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을 말하다
장 지글러 지음, 이현웅 옮김 / 갈라파고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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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엔을 말하다 Chemins d'esperance>는 유엔(UN)인권이사회 자문위원인 장 지글러(Jean Ziegler, 1934 ~ )이 내부에서 바라본 유엔이 가지고 있는 태생적 한계와 문제점, 그리고 저자의 UN에 대한 낙관적 전망에 관한 이야기다. 


 이 세계가 겪은 가장 끔찍한 학살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일어났다. 그 결과 6년 동안 5,700만명의 시민과 군인이 사망했고, 부상자, 장애인, 실종자가 수십만 명에 달했다. 유엔이 창설된 건 이러한 살육 때문이었다.(p112) <유엔을 말하다> 中


 1951년 7월 28일, 전 세계의 국가들은 난민의 지위와 관련된 협정, 이른바 '제네바 협약'을 승인했다. 이 협약에 의해, 새로운 보편적 인권인 보호권이 생겨났다. 자국에서 정치, 종교, 인종차별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은 누구나 국경을 넘어 외국 정부에 보호와 피신처 제공을 요구할 수 있으며, 이것은 박탈할 수 없는 권리다. 그런데 유럽연합은 지금 이 협약을 폐지하려 한다.(p57) <유엔을 말하다> 中


  2차 대전의 참상으로부터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유엔. 저자가 생각하고 있는 유엔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하나는 과거보다 거대해진 금융자본의 힘이며, 다른 하나는 인권(人權)을 더이상 유엔이 지키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세계화와 거대화된 금융자본으로 인해 불평등이 심화되었고, 이로 인해 많은 이들이 기아(飢兒)에 허덕이고 있음을 전작(前作)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통해 밝힌 바 있다. <유엔을 말하다>에서는 소득 불평등의 문제는 경제적인 문제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나아가 정치적으로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인다.


 오늘날 번영을 누리는 벌처펀드는 부자는 힘이 세고 국가는 힘이 약하다는 사실을 왜곡된 방식으로 뚜렷이 보여준다. 세계화된 금융자본은 각국에 지지자와 하수인을 두고 있다.(p45)... 세계는 지옥 같은 악순환에 빠져 있다. 매우 부유한 사람과 극도로 가난한 익명의 대중 사이에 존재하는 불평등은 끊임없이 커지고 있다.(p52) <유엔을 말하다> 中


 세계화의 결과이자 소수 지배집단이 엄청난 부를 쌓을 수 있었던 특권적 수단은 '역외회사'다. '조세회피처', 곧 재산이나 수입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으며 은폐되고 비밀스런 은행 업무를 수행하는 국가에 등록된 이 기업은 대부분 불법적인 돈을 세탁하는 데 이용된다.(p350)... 탈세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재앙의 많은 부분에 책임이 있다.(p351) <유엔을 말하다> 中


 유엔은 미국의 재정과 협조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국제기구다. 공짜가 없는 국제 정치에서 미국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유엔을 원조하고, 이를 활용하고 있음은 더이상 새로운 사실은 아니다. 이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문제다.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그들의 거주지에서 탄압받고 쫓겨가지만, 이스라엘과 미국의 이익을 위해 유엔은 결코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어두운 현실 모습이다.


 유엔이라는 조직으로 구체화되고 있는 다자 외교와 헨리 키신저의 제국주의적 이론은 상반된다. 하지만 유엔은 미국의 지지 없이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은 중앙 행정기관 예산의 26퍼센트에 해당하는 100억 달러를 유엔에 매년 지원한다.(p153) <유엔을 말하다> 中


 미국은 이스라엘의 육해공군과 첩보 기관에 매년 약 30억 달러를 지원한다. 미국의 용병 국가인 이스라엘은 제국주의적 권력에 필수불가결한 기능을 맡는다. 미국은 세계 산업생산량의 25퍼센트를 점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 놀라운 기계를 먹여 살리는 것은 석유다. 극히 최근까지 미국은 그중 60퍼센트 조금 넘는 양을 수입에 의존했다... 미국으로서는 페르시아만과 아라비아 반도의 군주국이 미국의 제국주의적 전략을 따라야 했고, 이 지역에서 미국 중심의 질서를 보장하는 역할을 맡은 것이 바로 이스라엘이다.(p163) <유엔을 말하다> 中


