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적(敵)이 서로 균형을 이루면, 진격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후퇴하는 것을 꺼리는데, 지금 연고도 없이 500리의 땅을 내버리면 도적들의 세력이 더욱 커지게 됩니다. 하양으로 군대를 이동하여 북쪽으로는 택로(澤潞, 산서성 長治市)와 연결하여 유리하면 전진하여 빼앗고, 불리하면 물러나 지키면서 겉과 속이 서로 응하게 하여 도적들에게 감히 서쪽으로 나아가서 침입하지 못하게 하는 것만 못하니, 이것이 원비의 형세[猿臂之勢]라 하겠습니다.
세 종류의 전(錢)이 통행되고 점점 오래되었는데 기황(饑荒)이 발생하는 해에는 쌀값이 1말[斗]에 7천 전에 이르렀고,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었다. 경조윤 정숙청(鄭叔淸)이 사사로이 주전(鑄錢)한 자를 붙잡았는데 몇 달 사이에 매질을 당하여 죽은 자가 800여 명이었지만, 금지시킬 수가 없었다.
황상이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성황(聖皇, 현종)께서 자비롭고 어진데,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받아들이시겠는가?" 대답하였다."상황께서는 진실로 이런 마음이 없으시겠지만, 그 여러 소인배들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폐하께서는 천하의 주인이 되시니, 마땅히 사직의 큰 계획을 만들어 아직 싹이 트지 않았을 때에 반란을 없애야지, 어찌 필부들의 효도만을 주창할 수 있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