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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글 바로 쓰기 1 ㅣ 우리 글 바로 쓰기 1
이오덕 지음 / 한길사 / 2009년 11월
평점 :
사람들이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것은 글이 말과는 다르다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말을 글자로 적어놓은 것이 글일 터인데, 글이 말에서 멀어져 말과는 아주 다른 질서를 가진다는 것은 매우 좋지 못한 현상이다. 더구나 말을 소리 나는대로 적게 되어 있는 우리 글이 우리 말에서 멀리 떨어져 나가 있다면 아주 크게 잘못된 일이다.(p38) <우리 글 바로쓰기 1> 中
이오덕(李五德, 1925 ~ 2003) 선생은 <우리글 바로쓰기 1>에서 우리의 말과 글이바르게 쓰이지 않는 이유에 대해 위와 같이 지적한다. 구술문화의 전달 수단인 '말'과 문자문화의 전달 수단인 '글'이 오늘날 서로 갈라지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저자는 이의 원인을 사회구조에서 찾는다.
후미, 제국, 원위치 같은 말은 일반 사회에서는 쓰지 않는 말이다. 이런 말을 쓰는 사회에서는 이런 말 대신에 쉬운 말을 쓰게 되면 곧 사람다운 분위기가 감돌게 되어 그 특수한 사회의 억압구조가 뒤흔들린다. 군대사회고 학교사회고 관료사회고 모든 비민주사회에서는 그 사회의 특수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이렇게 밖으로 위세를 보이는 중국글자말이나 서양말을 많이 써서 그 반인간체제와 체제의 꼭두각시로 움직이는 사람을 지키려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특수사회의 말이 오랜 세월 쓰이는 동안 일반사회에 번져가는데 있다.(p258) <우리 글 바로쓰기 1> 中
저자에 따르면 우리 말의 오염은 사회구조에서 비롯된다.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만의 언어를 사용하고, 특권층의 언어를 일반에서 받아들여가면서 점차 우리 말과 글이 오염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특수언어가 우리말이 아닌 외국에서 지식과 함께 전해진 외래어라는 점이다.
우리의 입말에서는 다로 끝나는 말이 극히 드물며, 이런 문체는 20세기 초 우리 나라 젊은이들이 일본에 가서 배워온 것이라 나는 알고 있다. 일본말과 일본소설 문장의 끝이 모조리 다(た)로 되어 있다. 글이 말에서 떠나 있는 것이 글의 비민주성이다.(p238) <우리 글 바로쓰기 1> 中
저자는 외래어가 늘어가면서 우리 말과 글이 분리되는 문제점을 언어 영역으로 한정하지 않는다. 말과 글의 분리문제는 언어를 넘어 우리 사회의 문제로까지 확대되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에 대한 처방으로 우리 말과 글을 같이 바로 써야함을 <우리글 바로쓰기>에서 강조한다. 그렇지만, 저자가 무조건 외국것을 배척하는 것만은 아니다. 책 속에서 외국것을 받아들이되 이를 우리 것으로 만들어나갈 것을 강조한다.
어떤 사람의 어떤 말도 그 생각과 하나로 붙어 있는 것이고, 생각이 말로 나타난 것입니다. 지식인들의 말과 글이 백성들의 말이 아니고 남의 말글을 따르고 있다는 것은 그들의 생각이 남의 것, 즉 백성들 속에 살면서 그 삶에서 얻은 것이 아니라는 것, 책에서 얻은 지식이요 관념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관념이고 사상이고, 그런 것이 인간의 훌륭한 지혜와 노력으로 세우고 쌓아놓은 과학인 이상 그것을 배우고 참고하는 일은 당연하겠지요. 그러나 지식이나 관념만으로 자기의 관점을 세워나갈 때 문제가 일어납니다. 책에서 얻은 사상은 자기의 삶에서 몸으로 가지게 된 생각과 하나로 될 때 비로소 그 사상은 제것으로 되지요. 제것은 없고 지식만 가지고 제것인 양 여긴다면 그것이 문젭니다.(p306) <우리 글 바로쓰기 1> 中
요약하면, <우리글 바로쓰기 1>에서 저자가 바라본 우리 말의 문제는 외국으로부터 무분별하게 들어온 외국어와 일본어, 한자가 권력층에서 사용되고 일반 민중에게 널리 사용되면서 점차 말과 글의 사용이 분리되고 있는 현 상황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로 인해 사회가 분열되고, 지식과 실천이 따로 움직이는 오늘날의 현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의 시작으로 저자는 우리 말과 글을 바로쓰기를 제안한다.
<우리글 바로쓰기 1>에서는 이러한 진단 위에서 우리 일상생활에서 잘못 쓰이고 있는 말의 문제를 하나하나 짚어나간다. 많은 아름다운 우리 말 사용이 소개되지만, 그 중에서도 다음과 같이 '때'를 나타내는 표현 속에서 우리는 민족 전통의 시간관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 말의 때매김은, 이적(현재), 지난적(과거), 올적(미래)에 다 나아감을 나타내는 때로서 '-고 있다' '-고 있었다' '-고 있겠다'가 있을 뿐이지, "지난적끝남때"(과거완료시)라고 하여 "먹었었다"고 쓰는 말법이 없다. 물론 "가고 있었었다"라는 "지난적나아가기끝남때"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p205)... '지난적' 때로 써야 할 말조차 이적 때로 나타내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들이 말하는 심리인데, 여기에 어찌 "머리를 주물렀었다" "기분이 근사하였었다"란 말이 생겨날 수 있겠는가?(p208) <우리 글 바로쓰기 1> 中
이미 지나간 과거나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구분하기 보다는 되도록 '현재'에 맞춰서 표현하는 특성 속에서 현재를 중요시했던 선조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고, 말 안에 생각이 담겨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어떤 사람이 하도하도 몬 살아서 자속(자식)은 많고 묵고 살 길이 없는 기라. 넘우(남의) 집을 살아 봐도 안 되고, 품팔이를 해봐도 안되고, 나(나이) 많은 부모 있제, 어린 자슥들은 많제. 묵고살 길이 없는 기라.(P208) <우리 글 바로쓰기 1> 中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벗이 멀리서 찾아오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論語 學而篇 > 中
위의 글은 <우리글 바로쓰기 1> 속에 소개된 위의 전통설화 중 일부로, 정겹게 느껴지는 표현이다. 반면, 뜻 글자인 한자로 된 아래의 글 속에서는 표현된 기쁨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중국에서 성조(聲調)가 발달한 것은 이러한 표의문자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하나의 방편은 아니었을까. 또한, 이러한 차이를 원재료의 맛을 살리는 한국음식과 향신료를 많이 사용하는 중국음식의 차이에서도 떠올려본다.
[그림] 중국 4성조(출처 : 위키백과)
<우리글 바로쓰기 1> 을 통해서 우리가 우리 말과 글을 바르게 써야하는 이유와 함께 말 속에 담겨진 우리의 전통문화를 다시 생각해보면서 이번 글을 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