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모든 인간 행위의 근원이라는 베르길리우스의 말은 개념적으로나 위치상으로 이 시의 중심을 차지한다. 일곱 가지 사형 죄(흔히 말하는 7대 죄악)는 사랑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잘못 이끌린 사랑, 너무 약하거나 너무 강한 사랑 등 잘못된 사랑이다. 사랑이 잘못 이끌릴 수 있는 경우는 세 가지이며, 너무 약한 경우가 한 가지, 너무 강한 경우가 세 가지다. 우리가 보게 되듯, 일곱 테라스가 있는 연옥의 지리학은 이런 분석을 보여준다. 이런 인식과 밀접하게 연관된 질문이 인간 행위에 대해 인간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는 다시 자유의지와 결정론에 관한 철학적 근본 문제를 제기한다. _프루 쇼, <단테의 신곡에 관하여>, p207


 프루 쇼(Prue Shaw, 1949 ~ )는 <단테의 신곡에 관하여 Reading Dante>에서 <신곡 神曲, La Divina Commedia>의 여정을 일곱 주제로 정리한다. 우정, 권력, 삶, 사랑, 시간, 수, 낱말. 그 중에서 주제의 중심은 사랑이다.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코린토 1서 13: 13> 中


 <신곡>의 중심에 사랑을 배치한 프루 쇼의 분석은 다분히 사도 바오로(Pahlus, AD 5 ~ AD 67 ?) 서간 중 유명한 사랑의 찬가를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관점이 단테 알리기에리(Durante degli Alighieri, 1265 ~ 1321)의 의도와 일치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신곡>의 선(善)과 악(惡)을 가르는 기준의 많은 부분이 사랑과 관련된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프루 쇼의 해설은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연옥이 지옥과 다른 것은 바로 시간 때문이다. 연옥은 파도기의 영역, 변화의 영역, 진보의 영역,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나아가는 영역이다. 시간이 흐르고 시간이 절박한 영역이다. 연옥의 영혼들은 단테처럼 여행 중이지만, 그 여행이 완견되기까지는 수백 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오래 걸리고 아무리 고통스러울지라도 여행의 결과는 보장되어 있다. 회개하는 영혼들에게 보장된 목표는 천국이다. 지상에서의 삶을 여행으로, 또는 천국의 집을 향한 순례로 여길 수 있는 것처럼, 연옥의 산을 올라가는 것은 일종의 순례와 같다.(p270)... 우골리노의 정신 상태는 정확히 신을 부정, 거부하고 있으며, 이것이 지옥행의 본질이다. _프루 쇼, <단테의 신곡에 관하여>, p285

 

<신곡>에 나오는 지옥, 연옥, 천국은 서로 다른 곳이면서도 공통점을 가지며, 통하는 공간들이다. 지옥과 천국은 유한한 시간과 관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상극이면서도 공통점이 있으며, 연옥 영혼들은 천국으로 갈 기회를 갖는다는 점에서 통하는 바가 있다. 다만, 이러한 공통점과 통하는 바는 최후의 중세인 단테의 상식으로 설명되기에 우리가 이를 온전하게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또한, 프루 쇼는 <신곡>내에 단테의 경험과 생각이 녹아들어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데, 이로 인해 우리는 보다 인간 단테와 그의 사상에 대해 깊이 있게 알 필요가 있다.  단테의 사상, 특히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Bonifacius PP. VIII, 1235 ~ 1303)와의 대립 등에 대한 깊은 이해를 위해서는 단테의 다른 작품 <제정론 De Manachia>도 먼저 읽을 필요가 있는데, 이는 별도의 리뷰로 넘기도록 하자.


 정치적 성숙기의 단테는 인류에게 적합한 정부는 인간의 세속 생활과 영적 생활을 각각 책임지는 황제와 교황 두 지도자를 두어야 한다고 믿었다.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에 종속되지 않는다. 각각의 지도자는 신에게서 직접 권한을 받는다. 바로 이것이 순례자 단테가 여행에서 배운 역사의 교훈이다. _프루 쇼, <단테의 신곡에 관하여>, p259

 실제 있었던 사건과 이 시가 말하는 사건의 관계는 모호하다. 예술은 바로 그 이유로 인해 훨씬 더 강력하다. 거듭해서 <신곡>을 읽을수록, 우리는 단테의 시가 지닌 힘은 강력한 자전적 요소 - 시대, 장소, 상황 속에 굳게 뿌리박은 실제 경험 - 에서 나오는 반면, 그 시인이 살아낸 경험이 상상력과 언어 구사력에 의해 바뀌고 변형된 까닭에, 그 어떤 것도 사실이라고 자신 있게 주장하기가 종종 불가능해지는 그런 역설에 직면한다. 그 문제는 <새로운 삶>에서보다 <신곡>에서 더 복잡해지는데, 그 이유는 정확히 두 가지다. <신곡>의 이야기 틀은 나름의 독립적인 논리와 운동량을 가지며 개인적인 것보다 더 크고 포괄적인 목표에 맞춰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야기 틀은 알레고리의 형태를 띤다. _프루 쇼, <단테의 신곡에 관하여>, p155

 

