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은 그가 들었던 다음의 질문을 인용하며, 개인과 인류, 더 나아가 정신(의식)의 존재 의의에 대해 숙고한다:


"다음 중 어떤 질문이 당신을 더 흔들어 놓습니까? 당신은 앞으로 1년 밖에 못 삽니다. 1년 후 지구는 멸망합니다."


그린은 첫 번째 질문은 삶의 소중함을 일깨우지만, 두 번째 질문은 삶의 무상함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는 1년 후 지구의 멸망과 궁극의 시간 후 우주에는 아무런 정신도 남지 않는다는 것 사이에 아무런 질적 차이가 없다고 말하며, 아름다운 수학 정리나 물리 법칙을 알아줄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을 우주, 그리고 그 운명을 벗어나지 못하는 인생의 무상함을 이야기한다. 여기서 그의 영원함에 대한 갈망이 아직 남아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는 플라톤주의자가 아니라고 얘기하지만(머리말에서 내가 느낀 것과 다르다), 그는 여전히 영원함을 갈망한다. 그의--인류의-- 업적을 누군가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그린의 말이다.


"나 자신이 죽을 날을 알았을 때 보일 반응과 [지구가 멸망할 날을 알았을 때 보일 반응의] 대비는 놀랍다. 하나는 삶의 가치를 강화시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하나는 그것의 가치를 없애버린다. 이 깨달음은 미래에 대한 내 생각을 이후 결정해왔다. 수학과 물리학의 능력이 시간을 초월한다는 어릴 때의 깨달음을 오래 동안 지녀오며, 나는 미래의 존재 의의를 이미 확신했었다. 하지만 이러한 미래에 대한 내 이미지는 추상적이었다. 내 미래는 방정식과 정리와 법칙의 나라이고 바위와 나무와 사람이 거주하는 곳이 아니었다. 나는 플라톤주의자가 아니다. 하지만 수학과 물리학이 시간 뿐만 아니라 물질 세계의 속박을 초월한다고 암묵적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세상의 종말이라는 질문은 이러한 내 생각을 수정해서, 방정식과 정리와 법칙이 근원적 진실을 포함하고 있을지라도 어떠한 내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음을 명백히 했다. 결국 이것들은 칠판과 출판된 저널과 교과서에 위에 그려진 선과 꼬부랑 글씨의 모음일 뿐이다. 이것들의 가치는 이것들이 거주하는 정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I found the contrast with how I would react to learning the date of my own demise surprising. While one realization seemed to intensify awareness of life's value, the other seemed to drain it away. In the years since, this realization has helped shaped my thinking about the future. I had long since had my youthful epiphany regarding the capacity of mathematics and physics to transcend time; I was already convinced of the existential significance of the future. But my image of that future was abstract. It was a land of equations and theorems and laws, not a place populated with rocks and trees and people. I am not a Platonist but, still, I implicitly envisioned mathematics and physics transcending not only time, but also the usual trappings of material reality. The doomsday scenario refined my thinking, making it patently evident that our equations and theorems and laws, even if they tap into fundamental truths, have no intrinsic value. They are, after all, a collection of lines and squiggles drawn on blackboards and printed journals and textbooks. Their value derives from the minds they inhabit. (p. 319)


위의 글은 한 이론 물리학자의 내밀한 고백이다. 모든 이들이 그린의 상념--무상함--을 공유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죽는 것, 인류가 멸망하는 것, 마지막 남은 의식이 사라지는 것, 그리고는 아무 것도 남지 않는 것이 우리 인생의 무상함만을 강조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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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l the End of Time: Mind, Matter, and Our Search for Meaning in an Evolving Universe (Paperback) - 브라이언 그린의 『엔드 오브 타임』원서
브라이언 그린 / Vintage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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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에 초끈 이론가인 저자에게 편견이 있었다. 그가 현실과는 동떨어진 물리를 '확신에 차서'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는데, 책을 읽은 지금 그런 인상이 많이 사라졌다. 어찌 보면 영원을 동경하던 젊은이이기에는 그도 나이를 먹었는지 모른다. 그는 상당히 솔직하게, 가설은 가설의 영역으로 남겨 놓는다. 빅뱅 직후의 인플레이션 이론과 함께 그 경쟁자라 할 수 있는 순환 우주론도 논의하는 점에서 솔직히 놀랐다.


책 자체는 거의 빅 히스토리이다. 우주의 시작인 빅뱅부터 생명, 정신, 언어, 종교를 거쳐 우주에 거의 아무런 구조도 남아있지 않게 되는 시간의 끝[10^(10^68) 년 정도]까지 다룬다[*]. 책에 초끈 이론 얘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데, 이미 그의 이전 책에서 충분히 논의했다고 생각해서인지 모르겠다. 


