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를 3개월 앞둔 프랑스에서는, 이번에도 좌파가 패배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막상 선거가 닥치면 좌파의 다양한 분파가 단합할 것이라고 가정해보더라도, 좌파 구성원 간에 남아있는 공통분모가 없다. 따라서, 좌파의 패배를 점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세금제도, 퇴직 연령, 유럽연합(EU), 원자력 존속 여부, 국방정책, 미국, 러시아, 중국과의 관계 등 핵심 사안들에서 서로 대립하는 이 다양한 좌파 분파들이 어떻게 연합해 국가를 이끌 수 있겠는가? 극우에 대한 두려움만이 아직도 좌파를 결집시키는 유일한 공통분모다. 지난 40년간 프랑스에서 '좌파'가 집권한 세월은 20년에 달한다(1981~1986, 1988~1993, 1997~2002, 2012~2017). 그런데 그 동안 극우는 꾸준히 입지를 다졌다. 다시 말해 극우의 부상이라는 위험을 저지하기 위해 좌파가 취한 전략은 처참히 실패했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2.1> <좌파는 왜 패배하는가> 中


 2022년도 4월에 프랑스 대선이 있어서인지 최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기사의 상당량은 선거와 관련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덕분에 거의 같은 시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도 여러 시사점을 던져준다. 2022년 1월호 기사 중 <좌파는 왜 패배하는가>는 사회주의 세력이 쇠퇴하는 여러 원인에 대해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있는데, 과거 유럽에서 자본주의의 폭주를 막았던 대안으로 사회주의의 위상과 업적을 생각한다면 '언제나 패배할 수 밖에 없는 좌파'라는 제목은 관심을 끈다.   

 

서유럽에서 사회주의가 지난 100년간 얻은 주요 성과는 자본주의를 문명화한 것이다.(p610)... 사회주의자들은 복지 제도 확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유럽 계몽주의의 진정한 계승자들이고, 시민권과 민주주의의 수호자들이었다. 그들은 투표권이 제한된 시절 투표권을 확대하기 위해 싸웠다. 다른 어떤 정당보다 일관되게, 일찍부터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웠다. 구체제의 견고한 권리와 특권을 폐지하기 위해 싸웠다. 그들은 인종 차별에 단호하게 반대하는 모든 투쟁을 지지했다. 사형 제도 폐지와 동성애 합법화, 낙태의 비非범죄화에 중요한, 때로는 주도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_ 도널드 서순, <사회주의 100년> , p611 


 지난 30년 동안, 좌파와 대중 유권자들이 멀어진 것은 다음과 같은 요인들에서 비롯됐다. 정치적으로는 공약 불이행에 대한 배신감, 경제적으로는 3차 산업의 확대, 자본화, 세계화 때문이다. 이념적으로는 신자유주의적 헤게모니, 사회학적으로는 교육받은 계급들의 능력주의 찬양, 인류학적으로는 계산적이고 상업적인 합리주의로 인한 삶의 다양성 와해 때문이다. 또한 지리적으로는 대도시의 주변 지역 잠식, 문화적으로는 사회 투쟁에 대한 상류층의 투쟁 때문이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2.1> <좌파는 왜 패배하는가> 中


  <좌파는 왜 패배하는가>의 기사는 그 원인을 좌파가 이전까지 여러 차례 정권을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실패한 것에서 찾는다. 정책수행을 위한 재원 확보를 위해 우파와 타협할 수 밖에 한계점. 그것은 좌파가 갖는 한계점이기도 하다. 헌법에 보장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체제 안에서 지속적인 정당활동과 차기집권을 위해서 이들의 개혁안은 한계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한계점은 그들의 개혁에 대한 기대감을 실망감으로 바꾸면서 좌파와 대중들의 분리가 시작된다고 기사는 분석한다. 


