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유럽의 상인들 - 무법자에서 지식인으로 역사도서관 교양 18
카를로 마리아 치폴라 지음, 김위선 옮김 / 길(도서출판)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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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른바 '상업혁명'은 대부분의 서유럽 사회를 바꿔 놓은 일종의 사회혁명이기도 했다. 사회 변화와 더불어 한 계층이 사라지는가 하면 새로운 계층이 생겨났다. 특히 중북부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 네덜란드의 여러 도시, 독일 한자동맹(Hansa 同盟)에 속했던 많은 도시 그리고 카탈루냐 지방의 여러 도시에서 새로 생겨난 눈에 띄는 중요한 사회 변화는 바로 상인 계층의 등장이었다. 장원 경제 체제에서는 가장 천한 신분으로 간주되었던 상인이 이제는 상류 계층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_ 카를로 M.치폴라, <중세 유럽의 상인들> , p48

카를로 M. 치폴라 (Carlo Maria Cipolla,1922 ~ 2000)의 <중세 유럽의 상인들 Tre Storie Extra Vaganti >는 상인(商人, merchant)을 주제로 한 짧은 대중역사서다. 14세기 초 대상인의 등장 시기와 이후 17세기와 18세기 화폐(貨幣)경제에서 상인의 움직임이 가져온 변화를 통해 독자들은 당시 생생한 경제활동을 중계방송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도시를 주름잡은 상인은 대상인(grandi mercanti), 다시 말해 보통 상인과는 달리 대체로 국제 교역에 종사하며 상업뿐만 아니라 제조업 및 금융업(환전과 은행 업무)을 겸하던 사람이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이와 같은 새로운 형식의 경제 조직체가 육지 무역쪽에서 형성되었는데, 이른바 '콤파니아'라고 불렸다. 콤파니아의 탄탄한 기반은 전형적인 가부장제 형태의 가족이었다. 가장 나이 많은 어르신 (vecchio)이 판단 · 결정하고, 처벌하고 명령하였다. 그리고 그 외의 사람은 예외없이 여기에 복종해야 했고 이들에게는 '불평'(mugugno)할 권리조차 없었다. 가족은 콤파니아에서 일할 사람을 선별하고 콤파니아의 모든 자본을 관리하였다. 이것도 새로 생겨난 요소였다. _ 카를로 M.치폴라, <중세 유럽의 상인들> , p50

세 가지 이야기 중에서 가장 상세하고도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이야기는 바로 14세기 르네상스(Renaissance) 시기 피렌체의 중심 가문의 바르디(Bardi) 가문 이야기다. 중세 말기 봉건제와 교회의 권위가 몰락하면서 이들의 공백을 대신하는 대상인들의 이야기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려준다. 현대 영어 company에 해당하는 콤파니아(Compagnia)가 장원을 대신하여 경제의 중심에 서게 된다. 왕과 귀족들에게 전쟁 수행에 필요한 자금을 대여해 주고, 대신 사치품을 판매하면서 막대한 이익을 보던 르네상스 거상(巨商)들의 모습을 우리는 본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1330년대 초에 심각한 경제 위기가 발생했다. 피렌체의 경제는 말 그대로 완전히 전복되었다. 마치 종이로 만들어진 성이 쓰러지듯이 수많은 콤파니아가 줄줄이 파산했다. 마치 종이로 만들어진 성이 쓰러지듯이 수많은 콤파니아가 줄줄이 파산했다(p60)... 여러 콤파니아가 파산하자 그 여파를 받아 2차, 3차 산업도 일거에 붕괴되었다. 보통, 콤파니아는 상업 활동 이외에도 은행업과 수공업을 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콤파니아가 도산하자 신용이 삽시간에 치명적으로 감소하였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경제와 관려된 모든 영역이 피해를 입었다. _ 카를로 M.치폴라, <중세 유럽의 상인들> , p61

이들의 투자가 항상 성공을 거둔 것만은 아니었다. 전쟁에 패배한 왕에게 자금을 빌려 준 경우 그들이 가진 채권은 휴지조각으로 빠지는 경우가 많았고, 훗날 신성로마제국의 푸거(Fugger)가문처럼 바르디 가문은 잉글랜드 군주에게 투자를 하지만, 백년전쟁에서 패배한 잉글랜드 군주로부터 돈을 받지 못하고 파산위기에 직면한다. 여기에 더해 피렌체 전체 경기가 수축 국면에 진입하면서 많은 콤파니아들이 무너지는 등 바르디 가문을 둘러싼 상황은 결코 그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바르디 가문의 처세와 그들의 생존 안에서 현대 자본주의적 질서를 발견할 수 있다.