이러한 직접적인 단테의 정치사상외에도 <신곡>안에 담긴 중세의 우주관(宇宙觀)과 '시간(時間)'을 중심으로 읽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354 ~ 430)가 <고백록 Confessiones>에서 말한 시간의 의미,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 ~ BC 322)의 부동의 동자(unmoved mover)로 표현되는 중세 천제관을 작품 내에서 발견하며 현대 사상과 비교하며 읽는 것도 또다른 즐거움이 될 것이다. 조금 더 욕심내어 본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 중세에 어떻게 수용되었는가를 살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그렇다면, <장미의 이름>도 빼놓을 수 없을 듯 하고...  프루 쇼의 7개 주제 중 '수'와 '낱말' 대한 중세의 알레고리는 움베르트 에코의 <중세의 미학>과  <중세의 사랑과 미술>를 통해 다시 정리하면, <신곡>이라는 거대한 성(城) 외곽의 해자(垓字)는 어느 정도 메워지지 않았을까.  이런 준비 후에 <신곡>을 읽는다면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신곡>을 다시 꺼내든다...


 지옥과 천국은 영원하며, 시간의 바깥에 있다. 즉 시간을 초월한다. 지옥과 천국에서 시간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을 수 있다.  _프루 쇼, <단테의 신곡에 관하여>, p16


 시간의 성격은 마침내 <천국>에서 설명된다. 그 설명은 철학적이면서도 시적이다. 시간은 우주의 창조와 함께 존재하게 되었는데, 그런 시간 개념이 유일하게 의미를 갖는 창조된 세계에서 단테가 막 나오고 있다. 일시성은 인간 경험이 펼쳐지는 창조된 세계의 한 차원이다... 원동천이란, 열 번째 하늘, 즉 움직이는 천구들 중 가장 밖에 있는 하늘을 말한다. 이 하늘은 가장 빨리 움직이며 그 안의 나머지 모든 천구에 움직임을 부여한다. 다시 말해 우리 우주의 가장 바깥을 에워싼 껍질이다. 그 너머에 신과 천국이 있다.  _프루 쇼, <단테의 신곡에 관하여>,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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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man 2021-01-04 2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프루 쇼의 이 좋은 책이 벌써 품절이라니 ㅠ 읽어보려 했더니 안타깝군요.

*사랑을 인간 실존의 중심으로 보는 관점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관점과 유사하네요. ˝나의 중심은 나의 사랑입니다˝ (고백록 13.9.10, 성염) 여기서 영향을 받은 것일까요?

겨울호랑이 2021-01-04 20:46   좋아요 0 | URL
김민우님 말씀처럼 <단테의 신곡에 관하여>는 2019년에 나와서 출판된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아쉽게 되버렸습니다. 찾는 분들이 많은 것을 감안하여 전자책으로라도 나왔으면 좋겠네요. <단테의 신곡에 관하여>에서 프루 쇼는 단테가 기독교 이전의 가톨릭 교도 임을 강조하고 있더군요. 이는 중세 당시 이교도에 대한 별도의 규정이 없었기에 세례받지 못한 수많은 이들에 대한 배려가 없음을 지적함과 동시에, 교황 보니파키우스8세와는 대척점에 서면서도 가톨릭 신앙 안에 머무는 단테의 입장을 표현한다고 여겨집니다. 세속화된 교황권 이전의 어부 베드로의 초심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신곡>에 녹아있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김민우님 말씀처럼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향 또한 분명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북다이제스터 2021-01-04 2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단테의 신곡까지...
진심 넘넘 부럽습니다. 제겐 평생 넘사벽이라고 생각되어 저승에서나 읽자고 한 책이라서요. 넘 부럽습니다.

겨울호랑이 2021-01-04 21:01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 제가 <신곡>을 쓴 것도 아니고, 읽기만 하는 것인걸요. <신곡>을 온전히 제 것으로 소화하는 것은 저 역시 먼 훗날로 기약해야 할 듯합니다...ㅜㅜ

2021-01-07 1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07 1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21-01-07 14: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테의 신곡, 어디선가 신부님의 버전의
신곡이 좋다해서 상권 구해다가 읽기
시작했다가 그만 나가 떨어져 버렸습니다.

신곡은 꼭 읽어야 하는 책인데...
존경합니다 겨호님.

겨울호랑이 2021-01-07 14:28   좋아요 0 | URL
에고 아닙니다. 누구나 읽을 수는 있잖아요,..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것과는 다른. <미국사 산책>에 대한 압박을 이렇게 복수하시는군요..ㅋㅋ 분량은 17권에 달하는 <미국사 산책>보다 덜하다는 것을 위로로 삼아야 할까요.. 천천히 다른 책과 함께 읽는 중입니다. just reading...^^:)

scott 2021-02-10 15:3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겨울 호랑이님에 이 페이퍼 아껴가며 읽고 있었는데 ㅋㅋ
이달의 당선작!!
추카~추카~
설연휴 가족 모두 행복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 。  ★彡
☆彡。∴。。 ☆彡 ・
 ・゚*。・ 。*・゚
( )_( ) ・ 。・*・゚。  ・
(.•。 .•.)
o_(“)(“)
연의 선물 ^.~

겨울호랑이 2021-02-10 19:24   좋아요 1 | URL
scott님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아껴가며 읽기에는 빈약한 내용이라 쑥스럽네요... scott님께서도 행복한 설연휴 보내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