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저 펜로즈는 <The Emperor's New Mind>에서 이론을 세 종류로 나눈다. 

1. SUPERB탁월한 이론

2. USEFUL유용한 이론

3. TENTATIVE잠정적 이론


우리가 진작부터 알고 있는 고전 이론들--뉴턴의 고전역학, 맥스웰이 총정리한 전자기학, 아인슈타인의 특수/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탁월한 이론'에 들어간다. 탁월한 이론은 이론적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그 예측의 정확도에 있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도모나가, 슈윙거, 파인만의 양자전기역학quantum electrodynamics도 이 범주이다. 펜로즈는 유클리드 기하학도 이 범주에 넣었다. 유클리드 기하학이 수학 이론인 것 같지만 사실은 공간에 대한 이론이라는 것이다. 


'유용한 이론'의 예로는 원자핵이 쿼크로 이루어져 있다는 양자색역학quantum chromodynamics을 든다. 이 이론은 탁월한 이론만큼 엄청난 정확도로 현상을 설명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양자색역학은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을 지탱하는 기둥이다.


마지막으로 '잠정적 이론'으로는 (초)끈이론, 인플레이션이론의 예를 든다. 책은 1989년에 처음 출간됐는데, 위의 범주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생각이 든다. 
















원자핵과 양자색역학에 대한 책인 김현철 교수의 <세 개의 쿼크>를 들쳐보기 시작했다. 잘 알지 못하는 핵물리의 세계를 조금 엿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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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력주의는 직관에 호소한다. 좌우,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보편적 정의로 받아들인다. 문제는 그 자연스러움이다. 과연 그게 옳아서 자연스러운 걸까? 그렇지 않다. 능력주의는 옳지 않다. 능력주의는 정의를 가장한 부정의, 즉 사이비 정의다.

  능력주의는 왜 나쁜가? 사람들로 하여금 불평등을 심각한 문제로 인식조차 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능력주의는 불평등을 당연시함으로써 불평등을 재생산한다. 불평등이 심화되면 민주주의도 악화한다. ... 

  능력주의의 핵심 기능은 불평등이라는 사회구조적 모순을 온전히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것이다. 그 결과 불평등으로 가야 할 문제의식은 모두 불공정 논란에 빨려 들어가고 만다... 우리는, 개인의 능력이라는 게 생각보다 명백하지 않으며 그 차이에 대한 현재의 보상체계도 대부분 정당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상속이나 세습은 신분에 따른 차별이며 불공정하고 부정의하다고 생각하는 반면, 능력에 따른 차별은 공정하고 정의롭다고 생각한다. 틀렸다. 둘 다 불공정하고 부정의하다. 능력주의의 내적 논리를 하나하나 따져보면, 그것이 편견에 치우친 고대 철학과 오류로 판명된 경제학 이론 등이 무비판적으로 뒤섞인 채 차별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임이 드러난다. (8~9 페이지)

  한국 능력주의의 핵심적인 특징은 '시험을 통한 지대추구'의 정당화다. 한국은 지위와 권한의 상당수가 공개경쟁시험 결과에 따라 결정된다는 점에서, 지위와 권한이 실질적 기여나 업적에 따라 조정되는 다른 나라와 확연히 구별된다. 한국의 수많은 시험들 중 특히 중요한 시험이 몇 가지 있다. 대학입학시험, 공무원 선발시험인 '고시', 민간기업의 공채시험, 문학계의 소위 '등단'제도 등이다. 이 시험들은 '결정적 시험critical examinations'으로서, 합격자와 불합격자의 이후 삶에 글자 그대로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 시험이 자기 삶을 기획하고 꾸려가는 데 너무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다 보니 한국인의 삶은 시험으로 점철될 수밖에 없었다. (124 페이지)