세 콤파니아는 좋은 운수를 타고나지 못했다. 하필이면 앞에서 설명한 1330년대와 1340년대 같은 최악의 시기에, 그리고 바르디 가문의 일이 계속 꼬이기만 하는 그런 때에 창립되었으니 말이다. 이들은 서로 똘똘 뭉쳐 가문 특유의 방식이었던 폭력에 의존하여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바르디 가문 사람 몇몇이 이미 피렌체 정부의 요직에서 일했기 때문에 잘하면 입김을 불어넣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건만, 피에로데이 바르디의 주도로 콤파니아의 일부 회원은 피렌체의 정부 체제를 전복하려고 쿠데타를 꾀했다. _ 카를로 M.치폴라, <중세 유럽의 상인들> , p66

교환 중심의 시장 경제라면 바르디 가문은 살아남을 수 없었겠지만, 위기 상황에서 보여준 바르디 가문의 모습은 이 시기에 이미 자본주의적 대처를 잘 보여준다. 막강한 경제력을 활용해서 '화폐위조'라는 중대범죄를 저지르고도, 정치력을 발휘해 독점권을 강화해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근대 이전에 이미 자본주의의 싹이 트고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브로델(Fernand Braudel, 1902~1985)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서 15~18세기 유럽 경제를 분석하며 자본주의의 근원을 찾으려 했지만, 치폴라는 넌지시 자본주의의 기원은 이보다 이전 시대에 있었음을 알려준다.

바르디 가문 사람에게 법이라는 것은 '타인'을 통제하기 위한 편리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바르디 가문 사람은 법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은 법 위에 군림한다고 생각하였다. 베르니오 법령을 새로 제정한 후 피에로는 극악무도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즉 정성 들여 작성한 법령에 의거해 약탈을 일삼고 있던 자들을 모두 응징함으로써 '경쟁자'를 '합법적으로' 제거하였고, 그 일대에서 가질 수 있는 모든 약탈권을 독점하였다. 그 이상 극악무도해지기도 힘들 것이다. _ 카를로 M.치폴라, <중세 유럽의 상인들> , p72

특히 바르디 가문 출신의 세 사람이 확신했던두 가지 사실은, 첫째, 경찰의 손에 잡힐 확률은 거의 없다는 점, 둘째, 혹 잡힌다 하더라도 그들이 실형을 받기는 힘들 것이라는 점이었다. 모든 사람이 법 앞에서 평등하지는 않았다. 바르디 가문 사람은 특권층에 속했고, 이 때문에 특별히 법에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았다. 실제로 이들은 법을 조금도 괘념치 않았다. _ 카를로 M.치폴라, <중세 유럽의 상인들> , p96

다른 두 편의 이야기의 중심도 역시 상인들이다. 화폐의 품질을 조악하게 만들어 유통시켜 막대한 부을 축적하고 한 나라(오스만 투르크)의 경제를 무너뜨리고, 해상무역을 통해 더 큰 세력으로 커나간 상인들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14세기 이미 자본주의 형태를 갖춘 대상인들의 현대 자본주의로의 진화를 확인할 수 있다.

<중세 유럽의 상인들>안의 담긴 이야기는 간략하지만 이야기들이 던지는 메세지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정치권력과 결탁한 현대 무기산업자본, 환율을 이용하여 경제소국에게 외환위기를 강요하는 투기자본의 모습과 국경을 넘나드는 다국적 대기업의 모습을 우리는 이미 중세와 근대 초기에 발견할 수 있다. 불과 150페이지 밖에 되지 않는 경제사 관련 서적을 우리가 가볍게만 읽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에야 증명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와도 같이 오랜 역사를 가진 자본주의 문제의 기원을 찾기 위해서는 최소한 중세로 가야할 듯하다. 과연 중세 경제사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중세 유럽의 상인들>을 읽으며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이후 다른 과제를 부여받은 느낌을 받게 된다...

