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끝으로 전쟁의 성격에 대해 말해야 할 때이다. 현실적으로 이 전쟁은 합의된 경계선을 넘었다는 점에서  명백히 침략전쟁이었다. 그러나 학문적 수준에서 이 전쟁의 개념은 단순한 침략전쟁과는 다르다.  이 문제는  매우 복잡하며 앞으로 많은 토론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교전국 일방이 당사자간의, 또는 국제법과 협약에 의해 용인된 경계선을 넘는 군사행동과 국경을 넘는다는 의미에서의 침략전쟁이자, 다른 한편 분열된  민족을 합치려고 시도하였던 많은 국가들의 사례와 일치하는 민족내부의 단일민족국가의 형성 노력의 하나였다. - P894

이 전쟁은 두 분단국가간의 민족의 통일을 위한 전쟁이었다. 그 점에서는 민족 내부의 전쟁으로 출발한 것이었다. 그러나 분단의 등장원인, 38선의 복합적 성격과  전쟁의  결정 및 발발에 깊숙이 개입된 소련과 중국의  존재로 인하여 애초부터 이 전쟁은 결코 순수한 내전이 아니었다.
게다가 미국 유엔마저 개입함으로써 이 전쟁은 국제전으로 상승하여 버렸다. 미국과 중국의 참전 이후 이  전쟁은 전혀 이승만과 김일성의 전쟁이 아니었다.  이후 전쟁이 끝날 때까지 가장 중요한 결정은 워싱턴과 동경, 모스크바와 북경에서 이루어졌다. - P895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22-06-21 15: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번 째 문단이 눈길을 잡아 끄네요.

결국 우리 민족의 운명에 대한 결정
이 외세에 의해 내려졌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겨울호랑이 2022-06-21 15:47   좋아요 1 | URL
네, 책의 본문에서도 해방이 미/소 양국에 의해 ‘도둑처럼 닥쳐왔다‘고 표현되었고, 분단 또한 도둑처럼 주어졌다고 하는데, 정확한 표현이라 생각됩니다...
 
[전자책] 대한민국 인구 트렌드 2022-2027 - 인구 절벽 위기를 기회로 맞바꿀 새로운 미래 지도
전영수 지음 / 블랙피쉬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은 기존 이론에서 벗어난 새로운 경로에 진입한 듯하다. 이론대로라면 고용, 소득 등 재무 개선만으로 출산율이 높아져야 하지만, 한국은 출산 포기가 사뭇 사회 트렌드로 번지는 양상이다. 과거엔 거의 없던 평생 비혼이 남(14%), 여(7%) 모두 급증했다. 20~30%로 상승하는 건 시간문제다... MZ세대는 ‘무자식‘을 표준으로 받아들일 기세다. 그들의 시대 의제는 다양성이다. 다양한 생활 모델을 골라 본인의 효용을 높이는 카드를 선호하고 선택한다. 그 때문에 ‘졸업 -> 취업 -> 결혼 -> 출산 -> 양육‘의 전통 모델은 기능 부전에 빠졌다. 저출산이 팬덤적 문화 현상으로 번지면 기존의 인구 정책은 무의미해진다. 근본적인 개혁이 필수일 수밖에 없다. _ 전영수, <대한민국 인구 트렌드 2022-2027>, 62/378

전영수의 <대한민국 인구 트렌드 2022-2027>은 향후 대한민국 인구와 이러한 트렌드 변화에 관한 책이다. 다만, 해당 기간 동안 인구 변화에 변곡점이 특별히 생긴다는 의미보다는 향후 5년간 유망산업, 구매력있는 소비자, 소비의향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 마케팅에서 타겟팅(targeting) 책으로 구분하는 편이 더 정확할 듯하다. 그리고, 변화는 현재 우리보다 조금 앞서 고령화 길을 걷는 일본의 사례를 주된 예시로 분석된다.

초고령사회, 구매력있는 노령층, 결혼과 출산을 꺼리는 젊은 층으로 특징되는 인구 구조 속에 유망 부동산, 사업분야 등이 소개되지만, ‘저출산 고령화‘ 시대의 이슈에 새로운 통찰을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다만, 개인적으로 점심시간에 EXCEL을 가지고 해 본 계산이 있어 올려본다. 2021년 우리나라의 저출산 관련 예산은 42.9003조다. 이를 정부에서 지출하지 않고 당사자에게 배분하면 얼마가 돌아갈까? 단순하게 계산해보자.

