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중심으로 사는 법 - 이론물리학자가 말하는 마음껏 실패할 자유
김현철 지음 / 갈매나무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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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쿼크>의 저자 김현철 교수의 인생론이다. <세 개의 쿼크>를 읽으며 열정이 대단한 분인 건 알았지만 다시 한 번 감탄하며 존경하는 마음이 절로 생긴다. 이른바 "상위 다섯 개 대학"을 나오지 않은 분으로서, 편견과 어려움을 깨고 학생들에게 이론물리학을 성심껏 지도하며 함께 이룬 성취가 값을 매길 수 없을만큼 귀하다. "한 사람의 변화는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내가 변혁을 외친다고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정말 세상이 변하는 걸 보고 싶다면, 나부터 변할 일이다. 내가 변하면, 내 주변이 영향을 받는다. 모든 변화는 한 사람부터 시작한다. (252 페이지)" 


책 제목이 <우주의 중심으로 사는 법>이다. 머리말의 구절을 다음에 옮기는 것으로 저자의 의도를 전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삶을 주도적으로 사는 건 쉽지 않다. 교육의 진정한 의미는 내 속에 숨은 능력을 끄집어내는 데 있지만, 그런 건 잊혀진 지 이미 오래다. 오히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의대나 법대에 들어가야 하고 명문대에 들어가야 한다고 믿는 세상이 되었다. 학생들은 거기에 속하지 못하면 마치 실패한 것처럼 느낀다. 그것은 오직 남들보다 앞서겠다는 일차원적인 욕망에 기인한다. 무엇이 된다는 것은 정해진 직업군 중 하나에 속하는 일일 뿐이지만, 무엇을 한다는 것은 내 앞에 놓인 수없이 많은 가능성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다. 우주의 중심으로 나만의 삶을 사는 것은 무엇이 되는 데서 오지 않고 내가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4~5 페이지)


저자는 10대, 20대 청년들에게 이 책에 적은 이야기를 꼭 들려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동감한다. 입학한 대학은 그때까지의 성실함만을 반영한다고, 이후의 인생은 너무 길고 할 수 있는 일은 많다고, 자기가 원하는 일을 찾으면 그것에 열심히 정진함으로써 나름의 큰 성취를 이룰 수 있다고, 실패는 성공의 자양분이라고, 쉽지 않은 모범을 직접 보인 분이 외치는 말씀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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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에서 법칙이란 영원히 깨지지 않는 불변이 아니다. 자연 현상을 관찰하면서 끄집어낸 자연의 규칙일 뿐이다. 법칙을 따라야 할 범주에서 벗어나는 순간, 새로운 법칙이 필요하다. (27 페이지)

  학부 과정에 있는 동안 학생은 교수가 보여주는 세상을 보며 학문의 지평을 넓혀 간다. 그것이 학생이 받아들이는 세상 전부다. 특출난 학생을 제외하면 학생에게 수업 시간은 물리학이란 학문을 경험하는 시간이다. 아무리 훌륭한 교재라고 해도 초급 교재로 배우면 학생의 시선은 딱 그 정도에서 멈춘다. (43 페이지)


앞에서 물리 법칙의 임시성에 대해 얘기했지만 뒤에는 다음과 같은 언급이 나온다. 이른바 '아름다움' 앞에서 이론물리학자는 어쩔 줄 모른다는 느낌이 든다. 


  움베르토 에코는 《미의 역사 Soria Dela Belca》(열린책들, 2005)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름다움이란 절대 완전하고 변경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시기와 장소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지닐 수 있다."