 현재 미국을 움직이고 있는 거대 권력이 금융자본의 힘이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결국 현재 유엔이 인권(人權)문제에 대해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결과라 여겨진다. 그런 면에서 금융자본문제와 인권 보장 문제는 별개의 문제가 아닌 하나의 과제라 하겠다. 미국으로 대표되는 상임이사국의 전횡 속에서 유엔은 인류의 시급한 문제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고, 그 대가는 남반구의 가난한 지역에 사는 이들이 지불해야 했다.


 오늘날, 실질적인 정의는 의심의 여지없이 사라지고 있다. 인류 역사상 세계의 길 위에서 헤매는 피난민과 이주민의 수가 이토록 많았던 경우는 결코 없었다. 기아는 난민촌을 휩쓸고 있다. 사막과 건조한 초원이 경작 가능한 땅을 삼키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의 거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지역은 지금 건조한 땅으로 덮여 있다.(p117) <유엔을 말하다> 中


 금융자본에 의한 세계 지배와 약해진 국가 권력과 유엔. 그리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기아와 난민 문제.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저자 장 지글러는 유엔의 미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저자의 어둠 속에서 빛을 희망하는 마음을 <유엔을 말하다>를 통해 발견하게 된다.


 현재 소수 지배집단이 전파하는 신자유주의의 거짓말 때문에 이 세계에서 공동의 의식은 소외당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이들의 의식에는 모든 인간이 동일한 권리를 지닌다는 생각이 내재되어 있다... 타인에 대한 공포, 부정, 경멸이 전 세계에 더욱더 맹위를 떨칠수록, 신비하게도 희망은 더욱더 커진다. 사람들의 의식이 반기를 들 때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다시 시작할 때다.(p18) <유엔을 말하다> 中


 현재 이 세계 구석구석의 모든 사회적 계층인 종교단체, 국가, 민족, 정치단체의 사회운동가, 조합, 연합단체, 비정부기구, 개인은 지금과 같은 세계 질서에 근본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이들의 동력은 동일성에 대한 의식이다.(p352)... 확실히 시민사회에도 모순은 있다. 그리고 진행되는 저항이 많다면 해결책도 불확실해진다. 하지만 국제적인 시민사회, 무엇보다 어떤 변혁을 거듭한 유엔이라는 무기를 갖춘 시민사회는 마침내 인간적이 된 세계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다. (p353) <유엔을 말하다> 中


 저자는 <유엔을 말하다>를 통해 인권에 대한 보편적 인식과 문제의식이 현재의 어두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힘이라고 주장한다. 동시에, 그는 책 속에서 현재의 유엔이 진정한 국제기구로 거듭나기 위한 코피 아난(Kofi Atta Annan, 1938 ~ 2018) 전 유엔 사무총장의 개혁안을 소개하고 있다.


 코피 아난 사무총장은 일종의 유언으로서 안전보장이사회 개혁안을 내놓았다. 이 개혁안은 두 가지 주요한 측면을 포함하고 있다. 하나는 이제부터 반인도적 범죄와 관련되는 모든 갈등 상황에서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국의 지위는 모든 국가가 교대로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p339) <유엔을 말하다> 中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국의 지위 독점과 거부권에 대한 코피 아난의 개혁안은 비록 현재 상임 이사국들에 의해 거부되었지만, 우리는 이로부터 현재 유엔 문제 해결의 첫 걸음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된다.


[사진] 코피 아난 전 사무총장(출처: 한계레 신문)


 장 지글러의 <유엔을 말하다>에서는 위와 같이 현재 유엔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혁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우리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코피 아난 사무총장이 세계 평화를 위해 얼마나 헌신했는가도 부가적으로 알게 된다. 코피 아난 사무총장의 죽음을 애도하며 이번 리뷰를 마친다.


