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대봉이 말하였다. "나는 처음부터 유대부(劉大夫, 유전)를 좇았고 조서를 받들어서 군진(軍鎭)으로 오자 어떤 사람이 내가 반란하였다고 말하였지만 이공(李公, 이장용)이 군사를 일으켜서 유대부를 없앴는데 지금 또 이공이 반란하였다고 하오. 이와 같다면 누가 반란한 사람이 안 되겠으며 끝까지 남을 사람이 있겠소? 나는 차라리 죽게 되더라도 다른 사람이 죄를 짓지 아니한 것을 가지고 무고할 수는 없소." 드디어 그를 참수하였다.

무진일(13일)에 신라왕 김억(金?)이 들어와서 조현하면서 이어서 숙위(宿衛)하게 해달라고 청하였다.

가지는 논의를 하였다. "지금 경학을 시험 치는 사람은 첩자(帖子)에 정통하고, 문장을 시험 치는 사람은 성조(聲調)의 병통으로 시비를 가리니, 풍류는 퇴폐하여지므로 진실로 마땅히 고쳐야 합니다. 그러나 동진시대 이후로 사람들은 대부분 교우(僑寓)하여 선비로 향토에 살고 있는 사람은 백 가운데 한둘도 없으니, 청컨대 겸하여 학교를 넓히시고 상재(桑梓)를 지키는 사람은 향리에서 천거하게 하고, 유우(流寓)하는 사람은 상서(庠序, 학교)에서 천거하게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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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적(敵)이 서로 균형을 이루면, 진격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후퇴하는 것을 꺼리는데, 지금 연고도 없이 500리의 땅을 내버리면 도적들의 세력이 더욱 커지게 됩니다. 하양으로 군대를 이동하여 북쪽으로는 택로(澤潞, 산서성 長治市)와 연결하여 유리하면 전진하여 빼앗고, 불리하면 물러나 지키면서 겉과 속이 서로 응하게 하여 도적들에게 감히 서쪽으로 나아가서 침입하지 못하게 하는 것만 못하니, 이것이 원비의 형세[猿臂之勢]라 하겠습니다.

세 종류의 전(錢)이 통행되고 점점 오래되었는데 기황(饑荒)이 발생하는 해에는 쌀값이 1말[斗]에 7천 전에 이르렀고,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었다. 경조윤 정숙청(鄭叔淸)이 사사로이 주전(鑄錢)한 자를 붙잡았는데 몇 달 사이에 매질을 당하여 죽은 자가 800여 명이었지만, 금지시킬 수가 없었다.

황상이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성황(聖皇, 현종)께서 자비롭고 어진데,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받아들이시겠는가?" 대답하였다."상황께서는 진실로 이런 마음이 없으시겠지만, 그 여러 소인배들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폐하께서는 천하의 주인이 되시니, 마땅히 사직의 큰 계획을 만들어 아직 싹이 트지 않았을 때에 반란을 없애야지, 어찌 필부들의 효도만을 주창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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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재미있었을 뿐이죠. 그리고 당신은 언제나 내게 친절했어요. 하지만 우리 집은 그저 놀이방에 지나지 않았어요. 나는 당신의 인형 아내였어요. 친정에서 아버지의 인형 아기였던 것이나 마찬가지로요. 그리고 아이들은 다시 내 인형들이었죠. 나는 당신이 나를 데리고 노는 게 즐겁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놀면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요. 토르발, 그게 우리의 결혼이었어요.

즉, 그는 노라를 아내로, 아이들의 어머니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그런 상황을 은폐하고 표면상으로만 온전한 가정을 유지하려 하는 것이다. 이런 ‘거짓 행복’은 그 당시의 사회가 개인에게서 요구하는 겉모습이며, 개인의 명예와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는 표면상으로 그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

보수적인 사회를 대표하는 작은 사회(micro-society)인 가정은 노라에게 남성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할 것을 요구하지만, 한 집단의 관점에 따라 만들어진 관습을 사회 규범의 이름으로 다른 집단에게 강요하는 사회 통념은 이 작품에서 무효 판정을 받는다. 발표된 지 130년이 되어 가는 『인형의 집』의 시사성은 이 작품이 무조건 관습을 따를 것을 요구하는 사회, 생각이 다른 집단을 주류의 규범에 따라 판단하는 현실에 회의를 제기하는 데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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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너가 대체로 유럽과 이슬람 세계를 대상으로 민족주의의 본질을 구명(究明)했다면, 스미스는 유럽과 이슬람은 물론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 전 세계를 대상으로 민족/민족주의 문제를 넓게 그리고 깊이 파고들어간 인물이라고 비교해서 말할 수 있고, 그런 의미에서 이 두 사람은 최근의 민족주의 연구의 진정한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양자의 근본적인 입장은 서로 다르지만, 겔너가 없었다면 스미스가 없었을 것이고, 또 스미스가 없었다면 겔너의 위상이 지금보다 낮아졌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겔너에게 민족주의는 근대 산업사회의 문화이다. 즉 서구에서 그야말로 ‘기적’적으로 성공한 근대화가 마치 해일과도 같이 전 지구를 불균등하게 휩쓰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 민족주의이고, 그 민족주의의 핵심 내용은 근대 산업사회가 필요로 하는 언어문화(linguistic culture)로 설명된다. 겔너의 말을 직접 빌리자면, "민족주의는 근본적으로, 이전에는 저급문화들(low cultures)이 주민의 다수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주민 전체의 삶을 차지하고 있던 사회에 고급문화(a high culture)를 전반적으로 부과하는 것이다. 그것은 학교가 주선하고 국가교육기관이 감독하는 이디엄(Idiom, 언어)의 확산, 즉 상당히 정확한 관료제적·기술적 커뮤니케이션의 필요조건에 맞게 기호 체계화된 이디엄의 전반적인 확산을 의미한다. 그것은, 극소집단들에 의해 지역적으로 그리고 특이하게 재생산된 민속문화들(folk cultures)에 의해 지탱되던 지역집단들의 이전의 복잡한 구조 대신에, 무엇보다도 이런 종류의 공유된 문화에 의해 하나가 된, 서로 대체 가능한 원자화된 개인들로 구성된 익명의 비인격적 사회의 수립이다. 그것이 바로 실제로(really)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스미스에게 민족주의는 "근대적 이데올로기들 가운데서 가장 중요하고 장기지속적인 이데올로기"이고, 그것은 "하나의 특유한 공동체를 위한 프로그램을 문화집단들에 대한 더 보편적인 비전과 결합시킨다."3) 즉 과거에 전통과 종교가 해오던 구원(salvation)의 길 가운데 사회적이고 공동체적인 길을 추구하는 것이 근대 이데올로기들이고 그 근대적 이데올로기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장기지속적인 것이 민족주의이다. 요컨대 스미스에게 민족주의는 과거에 전통과 종교가 해오던 일을 근대사회에서 하는 대행자로서, 하나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훨씬 넘어선 것이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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