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는 위대한 스타일리스트로서 디오니소스적인 영감의 분출하는 힘을 극한의 언어로 표현해냈다. 반면에 하이데거의 글에서는 아폴론적인 냉정함이 전면에 드러나 있고 디오니소스적인 파토스는 단단한 문장 아래서 소리 없이 끓어오른다. 니체의 문체가 '아폴론을 품은 디오니소스'라고 한다면, 하이데거의 문체는 '디오니소스를 품은 아폴론'이라고 할 수 있다. _ 고명섭, <하이데거 극장 1> , p34


 고명섭은 <하이데거 극장>에서 하이데거를 통해 수많은 사상가들을 소환한다. 가깝게는 니체, 딜타이, 야스퍼스, 아렌트, 칸트, 헤겔로부터 멀리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기까지 서양철학사에서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은 '하이데거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이는 하이데거 사상의 넓이와 깊이를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하이데거 극장>에서는 하이데거의 인생을 따라가며 그의 주저들을 설명한다. 저자는 1편에서는 <존재와 시간>, 2편에서는 <니체 1> <니체2>를 중심으로 그의 사상을 보다 깊이 들여다 본다. 낯설게 느껴지는 하이데거의 용어들은 일단 뒤로 미뤄두고, '존재'와 '현-존재', '존재자' 그리고 '현존'만 간단하게 살펴보자.

 

 '세계-내-존재'라는 현존재의 근본 구조를 분석하는 하이데거의 여정은 '세계'와 '세인'을 거쳐 이제 '내 존재'에 이른다. 여기서 먼저 하이데거는 세계-내-존재로 존재하는 현존재가 세계를 열어 밝히면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주목한다. 현존재는 어떻게 세계를 열어 밝히는가? 하이데거는 '현존재'라는 말 자체를 해부함으로써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다. 현존재(Dasein)는 세계-내-존재 곧 인간을 지징하는 말이다. 하이데거는 현존재를 '현-존재'(Da-Sein)라고 분철해 쓰기도 하는데, 그때 이 말은 '존재의 현'(Das Da des Seins)을 뜻한다. 현존재란 단지 인간을 뜻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현'이기도 한 것이다. 여기서 '현'이라고 번역된 다(Da)는 독일어로 '거기' 나 '여기', 곧 어떤 장소나 자리를 뜻하는 말이다. 존재의 자리가 현-존재인 셈이다. 존재가 드러나고 밝혀지는 자리가 현-존재의 현이다. 그래서 현-존재(現-存在)다. 현-존재는 순우리말로 하면 '거기-있음'이 된다. '거기-있음'이란 '존재가 드러나고 밝혀지는 자리로 있음'을 뜻한다. 더 과감하게 말하면, 현-존재란 인간의 마음을 가리킨다. 인간의 마음이야말로 존재가 드러나는 자리다. _ 고명섭, <하이데거 극장 1> , p366


 죽음과도 같은 극단적인 불안의 상황으로부터 '존재'를 인식하는 '현-존재'. 현-존재가 던지는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은 동시에 자기자신에게 묻는 것이기도 하다. 존재가 현-존재의 내부에 있으며 또다른 존재자들의 내부에 있기에, 존재는 현-존재의 내부와 외부의 다른 존재자들의 내부에 존재한다고 볼 수 있을까. 사회적으로는 '절대적인 의미'가 있지만, 존재는 개별 존재자들에게는 '상대적인 의미'로 존재하는, 뉴턴의 절대공간과 아인슈타인의 상대공간이 함께 공존하는, 입자와 파동으로 공존하는 '빛'과 같은 것이 존재의 의미가 될까.


 하이데거가 현-존재가 존재자가 되는 계기를 '죽음'에서 찾는다면, 아렌트는 이를 '생명'에서 찾는다. 마치, 하이데거가 열역학 제2법칙인 엔트로피(entropy)를 자연법칙으로 선택했다면, 아렌트는 베르그송의 '엘랑 비탈(Elan Vital)'을 실존의 계기로 삼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다른 하이데거의 용어에서처럼 죽음 또한 그 이면에 상반된 이미지를 갖는다면 '죽음-생명, 그렇지만 죽음'을 선택한 하이데거는 '디오니소스-아폴론'적인 요소를 과연 '아폴론'의 측면에서 통합한 철학자라는 생각을 해본다.


