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체제 - 일본 전후경제사의 멍에를 해부하다
노구치 유키오 지음, 노만수 옮김 / 글항아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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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체제 사관'이라는 '새의 눈'으로 조망하면, 1980년대의 거품 경기는 일본 경제가 '1940년 체제'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음에도 그 체제가 생존을 도모한 데서 생긴 사건입니다. 더욱이 1940년 체제 사관에서 보면, 아베 신조 내각이 실시하고있는 경제정책은 '전후 레짐(체제)으로부터의 탈피'가 아닙니다. 완전히 반대로 '전시 · 전후체제로의 복귀'입니다. 그 기본적인 방향은 시장의 기능을 부정하고 경제활동에 대한 국가 관여를 강화하자는것입니다. 1940년 체제의 사고방식 그 자체입니다. _ 노구치 유키오, <1940년 체제> , p29

노구치 유키오 (野口悠紀雄, 1940 ~ )는 <1940년 체제 - 일본 전후경제사의 멍에를 해부하다>에서 1980년대 일본 경제의 거품 붕괴의 원인을 '1940년 체제'에서 찾는다. 1940년 체제. 그것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총력전체제와 국가사회주의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이른바 혁신 관료라고 불린 그룹은 만주국에 파견되어 국가 경영을 담당하던 관료들로, 그 중심인물 중 하나가 기시 노부스케 岸信介(1896~1987)입니다... 그들의 이념은 '산업의 국가 통제입니다. 기업은 공익에 봉사해야지 사익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불로소득으로 생활하는 특권계급의 존재를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사고방식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회주의 사상에 가깝습니다. 사실 기시 노부스케가 목표로 한 것은 '일본형 사회주의경제' 건설이었습니다. 때문에 한큐전철 阪急電鐵의 창업자이자 대표적인 전전 戰前 경영자였던 고바야시 이치조는 상공대신에 취임했을 당시에 차관이었던 기시를 '아카 赤(적색분자·빨갱이)'라고 부르며 비난했습니다. _ 노구치 유키오, <1940년 체제> , p22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일본의 체제에 대해 깊이 인식하지 못한 미 군부의 장성들은 이름만 바꾼 일본의 기업들과 기관들을 그대로 방치했으며, 이들은 1950년 '하늘에서 떨어진' 한국전쟁이라는 기회를 통해 그 생명력을 연장할 수 있었다.

군수 관련 기업을 관리하면서 항공기를 비롯한 공업 생산 물자의 조달을 통제하던 군수관리들은 미 점령군 진주 직전에 관공서 간판을 상공성'으로 바꿔 달았죠. 점령되면 당연히 전범 색출이 시작되기에 군수라는 명패를 달고서는 도저히 조직으로서 살아남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군수성은 1943년에 상공성과 기획원이 통합되면서 생긴 관청이기 때문에 원래의 이름으로 되돌린 것입니다. _ 노구치 유키오, <1940년 체제> , p39

'1940년 체제'는 1950년대, 1960년대의 자원·자금 부족 국면에서 전략적인 산업 부문에 자원이 우선적으로 배분될 수 있게 해 전후 부흥과 공업화를 촉진했습니다. 그리고 1970년대에 석유파동이라는 외부 위기에 일본 경제 전체가 최적으로 대응하도록 크나큰 기능을 발휘했습니다. _ 노구치 유키오, <1940년 체제> , p195

이러한 국가 중심의 경제 종력전 체제는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성공적으로 작동했으며, 1980년대 일본은 미국을 능가하는 새로운 경제대국으로 등장하기에 이른다. 저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1940년 체제'의 한계를 지적한다. 2000년대 IT 혁명이나 2010년대 금융위기와 같이 시스템 개혁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일본은 변혁(變革) 대신 개선(改善)을 선택한다. 한국전쟁 이후 일본의 이러한 선택의 결과는 언제나 성공적이었기에 그들은 모험을 하지 않았고, 그 결과는 '잃어버린 30년'으로 돌아왔음을 지적한다.