  그러나 에코의 말을 물리학에 적용하면 절반만 맞는 말일지 모르겠다. 물리학에서 아름다움은 맥스웰 방정식처럼 수 억 년이 지나도 변함없는 모습 속에 깃들어 있다. 에코가 맥스웰 방정식의 의미를 알았다면 이것이야말로 불변하는 미의 극치라며 찬탄했을 것이다. 맥스웰 방정식은 형식적 미와 내재적 아름다움을 모두 갖춘 자연의 예술 작품이었다. (81 페이지)

학자가 세상에 남기는 건 논문뿐만이 아니다. 오히려 논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을 키우는 일이다. 과학에서는 위대한 논문이라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색이 바랜다. 물론 역사에 오랫동안 기억될 논문도 있지만 과학과 공학에서 논문이란 그 전 세대와 다음 세대를 이어주는 디딤돌 역할로 족하다. 독일 인문학자 하랄트 바인리히는 《망각의 강 레테Lethe: Kunst and Kritik des Vergessens》(문학동네, 2004)에서 망각을 자연과학의 특징으로 들었다. 실제로 그렇다. 오래된 논문은 서서히 잊혀간다. 학자는 자신이 밟고 지나온 디딤돌을 오래 기억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다르다. 내게서 배운 학생은 나를 떠나 자신만의 학문을 개척한다. 그렇게 학문은 다음 세대로 전해진다. 물론 가르친 학생 중에서는 학문을 떠나 회사로 간 친구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 역시 그곳에서 자신이 익힌 걸 바탕으로 자신만의 길을 간다. 논문은 잊혀도 내가 가르친 학생들은 영원히 남는다. (216~217 페이지)


위에서 "영원히"란 강조의 뜻으로 이해한다. '영원'한 것은 없다. '정신'이 다음, 또 그 다음 세대로 이어지며 지속하는 경우를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영원'하지는 않다. 


무엇이 되는가보다 무엇을 할 것인가가 훨씬 중요하다. (221 페이지)


위의 말은 당위적으로 맞는 말이다. 하지만 종종 무엇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위의 말을 이렇게 변조할 수 있겠다. 무엇이 되는지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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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프랑스 등 독일 점령지의 군사목표를 타격하기 시작한 미국 제8 공군은 고고도 전략폭격의 이론을 실행하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희생은 폭격기 승조원들의 몫이었다.


  By this time, the men of Morgan's 91st BG had begun to realize that they were "pawns in a great experiment being tried by the Army Air Forces.... The members of the group even referred to themselves as 'guinea pigs,'" wrote their official historian. This was an experiment in blood, not a theoretical debate, as it had been in the 1930s. "Is anyone scared?" a commander barked at his men. "If not, there is something wrong with you. I'll give you a little clue how to fight this war—make believe you're dead already; the rest comes easy." (p. 106)

  이제 모건이 속한 제91 폭격비행전대의 장병들은 비정한 현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부대의 공식 전사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육군 항공대가 벌이는 거대한 실험에 쓰이는 실험동물에 불과했다. 일부 장병들은 스스로를 '기니피그'라고 불렀다." 

  이제 1930년대에 벌어졌던 이론 논쟁은 끝이 나고, 인간의 피를 재료로 하는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한 지휘관은 부하들을 이렇게 꾸짖었다.

  "무섭나? 무섭지 않은 사람은 비정상이다. 이 전쟁에 어떻게 대처할지, 그 비결을 알려주겠다. 귀관들이 이미 죽었다고 생각해라. 그러면 편해진다." (181~182 페이지)


조지프 헬러의 <캐치-22> 소설에 나오듯, 전쟁은 가해자와 피해자, 또는 승자와 패자 모두에게 비인간적 상흔을 남긴다. 참고로, 위 글에 나오는 로버트 모건은 영화로도 다뤄졌던 B-17 폭격기 "멤피스벨"의 조종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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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ong with Paris, these Biscay ports had been the chief prizes of the Nazi conquest of France. With them under German control, U-boats no longer had to make the treacherous week-long trip from bases at Kiel and Wilhelmshaven, across the North Sea, and around the top of the British Isles to their hunting grounds in the North Atlantic. They could remain at sea longer and range farther while staying closer to their sources of supply, command, maintenance, and intelligence. In 1942, twelve U-boats based along the Bay of Biscay each sank more than 100,000 tons of shipping. No American submarine in the Pacific sank more tonnage than that during the entire war. (p. 74)