 존재가 드러나고 밝혀지는 자리로서 현-존재를 세계-내-존재로서 주목하면, '현-존재'는 세계가 열리고 밝혀지는 장이 된다. 오해의 여지를 무릅쓰고 말하면, 우리의 마음을 떠나 존재가 따로 있지 않고 세계가 따로 있지 않다. 세계는 우리의 마음에 조응하여 세계로서 열리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으로서 현-존재는 세계가 드러나는 장, 세계가 열려 밝혀지는 장이다. 현존재는 애초부터 세계를 개시하고 열어 밝혀지는 장이 된다. 우리의 마음을 떠나 존재가 따로 있지 않고 세계가 따로 있지 않다. 세계는 우리의 마음에 조응하여 세계로서 열리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으로서 현-존재는 세계가 드러나는 장, 세계가 열려 밝혀지는 장이다. _ 고명섭, <하이데거 극장 1> , p367


 하이데거 철학에서 확정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진리가 비은폐성이며, 비은폐성의 본질은 비밀이라는, 현존은 다가오면서 머무르고 있음을, 현존에는 기재(旣在)와 미래(未來)가 포함되어 있다는 본문의 내용은 그의 사상 안에서 불확정성 원리(不確定性原理)의 단편을 떠올리게 된다.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와도 같이 현-존재는 각각의 상황에서 존재의 의미를 확률적으로 선택한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될까.


 '있음'과 '없음'이 하나의 현존 속에서 존재한다면, 그 현존의 형식은 'y=(-x)^n'의 형태로 표현될 수 있지 않을까. n이 짝수이면 x는 언제나 양수의 형태로, n이 홀수이면 x는 음의 형태로도 표현되는 방정식처럼, 하나의 존재 안에 두 개의 상반된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런지... 어렴풋한 이미지를 느끼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 하이데거의 존재와 존재자의 관계 안에서 버트런드 러셀의 기술이론(descriptive theory)를 떠올리게 된다. 주어에 대한 술어의 표현을 플라톤 이래 서양철학의 기본 구도로 이해한 러셀의 도식에서 존재를 술부에서 찾는 하이데거의 철학은 기존의 철학과는 조금 다른 곳에 위치한다. 이것은 라이프니츠의 철학이 동양사상의 영향을 받은 이래 독일철학의 독특성이라 봐야할까. 마치 현대기아 자동차 그룹에서 독일 출신 자동차 디자이너 피러 슈라이어를 영입한 이후 한국차에 독일DNA에 이식된 것처럼, 독일 철학에 동양사상의 DNA를 발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본다.


 본래적인 시간을 알려면 '현존'(An-wesen)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때 현존은 '우리 인간을 향해 다가오면서 머무르고 있음'을 뜻한다. 그런데 앞에서 본 대로 현존이라는 말에는 현재라는 의미의 시간과 함께 현존이라는 의미의 존재도 함께 들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을 향해 다가오면서 머무르고 있음'이란 '존재가 우리 인간을 향해 다가오면서 머무르고 있음'을 뜻한다. '존재가 다가와 머무르고 있음'이 바로 현존이다. 그런데 현존에는 눈앞에 실제로 있다는 의미의 '현재'(Gegenwart)만이 아니라 '부재'(Abwesenheit)도 포함된다고 하이데거는 말한다. 그때 부재가 가리키는 것이 '더는 현존하지 않음'(Nicht-mehr-Anwesenheit, 더는 현재가 아님)과 '아직 현존하지 않음'(Noch-nich-Anwesenheit, 아직 현재가 아님), 다른 말로 하면 기재(Gewesenheit)와 미래(Zukunft)다. 우리에게 다가와 머무르는 현존에는 현재만이 아니라 지나간 것의 기재(지나옴)와 다가올 것의 미래(다가옴)도 포함되는 것이다. 주목할 것은 그 현존이 인간에게 다가온다는 사실이다. _ 고명섭, <하이데거 극장 2> , p707


 들어가는 페이퍼를 작성하다보니, 떠오르는 생각들이 두서없이 나열되는 무의미한 글이 되버렸다. 이는 자신이 하이데거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하이데거 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할 기회는 없었기에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하이데거를 주인공으로 서양철학사의 주요 인물들을  <하이데거 극장>에서 만나고 보니, 쉽게 손에서 떨쳐버리기도 어렵다. 그렇게 한 번 읽었으나, 리뷰로 다 정리하기에는 많이 부족함이 들기에 본문을 다시 리뷰로 정리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워본다.