이들 금융기관은 미국의 투자은행과 같은 비즈니스 모델을 변혁의 지향점으로 삼았습니다. 자본시장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기업에게 다양한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델입니다. 일부 장기신용은행에서는 그러한 비즈니스 모델로의 전환을 모색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게 전환할 수 없었죠. 구태의연하게 종래와 같은 비즈니스 모델로 새로운 경제 환경에서 생존을 도모하려고 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손쉽고 재빠르게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부동산 융자에 빠졌던 것입니다. 이게 1980년대 후반 '일본 경제 모순의 원점'이었습니다. _ 노구치 유키오, <1940년 체제> , p253

<1940년 체제>는 이처럼 전후 일본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요인이 이제는 쇠퇴의 원인이 되었음을 지적한다. 번영의 시작을 알리는 '한국전쟁'이라는 기회 자체가 '외부의 손실'이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일본의 경제적 번영은 다른 이들의 눈물과 피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이렇게 손쉽게 수십 년 동안 주어진 번영에 익숙한 이들이 구태여 혁신이라는 어려운 길을 가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다른 의미에서 '승자의 저주'는 아닐런지. 일본 경제의 한계를 이 같은 관점에서 분석한 <1940년 체제>는 다소 딱딱한 경제이야기와 함께 일본의 관료, 학자로서 저자 자신과 주변의 생생한 이야기도 담겨다. 이 책은 저자의 통찰과 당시 일본의 관료 문화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일본 전후 경제사 책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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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3-06-27 1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6.25가 이틀 전인데, 시의적절한 글에 공감 많이 되었습니다. ^^
우리나라 경제성장도 베트남 전쟁 덕이고 하던데요,
이번 러우 전쟁에서는 어느 나라가 경제적으로 가장 혜택 입고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우리나라도 한 몫하고 있겠죠. ㅎ)

겨울호랑이 2023-06-27 20:54   좋아요 1 | URL
구경 중에서 가장 재밌는 구경이 불구경과 싸움 구경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그건 아마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가정하에 가능한 일이겠지요. 옆 나라의 전쟁은 여기에 더해 자신의 이익을 더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당사국이 아닌 주변국에게 환영받는 게 아닌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가장 큰 혜택은 우리나라의 경우 삼부토건이 다 가져가는 것 같습니다만... 다른 이들의 피해를 통해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행위가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 오랜 전통이라는 점이 참 씁쓸하게 느껴집니다. 북다이제스터님 감사합니다, 평안한 저녁 되세요! ^^:)

북다이제스터 2023-06-27 21:01   좋아요 1 | URL
앗, 삼부토건이요? ㅋㅋ
주식 사야겠습니다. 내부 정보(?)죠? ㅎㅎ
방금 보니 이미 많이 오른 듯… ㅠㅠㅠㅠ

겨울호랑이 2023-06-28 10:45   좋아요 1 | URL
ㅜㅜ 에고 이미 삼부토건 주가에 충분히 반영된 거 같아요... 삼부토건 자체가 안랩처럼 정치테마주가 되어서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추천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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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구멍가게를 그릴 땐 오래되어 낡고 소소해서 볼품없어 보이는 가게가 지닌 은근한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겼다. 40년 넘게 한자리를 지키며 뚝심 있게 살아온 주인의 삶이 궁금했다. 그러나 차츰 시간이 흐르며 그 구멍가게들이 더 이상 대물림되지 않을 것 같아 안타까웠다. 부디 구멍가게를 지키고 있는 어르신이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빌었다. 우리 곁에서 완전히 사라지기 전 기록할 수 있다면, 내 그림 속에라도 남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_ 이미경,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p6


 예전 시골학교 관사 옆으로 나 있는 작은 길은 동네 구멍가게로 나가는 후문이었다. 커다란 은행나무를 지나 약 30m 정도 걸어나가면 나오는 작은 가게. 없는 것 빼곤 다 있다는 시골가게 할머니는 항상 푸근하고 좋은 미소로 반겨주시곤 했었다. 초등학교 전교생의 수가 300명에 달할 때는 학교 준비물도, 간식도 이 곳에서 모두 해결했지만 이제는 전교생의 수가 그 때의 1/10 수준으로 떨어지고 준비물도 학교에서 제공하며, 인근에 편의점이 생기면서 점차 가게보다는 떡이나 은행을 파는 것으로 운영하셨던 할머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일정 부분을 모아 초등학교 장학금으로 전달해주셨던 그 어른의 모습을 뵌 지도 벌써 5년 전의 일이 되었다.