저출산 문제를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금액은 달리 배분될 수 있을 것이다. 크게 이렇게 나눌 수 있지 않을까. 1) 가임기 여성의 경제적 문제 2) 신혼가구의 소득 문제 3) 자녀 양육비 문제. 2020년 현재 우리나라 가임기 여성(15~49세)의 인구는 11,422,000명이며, 2020년 혼인 건수는 214,000건, 신생아수는 272,337명이다. 가임기 여성에게 저출산 예산 42.9조를 나누어 준다면 1년동안 이들에게 3,755,936원씩 지급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에는 15세 여성부터 지급되기에 현실성이 떨어지기에 대략 금액만 짐작하는 것으로 넘기자. 혼인건수와 신생아수는 대략 비슷한데, 대략 1년에 30만명씩 신생아가 태어나고 이들이 속한 가정에 18살까지 양육비를 지급한다면, 약 800만원 정도 금액을 지급할 수 있다. 한 가정에 아이가 1명만 있어도 800만원을 지급할 수 있는 돈이 이미 편성되어 있는데 가정에서는 돈이 없어서 아이를 키우지 못하는 현실. 차라리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저출산 예산을 기금에다 넣고 출생신고 때마다 계좌번호 받아서 바로 송금해주면 다른 저출산 대책이 필요할까.

저출산 문제와 저출산 예산을 보며, 이 문제야말로 정부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장에 맡긴다면 저절로 해결될 문제가 아닐까를 생각하게 된다...

출산 정책은 더 눈물겹다. 액수와 대상 등 자녀 숫자별 지원금을 내세워 출혈경쟁을 반복한다. 자녀를 낳으면 빚 1억을 갚아주거나 임대료를 면제해준다는 곳도 생겨났다. 튈수록 주목받기에 파격적인 아이디어는 계속 나오지만 중앙 정책과 겹치는 내용이 부지기수다. 해서 경쟁을 넘어 과열이란 혹평이 많다. 돈으로 보자면 가성비가 낮거나 없다. 투입(15년간 200조 원)은 많은데 산출(출산율 세계 꼴찌)은 별로다. 영리 조직과 개별 가계의 살림살이면 진즉 망했을 수준이다. _ 전영수, <대한민국 인구 트렌드 2022-2027>, 300/378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다이제스터 2022-06-21 13: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급기간을 18년으로 하셨는데, 현실적으로 최소 26년으로 해야하지 않을까요? ^^
그리고 자녀 결혼비용, 집값 등 엄청난 플러스 알파를 고려하면 무자식 상팔자라는 시대조류도 이해는 됩니다. ㅠㅠ

겨울호랑이 2022-06-21 14:18   좋아요 2 | URL
^^:)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처럼 결혼전까지 생각을 하면 좋겠지만, 그 정도 기간까지 감안한다면 출산예산이 아닌 기본소득의 구조에서 파악해야 할 것 같습니다. 또한, 부모는 자녀가 자란 후 비용까지 고려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모든 부분을 정부에서 보조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여겨집니다. 자녀 출생으로 인한 한계 편익과 한계 비용을 생각해볼 때, 많은 부분을 가정에서 가져가는 것도 사실이니 수익자 부담 원칙으로 생각해본다면,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레삭매냐 2022-06-21 16: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무자식 표준과 출산 기피
가 시대의 트렌드가 되었군요.

출산 장려 정책은 부동산부터
시작해서 복지 그리고 교육까
지 모두 아우르는 그야말로 지
속가능한 종합 패키지 정책이
되어야 하는데, 땜질식 처방으
로 그저 예산폭탄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시대의 거
대한 흐름을 거스를 수 없지
않나 싶습니다.

겨울호랑이 2022-06-21 16:21   좋아요 2 | URL
천문학적인 규모의 예산을 투입하면서도 점점 악화되는 저출산 문제는 분명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한 부분이라 여겨집니다.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먼저 파악하고 접근해야 할 문제를 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환경문제와 공통점이 있어 보입니다. 여러 면에서 참 위기감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그런데 남한의 토지개혁 및 한국전쟁중의 북한의 토지개혁과 비교하여 미리 한 가지 지적하고 넘어가자면 방법의 차이를 제외하면 농민에게 돌아간 토지의 실제 양은 큰 차이가 없었다. 사회경제적 변혁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면서 전쟁까지 시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혁명적 방법을 택한 북한체제가 농민에게 준 시혜나 개혁적 방법을 택한 남한체제가 농민에게 준 시혜 사이에는 거의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 P19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제의 시기 동안에 남한 북한 각각에서 발생한 내부변혁은 이들 국가들을 구성요소로 하는 48년 질서 자체를 변화시켰다. 이 질서는, 그것의 다이내미즘 자체가 전체의 구성단위인 남북한에게 영향을 주고 또 받는 상호적 효과를 갖는 독특한 변수로서 취급될 수 있는 그 자신의특별한 다이내미즘을 발전시켰다. 곧 하나의 체제가 구성되면 그 체제의 다이내미즘에 대해 개별단위들이 반응하고, 그것은 또 그 체제의 다이내미즘을 형성하는 독특한 양식을 갖는다. 이러한 교환의 체계는 그반대로도 발생한다. 즉, 내적 변화가 48년 질서를 변화시켜 전체 체제에 의해 형성된 변수를 수정하는 것이 발생한다. 이러한 방법을 계속한다면 우리는 48년 질서의 구조와 과정의 전체를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하나의 기준을 두 사회에 각각 다르게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 P70