  한국의 '결정적 시험'은 강력한 지대 효과를 창출한다. 즉, 어떤 생산적 기여 없이도 합격했다는 사실 자체로 불합격자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보상이 주어진다. 그것이 '시험-지대exam-rent'이다. 시험에 따라 그것은 특정한 업무를 다룰 수 있는 자격일 수도 있고 무형의 권위나 위세일 수도 있으며, 우월한 사회자본(인맥)일 수도 있다. 어쨌든 결정적 시험과 그 시험 지대의 사회적 기능은 명확하다. 노력은 물론이고 성과로도 넘어설 수 없는 거대한 격벽을 세우는 것이다. (128 페이지)

... 능력주의는 차별과 혐오의 죄의식을 경감시키고 나아가 차별과 혐오를 '공정'하다고 믿게 만들기까지 한다. 능력주의는 단순한 분배적 정의관을 넘어 개별 인간의 가치를 (주로 자본주의 가치 기준에 따라) 서열화한다. 또한 능력주의는 강자와 약자 사이의 불평등이 정당하다고 가정한다. 능력주의자에게 강자가 강자인 이유는 재능과 노력 때문이며, 약자가 약자인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137 페이지)

... 능력주의는 위계서열화의 논리이고 그 논리의 막장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결국, 강자선망-약자혐오다. (139 페이지)

  소비자 정체성에서는 이른바 "등가교환적 정의Äquivalentent ausch innewohnende Gerechtigkeit"가 핵심원리로 작동한다. 독일의 철학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에 따르면 등가교환적 정의는 시장제도에 근거하며, 이러한 정의가 관철되는 사회에서는 소유 권 중심의 질서가 자연법처럼 정당화된다. 등가교환적 정의가 소비자주의로 발현된다면, 아마도 이런 명제가 될 것이다."나는 구매했다. 고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이 명제는 소비자의 정당한 권리행사를 넘어 '갑질'할 권리로 오도되곤 했다. (166 페이지)

... 능력주의는 불평등의 근본 원인이 아닐뿐더러 세부 원인이라 할 수도 없다. 능력주의는 불평등을 만들어낸다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불평등에 대한 평가에 영향을 끼친다. 능력주의는 현존하는 불평등을 부당한 것으로 혹은 정당한 것으로 판단하는 기준으로 기능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봉건적 요소가 강한 불평등(부와 지위의 세습, 정실주의 등)은 부당하다고 판단하게 하고, 자본주의에 친화적인 불평등(개인의 능력 차이에 따른 차별대우)은 정당하다고 판단하게 한다. 요컨대 능력주의는 특히 자본주의적 불평등을 재생산한다. 이는 능력주의가 불평등을 생산하는 원인보다 덜 중요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재생산 노동이 생산 노동만큼 중요한 문제인 것처럼,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능력주의는 심각한 사회문제다. (204~205 페이지)

...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바에 따르면 한국은 과거에 생각만큼 '개천용' 사회가 아니었고 지금은 생각만큼 세습사회가 아니다. 요컨대 한국 사회 계층 이동성 변화에 대한 한국인의 주관적 인식은 지나치게 과장됐을 가능성이 크다. (264 페이지)

...

  위 설명은 유행하는 세습사회론류의 주장이 실제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태와 정반대일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즉, 중상위층이 세습을 점점 더 강화해서 문제가 아니라, 중상 위층의 지위세습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고 이에 대해 그들이 '공정성' 담론 등으로 반발하고 있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어느 쪽이 사실인지는 더 면밀히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연구들을 보면 최근 한국이 세습사회로 변화했다는 증거는 미약하다. 분명한 건 과거에 비해 사회 전반에 경쟁이 격화됐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는 한국인의 불안이 세습 사회에서 비롯한 게 아니라 오히려 능력주의에서 비롯했을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요컨대 문제는 능력주의의 과잉인 것이다. '용' 한두 마리에게 특권을 몰아주고 나머지가 모두 패배자가 된다는 점에서 '개천용' 사회는 세습사회 못지않게 나쁜 사회다. 수많은 사람들을 짜부라뜨리는 이 사회적 압력을 어떤 식으로든 배출시키지 않으면 한국인의 강렬한 지위 불안, 낮은 자기표현적 가치 같은 부정적 요소들 역시 나아지기 어렵다. (265~266 페이지)