물리학자인 그는 역시 물리 얘기를 할 때 가장 빛난다. 중간에 정신, 언어, 종교 등을 얘기할 때는, 솔직히, 지루했다. 나의 관심 부족 때문일 수도 있고, 다른 이들의 연구결과를 소화해서 얘기하는 그의 설명 방식 때문일 수도 있다. 가장 좋았던 부분은 열역학 제2 법칙이 지배하는 우주에서 어떻게 태양이나 생명이 그 존재를 유지하는지에 대한 설명이었다. "엔트로피의 2단계entropic two-step"라고 저자는 이러한 과정을 불렀는데, 태양이나 생명을 증기기관을 통해 얻은 개념으로 기술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시간의 끝에 대해 설명하는 후반부로 가면 다시 물리학의 영역으로 들어가며 잘 읽히는데, '생명도 어떠한 구조도 남지 않는 우주'란 불가피한 결론에 그는 꽤 허무적인 모습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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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0^68) 년은 1 다음에 0이 10^68개 나오는 숫자이다.


So we must leave to future research, theoretical and observational, a more definitive answer for how a small region of space became uniformly filled with an inflaton field, thus setting off a burst of spatial expansion. For now, we will simply assume that one way or another, the early universe transitioned into this low-entropy, highly ordered configuration, sparking the bang and allowing us to declare that the rest is history. (p. 55)

Our experiments and observations support the view that when a quantum system is prodded--whether the prodder is a conscious being or a mindless probe--the system snaps out of the probabilistic quantum haze and assumes a definite reality. Interactions--not consciousness--coax the emergence of a definite reality. Of course, to verify this, or anything else for that matter, I need to bring my consciousness to bear; I can't be aware of a result without my conscious mind participating in the process. So there is no foolproof argument that consciousness does not play a special quantum role. (p. 145)

Much like Newton, Schrödinger leaves no room for free will. (p. 149)

  In recent years, cyclic cosmology has emerged as a main competitor to the inflationary theory. Although both can explain cosmological observations, including the all-important  temperature variations in the microwave background radiation, the inflationary theory continues to dominate cosmological research. In part this reflects the uphill battle to interest physicists in an alternative to a theory that over the course of four decades has propelled cosmology into a mature and precise science. That ours is called the golden age of cosmology is largely attributable to the inflationary theory. Of course, truth in science is not determined by polls or popularity. It is determined by experiments, observations, and evidence. And the inflationary and cyclic theories do make one significantly different observational prediction, which may one day figure prominently in adjudicating between them: The burst of inflationary expansion at the big bang would likely have so vigorously disturbed the fabric of space that the gravitational waves produced might still be detectable. The more gentle expansion of the cyclic model results in gravitational waves too mild to be observed. In the not-too-distant future, observations may thus have the capacity to tip the balance between the two cosmological approaches. (p. 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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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제721호 : 2021.07.13
시사IN 편집국 지음 / 참언론(잡지)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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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서 이런 글을 보니 매우 신선하다. 다음은 <시사인> 이종태 편집국장이 권두에 독자에게 보내는 글("편집국장의 편지")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자유민주주의란 것'이 크게 두 가지 용도로 활용되어왔습니다. 하나는 국가와 사회를 조직하는 원리·이념입니다. 한국의 시민들 대다수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국가권력에 대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강화하는 쪽으로 국가·사회를 재조직하는 '역사적 운동'에 참여해왔습니다. 1987년의 시민항쟁 이후 본격화된 이 운동의 이념적 지침은 자유민주주의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이 국가권력을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걸출한 아이디어의 모음이거든요. 예컨대 삼권분립은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국가권력이라는 거대 괴물을 행정·입법·사법으로 분리해 서로 싸우게 하는 일종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술이죠. 법치주의 역시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에 대한 국가권력의 침해를 통제하기 위한 아이디어입니다. 이 운동은 대단한 성공을 거뒀습니다.

  '자유민주주의란 것'의 또 다른 용도는 정치적 선전선동의 수단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장기 집권을 위해, 전두환은 학살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명분 삼았습니다. 이후에는 주로 민주당 계열의 정당이 집권했을 때 흔히 '극우'로 불리는 사람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며 나서곤 했습니다. 이분들의 자유민주주의는 '양심의 자유' '삼권분립' '법치주의' 같은 본래의 이념적 원리들과는 거의 관계가 없습니다. 그냥 정적이나 반대 세력을 '빨갱이'로 몰아붙이기 위한 정치적 수단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6월 29일 제20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하는 자리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문재인 정부가 "우리 헌법의 근간인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내려 한다"라며 "이 정권은 도대체 어떤 민주주의를 바라는 것입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윤 전 총장이 '자유를 뺀 민주주의'가 정말 뭔지 모르고 이렇게 말씀하셨다면 제가 가르쳐드리겠습니다. '인민민주주의'입니다. 북한이나 중국이 표방했거나 표방 중인 체제로, 공산당(노동당)이 인민 전체의 '진정한' 이익을 '알고' 대변한다는 사고방식을 주춧돌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공산당(노동당)이 법률 위에서 사실상 선거 없이 영구 집권하며 삼권분립도 법치주의도 대의제도 무시하고 있는 겁니다. 이건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윤 전 총장은 문재인 정부가 이런 체제를 시행 중이거나 앞으로 도입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계신 것일까요? 그러나 지금의 한국은 명망 높은 자유민주주의 매체 <이코노미스트>의 부설 조사기관으로부터도 '완전한 민주국가'로 불릴 정도의 나라입니다. 저는 윤 전 총장이 '자유민주주의'를 말하는 장면을 보며 '저 이야기 또 나오네' 유의 지루한 기시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3 페이지)