오스만 제국 정부의 모든 힘을 동원한다 하더라도 조악해질 대로 조악해질 악화 루이지노의 유통을 막아 낼 길이 없었다. 오랫동안 은화 부족 현상을 감내하던 터키 경제는 위조된 대량의 은화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터키의 경제 위기는 더욱 악화되었다. 더 이상 현금을 가지고 거래할 수가 없었다. 생필품의 가격은 두 배로 뛰어올랐고 빵조차 사 먹기가 힘들었다. 터키 제국에는 루이지노 화폐가 넘쳐났다. 하지만 아무도 이 화폐를 받으려 하지 않았고 모두들 이 화폐가 하루빨리 눈앞에서 사라져 주었으면 했다. _ 카를로 M.치폴라, <중세 유럽의 상인들> , p113

상인은 점차 신분이 높은 층과 낮은 층으로 구분되기 시작했고 그 영향은 프랑스어 사전에도 반영되었다. 상점을 직접 운영하며 소매업을 하던 자나 신분 상승을 꿈도 꿀 수 없던 사람에게는 마르샹(marchand)이라는 이름표가 그대로 남았다. 그 외의 사람, 즉 귀족 신분으로 상승할 수 있던 특권층을 위해 네고시앙(negociant)이라는 새로운 단어가 만들어졌다. 인간사에 흔히 일어나듯이 용어 정의를 둘러싼 논쟁 때문에 싸움, 적대감, 경쟁의식이 생기곤 한다. 어떤 네고시앙을 마르샹이라고 불렀다면 그것은 엄청난 모욕이었다. 자크 사바리는 다행히도 자신이 네고시앙이라 믿었고 수많은 네고시앙을 위한 경제 입문서를 저술하였다. _ 카를로 M.치폴라, <중세 유럽의 상인들>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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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중부 이탈리아에서 나폴레옹 정권에 대해 팽배한 증오는 프랑스가 오스트리아에 맞선 새로운 전쟁을 벌이기 위해 징병제를 도입하자 전면적 반란이 되었다. 베스트팔렌, 티롤, 이탈리아의 봉기 소식은 나폴레옹을 불안감에 빠뜨렸다. 그럼에도 그는 오스트리아군을 파괴하는 훨씬 더 중요한 과제에 집중했다

1809년 프랑스-오스트리아 전쟁은 당대 유럽 정치에 심대한 충격을 주었다. 그것은 이탈리아 전역의 전성기 이래로 나폴레옹을 감싸고 있던 무적의 기운을 약화시켰다. 비록 나폴레옹은 바그람에서 좋은 성과를 보였지만, 주의 깊은 관찰자는 대육군이 더는 1805~1806년 전역들의 훌륭하고 무시무시한 병기가 아니라는 점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유럽 상당 지역에 배치된 주둔군과 더불어 다양한 전역들에서 발생한 사상자 수로 인해 대육군에는 상대적으로 노련한 병사가 별로 없었다. 아스페른-에슬링에서의 패배와, 앞서 주목한 대로 아우스터리츠와 예나에서의 승전과는 비교가 안 되는 바그람에서의 제한적인 승리는 앞으로 무력 분쟁에서 나폴레옹이 더는 이기기 힘들 것임을 암시했다. 사실 이것은 그가 전쟁에서 실제로 승리한 마지막 전투였다.

그의 이전 승전들은 구체제의 군대들을 상대로 거둔 것으로, 이들 군대는 프랑스 혁명이 풀어헤치고 나폴레옹이 갈고닦은 역동적인 전투 방식을 따라잡지 못해 쩔쩔맸다. 하지만 5차 대불동맹전쟁은 프랑스의 상대국들이 과거의 패전들에서 귀중한 경험을 얻었으며, 나폴레옹의 역량에 필적하기 위한 그들의 시도가 자국 군대들의 점진적인 근대화와 프랑스 병사들이 누리던 질적 이점의 감소를 낳았음을 입증했다. 더 극적인 것은 전쟁의 외교적·정치적 결과였다.

프랑스와의 전쟁 전야에 영국의 지원을 얻어내려고 애쓴 오스트리아는 재정적 도움에 관한 주제를 조심스레 꺼내, 250만 파운드 선불 지급을 비롯해 750만 파운드의 보조금에 대한 대가로 병력 40만을 동원하겠다고 제의했다. 런던은 전에는 오스트리아가 프랑스에 도전하도록 부추겼지만 이번에는 그 제안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외무장관 조지 캐닝은 오스트리아는 단독으로 전쟁을 치러야 할 것이며, 영국이 도움을 준다고 해도 극히 미미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일단 전쟁이 진행되면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는 런던이 결정할 것이다.