 이런 성공에도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를 폐지하지 못했고, 경제계획을 통해 자본주의를 이끌지도 못했다. 이 실패의 원인은 정치와 현대자본주의, 그 둘의 관계에 내재된 속성에 있다... 자본주의자들의 활동에 전부가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아무리 커도, 그것이 자본주의에 악영향을 미쳐서 실업과 저성장을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 권한은 억제될 수밖에 없다(p612)...  한 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서유럽 사회주의 정당들은 두 가지 뚜렷한 제약 내에서 자본주의를 규제하려고 했다. 첫째 제약은 자본주의 자체를 존속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둘째 제약은 민족국가로, 모든 규제의 틀에 법적 테두리를 제공했다. _ 도널드 서순, <사회주의 100년> , p613


 하지만 두 가지는 분명히 해둬야 한다. 첫째, 좌파는 단순히 좌파의 강령 실천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우파의 강령을 실천했다. 둘째, 좌파가 타협을 최대한 연기하려 할 때마다(프랑수아 올랑드는 취임 첫날부터 그랬다) 좌파를 굴복시킨 것은 쿠데타도 외국 군대도 아닌 재정 질식이었다. 2015년, 당시 그리스 재무장관 야니스 바루파키스는 "아테네의 봄과 프라하의 봄을 짓밟은 것은 탱크가 아니라 은행"이라고 요약했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2.1> <좌파는 왜 패배하는가> 中


 여기에 더해, 좌파의 세력구성은 수많은 '결'들로 구성된다. 좌파를 구성하는 여러 구성원들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갖는 느슨한 연합구조를 갖는다. 현상을 타파하기 위한 동맹. 동맹을 위한 수많은 협상과 양보를 거치면서 최초의 개혁안에서 상당부분의 후퇴는 불가피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구성은 선거 때마다 이합집산(離合集散)이 반복되며 체계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와의 관계에서 1860년대 이후 한 세기 동안 두 가지 상호 보완적인 원칙이 유효했다. 사회주의는 언제나 좌파의 고갱이었고 좌파는 언제나 사회주의보다 그 범위가 넓었다. 사회주의자들이 독자적으로 자신들의 목표를 수행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사회주의자들은 언제나 동맹자들을 필요로 했다 - 선거에서 겨룰 때나 정부를 구성할 때, 파업을 조직할 때나 공동체의 지원을 구축할 때, 선동을 수행할 때나 제도 안에서 활동할 때나 공적인 영역에서 자신들의 사상을 공언할 때나 언제나 그러했다. 1960년대 이후 사회주의자들이 좌파 안에서 헤게모니를 잃고 다른 급진주의자들이 좌파의 정치 공간에 진입함에 따라 이러한 협상의 조건이 한층 더 복잡해졌다. _ 제프 일리, <더 레프트 1848 ~ 2000 : 미완의 기획, 유럽좌파의 역사>, p617


 이에 대항하는 우파 - 특히 극우파 - 의 논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자본주의'와 '민족주의'를 근간으로 자신들의 논리를 극단으로 밀어붙인다.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사유재산침해,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인종과 국가를 우선하는 정책을 주장하며 감정에 호소한다. 간결한 메세지와 애국심 등 감정에 호소하는 전략. 여기에 피에르 부르디외가 지적한 '언론장의 보수화'까지 더해지면, 우파는 선거에서 질래야 질 수 없게 된다. 개인적으로 좌파의 느슨한 연합은 '측정할 수 없는 이념들의 질(質)적인 연합'인 반면, 우파의 연합은 '측정가능한 이익의 양(量)적인 결합'이라는 차이가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이것은 선거철이면 재등장하는, 극우가 내세우는 모든 공약의 핵심이다. 또한, 프랑스에 과거의 명성을 되돌려줄 현자의 돌이다. 실업부터 공공적자, 주거에서 이민까지, 범죄에서 연금까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만병통치약이다. 이것은 바로 '국적 우선제'다. 국적 우선제 장점은 많다. 우선, 개념이 쉽고 단순하다. 또한, 자원이 부족한 위기상황에서 확산되는 국수주의적 반응을 자극함으로써 논쟁이 될 '예산' 없이도 부차적인 모든 관심사에 응용할 수 있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1.12> <극우파의 만병통치약, '국적 우선제'> 中


 사회는 하느님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도, 신비로운 '자연력'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사회는 인류에 의해서 창출되었다. 사회가 계속해서 진화할지 혹은 쇠락할 것인지는 사람의 손에 달려 있다. 사회가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는 개인적 판단의 문제일 수 있지만, 죽음보다는 삶을, 고통보다는 행복을, 비참함보다는 후생을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회를 수용해야만 한다. 그리고 사회가 존재하고 발전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권도 제한이나 유보 없이 수용해야만 한다. _ 루트비히 폰 미제스, <사회주의 2> , p251/390 


