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hematics: The Loss of Certainty (Paperback)
Morris Kline / Oxford Univ Pr / 198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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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 배우는 것은, 많은 통념과 달리, 수학조차도 '진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논리를 통해 증명한 수학의 정리는 변하지 않으며 영원하리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인식이, 모든 것이 변해도 수학의 정리들은 변하지 않으며, 이를 통해 쌓아올린 수학 자체는 진리라는 생각을 낳았다. 하지만 잘 인식하지 못하는 수학의 토대 문제는, 수학이 무모순한 체계라는 보장이 없으며, 그 체계 내에 있는 모든 명제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여러 노력이 '실패'했으며, 모든 수학자가 동의하는 하나의 수학 체계는 없다고 말한다. 역사를 살펴보면, 타당하다고 생각했던 증명이 시대가 바뀜에 따라 타당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경우도 있으며, 수학도 결국 경험에 기반한 과학과 마찬가지로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학문 체계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자연과학과 같은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자연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시작됐던 수학이 이제는 과학과는 동떨어져 '순수수학'으로서 발전하는 것에 대해 저자는 한탄한다. 현대 수학은 너무 다기해져 수학자 누구도 자기의 좁은 분야를 벗어난 다른 수학 분야에는 문외한이며, 논문은 쏟아져도 이후 어떤 응용이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저자는 뉴턴, 아인슈타인, 힐베르트, 바일 등 수학자들이 위대한 물리학자이기도 했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하지만 시대가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수학조차도 진리가 아니라는 깨달음, 인간은 점차 순진함에서 벗어나는 듯 싶다. 수학의 위대함조차도 유용성에 있다는 말에 난 동의한다. 많은 뛰어난 이들이 수학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수학이 인간 존재와는 별도로 객관적 실체가 있다는 플라톤주의적 생각을 했지만, 결국 모든 것은 아름다운 꿈이다. 꿈을 좇아 사는 것은 행복하지만, 꿈이 깨지면 좌절하게 된다. 하지만 만약 꿈이 이루어진다면 그 다음은 의미가 없는 것인가. 그런 의미에서도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좋다. 떠오르는 이미지는 시지프이다. 카뮈가 얘기했듯 좌절 속에서도 삶 그 자체에서 의미를 찾고 그냥 노력하는 것 속에 인생의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지. 읽어보지도 못한 한강 작가의 말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또 아름다운가'를 경험하며 살게 된다. 가능하다면 세계의 아름다움에 물 한 방울을 더하는 이가 되고 싶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기록: 이 책을 처음 만난 것은 아마도 고등학교 2학년 때이다. 학교 도서관에서 처음 책을 봤고 읽고 싶었다. 당시는 대우학술총서의 하나로 출간됐었다(지금 번역서는 다른 판본이다). 원서가 1980년에 출간됐으니 얼마 안 돼 번역된 듯 싶다. 제목은 <수학의 확실성>이었다. 당시는 아마 여러 이유로, 특히 나의 무지로 인해 읽지 못했고, 이후는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역시 손대지 못하다가 원서 <Mathematics: The Loss of Certainty>를 사 놓은 지도 어언 20년은 족히 넘은 것 같다. 번역서에는 없는 원서의 제목 "The Loss of Certainty"를 보고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이제야 이렇게 마지막 장을 넘기며, 내 인생의 무대도 다음 장으로 넘어간다는 생각이 든다. 사 놓은 지 10년, 20년 넘어가는 읽고 싶은 책은 아직도 여러 권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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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5-02-09 09: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것을 놀랍게도 알고 있었습니다!!!!! 진리가 아니라 담론일 뿐!!같은 심오한 게 아니라 그냥 수학이 진리라고 하면 진리에 대한 나의 점수가 낮았기 때문입니다!! ㅋㅋㅋ

blueyonder 2025-02-09 10:47   좋아요 2 | URL
항상 앞서 가시는 공쟝쟝 님 ^^ 그 공부를 응원합니다~!

공쟝쟝 2025-02-09 10:57   좋아요 2 | URL
제 꿈은 60세에 수학공부.. 20년 좀 더 남았습니다..!! 욘더님은 40년 앞서가신 분 ㅋㅋㅋ

blueyonder 2025-02-09 11:03   좋아요 1 | URL
ㅎㅎㅎ 감사합니다! 저도 언젠가 푸코와 라캉 공부하고 싶습니다!
 