사실 영국 지도자들은 오스트리아의 운명에는 관심이 없었고, 영국의 공격을 가능케 하도록 나폴레옹의 주의를 분산한다는 맥락에서만 프랑스-오스트리아 전쟁에 주의를 기울였다.

나폴레옹 황제는 한 담화에서 ‘오로지 오스트리아가 여전히 군대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과 협상을 진행했다. 만약 오스트리아가 군대를 다 잃었다면 나는 전혀 대화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스트리아 군대의 전멸에 우리가 기여하지 않았음에 기뻐해야 할 것이다."

대북방전쟁(1700~1721)에서 스웨덴의 패배는 덴마크가 한동안 경제 성장을 누렸음을 뜻하는데, 덴마크 농업의 성장은 해상 활동의 증대를 자극했고, 이는 나폴레옹 전쟁에 덴마크가 결국 휘말리게 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그와 대조적으로 대북방전쟁 이후 스웨덴은 군사적, 경제적으로 허약했지만 과거의 영화를 되찾고 싶은 욕망은 그다지 줄어들지 않았다. 스웨덴 군주들은 1536년 이래로 덴마크와 공동의 왕위로 연결된 노르웨이를 획득할 희망을 여전히 품고 있었다.

영국의 시각에서 볼 때 1807년의 전반적 상황은 1800년의 상황보다 훨씬 좋지 않았는데, 나폴레옹이 프로이센과 러시아에 승리를 거둬 발트해 연안까지 프랑스의 지배력을 확대한 직후였기 때문이다.

영국-러시아 전쟁은 양측이 대규모 교전을 피하고자 한 측면에서 독특했다. 러시아 함대는 공공연한 대결을 지속적으로 회피한 한편, 프랑스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영국 정부는 러시아와 합의점을 찾고 싶다는 바람을 거듭 내비쳤다. 1810년 후반에 이르자 러시아가 대륙 봉쇄 체제로부터 점차 발을 빼고 있는 가운데, 양국 간 전쟁은 대체로 잦아들었고 영국과 러시아 간 교역은 늘어났다.

베르나도트는 스웨덴 궁정의 신입자였지만 곧 왕위 배후의 권력자로 부상했다. 그는 자신의 미래가 새로운 제2의 조국을 적극적으로 끌어안고, 나폴레옹이나 프랑스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새로운 조국의 이해관계를 수호하는 정책을 추구하는 데 전적으로 달려 있음을 이해했다. 스웨덴의 동부 국경선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그는 러시아인들에게 핀란드를 수복하려는 시도는 일체 없을 것이라고 안심시키고 그 대신 스웨덴에 알맞은 보상이라고 여기는 서쪽의 노르웨이로 눈길을 주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왕위가 노르웨이를 획득하는 데 달려 있음을 분명하게 이해했고, 이 목표를 달성하려는 베르나도트의 확고한 결심이 1813~1814년의 6차 대불동맹전쟁 동안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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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돌고래는 지구에서 가장 똑똑한 동물이다. 돌고래의 뇌는 인간보다 큰 데다, (인간은 뇌 용적이 평균 1200~1400㎤인데 비해 돌고래는 평균 1500~1700㎤이다.) 동물계에서 몸무게 대비 뇌의 크기가 가장 큰 동물 중 하나이다. 또한, 뇌 영역 중에서 의식적 사고와 추론 등 (사람의 경우 언어까지 포함하는) 고등사고 능력을 담당하는 부분인 신피질이 발달했다. 돌고래는 십여 마리로 구성된 소규모 집단을 형성해 사회적 유대 관계를 강하게 형성하고 상호작용을 한다.

한 가지 체액의 단편적인 측면이 어떻게 한 사람과 그의 행동에 그토록 다양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일까? 이런 생각은 성격이 여러 환경적(문화) 요인과 신체적(유전) 요인에 의해 다면적으로 형성된다고 가르치는 심리학적 연구와는 크게 상반된다.