결론은 결국 '경제민주화'이고 '사회안전망의 확충'이다. 부를 너무 한쪽에 몰아주지 말고 좀 나누어 갖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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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능력주의 - 한국인이 기꺼이 참거나 죽어도 못 참는 것에 대하여
박권일 지음 / 이데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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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가 사회에서의 성공/실패를 모두 개인의 책임으로 돌림으로써 불평등을 정당화한다는 적확한 지적. 고시 등의 예를 들어 한국의 상황을 살펴봤다는 데에 의의가 있을 듯. 성공에는 재능보다 운이 더 크게 작용한다는 마이클 샌델의 주장과도 이어진다. 책은 너무 학술적이며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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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시사인) 제931호 : 2025.07.22
시사IN 편집국 지음 / 참언론(잡지)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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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번호 3617‘이라고 쓴 표지 사진에서 떠오른 말은 사필귀정(事必歸正)이었다. 사실 이렇게 빨리 ‘귀정‘할지 몰랐다. 아직 모든 일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지만... 이번 호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기사는 ‘AI와 양자 컴퓨터가 만나면‘이었다. ‘양자‘가 정말 우리의 구세주가 될까. AI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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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ri 2025-07-24 2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필귀정한데 인과응보랑 권선징악 도요 징하고 응이 아직 한참 더 걸릴것같지만.

blueyonder 2025-07-24 21:29   좋아요 1 | URL
네 동감입니다. 계속 지켜봐야겠지요.
 
시간은 되돌릴 수 있을까 - 스티븐 호킹의 마지막 제자에게 듣는 교양 물리학 수업
다카미즈 유이치 지음, 김정환 옮김, 김범준 감수 / 북라이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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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에서 금과옥조로 생각하는 것이 인과율이다. 결과가 원인보다 시간적으로 먼저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렇다. 공을 던진 후 공이 날아간다. 공을 던지는 사건이 원인, 날아가는 사건이 결과이다. 만약 시간을 거꾸로 돌린다면 공이 던진 사람에게 반대로 날아가 손에 잡힌다. 이런 정도의 간단한 사건에서는 사실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것이 매우 이상해 보이지는 않는다. 물체의 운동을 기술하는 뉴턴의 운동법칙에는 시간의 방향이 들어가 있지 않다. 하지만 공 하나가 아니라 여러 물체의 집합을 생각하면 시간의 역진(逆進)이 이상해 보이기 시작한다. 물 컵에 잉크 한 방울을 떨어뜨리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떨어진 잉크는 서서히 퍼져나가고 결국 물 컵 전체에 균일하게 분포하게 된다. 시간이 거꾸로 진행한다면 퍼져있는 잉크가 반대로 모이는 것을 보게 될 텐데 이는 매우 이상하다. 왜 공이 반대로 날아가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데 잉크가 모이는 것은 이상한가. 이를 설명하기 위해 나온 개념이 엔트로피이다. '무질서도'라고 종종 번역되는 엔트로피가 감소하지 않는다는 것이 열역학 제2 법칙이다. 


원인과 결과를 결국 누가 결정하는가. 엔트로피가 결정한다. 엔트로피가 낮은 쪽이 원인이고 높은 쪽이 결과이다. 이 말은 시간의 방향을 엔트로피가 결정한다고 종종 언급된다. 이 문제에 사람을 넣어 생각해 보면 더욱 극적이다. 나는 태어나서 살다가 언젠가 죽는다. 나이를 먹는 노화 역시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과정이다. 만약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면 내가 점점 젊어지다가 아기가 되어 결국 어머니의 자궁으로 돌아가야 하므로 이 이상함의 극단을 보여준다. 