 진리란 하이데거의 용어로 하면 '비은폐성'이다. '존재자의 드러나 있음'이다. 그런데 진리의 본질은 비밀이다. 비밀은 감추어져 있되 그냥 감추어져 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드러나는 방식으로 감추어져 있음이다. 우리가 비밀을 비밀로 알려면, 그 비밀이 비밀로서 알려져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 감추어진 것을 향해 비밀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진리의 본질은 바로 이렇게 감추어진 채 드러난 비밀이다. 친밀성이라는 것은 바로 진리의 본질이며 비밀이다. _ 고명섭, <하이데거 극장 2> , p78


 <하이데거 극장>에서는 하이데거의 이중적이며 모호한 면이 드러난다. 나치당원이었지만, 반유대주의자는 아니었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2014년 그의  노트에 드러난 반유대주의 성향. 그는 어쩌면 자신의 인생 속에 진리, 현존 등의 이중적인 면을 투영시킨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그의 어려운 사상을 이해하는 열쇠를 그의 삶속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들어가는 글을 갈무리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하이데거는 나치의 인종적/생물학적 반유대주의에 동조하지 않았지만, 나치의 반유대주의의 조처를 혁명 과정에 나타날 수밖에 없는 부수적 사태로 이해하려 했음이 분명하다. 동시에 하이데거에게 인종적 반유대주의는 아니더라도 특정한 형태의 반유대주의적태도가 있었던 것도 분명하다. _ 고명섭, <하이데거 극장 2> , p45


 "x가 c라면 x는 황금으로 이루어져 있고 산이다'는 진술이 참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거짓이 되는 c라는 존재가 없다." 이러한 정의에 따라서 "그 황금산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둘러싼 수수께끼는 사라진다. 기술이론에 따르면 '존재'는 기술 어구를 통해서만 주장될 수 있다. 우리는 "<웨이벌리>의 그 저자는 존재한다"고 말해도 좋지만, "스콧이 존재한다"는 진술은 틀린 어법, 아니 틀린 구분이다. 이로써 플라톤의 <테아이테토스>에서 시작된, '실존 existence'를 둘러싸고 2000년 동안 지속된 지리멸렬한 수수께끼가 풀린다. _ 버트런드 러셀, <서양철학사> , p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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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man 2022-10-16 18: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과연 하이데거 같은 나치 히틀러의 악행에 동조한 자의 철학을 공부해야 하나 회의감이 느껴집니다..

겨울호랑이 2022-10-16 21:42   좋아요 1 | URL
김민우님 말씀 충분히 이해됩니다. 사상과 행적을 분리할 수 없기에, 인간 하이데거에 대한 회의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여겨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긴 발자취가 20세기 사상사에 너무도 뚜렷하기에 이를 쉽게 무시하기도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 20세기 인류 문명의 명암이 있듯이, 하이데거의 사상 또한 명암이 있음을 인지하고 접근해야하지 않을까 저는 생각해 봅니다...
 

중국 한漢 왕조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그 지역에 설치했던 낙랑군을 근대적 시각에 입각해 식민지로 규정하고, 이를 타율성론他律性論의 정립 차원에서 적극 활용하였던 것은 바로 일제 식민사학자들이었다. 2,000여 년 전 중국왕조의 일시적인 영역 확장이 우리 ‘민족’의 기원을 부정하고 한국사의 시초를 식민지로 만든다는 발상은 현재 역사학계에서는 전혀 통용되지 않는다.

유사역사학자들의 행태는 학문과 교육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함으로써 우리 사회를 전체주의로 몰아갈 위험이 크다. 우리 사회의 ‘건전한 지성’을 유지하고 국가권력과 쇼비니스트chauvinist들의 결탁을 통한 역사왜곡 사태가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시민들 각자의 보다 성숙한 역사인식과 경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요컨대 탈실증주의는 과학이 지식을 얻는 특권적 방식이 아니며, 그저 서구 문화의 창조 신화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 비판이론,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구조주의, 해체주의를 비롯해 수많은 ‘주의’가 이 시기 동안 발생하게 되었다.

종교를 이유로 과학에 반대하는 창조론자들을 강력히 비난한 굴드는 아이러니하게도 정치적 이유로 과학에 반대했다. 덧붙이자면 굴드가 비판한 창조론자들은 여전히 과학계에서 진화에 대한 논쟁이 진행 중이라며 유전자 결정론에 대한 굴드의 공격을 언급하곤 한다.

