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는 왜 쓸까? 


일기는 오늘 내가 한 일, 오늘 나의 기분, 오늘 내가 보고 읽고, 들은 것 가운데 기억에 남는 것을 쓰는 글이야. 말로는 잘하는데 글쓰기가 어려우면 일기장을 부모님이나 친한 친구라고 생각하고 수다를 떨어 봐. 말 대신 글로 수다를 떠는 거야. 기쁜 일을 일기장에 자랑하고, 잘못한 일도 일기장에 털어놓고, 속상한 일은 일기장에 일러바치면 돼. _ 즐비, 류수형, <냥 작가의 일기 상담소> ,p42


일기를 쓰면 정말 글을 잘 쓰게 될까?


날마다 일기를 쓰면 글쓰기 근육이 쑥쑥 자라서 글솜씨가 좋아져. 하지만 꾸준히 해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소용 없어. 일 년 동안 팔굽혀펴기를 해도, 하루에 달랑 한번씩만 하면 근육이 생기지 않는 것과 같아. 일기의 소재를 다양하게 찾아 쓰고, 비슷한 기분도 다르게 표현해봐. _ 즐비, 류수형, <냥 작가의 일기 상담소> ,p138


 요즘 연의가 냥 작가 시리즈에 푹 빠졌나 보구나? 아니면 글쓰기에 고민이 많거나. 늦은 시간에 학교 숙제를 다 마친 후 일기를 쓰느라 고민하는 연의를 보면 일기쓰기에 대한 부담이 적지 않은 것 같아 아빠는 마음이 쓰여. 그래서, 오늘은 조금은 편하게 일기와 관련된 몇 가지 사진을 보면서 넘어가볼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일기는 아마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일거야. 임진왜란 7년 동안의 일을 일기 속에 담아낸 <난중일기>는 역사적 사건을 직접 경험한 충무공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기도 해. 일기를 쓴 사람의 작은 기록이 중요한 기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난중일기>는 잘 보여줘. 아빠도 <난중일기>를 읽었는데, 아빠 또한 깊은 인상을 받았어. 물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인간적인 측면을 더 잘 알 수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크게 아빠에게 다가온 것은 일기 내용이었어. 일기는 1593년 8월 중 일부야.


21일 맑음

22일 맑음

23일 맑음 윤간, 이뇌와 해가 와서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고 전하였다. 또 울이 학질을 앓는다고 전했다.

24일 맑음 이해가 돌아갔다.

25일 맑음 꿈에 왜적이 나타났다.새벽에 각 도의 대장에게 알려 바깥 바다에 나가 진을 치도록 하였다. 날이 저물어 한산도 안바다로 돌아왔다.


[사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일부


 아빠는 처음에 이 일기를 읽고 깜짝 놀랐어. 날짜와 날씨만 있네. 이렇게 써도 일기가 될 수 있는 건가?


 결론부터 말하면, 일기가 될 수 있어. 21일, 22일, 24일은 충무공에게 정말 평범한 일상이었을거야. 군인이었던 이순신 장군을 생각하면 '맑음'에 행하는 훈련을 전과 다름없이 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지. 하루를 돌아봐도 별 일이 없었다면, 무소식이 좋은 소식이 되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일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물론, <난중일기>의 모든 내용이 날짜와 날씨로 되어 있는 것은 아니야. 정말 중요한 일은 세세하게 마치 눈 앞의 일처럼 생생하게 그려진단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연의가 기회가 되면 직접 읽어보면 좋겠구나.


 이제 다음 사진은 아빠가 2학년 겨울방학 때 쓴 일기야. 아빠가 고모에게 일기 쓰는 법을 알려준 내용이 적혀 있어 가져왔어.


 오늘 내가 지연이(고모)에게 일기 쓰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일기 쓰는 방법은 느낀 점, 앞으로 할 일, 그리고 본일,  한 일 이렇게 다섯 개의 내용을 적으면 된다. 그렇지만, 동생은 '나는 몰라' 이렇게 쓰고 지웠다. 그리고 "나 일기 안 써" 이렇게 말했다.


 1983년이면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이지. 지금은 어른이 된 아빠와 고모지만, 일기 속에서는 현실 남매의 모습이 잘 나타나있지? 당시에는 일기 쓰기 싫어서 일부러 대화체 글을 넣어 줄 바꾸기도 하면서 칸을 채웠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저 칸의 빈 공간이 참 커 보이고 아쉽게 느껴지는구나. 연의도 일기를 통해 이런 기억들을 남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자신을 위한 큰 선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아빠는 그렇게 생각해.