화폐 권력과 민주주의 - 대한민국 경제의 불편한 진실
최배근 지음 / 월요일의꿈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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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경제 공부를 해본 적이 없는 내게 여러 가지 생각 거리를 던져준 책이다. 무엇보다 국가의 중앙은행이 어떻게 처음 생기게 됐는지와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화폐의 의미에 대해 알게됐다. 저자는 왜 민주주의(1인 1표)가 자본주의(1원 1표)와 함께 가야만 하는지를 역사와 논증을 통해 알려준다. 국가 부채(liability)와 채무(debt)의 차이라든지, 기타 깨알 같은 지식이 곳곳에 있다. 미국 국채와 관련한 내용은 좀 어려웠다. 사회소득과 사회금융이 새로운 화두로 제시되는데, 우리 사회의 소득과 자산 불평등이 극단적으로 심화하는 와중에 매우 시의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는 과연 어디로 갈까. 부동산 카르텔을 깨고 일본을 따라가지 않을 수 있을까. 경제에 정치가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일깨워줬다는 점에서 매우 유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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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03 1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2-03 14: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학과 물리학으로의 여행
박용문 지음 / 연세대학교출판부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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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물리학을 평생 연구하신 노학자의 통찰이 담겨있다. 평소 생각하신 내용을 정리했다고 하는데, 물리학과 수학의 중요한 주제가 망라되어 있다. 중간에 수식이 많이 나오는 내용은 비전공자가 이해하기에는 어려울 듯 싶다. 나도 다 이해하지 못했다. 수학하시듯 군더더기 없는 정리여서 제대로 이해하려면 다른 설명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전문적 내용만이 이 책의 전부는 아니다. 군데군데 나오는 개인적 회상과 역사와 감상이 값지다. 우리나라의 노학자들께서 이런 책을 많이 내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박용문 교수님께서는 1941년 경기도 양평 출생으로 1973년도에 인디애나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귀국하셔서 2006년까지 연세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셨다. 우리나라를 과학 분야에서도 선진국의 초입까지 이끌어주신 산 증인이다. 1987년에는 제1회 한국과학상 수학 분야에서 수상하셨다. 책은 2011년에 나왔다. 박용문 교수님의 건강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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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트루스 - 가짜 뉴스와 탈진실의 시대
리 매킨타이어 지음, 김재경 옮김, 정준희 해제 / 두리반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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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truth, 탈진실이라는 단어는 미국에서 트럼프의 정치적 부상과 함께 떠올랐다. 2016년 11월,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이 단어를 2016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고 한다. 탈진실이라는 말은 어쩔 수 없이 탈근대(post-modern)라는 말을 상기시킨다. 이 책에서는 <개소리에 대하여>에서 논의됐던 주제가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좀 더 상세히 설명된다. 


이러한 모든 현상의 저변에는 객관적 사실이 없다는 탈근대주의의 주장과, 이로부터 파생된, 과학을 거부하는 과학부인주의(science denialism)가 있다. 해리 프랭크퍼트는 <개소리에 대하여>에서 '회의주의'를 배경으로 들었는데 마찬가지의 맥락이다. 이 (객관적 진리에 대한) '회의주의'를 '과학적 회의주의'와 혼동하지 말자. 과학적 회의주의는 과학(이성)이 밝혀낸 사실을 신뢰하며 그 외에 이성의 검증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믿음(유사과학과 미신 등)을 배격하는 태도를 말한다. 


'변함 없는 진리란 없다'는 철학적 언설에는 동의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객관적 사실조차 없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장하석 교수가 진작에 지적했듯이, 영어에는 truth 한 단어가 조금씩 뉘앙스가 다른 채 쓰여서 많은 혼동을 야기하는 점이 분명히 있다고 본다. 우리는 진리 뿐만 아니라 진실, 진상이란 단어가 있어서 조금씩 다른 뉘앙스를 잘 표현한다. 진리는 존재하지 않을 수 있지만 진실은 분명히 존재한다. '진실'을 거부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인간 사회를 거부하는 것이다. 사회와 동떨어져 혼자 살겠다는 개인적 선택은 존중할 수 있지만,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주장하는 이들이 사회에서 발언권을 얻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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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의 역사 - 아주 작은 것들에 담긴 가장 거대한 드라마
데이비드 카이저 지음, 조은영 옮김 / 동아시아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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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제목인 <Quantum Legacies>, '양자量子의 유산들'이 책의 내용을 더 잘 요약하는 것 같다. 저자가 발표했던 에세이들을 다듬어 묶어 낸 책이라서, 일목요연하게 역사를 기술한 책은 아니다. '양자역학'이라고 하면 좁게는 1920년대에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에 의해 완성된 학문 분야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어서 조금 오해를 야기할 수도 있겠다. '들어가는 말'에 나온 에렌페스트와 아인슈타인의 일화도 그런 인상을 준다. 난 차례를 보고 짐 배것의 <퀀텀 스토리>와 같은 이야기--일관된 역사와 곁들인 과학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과학사 책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사회과학적 보고서 같은 느낌이 있다. 


이 책의 제일 인상 깊은 주장은 과학의 발전에 정치, 사회적 상황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물리학도 사람이 하므로 어찌 보면 당연한 주장이기도 하다. 저자는 주로 미국 물리학의 변천사에 촛점을 맞춘다. 미국에서 물리학은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핵무기의 개발로 인해 특별 대우를 받았다. 전후 물리학과가 확장되고 대학원생이 급격히 늘면서 전전에 소수의 학생을 두고 양자역학을 강의할 때와 달리 철학적 내용은 모두 빠지고 '입 닥치고 계산' 식의 강의가 성행하게 됐다는 내용은 매우 흥미로웠다. 70년대의 히피 문화와 프리초프 카프라의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류 책들의 유행을 연관하여 설명한 것이나, 90년대 초의 소련 해체와 맞물린 예산 삭감으로 인해 입자물리학과 우주론을 연결한 분야가 떠오르게 됐다는 이야기 등은 다른 데서는 보지 못했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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