 물건은 많이 없지만, 가끔 다니는 버스를 기다리는 손님들을 위해 작은 공간과 꽃으로 아름다웠던 시골가게는 동네 어른들의 사랑방이기도 했다. 시골학교를 떠나고 다시 도시로 들어오면서 시골가게와 같은 동네가게를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반갑게도 손자와 함께 지내는 노부부가 운영하시는 동네슈퍼를 볼 수 있었다. 작은 가게지만 편의점에는 없고, 대형마트에서는 필요 이상으로 많이 구입해야 하는 물건들이 여기저기 숨겨진 보물창고와 같은 곳. 이제  이 곳도 늘어가는 편의점의 파도와 코로나 19가 가져온 위기를 넘지 못하고 지난 주 문을 닫게 되었다.




 코로나 시대가 시작되던 즈음 알바를 시작해 수많은 일을 전전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사람들은 마스크가 숨통을 막은 것처럼 힘들어했다. 일자리는 희박하거나 불안했고, 더럽거나 위험했다. 부유한 누군가는 마스크도 좋은 걸 쓰고 거리두기로 인해 자기만의 시공간에서 자신의 일에 집중할 수 있었겠지만, 근배와 같은 도시 빈민에게 코로나 시대는 전시체제와 다름없었다. 생존에 대해 고민해야 했고 감염되고 나면 부상병처럼 후송되어 재기가 불가능한 꼴이 되었다. _ 김호연,  <불편한 편의점>, p236/370


 이제는 더 이상 예전과 같은 동네슈퍼를 찾아보기 힘든 상황에서 아쉬움이 드는 것은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는 연결이 점차 끊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얼굴을 보고 거래를 하고, 안부를 묻거나 세상 이야기 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상황에서, '1+1'과 같은 다양항 혜택과 첨단 유행하는 상품이 갖춰졌고, 자주 바뀌는 점원과 인간관계를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편의점이 시골가게나 동네슈퍼를 밀어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시대의 흐름일지도 모르겠다.


 편의점이란 사람들이 수시로 오가는 곳이고 손님이나 점원이나 예외 없이 머물다 가는 공간이란 걸, 물건이든 돈이든 충전을 하고 떠나는 인간들의 주유소라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_ 김호연,  <불편한 편의점>, p280/310


 이러한 흐름에 자연스럽게 적응하면서 '사랑방'과 같은 가게 분위기를 기대하지는 않지만, 이러한 아쉬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제는 '무인 편의점'이 등장해서 그나마 학생들이 편하게 일하는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빠른 변화가 다소 답답하게 다가온다. 이제는 우리가 진정으로 인간의 노동과 그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할 때가 아닐까...


 슈퍼마켓 부문에서도 온라인 주문과 배송이 인기를 얻고 있고, 코로나바이러스 위기가 한창일 때 거의 모든 사람이 집에 있어야 하자 급격히 성장했다. 소비자 선호의 변화가 계속될지는 시간이 말해주겠지만 일단 고객이 문 앞까지 식료품이 배달되는 편리함에 익숙해지면 이 변화는 꽤 오래갈 것이다. 이는 슈퍼마켓 매장의 전반적인 구조 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매장 뒤편에서 이루어지는 자동화가 상대적으로 더 중요해지고, 고객이 쇼핑하는 통로 공간이나 제품 진열은 점차 축소될 것이다. 결국 배송이든 픽업이든 순식간에 주문을 처리하는 물류 창고 개념의 슈퍼마켓 매장이 출현하고, 이곳에는 고객이 키오스크나 모바일 기기로 주문하기 전에 진열된 제품을 볼 수 있는 작은 공간만 있을 것이다. _ 마틴 포드, <로봇의 지배>, p89/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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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6-25 20: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말 안타까운 광경이지요,ㅠㅠ

겨울호랑이 2023-06-25 22:10   좋아요 1 | URL
사람과 옛 추억이 변화의 흐름 속에 쓸려가는 것 같아 참 아쉽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3-07-01 17: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립네요. 저렁 아름다운 구멍가게들이 하나둘 자취를 감춘다는 것이.....