정치적 의제를 알리는 데 관심이 있는 급진적 좌파들이 학계로 진출하면서 학문의 가치가 의심받기 시작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급진적 좌파들이 자신과 비슷한 정치적 성향을 지닌 학자들하고만 연대하며 예술과 인문학이 늪에 빠졌다는 것이다.
이후 급진적 좌파는 사회과학 분야에도 발을 들이기 시작했는데, 특히 과학적 방법론이 엄격하게 적용되지 않는 분야를 공략했다. 철학, 정치학, 사회학, 심지어 심리학과 인류학까지 전쟁터가 되었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주관성을 강조한 결과, 급진적 좌파들에 의해 기이한 주장들이 제안되었다. 그 예로 서구 문명이 아프리카에서 훔쳐온 것이라는 아프리카 중심주의,39 수많은 반증에도 불구하고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생태학적으로 조화롭고, 이웃과 평화로운 삶을 살았다는 주장,40 인도-유럽 문명 이전에 여성들이 이끄는 평화로운 페미니스트 신이교neopagan 문명이 존재했다는 주장41을 들 수 있다.

쿤은 패러다임이란 공약불가능incommensurable하며, 새로운 패러다임이 이전의 패러다임을 대체한다고 믿었다. 그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뉴턴의 이론이 틀렸다고 인정할 때에만 받아들여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쿤이 하버드대학교에서 뉴턴의 운동법칙을 가르쳤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는 놀라운 주장이다.2 사실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이론을 발전시킨 것이지 대체한 것이 아니다.

귀납-연역적 추론과 반대로, 가설-연역적 추론은 관찰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그 원인에 대한 가설을 세운다. 우리는 가설과 초기 조건을 바탕으로 전제를 세우고 이로부터 특정한 의미를 이끌어낸다. 이러한 방법으로 연역된 내용에는 새로운 예측도 있을 수 있다. 창의적 과학에서 가설-연역적 추론은 상상력과 비판력 사이에서 벌어지는 탐구의 대화다. 가설을 수립하는 데 상상력이 동원된다 해서 이 과정이 비논리적illogical인 것은 아니다. 대신 ‘논리적 과정이 아닌 방식non-logical’으로 형성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가설이 수립되고 나면 이 가설은 비판의 칼날 아래 놓인다.9

아직 완전히 이해된 것은 아니지만 DNA 내에 단백질 정보를 담지 못한 부분에 그 열쇠가 있는 것 같다. DNA의 거의 90% 가까이는 단백질 만드는 것과 상관없는 염기서열이다. 중심원리의 관점에서 보면, 이 부분은 있으나 마나 한 부분이다. 아마도 교차돌연변이에나 쓸모 있는 쓰레기장 같은 거다. 그래서 정크 DNAjunk DNA라 부른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부분이 DNA에서 발현의 결정에 관여한다.

생명은 자신을 복제한다. 자신에 대한 모든 정보를 DNA에 저장해두고 이것을 복제한다. 복제의 전 과정은 물리적이다. DNA로부터 자신을 만드는 과정 또한 물리적이다. 과정에 참여하는 개별 원자와 분자들은 열운동을 할 뿐이다. 모든 과정은 양자역학에 따라 진행된다. 하지만 생명이 왜 자신을 복제하려고 하는지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한다. 생명은 왜 영원히 존재하길 바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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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14 16: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0-15 14: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난처한 클래식 수업 3 - 바흐, 세상을 품은 예술의 수도사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 3
민은기 지음, 강한 그림 / 사회평론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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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위법... 어려울 거라는 예감이 드는 이름이에요. 지금은 ‘엄격한 작곡 기법이구나‘ 하는 정도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간단히 말해서 음과 음이 어울리려면 그 간격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정리한 법칙이에요. 어렵다기보다는 따져야 할 게 많다고 할까요? 대위법에 따라 선율을 만든다는 건 마치 1 더하기 1의 답을 구하는 것처럼 분명한 문제입니다. 맞는 답이 있고 틀린 답이 있죠. _ 민은기,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 3 : 바흐, 세상을 품은 예술의 수도사>, p241

바흐를 주제로 한 <난처한 클래식 3>을 본 것은 바흐의 음악에서 표현되는 대위법과 평균율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때문이었다. 대위법을 주제로 한 강의나 전문서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배경지식이 없는 일반인이 이해하기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기에 찾아든 교양서적이 <난처한 클래식 3 : 바흐>. 본문에서는 바흐의 일생을 따라가면서 각 시대를 구분하고,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을 소개하며, QR코드를 통해 음악을 감상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예전에 읽었던 롤랑 마뉘엘의 <음악의 기쁨>을 더 시각적, 청각적 도구를 활용해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한 느낌을 받는다.