PS. 이와 대조적으로 코피 아난 사무총장 후임인 반기문 사무총장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매우 냉혹하다. 미국의 조력자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했음을 통렬히 비판하는 저자의 글을 읽다보면, 우리 역시 유엔에 많은 빚을 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반기문 사무총장이 선출된 일은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빈기문은 진지함과 냉소가 섞인 태도로 우리에게 말했다. "저는 미군 덕분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p156)... 미국으로서는 남한이라는 가신 家臣 같은 공화국 출신의 국민이라면 자신들에게 충성심을 가질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었다.(p158)... 특히 나는 친구이기도 했던 두 명의 협력자를 잃었다. 사무총장을 맡은 사람은 코피 아난에서 생명력 없는 엑스트라 같은 인물로 대체되었다.(p329)  <유엔을 말하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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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8-09-10 21: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반기문 전 사무총창 비판에 대해 한마디 거들면요... 그 오랜 기간 공적이 없는 것도 큰 공적이다...ㅎㅎ

겨울호랑이 2018-09-10 21:37   좋아요 3 | URL
그렇지요... 정말 공적이 없긴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나름 노력했다고 생각합니다. 503과 함께 아프리카에 새마을 운동을 전파시키려 노력했다는 점은 노력의 함정이겠지만요...ㅜㅜ

2018-09-10 2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0 2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알벨루치 2018-09-11 0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은 예전에 사놓고 아직도 먼지만 가득합니다 겨울호랑이님 덕에 한번 읽어봤음 싶은데~잘될지 ㅋ글 잘 읽고 갑니다 오늘도 건강하십시오^^

겨울호랑이 2018-09-11 09:30   좋아요 2 | URL
카알벨루치님께서는 평소 책을 많이 읽으시는데, 아직 먼지 쌓인 책이 있다는 것을 보면 정말 많은 책을 보유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카알벨루치님이라면 잠시 시간을 내시면 금방 읽으시리라 여겨집니다. 감사합니다. 선선한 좋은 가을 날 보내세요!

카알벨루치 2018-09-11 09:34   좋아요 1 | URL
읽고픈 책은 많고 머리는 안 따라주고 조급함보다는 느긋하게 즐기면서 읽어야하는게 젤 중요한 것 같아요 인생은 짧고 죽기전에 우린 세상의 모든 텍스트를 다 못 읽고 죽을것이니 하루하루 내 맘의 여유를 발견하고 읽고 깨닫고 쓰고 그리고 그렇게 살아진다면 그게 젤 큰 하루의 소확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겨울호랑이 2018-09-11 10:03   좋아요 2 | URL
^^:) 맞는 말씀입니다. 오늘도 여유있는 하루 보내세요!

나와같다면 2018-09-11 20: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nowhere man 어디에도 없는 사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2014년 한해만 우려감(concerns)을 140번 나타냈다

제가 화가나는 부분은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서 그에 합당한 일을 하지못했다는 점

겨울호랑이님 말씀대로 우리 역시 유엔에 많은 빚을 지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겨울호랑이 2018-09-11 18:34   좋아요 2 | URL
그렇습니다... 저는 그의 영향력을 임기직전 대선 출마 여부로 시끄러울 때 겨우 느낄정도였으니, 전 세계 분쟁국 사람들과 난민들이 느낀 배신감과 무력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2018-09-11 2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1 2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2 07: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2 08: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2 1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2 14: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2 14: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2 2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4 08: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09-16 2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가끔 겨호 님 글 읽으면서 놀라곤 하는 부분은 호기심의 광역입니다. 정말 다양한 분야를 좋아하십니다... 진정한 독서계의 달인이시란 생각이 듭니다. 그나저나 연의는 그 유명한 뽀통령의 옆자리에 있으니 출세했군요... ㅎㅎ

겨울호랑이 2018-09-16 22:1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곰곰발님. 제가 많이 몰라서 그저 이것저것 찾아보게 됩니다. 모르는 것이 많다보니, 더 찾아보게 되는 것은 장점이 되기도 하는 것 같네요. 자세히 보시면 사진에서 연의는 풍선껌을 불고 있습니다. 나름 뽀로로와 풍선껌 대결을 하는 진검승부(?)의 긴장감 넘치는 현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