 주로 시청률에 발목이 잡혀 정치적 경제적 제약에 점차 구속됨으로써 보다 더 타율적이 돼가는 언론장은 (사회과학장, 철학장 등의) 문화생산장이나 정치장을 비롯해 다른 모든 장을 구속하려는 속성을 보인다. 그런데 장이란 내부에 다수의 힘이 존재하고 상호 간에 영향력을 미치면서 투쟁을 벌이는 공간으로서, 이 투쟁의 주된 목표는 힘의 장에 변형을 가하는 데 있다. 즉, 하나의 장에서는 장내 투쟁의 쟁점이 되는 것을 정당하게 점유하기 위한 경쟁이 존재한다. 언론장에서의 쟁점은 다름 아닌 대중의 관심이다. 대중을 얻기 위해, 대중을 끌어들일 수 있는 요소들(속보, 특종, 독점 정보, 유명 인사 등)을 점유하기 위해 내부에서 끊임없이 경쟁한다. 재미난 점은 ‘자유의 전제조건’이라는 이 경쟁으로 인해, 상업적 통제 하의 문화생산장에서는 오히려 장의 획일화와 검열, 나아가 보수화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2.1> 피에르 브루디외, <특정 세계관은 어떻게 자리잡는가> 中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기사는 프랑스 정치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문제점 등에 대해 지적하고 있기에, 오늘 우리 한국의 정치 상황과는 분명히 차이점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강의 기사 내용이 남의 이야기같지 않은 기시감(旣視感)이 드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잘 모르겠다. 긴 페이퍼의 마지막은 '여론장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한 글을 옮기는 것으로 갈무리한다...


 기자와 여론조사 기관은 TV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올라가자 자신의 영향력과 킹 메이커로서의 역할에 도취했을 뿐만 아니라 매우 인간적인 자기중심적 본능에 무릎을 꿇었다. 시민들의투표 의사를 가시화하기 힘든 (어쩌면 실체조차 없는) 시기인, 선거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선거 6개월 전에 투표 의사에 관한 여론조사를 한다는 것은 더 기이한 역설이다. 이처럼 후보 선정이  인위적인 구조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민주선거의 정당성을 위협하는 위험 요소다. 과연 언제까지 이 환상이 유지될 수 있을까? 표본의 대표성이 신뢰할 만하지 않고, 계산이 정확하지 않고, 선거에서 승리할 확률이 높아지지 않을 때, 여론조사의 민주적인 이점에 대한 믿음은 사라질 것이고, 정당의 여론조사 담당자는 지쳐버릴 것이다. 그러나 여론조사에 대한 비판과 품질 하락에도 불구하고 그런 상황이아직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은, 반대 방향에서 어떤 강력한 흐름이 이것을 막고 있음을 의미한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2.1> <누가 대선 후보를 선택하는가?> 中


 언론이 대중의 대화를 촉진시켜야 한다는 대화 저널리즘의 임무는 정보의 전달이 아니라 시민과의 소통, 즉 대화다. 사람들을 단순히 뉴스 소비자에 머물지 않게 하기 위해서 언론은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논의 과정에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언론이 시민과의 만남과 모임을 갖고 그 과정과 내용을 기사로 다루어 공동체 구성원들과 나누어야 한다. 언론이 공동체의 대화를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소외집단이나 개인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 주어야 한다. 언론은 전문 저널리스트들이 만들어 낸 정보를 유통시키는 통로의 역할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시민적 담론을 위한 장(場)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_ 월터 리프먼, <여론> , p13/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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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유사 - 수운이 지은 하느님 노래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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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이 한글가사를 쓴 것은 우발적으로 흥에 겨워 쓴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한글가사를 집필하여 남겨야겠다는 아주 명백한 문학적 의도를 가지고 쓴 것이다(p35)... 그런데 수운은 왜 한글가사를 그토록 열심히 썼을까? 그 이유인즉슨 매우 단순하다. ˝한글˝은 민중의 언어였기 때문이다... 한글가사는 수운이 애초로부터 민중과 교섭하기 위한 매체로 설정한 문학양식이다. 이러한 수운의 깨인 의식은 동학을 민중의 것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_ 김용옥, <용담유사 : 수운이 지은 하느님 노래>, p35

