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는 화가의 붓만 사용하고 철학자 성찰은 거의 하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풍자를 위주로 했더라면 이 '풍경'이 쉬웠을 테지만, 나는 풍자를 철저하게 삼갔다. 전형화된 풍자는 자극적이고 무감각하게 만들 뿐, 올바른 길로 인도하거나 제대로 바꾸지 못한다는 점에서 잘못된 것이다. 나는 전체적인 그림만을 그렸고, 이것을 넘어서는 일은 공익을 위해서 하지 않았다. 나는 살아 있는 인물들을 보고 이 '풍경'을 그렸다. _ 루이 세바스티앵 메르시에, <파리의 풍경 1>, 머리말 中
주명철 교수의 <프랑스 혁명사> 10부작도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프랑스 혁명을 이대로 정리하기에는 부족함이 생긴다. 물론, 이 부족함은 저자의 부족함이 아닌 내 자신의 부족함에서 오는 것이리라. <프랑스 혁명사> 10부작은 프랑스 혁명의 역사를 2016년 촛불항쟁의 경험을 가진 이들에게 혁명의 의미에 대해 잘 전달한다. 프랑스 혁명이 시간적, 공간적으로 우리에게 큰 의미가 없는 사건이 아니라는 점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이 대작(大作)은 분명 큰 의의가 있다. 반면, 프랑스인들은 이 혁명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서는 다른 책들이 필요할 듯하다.
그런 점에서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Louis-Sebastien Mercier)의 <파리의 풍경 Tableau de Paris>은 당대의 시대상을 앵글에 담아 보여줄 것이며, 그런 사료에 대한 현대 프랑스인들의 인식은 피에르 노라(Pierre Nora)의 <기억의 장소 Les Lieux de Memoire>가 알려줄 것이다. <파리의 풍경>를 둘러싼 프랑스 혁명의 사건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기억의 장소>와 이를 바라보는 <프랑스 혁명사> 10부작을 통해 혁명을 바라보는 인식의 삼각형을 뚜렷하게 그려보기를 바라본다...
이러한 삼각형의 윤곽을 잡은 후 몽테스키외, 볼테르, 루소의 철학으로 안을 색칠하고, 성공한 파리코뮌이었던 프랑스 혁명과 대척점에 있는 프롤레타리아 혁명 파리코뮌을 주제로 한 <프랑스 혁명사 3부작>으로 외접원을 그린다면, 이제 다시 자연스럽게 자본주의로 독서주제를 선회할 수 있지 않을까. 일단 계획은 그렇다...
기억으로부터 역사로의 이행은 각 사회집단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역사를 활성화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재규정하는 것을 의무로 삼게 만든다. 기억의 의무는 각자를 자기 자신에 대한 역사가로 만든다. 역사의 절대적 필요성은 이렇게 해서 제한된 전문 역사가 서클의 범위를 크게 넘어선다(p48)... 기억의 역사적 변환(metamorphose)은 개인심리로의 결정적인 전환이라는 대가를 치렀다. 두 현상이 너무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그것들이 발생한 시점이 일치한다는 것조차 지적하기 어려운 그런 현상들이 있다... 기억의 전이(轉移)는 역사적인 것에서 심리학적인 것으로, 사회적인 것에서 개인적인 것으로, 전달가능한 것에서 주관적인 것으로, 되풀이되는 것에서 회상하게 만드는 것으로의 결정적인 이동이다. 기억의 구속이 집요하고 미분화된 방식으로 힘을 가하는 대상은 결국은 개인이고 오직 개인일 뿐이다. _ 피에르 노라, <기억의 장소 1>, p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