이션=국가라는 사회 구성체가 되는 것입니다.'(p83)


'그런데 여타의 교환양식과는 다르게 교환양식 (D)는 실재하지 않는 것입니다...실제 (D)는 역사상 보편종교로서 나타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칸트식으로 말하자면, 규제적 이념으로 남는 것입니다.'(p84)


역사적 파생형태(나)

A : 농업공동체           /  B : 전제, 봉건적 국가

C :  도시                 /   D  : 보편적 종교


역사적 파생형태(다)

A : 네이션             /  B : 국가

C :  자본(시장경제)  /   D  : 어소시에이션(협동조합)


3.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 ~ 1831)


헤겔의 철학은 고진이 네이션, 국가, 자본의 관계를 설정할 때 제시하는 철학이다. <정치를 말하다>에선 마르크스와 칸트 철학의 연결고리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파악되는데, 상대적으로 다른 두 철학자에 비해 언급되는 비중은 약한 편이다.


'헤겔은 관념론적이고, 또 네이션을 최상위에 두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네이션, 국가, 자본의 상호의존적 관계를 파악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자본=네이션=국가를 교환양식의 결합체로 생각하게 되었을 때,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헤겔과 가까워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p101)


4. 현재 지배 이데올로기 : 신자유주의(新自由主義)


고진은 1990년대 이후 지배이데올리기인 '신자유주의'가 제국주의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여건이 바뀌지 않는 한 '전쟁'을 통한 현재 문제의 해결이 유일한 방편이라는 의견을 제시한다. (고진이 전쟁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1990년대는 "neoliberalism(신자유주의)"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유주의"와 관계가 없습니다. 오히려 이것은 제국주의와 같습니다.(p124)... 글로벌리제이션(globalization)이라고 불리는 사태는 1970년대 선진국에서 발생한 이윤율 저하, 만성불황이라는 위기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 원인 중 하나는 내구소비재가 보급되어 지금까지의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에 있습니다... 아메리카의 자본은 글로벌한 자유경쟁에서 활로를 발견하려고 했는데, 이는 아메리카의 군사적 헤게모니에 대한 의존없이는 불가능합니다.'(p126) 


'현재의 만성 불황은 오히려 1890년대 이후의 만성불항과 비교해야 합니다. 이는 1860년대 이후 중공업으로의 이행과 더불어 시작되었습니다.(p130)... 자본은 "M-C-M'(화폐-상품-화폐+a)"라는 운동에 의해 자기증식을 하는 한 자본입니다. 자기증식을 하기 위해서는 차이(잉여가치)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의 종언은 커녕, 앞으로 격렬한 투쟁이 시작되는 것입니다.'(p131)


5. 새로운 이념의 제시 : 혁명(革命)과 평화(平和)


이러한 제국주의 전쟁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회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국가를 대신한 '강한 사회'에 대한 이념이 필요하다는 것을 칸트 철학을 빌려 고진은 역설한다.


'일반적으로 평화란 전쟁이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칸트가 말하는 "평화"는 "모든 적의(敵意)가 끝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것, 또는 홉스적인 자연상태가 전면적으로 끝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칸트가 말하는 "평화"는 제국가의 지양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칸트가 말하는 "목적의 왕국" 또는 "세계공화국"은 국가와 자본이 지양된 사회를 의미합니다.'(p144).


'한편 국가의 전쟁을 저지하는 것은 국가를 지양하는 것과 거의 같습니다... 국가를 꼼짝 못하게 하는 데에는 국가에 대항할 수 있는 "사회"가 강해지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p147)


6. 가라타니 고진의 해결 방안 : 사회주의(社會主義)


고진은 마지막으로 현재 일본이 처한 문제점에 대해 본인이 생각하는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붕괴된 '공동체의 재건'이다. 고진은 비록 일본의 문제라고 이야기하지만, 공동체 붕괴는 일본만의 문제는 아니므로 그의 말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어소시에이션을 만드는 것. 일본에서는 이것이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단독자)은 그 안에서 단련되는 것입니다. 일본에는 이제 공동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더이상 그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발적으로 만들면 되는 것입니다.. 부족이 강하고, 종파도 강합니다. 민족적(ethic) 조직도 강합니다. 그것들이 국가보다도 강해져 있습니다. 역으로 일본에서는 좀더 "사회"를 강하게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p163)


<정치를 말하다>는 비록 옮긴이는 고진의 다른 저작에 비해 이해가 쉬운 책이라고 하지만, 독일 철학자 3인(칸트, 헤겔, 마르크스)의 사상을 기본적으로 알고 있지 않으면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것 같다. 여기에, 고진이 본문 곳곳에 지나가는 말로 프루동, 한나 아렌트, 로자 룩셈부르크, 아도르노 등의 철학자등을 거론하여 읽는 이(나)의 무지를 여지없이 알려준다. 아무래도, 가라타니 고진을 계속 읽기보다는 다른 철학자들의 책을 먼저 읽는 편이 순서인 듯하다. 성철 스님을 뵙기전에는 기본적으로 삼천배(三千拜)를 한 후에 뵐 수 있었다고 하는데, <정치를 말하다>에서 마치 고진이 자신의 책을 읽으려면 이정도는 읽어야한다고 호통을 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어려운 시간이었다. 또한 동시에, 철학자들의 사상을 자신의 틀 안에 소화하는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거인을 알게 된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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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6 16: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06 17: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황금모자 2017-02-06 17: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라타니 고진 인터뷰집 중에 인디고 연구소에서 직접 취재하고 엮은 [가능성의 중심]이 입문하기에 좋습니다. 주석이 꽤 상세해서 자주 쓰는 용어, 특히 칸트 철학에서 빌려온 개념을 이해하기에 유용합니다.

겨울호랑이 2017-02-06 17:12   좋아요 0 | URL
황금모자님 좋은 책 추천과 조언 감사합니다!^^: 행복한 저녁 되세요

cyrus 2017-02-06 22: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번 사회가 좀 더 성숙한 수준으로 발전하려면 자유주의에 대한 관심과 공부가 민주주의 못지 않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는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담론은 활발히 형성되었지만, 진짜 자유주의의 의미에 대해선 논할 기회가 없었어요. 아무래도 ‘자유경제원‘들이 자유주의자인 척 행동하니까 자유주의 자체를 언급하는 점을 금기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북다이제스터 2017-02-06 23:21   좋아요 1 | URL
저도 자유주의에 대해 더 많은 공부하고픈 1인으로서 공감합니다. ^^

겨울호랑이 2017-02-07 06:07   좋아요 0 | URL
cyrus님 말씀을 듣고 생각해보니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정작 ‘자유주의‘에 대한 생각을 해오지 않은 것 같아요. cyrus님 좋은 화두를 던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님,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좋은 사상가를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17-02-07 1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치에 관한 책인데, 경제학 이론으로 설명하는 부분도 적지 않은 책인가봅니다.
리뷰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님, 즐거운 저녁시간 되세요.^^

겨울호랑이 2017-02-07 18:29   좋아요 1 | URL
네 정치경제학 책입니다^^: 서니데이님도 행복한 저녁 되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