  비스케이만에 위치한 이 항구들은 파리와 함께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하면서 얻은 큰 성과로, 이곳이 독일 수중에 있는 한 유보트는 사냥터인 북대서양으로 나가기 위해 킬과 빌헬름스하펜 유보트 기지를 출항해 북해와 영국제도 사이를 지나는 일주일간의 위험한 항해를 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바다에서 더 오래, 더 멀리 이동할 수 있으며 보급, 지휘, 정비, 정보 측면에서 장점이 많았다. 1942년 한 해 동안 비스케이만을 따라 12척의 유보트가 배치되었는데, 이 유보트들은 각각 10만 톤 이상의 연합국 상선을 격침시켰다. 전쟁 기간 동안 이보다 많은 적함을 격침시킨 미국 잠수함은 없었다. (130 페이지)


영국에 주둔한 미국 제8 공군은 1942년 10월 말부터 프랑스 비스케이만 연안의 유보트 기지들을 폭격하기 시작한다. 관련하여 독일 유보트의 전과를 설명하는 부분인데, 우리말 번역에 조금 오류가 있다. "1942년 한 해 동안 비스케이만을 따라 12척의 유보트가 배치"됐다고 언급하는데, 번역문 그대로라면 숫자가 너무 작다. 원문은 '1942년에 비스케이만을 따라 배치된 유보트가 12척'이라는 것이 아니라 '비스케이만을 따라 배치된 유보트 12척', 다시 말하면 '비스케이만을 따라 배치된 유보트 중 12척'이라는 의미이다. 이 12척이 각각 10만 톤 이상을 격침하는 전과를 올렸다는 것이다. 


역자는 원문에 있는 "in the Pacific"을 누락했는데 간결함을 위한 선택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넣는 것이 더 좋을 뻔했다. 태평양에서 일본을 상대로 미군 잠수함도 엄청난 전과를 거두었다고 종종 얘기되기 때문이다. "전쟁 기간 동안 태평양에서 이보다 많은 적함을 격침시킨 미국 잠수함은 없었다"라고 하는 것이 더 명확하다. 


하지만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위의 언급은 잘못된 듯 보인다. 2척의 미군 잠수함(탱Tang과 플래셔Flasher)이 2차대전 동안 각각 116,454톤과 100,231톤의 격침 전과를 올렸다고 알려진다[*]. 물론 유보트의 전과는 1942년 1년 동안의 전과이고 미군의 전과는 전쟁 전 기간에 걸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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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most_successful_American_submarines_in_World_War_II


참고 - 유보트 잠수함별 전과 요약 웹사이트: https://uboat.net/ops/successful_boats.htm

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most_successful_German_U-boa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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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urchill did not share Harris's confidence that bombing alone would bring down Nazi Germany, but in the absence of alternatives, he endorsed a bombing program of ruthless resolve, carried out by the man he called--half in admiration, half in abhorrence--the Buccaneer. (Harris's adoring crews, whom he supported unreservedly, called him Butcher, Butch, for short. And the prime minister had no moral reservation, then or later, about unrestricted air warfare. After the war, he wrote to a former officer in Bomber Command: "We should never allow ourselves to apologize for what we did to Germany." (p. 55)

  처칠은 폭격만으로 나치 독일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해리스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해리스가 제안한 이 무자비한 폭격 계획을 승인했다. 처칠은 해리스를 '해적'이라고 불렀다. 이 표현에는 경의와 혐오의 의미가 섞여 있었다. 해리스가 총애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영국 폭격기 승무원들은 해리스를 '도살자'라고 불렀다. 처칠 총리는 그 당시에도, 그 후로도 이러한 항공전에 대해 양심의 가책은 전혀 느끼지 않았다. 종전 후 그는 폭격기사령부 소속 전직 장교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우리는 독일에게 했던 일에 대해 절대로 사과하지 않을 것입니다." (100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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