겨울호랑이 2023-07-01 18:05   좋아요 1 | URL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도 함께 했던 시대도 모두 추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방공호 안에서 죽을 뻔했던 때로부터 5년 전쯤, ‘혁신 관료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일본을 크게 바꾸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지향한 바는 제2차 세계대전 수행을 위해 국가의 총력을 전쟁에 전용하는 ‘국가총동원 체제 확립이었습니다. 그들이 수립한 경제제도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거의 그대로의 형태로 살아남아 전후 일본의 기본을 형성하게 됩니다. - P21

그들의 이념은 ‘산업의 국가 통제입니다. 기업은 공익에 봉사해야지 사익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불로소득으로 생활하는 특권계급의 존재를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사고방식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회주의 사상에 가깝습니다. 사실 기시 노부스케가 목표로 한 것은 ‘일본형 사회주의경제‘ 건설이었습니다. 때문에 한큐전철의 창업자이자 대표적인 전경영자였던 고바야시 이치조는 상공대신에 취임했을 당시에 차관이었던 기시를 ‘아카츠(적색분자·빨갱이)‘라고 부르며 비난했습니다. - P22

전시에 만들어진 이러한 경제체제는 전쟁이 발발하기 이전의일본 경제 형태와는 이질적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저는 그 체제를 ‘1940년 체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결국 총력전을 위한 국가 총동원 체제로 만들어진 ‘1940년 체제‘는 종전에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않은 채 살아남아 전후 일본 경제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 P27

1940년 체제 사관‘이라는 ‘새의 눈‘으로 조망하면, 1980년대의 거품 경기는 일본 경제가 ‘1940년 체제‘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음에도 그 체제가 생존을 도모한 데서 생긴 사건입니다. 더욱이 1940년 체제 사관에서 보면, 아베 신조 내각이 실시하고있는 경제정책은 ‘전후 레짐(체제)으로부터의 탈피‘가 아닙니다. 완전히 반대로 ‘전시 · 전후체제로의 복귀‘입니다. 그 기본적인 방향은 시장의 기능을 부정하고 경제활동에 대한 국가 관여를 강화하자는것입니다. 1940년 체제의 사고방식 그 자체입니다.  - P29

군수 관련 기업을 관리하면서 항공기를 비롯한 공업 생산 물자의 조달을 통제하던 군수관리들은 미 점령군 진주 직전에관공서 간판을 상공성‘으로 바꿔 달았죠. 점령되면 당연히 전범 색출이 시작되기에 군수라는 명패를 달고서는 도저히 조직으로서 살아남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군수성은 1943년에 상공성과 기획원이 통합되면서 생긴 관청이기 때문에 원래의 이름으로 되돌린 것입니다. - P39

자금을 배분하는 데 있어서는 전시에 형성된 간접금융 중심 시스템과 정부의 금융기관 대출 통제 시스템이 전면적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이러한 구조를 바탕으로 정부는 자원배분을 완전하게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 - P59

일본에게 이 전쟁은 하늘에서 내려준 선물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미국이 한국을 지원하기 위해 일본을 ‘한반도 전쟁의 전략물자보급기지로 삼은 덕분에 일본의 시장 수요가 크게 증가하는 ‘한국전쟁 특수‘가 발생한 것입니다. 1949년 말 2억 달러에 불과했던 외화는 1950년 말 9억4000만 달러로 4.5배 급증했습니다. ‘도지 라인‘에 의해 경기 침체에 빠졌던 일본 경제가 이로 인해 단번에 불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 P75

즉, 엔화는 날로 강세를 보였습니다. 변동환율제로 이행하자, 일본 민관이 두려워한 것은 엔고가 진행되면서 수출이 줄고 일본 경제가 타격을 입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우려했던 일은 실제로 터지지 않았고, 일본 경제는 엔고가 계속 유지되었음에도 고성장을 이어갔죠. 오히려 1980년대 들어와 무역흑자가 증가하고 주가도 상승하는 등 일본 경제는 엔고에 의해 오히려 더 강해졌습니다. - P167