‘48년 질서‘ 시기 남한과 북한 체제를 이끌어간 근본적 기치는 민족통일이었다. 특히 북한은 군사주의와 급진주의가 결합되어 통일을 위해 사회의 모든 정신과  자원을 집중시킨 하나의 혁명적  동원체제였다.  혁명적 동원체제는 간단하게 말해 혁명을 수행하는 또는 하기 위한 동원체제를 말한다. 동원체제는 리더십이 특정의 주어진 이데올로기와 주의, 목표를 위해 사회의 자원을 위로부터 추출, 동원하고 집중시키는체제를 말한다. 1945년부터 1950년까지의 북한체제를 특징짓는 두 요소는 바로 혁명과 동원이었다.  - P73

이를테면 북한의 공식 통일정책인 국토완정론과 남한의 공식통일정책인 북진통일론, 그리고 그것들이 놓인 48년 질서가 대표적이다. 이것을 단순히 맞물린 구조로만 보아서는 안되며, 그 위계적 구조까지 보아야 한다. 국토완정론은 스탈린의 외교정책과의 연관속에서, 북진통일론은 미국의 대한정책과의 연관속에서  해명되어야  한다.  이러한 교직 자체가 대쌍관계동학 접근이 보여주는 상호접근이나 비교접근과의 중요한 차이점이다. 중국혁명과 한국전쟁, 38선의 복합성과 다양한 균열구조를 동태성과 함께 추적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 P7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797년부터 1802년까지 5년간은 유럽사의 경로를 그리는 데 결정적이었다. 승승장구하던 프랑스는 처음에는 해방을 구실로 내세워 유럽에서 급속한 영토 팽창에 착수했다. 1793~1794년의 패배들이 프랑스에서 혁명적 소요의 향배에 심오한 영향을 미쳤던 것처럼, 1797~1802년의 승리의 희열은 혁명 지도자들과 프랑스 공화국의 세계관을 형성했고, 그들이 프랑스 국경 너머 세상을 내다보게 했다. 이것은 "신 세계질서", 즉 통치 군주들 간의 관계에 기반을 두지 않은 신질서를 재규정하는 과정에서 전환점이었다.

일찍이 1797년에 루이 드세 장군은 일기에 보나파르트가 "이 모든 민족들에게 프랑스 국민
French nation이라는 원대한 관념을 부여하는 위대하고 기민한 정책을 갖고 있다"라고 적었다. 그는 프랑스 최대의 적부터 시작해 지구적 규모로 그 정책을 추구하게 된다.

이집트 원정은 학문과 문화 영역에서 항구적인 유산─이집트학이라는 학문 분야를 수립하는 계기가 되었다─을 남겼지만 본질적으로는 군사적·정치적 실패였다. 원정은 레반트에서 프랑스의 전통적인 정책들을 정면으로 위배하며, 영국 식민 권력을 강타하는 대신 프랑스의 전통적 맹방(오스만 제국)이 숙적 러시아와 영국과 손을 잡게 몰아갔다. 정치적으로는 총재 정부의 공격적인 외교정책을 대대적으로 부각시킴으로써 1798년 후반기에 2차 대불동맹이 결성되도록 촉진했다. 그것은 공화주의 이상들을 식민주의와 영토 확장과 결합하려는 기획의 실패를 의미했다.

이집트 원정이 오리엔탈리즘, 즉 비유럽의 문화와 언어들에 대한 학문의 발전에 미친 영향도 그와 마찬가지로 지대했으니, 오리엔탈리즘은 이후 유럽 식민주의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이집트 원정은 이슬람 사회를 유럽의 제국에 편입하려는 최초의 (그 마지막은 아니지만) 근대적 시도를 대변했고, 에드워드 사이드의 표현으로는 오리엔탈리즘 담론을 형성하는 데 중대한 계기, 다시 말해 오리엔탈리즘의 모든 이데올로기적 구성 요소들이 수렴되고, 서구 지배의 온갖 수단들이 오리엔탈리즘을 투사하기 위해 이용되는 계기였다.
39

19세기 대부분 동안 유럽인들은 그레이트 게임을 유심히 주시했다. 그레이트 게임이란 중앙아시아와 인도에서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영제국과 러시아 제국 간의 전략적 대결과 갈등을 가리키는 용어다. 아시아에서 러시아 제국의 팽창에 놀란 영국은, 자국의 이해관계가 유럽에서 러시아의 이해관계와 대립할 때마다 러시아가 영국의 가장 귀중한 식민지 속령을 침공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하지만 그러한 지정학적 책략들은 사실 훨씬 전부터 시작되었고, 원조 ‘그레이트 게임’에는 영국과 러시아, 프랑스가 엮여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