SF에 많이 나오는 타임머신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타임머신에 타고 있는 나는 이 시간의 역진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게 가능할까. 만약 타임머신이 가능하다면 내가 과거로 가서 부모님을 못 만나게 할 수도 있으며, 이는 모순을 야기한다. 타임머신이 가능하려면 논리적으로 이러한 모순을 해결해야 하므로, 모순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있을지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있어왔다. 


<시간은 되돌릴 수 있을까>는 시간이 거꾸로 흐를 수 있을지에 대해 양자중력을 연구하는 저자가 자유롭게 설명한 책이다. 다양한 물리 개념과 이론이 논의되지만 엄밀한 논증이나 정확한 설명이 부족해 아쉬운 마음이 든다. 물리 초심자에게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측면에서는 장점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을지에 대해 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책의 몇 부분을 옮겨 놓는다.


... 우주의 팽창을 나타내는 방정식에서 수축은 시간이 음의 방향으로 진행하는 것에 대응하는 값이다. 우주가 수축할 때는 우리가 추구해 온 시간의 역행이 일어나는 것이다! (213 페이지)

  고대 인도의 우주관에서 인간은 우주의 중심인 수미산 위에서 살고, 산이 있는 대지 아래에는 코끼리 세 마리가 있으며, 코끼리 아래에는 거북이 있다는 이야기를 앞에서 했다. 지금 우주의 모든 물질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대입하면, 암흑물질이 코끼리 세 마리라고 했을 때 그 세 배 정도인 암흑에너지는 거북인 셈이다. 지구인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엇인가의 이름을 코끼리와 거북에서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로 바꿨을 뿐이다. 관측을 통해 그런 것들이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무엇인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후대 사람들이 봤을 때는 우리도 코끼리나 거북이 있는 우주를 생각했던 고대인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229~230 페이지)


위는 내가 봤던 가장 신랄한 현대 우주론 비판이다. 


  1729는 두 개의 세제곱수의 합으로 나타내는 방법이 두 가지인 가장 작은 수라는 것이다. 1729=123+13=103+93이며, 이런 형태로 쓸 수 있는 가장 작은 수가 1729임을 라마누잔은 순식간에 알아챘다. (248 페이지)


위에서 1729를 두 세제곱수의 합으로 나타내는 수식 표현이 잘못 됐다. "1729=123+13"에서 "123"은 12^3, 즉 12의 세제곱, "13"은 1^3, 즉 1의 세제곱으로 나타내야 한다. "103+93"도 마찬가지다. 103은 10^3, 93은 9^3이어야 한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생명이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을 거스르며 국소적으로 보여 주는 엔트로피 감소는 생명이 만들어졌더니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생명이 형성되기 이전에 우주의 시간의 화살에 역행하는 또 다른 시간의 화살이 있어 서 그 시간의 화살이 생명을 만들어 낸 다음, 그 안에 깃들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며 생명을 존속시키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나는 그런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다. 또 다른 시간의 화살이 어떤 것인지는 짐작도 되지 않지만. (262~263 페이지)

  물리의 세계에서도 루프 양자중력 이론에서는 시간이 불연속적이었다. 물론 그것과 지금 말하고 있는 연속성의 이야기가 직접 이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로벨리가 말했듯이 시간이 실제로 불연속적이고 그런 까닭에 시간이 정말로 환상이라면 물리학과 인지과학 사이에는 의외의 흥미로운 연결성이 있는 셈이다. (268 페이지)


시간의 불연속성이 시간이 환상임을 의미하나?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순환 우주는 인류 원리의 수수께끼에 대해 어느 정도의 답을 주는 우주 모델인 동시에 현시점의 거시적 규모에서 시간 역행을 실현할 가능성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모델이기도 하다. 우주 최대급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가 시간의 역행에 있는지도 모른다. 여러분도 순환 우주 연구가 앞으로 어떻게 진전될지 주목하기를 바란다. (295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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