한편, 일본의 인구가 고령화되는 추세가 두드러졌습니다. 이는 장차 사회보장비를 급증시킬 게 분명했죠. 하지만 사회보장비에 대한 장기 전망은 전혀 없었습니다.일본의 예산은 ‘연도주의‘로, 보통 1년 치의 예측밖에 세우지 않았습니다. 장기적인 전망이 없는 구조였던 셈이죠. ‘이러면 앞으로 문제가 불거진다‘라는 게 나가오카 차장의 생각이었고 저도 똑같이느끼고 있었습니다. - P172

‘1940년 체제‘는 1950년대, 1960년대의 자원·자금 부족 국면에서 전략적인 산업 부문에 자원이 우선적으로 배분될 수 있게 해전후 부흥과 공업화를 촉진했습니다. 그리고 1970년대에 석유파동이라는 외부 위기에 일본 경제 전체가 최적으로 대응하도록 크나큰 기능을 발휘했습니다. - P195

그럼 왜 일본에서 토지 문제가 심각해진 것일까요?
도시의 토지 이용도가 낮기 때문입니다. 즉, 도시지역의 토지를집약적으로 이용하지 않는 거죠. 높은 빌딩을 지어 토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지 않았고, 도심의 일등지도 방치된 채였습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 P247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금융 영역에서의 1940년 체제‘는 일본의 금융시장을 국제금융시장에서 분리해 쇄국하는 것을 밑바탕으로 성립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야만 금리 통제가 가능했던 거죠. 그러나 경제의 국제화와 자유화가 일본에도 영향을 미쳐, 이른바 ‘전시戰時 (1940년)‘ 금융체제가 사명을 마칠 때가 된 것입니다. 이러한 구조적 원인이 있었기 때문에 전대미문의 거품 경제가 발생했던 거죠. - P253

‘이차원 금융완화‘라는 명분 아래, 일본은행이 비정상적으로 대량의 국채를 구입하고 있습니다. 그 국채는 장차 가격이 하락해 일본은행에 손실을 안겨줄 가능성이 매우 높죠. 손실액은 국민의 부담이 됩니다. 그런데도 ‘문제‘로 논의되고 있지 않습니다. 국민이 큰 부담을 지는 국가정책은 명료한 형태로 공개되어야 하며 옳고 그름이 논의되어야 합니다. 그런 정책을 표면화하지 않고실시해 흐지부지하게 처리해버리고 있습니다. 이때의 ‘거품 경제 처리 방식‘이 현재의 금융완화정책으로 이어진 악습의 원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P277

좀더 본질적인 원인은 독일의 산업구조가 이후 크게 달라진 세계경제 환경에 부합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일본이 안고 있던 것과 같은 문제였습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강했던 경제체제가 1980~1990년대에 생긴 세계경제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일본도, 독일도 새로운 세계경제의 환경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것입니다. 당시에는 그 사실을 확실하게 알 수 없었습니다. 확실해진 것은 더 나중의 일이지요. - P294

중국이 공업화하여 일본과 같은 생산활동을 하면 일본의 임금 수준은 장기적으로 중국 수준으로 감소하게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1990년대 이후 현실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태의 본질입니다. 임금 하락을 벗어나고 싶다면 중국에서 할 수 없는 경제활동을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즉, 생산성이 높은 신산업이 탄생해야만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지금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이 일본 경제의 문제는금융완화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장기 정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기본 원인은 여기에도 있습니다. - P317

앞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그 "말이 안 될 정도로 불가능한 일"이란 어떤 사정일까요? 사실 대답은 매우 간단합니다. 저는 ‘풍요로워지려면 성실하게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대원칙이 무너져버린 상태입니다. 즉, 성실하게 일하지 않아도 풍요롭게 잘살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하고있는 것입니다.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런 상황은 적어도 오래 지속될 수 없습니다. - P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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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업 종사자들에게 수산물 안전성에 대한 신뢰는 곧 생계와 직결된다. 해녀들의자율 조직인 통영나잠자율공동체 장안석 위원장(66)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를생생히 기억한다. 수산물에 대한 불안이 퍼지면서 가격이 절반 아래로 떨어졌다. 벌써 당시와 유사한 사태가 반복될 조짐이 보인다. 최근 해녀들이 주로 채취하는 전복, 소라, 해삼 등의 가격이 30%가량 하락했다. 그는 오염수 방류 우려로 불안감이 증폭한 데 따른 결과라 해석한다. - P10

