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의 급격한 세력 팽창에 두려움을 느낀 스파르타의 견제로 시작된 펠로폰네소스 전쟁(Peloponnesian War, BC 431 ~ BC 404). 이 전쟁이 시작된 2년차에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아테네에 역병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페리클레스는 아마 전쟁의 계절이 시작될 때 아테네에서 발생한 역병의 위력에 대한 연락을 받았기 때문에 작전을 중단했을 것이다. 투키티데스는 이 병을 앓았고 그 증상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이 병은 폐렴 흑사병, 홍역, 장티푸스, 그리고 여러 다른 병들과 유사한 증상을 보였지만, 정확하게 들어맞는 병명은 알 수 없다. 기원전 427년에 진정될 때까지, 이 병으로 중장 보병 4,400명, 기병 300명, 하층민 다수가 사망했다. 아테네 주민의 약 3분의 1이 휩쓸려나갔다.(p106)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中
역병의 피해는 엄청난 것이었다. 전체 주민의 3분의 1이 쓸려나간 이 병으로 인해 아테네는 전쟁 초기 큰 인력손실과 함께 페리클레스(Perikles, BC 495 ~ BC 429)를 잃어 국정혼란을 겪었다. 그리고, 이러한 큰 피해로 인해 아테네인들은 승리에 대한 확신을 잃어갔다.
스파르타의 제1차 침공 이후에는 잠잠하던 평화파가 적과의 타협을 다시 촉구하고 나섰다. 더욱 공격적인 전쟁을 주장하던 자들은 아티카가 입은 큰 손실과 펠로폰네소스에 대한 공격이 가져올 빈약한 성과를 지적할 수 있었다. 현재의 지출 수준으로 전쟁을 계속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포티다이아의 포위는 여전히 예산에서 주된 요소였다. 돈을 절약하고 아테네인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서는 상당히 큰 승리가 필요했다.(p107)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中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안긴 사건은 시칠리아 원정(Battaglia navale in Sicilia, BC 415 ~ BC413)였지만, 이러한 원정의 결정 배경에는 아테네인들의 초조한 심리가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역병 또한 아테네 패배의 주요 원인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자신도 병을 앓았던 투키티데스는 당시 역병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을까.
평소 건강한 사람들이 별 이유없이 갑자기 감염되었는데, 최초 증상은 머리에 고열이 나고 눈이 빨갛게 충혈되는 것이었다. 입안에서는 목구멍과 혀에서 피가 나기 시작하고, 내쉬는 숨이 부자연스럽고 악취가 났다. 다음에는 재채기가 나며 목이 쉬었다. 얼마 뒤 고통이 가슴으로 내려오며 심한 기기침이 났다. 대부분의 경우 헛구역질과 함께 심한 경련이 일어나는데, 이런 경련은 어떤 사람들은 구역질을 하고 나면 곧 완화되었지만, 어떤 사람들은 한참 뒤에야 완화되었다.(p178)... 이 역병의 증상은 실로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었다.(p178)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제2권 49)
당시 아테네의 역병은 원인을 잘 모르는 병이었기에 환자와 환자를 돌보는 의사가 함께 쓰러져가는 치명적인 질병이었지만, 투키티데스는 이 병의 무서운 점을 그 증상에서 찾지 않았다. 오히려, 투키티데스는 병으로 인한 고독과 절망과 이로부터 오는 사회적 혼란을 더 치명적인 결과로 해석한다.
이 역병의 가장 무서운 점은 이 병에 감염되었다는 것을 알면 절망감에 사로잡히는 것과, 사람들이 서로 간호하다 교차 감염되어 양 떼처럼 죽어가는 것이었다. 사실 이것이 사람들이 죽어간 주된 원인이었다. 사람들이 환자 방문하기를 두려워하면서 환자는 방치된 채 혼자 죽어갔기 때문이다. 돌보는 이가 없어 식구가 모두 죽어간 집도 실제로 비일비재했다.(p179)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제2권 47 ~ 52)
절망감과 고독감 속에서 환자들은 죽어갔고, 환자가 아닌 이들은 세상의 종말을 생각하게 되면서 아테네는 향락에 빠지게 되었다. 페리클레스의 황금기라 불리던 시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아테네의 패권은 이미 몰락하고 있었다.
아테나이는 이 역병 탓에 무법천지가 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목숨도 재물도 덧없는 것으로 보고 가진 돈을 향락에 재빨리 써버리는 것이 옳다고 여겼다. 목표를 이루기도 전에 죽을지도 모르는 판국에 고상해 보이는 목표를 위해 사서 고생을 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신들에 대한 두려움도 인간의 법도 구속력이 없었다... 이렇듯 아테나이인들은 이중고에 시달렸으니,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죽어갔고 도시 바깥의 영토는 약탈당하고 있었다.(p181)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제2권 53)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 아테네는 원인을 모르는 병으로 전체 인구의 상당수를 잃었지만, 역사가 투키티데스는 역병의 치명적인 결과를 개인의 건강이 아닌 공동체의 붕괴에서 찾고 있다. 아테네는 이러한 역병으로 인해 결국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퇴했다. 그리고, 2020년 2월 코로나19로 인해 전국이 마비된 현실안에서 우리는 아테네의 혼란이 어떠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인구의 3분의 1이 죽어간 질병과 2020년 2월 28일 질병관리본부 기준 사망자 13명의 질병을 동등하게 비교할 수 있을까. 코로나 19의 실제 피해에 대해 우리 사회가 보이는 반응은 지나친 것은 아닐까. 질병의 피해보다는 마스크 착용과 사재기 등으로 인한 불안감이 질병보다 더 크게 우리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것은 아닌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통해 다시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