도올 김용옥(檮杌 金容沃, 1948 ~ )의 <용담유사 龍潭遺詞>는 수운 최제우(水雲 崔濟愚, 1824~1864)의 한글가사를 새롭게 풀이한 책이다. 한글로 쓰여진 작품을 한글역주한다는 말은 다소 이상하게 들리지만, 작품에 쓰여진 단어와 의미안에 수운의 삶과 생각이 함축적으로 담겨있어 이를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저자는 <용담유사>를 <동경대전>과 연관지어 풀이한다. <동경대전>에 담긴 수운의 사상은 <용담유사>를 통해 민중에게 널리 받아들여지면서 비로소 생명력을 갖는다. <동경대전>이 포도나무라면, <용담유사>는 가지라 볼 수 있을까.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는 동학의 경전이기에 자연스럽게 <성경>을 떠올리게 된다.

수운이 상제와 만나 대답하는 광경은 인격신적인 관념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의 무극대도의 출발점이 인격신과의 해후였다는 이 사실이야말로 신유학의 리기론적 사유체계와 또다른 차원의 어드벤쳐로서의 동학의 성격을 규정 짓고 있는 것이다. _ 김용옥, <용담유사 : 수운이 지은 하느님 노래>, p95

수운은 항상 하느님을 만난다. 그의 하느님은 인격체로서 수운에게 말을 건다. 수운은 그와 논쟁을 벌이기도 하고, 또 하느님은 그에게 명령을 하달하기도 한다. 이것은 환상이 아니라 리얼한 그의 몸의 생성체계에서 일어나는 의식의 현상이다. 혹자는 수운을 무병으로 신음하는 무당으로 볼지도 모른다. 수운에게는 분명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또 하나의 세계가 있다. 태극의 배면에 무극이 배접되어 있는 것처럼. _ 김용옥, <용담유사 : 수운이 지은 하느님 노래>, p29

<용담유사> 안에는 수운이 하느님을 만나는 모습이 드러나며, 그의 인간적인 면이 잘 드러난다. 또한, 민중들에게 그가 하고 싶은 말이 표현되며 그의 사상이 담겨있다. <구약성경> <탈출기>에서 모세가 광야에서 하느님을 만났을 때의 두려움, <시편>에 드러난 다윗의 비탄과 환희, <코헬렛>에 표현된 솔로몬의 깨달음을 우리는 작품 안에서 만나게 된다. <동경대전>이 종교창시자 자신이 직접 쓴 복음이자 서간이라 한다면, 이들 작품 전체를 통해 천도교의 교리인 무극대도(無極大道)에 다가가는 것이 바른 이해를 위한 순서가 아닐까. <동경대전>과 <용담유사>의 상세 내용에 대해서는 지금 유튜브 채널 <도올TV>에서 저자 직강이 진행되고 있기에 이 정도로 리뷰를 갈무리한다...

<용담유사>는 수운이라는 한 인간의 발가벗은 실존의 모습니다. 그것은 투정이요 원망이요 권유요 효유요 꾸짖음이요 천명의 고백이다. 그러면서도 이 모든 감정의 기복을 통관하는 것은 대인의 우환이요, 다시개벽에 대한 희망이요, 삶과 죽음의 초월이다. _ 김용옥, <용담유사 : 수운이 지은 하느님 노래>, p47

수운의 신관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단어는 ˝노이무공 勞而無功˝이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은 우주의 생성 밖에서 그 과정을 주관하거나 컨트롤하는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천지의 생성과 더불어 노력하여 공을 이루는 과정 process적 인사이더인 것이다. 수운의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생성과 더불어 실패하고 좌절하는 하느님, 기氣에 대하여 이상적인 리理만을 제공하는 하는님의 아닌 것이다. _ 김용옥, <용담유사 : 수운이 지은 하느님 노래>, p76

하느님의 말씀에서 우리가 감동을 받는 것은 역시 수운의 의식의 정직함이다. 불우한 자신의 처지, 경제적 뒷받침이 없는 사회 활동에 대한 당혹감, 객관적으로 평가될 수 있는 지적 성과가 없는 상태의 초라함, 엉망인 가정살림 등등의 현실現實과 무극대도라는 엄청난 깨달음이 부과하는 이상理想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야말로 실존적으로 극복키 어려운 과제상황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_ 김용옥, <용담유사 : 수운이 지은 하느님 노래>,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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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사람들을 유인하는 방법은 오직 명예와 이익뿐인데, 명예는 헛된 것에 가까우나 교화에는 중하고, 이익은 실질적인 것에 가까우나 도덕에 있어서는 하찮은 것입니다. 실리를 오로지하면서 허명(虛名)을 가지고 보충하지 않는다면 궤짝을 소모하게 되어 물자의 힘을 다한다 하여도 공급하지 못할 것이고 허명에 전념하면서 실리를 가지고 이를 돕지 않는다면 헛된 것이 되어 인정(人情)이 쫓지 아니 합니다.