학생 수 감소는 전국 모든 학교에서나타나는 공통 현상 아닌가? 그렇지 않다. 반대인 곳도 많다. 폐교와 학생 수감소가 이어지는 가양동 등촌동과 서편으로 바로 닿은 마곡동의 공진초등학교는학생이 너무 많아서 학교가 미어터질 지경이다. 올해 초 기준 전교생 1937명으로, 강남구 도곡동의 대도초등학교(1986명) 다음으로 서울에서 학생 수가 많은초등학교다. 공진초는 마곡지구가 조성되던 2014년 서울 가양동에서 마곡동으로 옮겨온 ‘이전 재배치‘ 초등학교다. 원래 가양동 공진중학교와 붙어 있었다. 공진초는 이전하고 공진중은 폐교했다. - P13

학폭위 개최 없이 이 특보의 아들 전학으로 마무리된 사건은 이 특보가 개입된 은폐 의혹으로도 연결된다. 이 특보는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대변인으로 시작해 홍보수석과 언론특보를 지내며 친이명박계 중에서도 최측근으로 불린다. 아들 학폭 은폐 의혹이 큰 논란으로 번진것은 이 때문이다. - P23

다음날인 3월1일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치권력은시민단체를 세금으로 지원하고, 시민단체는 권력을 지지하는 부패 카르텔"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런데 당시와 지금은 사용하는 용어가 다르다. 그때는 시민단체이고 지금은 민간단체다. 사정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부터 정권에 비판적인 시민단체를 겨냥했다. 처음에는 국세청을 동원할 생각이었다. - P26

수신료 분리 징수제가 도입되면 매달전기요금에 합산해 걷던 TV 수신료 2500원을 낼지 말지 선택할 수 있게 된다. KBS는 당장 재원구조에 타격을 입는다. 2022년 기준 KBS의 TV 수신료는 전체수입의 45.3%(6934억원)를 차지한다. 분리 징수가 시행되면 절반 이하인 3000억원대로 감소할 것으로 추산된다.  - P29

그렇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 5년이 언론계에 중요한 시기였다고 언론단체는 입을 모은다. 언론개혁 열망 속에 집권한정부였던 만큼, 공영방송에 대한 정치권의 후견주의를 끊어낼 적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당이 박근혜 정부 시절 발의했던 공영방송 지배구조개선법(방송법)은 끝내 처리되지 못했다. 2017년 8월문재인 대통령이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사람을 공영방송 사장으로 뽑는 것이 도움이 되겠는가"라며 재검토를 지시한 후, 사실상 좌초되었다. - P31

윤석열 정부는 가루쌀 홍보에 사활을걸고 있다. 농정정책의 최대 현안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황근 농림부 장관은 가루쌀을 ‘신의 선물‘이라고까지 부르며 지난해부터 보급 사업을 독려하고 있로 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밀가루 값이 급등하면서 식량 위기를 걱정했던 한국으로서는 가루쌀이 미래의먹거리라는 것이다. 눈여겨볼 것은 가루쌀이 윤석열 대통령이 4월4일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의 ‘대안‘ 격으로 등장했다는 점이다. 양곡관리법의 핵심은 쌀값 안정을 위해정부가 쌀을 의무적으로 매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더해 논에 쌀 말고 - P42

공화당 여론조사가인 닐 뉴먼하우스는 AP 통신에 "트럼프 스스로 기소될 것이라고 누차 말했기 때문에, 이번 기소는친공화당 유권자들에게 놀랄 일이 아니다"라면서 공화당 대선주자 1위인 그의입지가 흔들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공화당 전략가인 세라 롱웰은 "트럼프가 탄핵되거나 기소될 때마다 오히려 지지자들의 결집 효과가 나타났다. 이번 기소 외에 추가로 기소돼도 트럼프공화당 대선후보로 확정되는 데 도움이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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