혈액형이 성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생각을 확신에 차서 밀어붙이는 사람들은 뭔가 잘못된 정보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좋게 말하면 자신감이 넘치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 정보를 퍼뜨리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우리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과학적’ 증거라는 미명하에 이처럼 근거 없는 믿음을 끊임없이 조장함으로써 이득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회의주의자로서 우리는 이 같은 정보들을 검증하여 잘못된 점을 밝혀내고, 다른 사람들이 그 증거를 비판적으로 평가할 수 있도록 북돋우며, 그들이 근거 없는 주장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 피가 사람의 성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물론이다. 그러나 이는 유전 때문이지 혈액형 때문은 아니다!

가톨릭 교회는 지난 수십 년 동안 토리노의 수의를 떠받들면서 진품 여부를 판정하지도, 공개적으로 인정하지도 않는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였다.

그 뒤로 가톨릭 교회는 토리노의 수의를 다른 성물과 똑같이 대접했다. 수의가 진품이라고 주장하지도 않았지만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영리하게도 토리노의 수의의 가치와 중요성을 신자 개개인의 신앙심과 헌신에 떠넘겨 버렸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가톨릭 교회 지도부에 변화가 일어나면서 토리노의 수의가 역사적 가공물이라고 인정하는 발전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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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내가 지금 처해 있는 상황에서살아남기 위해서는 정신적으로 거리를 두어야 해. 무언가를 잃거나 죽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야 해.
오랜 시간 내게 문제가 되는 것들은 다음과 같았어. ‘누군가 나를 좋아해주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곳에서 살지  못한다‘ 등등. 지금은 나에게 있는 것들로 인해 기뻐 없을 수도 있는 것들이니까. 부모님도, 남편도, 아이들도, 집도 말이야. 미쳐버리지 않기 위해 나는 되도록이면  뉴스를 읽지 않으려 하고 지금 나에게 주어진 삶을 즐기려고 노력해. 부디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돌봐주시기를. 그리고 나 자신이 짐승 같아지지 않기를 노력해. - P12

가끔 떠난 사람들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을 느껴. 마치 쥐새끼들처럼 도망간 놈들. 나는 마치 미친 여자처럼  울먹이며 이곳에 남은 지인들에게 징징거려. 나에게는 두 아이가 있고, 나는 내 아이들을 지킬 수가 없다고. 그리고 패닉 상태에서 이곳을 떠난 사람들을  비웃어. 그런데 실은 나는 그들이 부러워. 그들은 더 이상 폭격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깨지 않아. 폭격 소리를 들으며 잠들지도 않아. 집이나 대피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산책할 수 있어. 그리고 난 여기에 남아 있어. 내 아이들, 구호품, 그리고 하루가 멀다 하고 당근 커틀릿을  만드는 엄마의 이모와함께.  - P17

3주 만에 처음으로 방에 혼자 남았어. 난민의 삶에서 북적거림은 필수 조건이야. 남의 집과 유치원에서 보내는 밤들, 공동주방, 어른들의 대화와 아이들의 시끄러운 놀이. 우리가 임시로거주하는 유치원 복도에는 구호품 박스가 배치되어 있어. 맨 위에 올려져 있던 하늘색 스웨터는 베라에게 아주 잘 맞았어. 오래도록 그렇게 기억에 남을 거야. - P20

그렇기에 지금의 김건희 여사와 관련한 논란은 본질적으로 ‘김건희 리스크‘로부터 기인한 점이 크다. 당시 불거진 주가조작·허위 이력 논란 등을 사과하며 내놓은 해법에서 지금의 논란이 상당부분 파생됐기 때문이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여세연‘ 대표는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논란 등이 명확하게 해소되지 않다 보니, 김건희 여사 행보를 두고 한국 사회대통령 배우자의 역할과 활동 범위에 대해 논할 때 많은 것이 뒤섞여버리는 지점이 있다"라고 말했다. 주가조작·허위이력논란이 가시지 않는 이상, 김 여사에 대한논란은 어떤 방식으로든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 P25

이전만큼 보수정치에 영향을 끼치지못하는 유튜브가, 여전히 ‘장사‘가 되는이유는 뭘까? ‘예능화‘를 꾀한 덕이다. 가세연 영상을 즐겨 보는 한 40대 시청자는, 보수 유튜브의 영상 내용을 맹신하는노인들과 자신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웃겨서 본다‘는 것이다. "뭔가를 규탄하면서 보는 사람을 화나게만 하려는 영상은 지루하다.  - P33