 


[사진 2] 1983년 1월 18일 화요일 눈. <일기>


 <냥 작가의 일기 상담소>에서 나온 것처럼 일기는 하루를 정리하고, 일어났던 일과 그로부터 느꼈던 감정 등의 내용을 자유롭게 쓰는 글이야. 일기는 <난중일기>에서처럼 간략하게 정리할 수도 있으니, 마음을 편하게 갖고 쓰면 좋겠어. 만약, 여유가 있다면 하루에 한 가지 정도를 정리해보자. 그렇다면, 아빠 일기에서처럼 미래의 나를 위한 작은 선물이 될 거야. 매일매일 쌓인다면 큰 부자가 되겠고.


 아빠는 다행히도 어렸을 때 썼던 일기를 거의 다 갖고 있어. 예전에 쓴 일기는 노트에 정리했지만, 지금은 전자일기로 매일매일 정리하고 있어. 2007년 6월부터는 지금까지 거의 매일 쓰고 있는데, 이것도 습관이 되면 뭐라고 쓰지 않고는 잠을 잘 수 없게 되는 것 같아. 물론 그 중 날씨만 적은 것도 적진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말이야. 


 아빠는 연의가 일기를 쓸 때 자신을 위한 선물을 준다는 마음으로 쓰면 좋겠다고 생각해. 작문을 잘 하기 위해 일기를 쓴다면 너무 부담이 되지 않을까. 정 쓸 것이 없으면 날씨만이라도 적는다는 마음으로, 또는 "어제와 같은 오늘이다" 라는 문장을 적더라도 매일 적다보면 어느새 습관이 되고 큰 부담이 없어질거야. 큰 부담이 없어질 때 비로소 연의 마음이 연필에 내려와 담길테니 마음 편하게 갖구.


 오늘은 일기와 관련되서 아빠 생각과 아빠일기와 관련된 이런저런 말이 많았네. 너무 잔소리처럼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이번 한 주도 건강하게 잘 보내도록 하자꾸나! 


사랑하는 아빠가 


 

[사진 3] 2007년하반기부터 2023년 지금까지 전자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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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3-05-15 09: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난중일기 처음에 봤을 때 의외로 날씨만 있는 날도 많고 본인의 넋두리, 심정 토로 등의 글이 많아서 재밌었어요^^ 오히려 더 친근하게 느껴지더라구요ㅎㅎㅎ 일기야말로 본인의 기록이니 어떻게 써도 무방하다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꾸준히 일기를 쓰시는 겨울호랑이님 멋지십니다!^^

겨울호랑이 2023-05-15 09:56   좋아요 1 | URL
저만 난중일기의 날씨에 감명받은 것이 아니라 다행입니다. ㅋㅋ 다만, 난중일기의 치밀함을 배워야 하는데 중요하지 않은 사항은 과감하게 생략하는 것만 인상 깊게 봐서 한계가 있습니다만... 매일매일 끄적이다보니 별 내용이 없는 일기지만 가늘고 길게 왔네요.. 어떤 날은 ‘오늘은 일기 쓰기 싫은 날이다‘ 이렇게 넘어간 적도 있는 것을 보면 참 민망합니다. ㅋㅋ 거리의화가님 좋은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2023-05-15 0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5-15 1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호시우행 2023-05-15 1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들이 볼 수 있다는 걸 의식해서 일기장 내용을 가식적으로 기록한다면 이건 일기장의 의미가 퇴색되겠지요. 의외로 이런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겨울호랑이 2023-05-15 11:20   좋아요 0 | URL
호시우행님 말씀처럼 적어도 일기장만큼은 자기 마음의 해우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보면 손발이 오글거리거리는 부분도 있지만, 그 또한 자신의 과정이라는 점에서 솔직함이 일기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 같아요. 호시우행님 감사합니다! ^^:)

페크pek0501 2023-05-15 15: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기록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책 속의 내용도, 제 느낌도 다 기록으로 남길 생각을 한답니다.

겨울호랑이 2023-05-15 16:22   좋아요 0 | URL
이제는 기록을 하는 방식도 다양해서 반드시 쓰기 만을 의미하진 않게 된 것 같아요. 다음 세대에게는 영상이 기록 매체가 되겠지만, 제게는 쓰기가 익숙하네요. 무언가 의미있는 내용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기록을 통해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모두 소중한 작업임을 저도 페크님처럼 느끼는 요즘 입니다.^^:)

책읽는나무 2023-05-15 16: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의가 아빠의 어린 시절 일기를 읽는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무척 신기하면서도 아빠를 다시 바라보게 되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런 부녀지간의 모습이 부럽습니다^^
일기의 중요성도 다시 한 번 더 깨닫게 되구요.

겨울호랑이 2023-05-15 21:5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아빠 일기장을 보면서 일기장 속의 철딱서니 없는 어린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거리감을 많이 좁힌 것 같아요. 어른으로서가 아닌 같은 어린시절을 공유했다는 점이 아이에게는 새롭게 다가온 것 같습니다. 저도 어린 시절 마지못해 쓴 일기가 이렇게 활용될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그 점에서 선생님과 부모님께 감사를 드려야겠어요. 책읽는나무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