"마땅히 이치의 옳고 그름을 물어야 하지, 어찌 일의 크고 작음을 논하십니까! 《우서(虞書)》에서는 ‘삼가하고 두려워해야 하느니 하루 이틀에도 만 가지로 위태롭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설사 의도를 가지고 잘못을 지적하고 간언을 하여 명예를 얻으려고 하였다 해도, 다만 선한 것을 듣고 실행에 옮길 수 있고, 간언을 보고 거절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지적되는 것들은 폐하의 막대한 선을 밝히기에 적합하고 충분한 것이 될 것이며, 얻은 것들은 폐하의 무한한 휴식을 제공해주기에 적합하고 충분할 것입니다. 이어서 이로운 것이며, 얻는 것들도 많습니다."

어찌 겸허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맞이하면 사람들도 붙을 생각을 할 것인데, 술수에 맡겨서 다른 사람들을 어거하려 한다면 사람들은 끝내 가까워지지 않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마음으로 붙으려고 생각한다면 그를 감동시켜서 기쁘게 하는데, 비록 노략질하는 원수라 할지라도 교화하여 심복으로 삼게 될 것이고, 속으로 가까이 하지 않으면 그를 두렵게 만들어서 막으니, 비록 골육(骨肉)이라 할지라도 원수관계를 맺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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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기 이후 동아시아 세계에서 전개되었던 이른바 ‘정복왕조‘의 성립과 ‘투르키스탄‘의 형성은 위구르의 붕괴와 이주로 촉발된 변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이런 새로운 변화는 세계사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것임에 분명하나 실제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기존 연구에서 배경으로 지적되었던 위구르 유국제국 시기의 정주적 지향과 관련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몽골초원에서 유목제국을 건설했던 8세기 중반부터 9세기 중반에 걸년 100여 년의 위구르 역사는 그 이전 6세기 중반부터 8세기 중반까지 200여 년간 유목 세계를 지배한 돌궐의 연장선에서 유목사회를 기초로 성립되어 계기적인 발전을 하다가 붕괴된 고대 유목국가로서 이해해야 한다. - P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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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1-28 0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진짜 겨울호랑이님의 독서범위는 정녕 어디까지일까요? 위구르역사까지 ^^

겨울호랑이 2022-01-28 08:03   좋아요 0 | URL
예전 신장/위구르 문제가 이슈가 되었을 때 관련 내용을 정리하다보니 흘러흘러 예까지 왔네요. 바람돌이님 감사합니다^^:)

거리의화가 2022-01-28 08: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이 책은 미리 사두신 건가요? 확인해보니 절판이더라구요ㅠㅠ 읽고 싶은데 중고는 너무 고가라 엄두가..ㄷㄷ 저희 동네 도서관은 역시나 없더군요.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22-01-28 09:29   좋아요 1 | URL
저도 절판된 책이라 도서관에서 대출했네요 ㅜㅜ... 왜 좋은 책들은 빨리 독자 곁을 떠나는지, 때문에 품절, 절판되기 전 구매해야한다는 압박응로 책지출이 더 많아지는 것 같아요... 거리의화가님 감사합니다^^:)

거리의화가 2022-01-28 09:39   좋아요 1 | URL
아 그러게요ㅠㅠ 역사 관련 분야는 안그래도 적게 찍는데 2,3쇄도 드물고 초판으로 끝나버리는 것 같습니다 너무 아쉽네요 흑흑 이래서 책이 늘어나나봐요 좋은 책은 바로 못 읽더라도 쟁여야하는 것 같습니다

겨울호랑이 2022-01-28 11:40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덕분에 책장은 언제나 ‘읽은 책‘보다 ‘읽을 책‘이 많은 것 같아요.... 에르메스나 루이비통 같은 명품들은 가격관리를 위해 재고를 떨이하지 않고 불태운다고 하는데, 좋은 책이 품절/절판되는 것도 장서가들에게는 마찬가지로 애타는 일인듯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