인플레이션은 약자에게더 잔인하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임금이 올라도 문제입니다. 기업 처지에서 임금은 매우 경직적인 비용입니다. 한번 올려주면 줄이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제품 가격을 올려서 마진을 보전하려고 할 겁니다. ‘물가상승→ 임금인상→물가상승‘의 순환구조가 만들어지는데, 임금의 경직성을 감안하면  물가상승분을 임금인상으로 만회하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일 겁니다. 극심한 인플레이션은국 민생고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은  정치적 성격을 띠고 있기도 합니다. - P35

언론 문제를 지적하다 보면 가끔 ‘지겹다‘는 생각이 든다. 비슷한 문제가 늘 반복되기 때문이다. 몇 주 전 끝난 지방선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단체는 1992년부터 선거보도 감시 연대체를 꾸려 전국선거 때마다 언론보도를 모니터했는데, 시기마다 조금씩은 다르지만 문제가 되는 보도 양상도 언론에 요구하는 것도 참 비슷했다. 그래도 조금씩 나아진다는 믿음으로 또 한번 몇 가지  요구를 남겨보려 한다. 키워드는 ‘협업‘이다. - P41

재택근무로의 전환은 기업이 ‘돈 쓰는 방법‘을 바꾸는 일이기도 하다. 사무실유지비용(임차료)을 더 안전하고 빠른네트워크 구축비로 쓴다거나, 직원의 전기요금, 인터넷 요금 등을 지원해줘야 한다는 의미다. 고용노동부가 발간한 ‘재택근무 종합 매뉴얼‘에 따르면 "재택근무와관련된 통신비, 정보통신기기 비용, 소모성 비품 등은 사용자가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다. 자산 규모가 작은 사업체에서는 추가적인 간접비용으로 느껴져 부담을 갖게  되기도 한다.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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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는 공기나 물 같은 매체를 통해 귀에 전달되는 진동으로 정의된다. 우주는 진공 상태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진동할 분자가 없으며 당연히 소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항공우주국에서 녹음한 행성과 위성의 소리는 실제 ‘소리’가 아니다. 태양풍과 행성 자기권의 상호작용이 만들어낸 진동이 전기 신호로 변형된 후 증폭되어 스피커에서 소리가 되어 나온 것이다. (피타고라스의 ‘천체의 음악’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이 비논리적인 유사성을 어떻게든 사실일 것으로 밀어붙이는 행위는 좌종 치료법이 그저 요행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뒷받침할 뿐이다.

게이너는 심신의 통합이 과학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것이라고 예견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과학은 몸과 마음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마음이 뇌의 기능이라고 여길 뿐이다. 게이너는 의식이 비국소적이며 시공간적으로 무한한 궁극적인 존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학이 보여주는 증거는 다르다. 과학에서 의식은 뇌세포가 죽으면 중단되는, 뇌세포 각각의 부수 현상이라고 여겨진다.

물론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우리가 어떻게 느끼고 행동하는지에 영향을 준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충분히 긍정적이지 않다는 점이 아니다. 그보다는 긍정심리학의 어리석은 약속을 무턱대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더 문제다.

지난 몇 년간 나는 긍정적인 사고라는 말을 지긋지긋하게 들었다. 물론 인생을 대하는 전반적인 태도로는 나쁘지 않지만, 그런 사고방식이 우리 인생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면 한심하게도 전혀 과학적 근거가 없다. 캐럴 웨이드Carole Wade와 함께 심리학 입문 교재를 수년간 꾸준히 개정하다 보니, 긍정심리학의 이점을 주장하던 기존 연구가 새로운 연구 결과에 밀려 차츰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우리 교재 최신판에는 긍정심리학의 거대한 실체는 온데간데없고 희미한 그림자만 남았다고 해야 할 지경이다.

낙관주의의 장점을 살리려면 ‘회의적 낙관주의’가 필요하다. ‘난 정말 잘났어! 모든 게 잘될 거야!’를 굳이 날마다 스무 번씩 복창하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그걸로 얻을 수 있는 건 당신을 딱하다는 듯 바라보는 주위 사람의 시선이 전부다. 아무리 낙관주의자라도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서는 안 되며, 자기 앞가림은 제대로 해야 한다. 문제가 생기거나 나쁜 일이 벌어지면 팔짱만 끼고 있지 말고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요컨대 낙관주의는 행동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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