<난처한 클래식 3 : 바흐>에서 내가 궁금한 부분에 대한 설명은 일반인이 음악감상에 지장이 없을 정도에서 살짝 들어간 정도라 아쉽게도 느껴지지만 다른 한 편으로 이해가 된다. 대위법과 관련한 전문서적을 펼쳐보고 바로 덮은 경험이 있기에, 일반독자들이 클래식을 부담스러워하지 않도록 난이도 조절을 하기란 쉽지 않을 테니. 아쉬운 부분은 다른 책에서 찾아 봐야겠지만.

점차 음악가들 사이에서 그냥 한 옥타브를 똑같이 열두 부분으로 쪼개어 음을 정하자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이게 바로 평균율이에요. 평균율의 요점은 다른 음정들의 순수성은 포기하고 ˝옥타브의 순수성만 완벽하게 지키자˝는 겁니다. 도는 1, 한 옥타브 높은 도는 1/2로 놓고 그 사이에 있는 음들은 정확하게 똑같은 비율로 높아지게 만들면 조를 옮길 때 문제가 없으니까요. _ 민은기,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 3 : 바흐, 세상을 품은 예술의 수도사>, p352

<난처한 클래식 3>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아래 구절이다. 책, 음악, 미술 그 어떤 것이든 우리가 알고 싶고 느끼고 싶은 그 무엇이 있다면, 그리고 그 무엇을 ‘실체‘라 했을 때, 나는 그 실체를 알기보다는 그 실체를 잘 나타내려는 노력과 노력의 결과물인 지식을 쫓아다는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반성이다. 바흐 음악 자체보다 ‘대위법‘과 ‘평균율‘이라는 수학적 질서에 대한 궁금증도 중요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바흐 음악에 대한 사랑이 있었을까 하는.

사실 우리 강의에서 가장 중요한 건 비발디의 <봄>에서 어떤 부분이 새소리를 묘사했다는 지식 같은 게 아닙니다. 당연히 그런 지식이 음악에 흥미를 갖게 하고 핵심에 빠르게 다가가도록 도움을 줄 수 있지요. 하지만 <봄>이라는 곡의 근본적인 가치가 새소리를 잘 묘사하는 데에 있을까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새소리를 듣고 싶으면 새소리를 들으면 되고, 시를 감상하고 싶으면 시를 읽으면 되겠죠. 물론 음악으로 시나 새소리를 모방하는 걸 듣는 재미가 없다는 이야긴 아니에요. 저는 이 곡이 시 없이도 사람들에게 환희와 즐거움을 불러일으키기에 이만큼 사랑받고 중요하게 여겨진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우리가 이해하고 싶은 건 바로 음악의 그 본질적인 부분입니다. _ 민은기,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 3 : 바흐, 세상을 품은 예술의 수도사>, p241

<난처한 클래식> 시리즈를 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 제시된 문장이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제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기존의 순정률의 틀에서 벗어나 평균율의 지평선을 연 바흐지만(참, 지평선이 아니라 지평이었지) 하프시코드의 틀에서 벗어나 피아노의 세계를 열지 못했던 한계를 보면서 우리가 갖는 인간적인 한계를 다시 느끼게 된다.

프리드리히 2세는 바흐와도 친분이 있었던 악기 제작자 질버만이 만든 피아노 포르테를 몇 대 소장하고 있었는데요, 먼 길을 온 바흐에게 그 피아노포르테의 소리가 괜찮은지 한번 쳐보라고 했대요. 이때 바흐가 피아노포르테를 쳐보고 ˝이 정도 음량으로는 하프시코드랑 비교했을 때 경쟁력이 없습니다˝라고 얘기하죠. 피아노의 역사에서 꼭 등장하는 에피소드입니다. _ 민은기,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 3 : 바흐, 세상을 품은 예술의 수도사>, p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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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10-14 09: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에 기타 치던 친구가
피아노 전공한 친구에게
대위법 배웠다는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음악하는 이들도 공부를 해
야 하는구나 싶었답니다.

겨울호랑이 2022-10-15 14:40   좋아요 4 | URL
서양학문의 어느 분야이든 조금만 깊이 들어가다 보면 수학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참 많이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예전에(지금도 그렇지만) 수학, 영어 비중이 그렇게 높았구나 싶습니다.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영어가 필요했고, 전공을 깊이 있게 파기 위해서는 수학을 안 할 수 없는.... 그런 면에서 유럽 문명을 단순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영어, 수학 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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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gel 대논리학 1 : 객관적 논리학 1부 존재론
게오르그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지음, 임석진 옮김 / 자유아카데미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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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논리학
게오르그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지음, 전원배 옮김 / 서문당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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