트럼프만 욕할 일이 아니다. 우리의 정치계에도 본인의 이익을 위해 레토릭만 남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말이 얼마나 공허한지...


이번 주 굽시니스트의 시사만화 '100년 중공':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5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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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중간 정도 읽고 있는데, 초반부에 그가 주 전공인 물리 얘기할 때보다 재미가 덜하다. 그의 문장은, 심하게 얘기하면, '잘난 척'이 배어 나온다. 미국은 '똑똑함'을 숭상하는 사회임을 다시 실감한다. 반면 우리는 '겸양'을 숭상하는 사회. 미국은 '재능'을 숭상하는 사회, 우리는 '평등'을 숭상하는 사회. 로벨리의 글을 읽어보니 유럽도 미국보다는 우리에 가깝다.


그의 글 한 구절. 


  "사실이나 상상을 다루든, 또는 상징이나 있는 그대로를 다루든, 이야기하는 충동은 인간의 보편적 특성이다. 우리는 감각을 통해 세상을 받아들이며, 정합성을 추구하고 가능성을 상상하는 과정에서 패턴을 찾고 패턴을 발명하며 패턴을 상상한다. 이야기와 함께 우리는 우리가 발견한 것을 명확히 한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의 삶을 배열하고 존재의 의미를 찾기 위해 지속하는 과정이다. 실제든 상상이든, 친숙하거나 비정상적인 상황에 반응하는 인물의 이야기는, 인간이 관여하는 가상의 우주를 제공하여 우리의 반응에 영향을 미치고 우리의 행동을 정교하게 만든다. 먼 미래 언젠가, 만약 우리가 먼 세상에서 온 방문자를 드디어 맞이하게 된다면, 우리의 과학적 서사는 이들도 아마 발견했을 진실을 포함할 것이어서, 이들에게 별로 제공할 것이 없을 것이다. 우리의 인간적 서사는, 피카드와 타마리안 사람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누구인지를 이들에게 얘기해 줄 것이다."


  Whether dealing with fact or fiction, the symbolic or the literal, the storytelling impulse is a human universal. We take in the world through our senses, and in pursuing coherence and envisioning possibility we seek patterns, we invent patterns, and we imagine patterns. With story we articulate what we find. It is an ongoing process that is central to how we arrange our lives and make sense of existence. Stories of characters, real and fanciful, responding to situations familiar and extraordinary, provide a virtual universe of human engagement that infuses our responses and refines our actions. Sometime in the far future, if we finally host to visitors from a distant world, our scientific narratives will contain truths they will have likely discovered too, and so will have little to offer. Our human narratives, as with Picard and the Tamarians, will tell them who we are. (p. 181)


피카드는 미국의 SF 드라마 스타트렉에 나오는 함장의 이름이고 타마리안 사람들은 피카드 함장이 맞닥뜨리게 되는 외계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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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님은 어떻게 아셨을까. 문득 생각나 찾아보니 로벨리의 생각이 바로 여기에...


  우리는 지금 '관계'의 담론을 인식의 문제, 사람의 문제로 논의하고 있습니다만 사실 '관계'는 '세계'의 본질입니다. '세계는 관계입니다.' 세계는 불변의 객관적 존재가 아닙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양자물리학이 입증하고 있는 세계상입니다. 세계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입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생각은 뉴턴 시대의 세계관입니다. 입자와 같은 불변의 궁극적 물질이 없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습니다. 입자이면서 파동이기도 하고 파동이면서 꿈틀대는 에너지의 끈(string)이기도 합니다... 불변의 존재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습니다. 존재는 확률이고 가능성입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세계관입니다... 대상은 대상들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합니다. 주체와 대상 역시 관계를 통하여 통일됩니다. 관계는 존재의 기본 형식입니다. 불변의 독립적인 물질성 자체가 그 존립 근거를 잃고 있습니다. 존재할 수 있는 확률과 가능성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이미 존재의 의미가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식이 관계인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 역시 관계입니다. (281~28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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