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쿼소니에 따르면, "어떤 국가가 충분한 양의 핵분열성 재료를 보유한다면, 핵폭탄 제작까지 6개월이면 충분하다." 따라서 이란 역시 농축 우라늄을 일정량 보유하면, 잠재적 핵 강대국이 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독일, 영국은 2015년 이란과 협정을 맺고, 이란이 군사용 핵 프로그램 개발을 중단하고, 농축 우라늄 비축량을 축소하는 조건으로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를 해제하기로 했다. 


 프랑스 외교관으로 일했던 마크 피노 제네바 안보정책센터 부교수는 "그런 가운데, 민간용 핵을 이용해 잠재적 강대국이 되고 필요하면 군사용으로 신속하게 전환 가능하다는 이란의 사례를 다른 국가들도 열망하게 됐다"라고 분석했다. 피노 교수는 핵 기술은 일종의 특권이라는 사실도 지적했다. 이 때문에 핵 기술을 보유하려는 국가들이 늘고 있다. _ <르몽드디플로마티크 2022.10> <핵무기를 향한 아랍 국가들의 열망> 中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Le Monde Diplomatique 2022.10>에서는 이미 핵(核)보유국인 이스라엘 외에도 핵보유를 희망하는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등에 대한 기사가 다루어졌다. 북한과 이란의 핵개발 관련 기사가 이제는 낯설지 않지만, 그럼에도 눈길이 가는 것은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핵위협 문제, 우리나라 대통령의 전술핵 관련 발언때문일 것이다. 최상위 비대칭 전력이라 할 수 있는 핵무기를 배치하자는 (전시작전권은 없지만) 국군최고통수권자의 발언처럼 전술핵무기는 과연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을까?


 미국이 소련과 핵전쟁을 벌인다면 아마 그것은 틀림없이 소련이 먼저 미국을 공격했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전쟁 초기 단계에 전략 핵무기가 오가지는 않겠지만 머지않아 그 단계로 확대되어갈 것이다. 대서양 동맹의 방어 전략은 전쟁이 단계적으로 확대되어 무자비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가정 아래 수립된다. 전쟁이 단계적으로 확대되는 모습을 나타내는 은유적인 공식 표현은 '억제의 체인', '억제의 망', '억제의 연속' 따위다. 새로운 미사일이 배치되면 이 체인, 망, 연속이 완성된다. _ 한스 모겐소, <국가 간의 정치> , p203


 한스 모겐소(Hans Joachim Morgenthau, 1904 ~ 1980)는 <국가 간의 정치 Politics Among Nations>에서 핵무기를 국제 정치의 한 요인으로 설정하고 별도의 장(章)에서 이 문제를 다룬다. 이에 따르면 미래의 핵전쟁 양상을 두 강대국의 충돌에서 촉발하는 것이 아니라, 양 진영의 변경에서 재래식 무기에 의한 국지전 양상으로 벌어진 군사충돌이 점차 확전(擴戰)을 보이면서 강대국간의 전략핵무기 사용으로 이어질 것이다. 물론, 이러한 냉전 시대의 논리가 오늘날 그대로 이어지기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지역 내에서 한 국가의 전술핵보유가 주변국의 전략핵보유를 자극할 것임은 너무도 분명할 것이다. 


 우리 시대 최악의 핵 공포가 현실로 나타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모든 수준에서의 억제가 필요하다. 따라서 전술적 전역 핵무기가 사용되지 못하도록 재래식 전쟁은 포기되어야 하며, 전략 핵무기가 사용되지 못하도록 전술 핵무기가 포기되어야 한다. 그리고 전략 핵무기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포기되어야 한다. _ 한스 모겐소, <국가 간의 정치> , p205


  20세기 중반 핵전쟁으로 가장 가까이 접근했던 시기로 평가받고 있는 쿠바 미사일 사건. 흔히 케네디(John Fitzgerald Kennedy, 1917~1963)의 대범한 승부수에 흐루쇼프(Nikita Sergeyevich Khrushchev, 1894~1971)가 굴복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소련 또한 이를 통해 성과가 있었던 것은 협상으로 갈 수 있을 정도의 핵전력을 보유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전술핵보유는 전략핵보유으로 가는 징검다리에 불과하며, 어중간한 비대칭전력의 보유는 러시아, 중국의 정밀타격지점에 추가 되는 이상의 의미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게임이론(game theory)에서 안정적으로 효과적인 전략이 바로 보복전략(Tit for Tat)이라는 점에 근거한다. 


 20세기에 세계의 강대국들이 벌였던 가장 위험한 대치상황을 1962년 10월에 옛 소련이 쿠바에 핵미사일을 반입하려고 한 시도라고 말하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게임이론의 관점에서 흐루시초프와 케네디가 직면하였던 상황은 성과행렬로 요약할 수 있다... 사실상 이 위기에 대한 대부분의 사람들의 기본개념은 두 강대국이 '충동선'상에 있었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지금까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실제로 취해졌던 의사결정은 봉쇄와 철수였으며, 이는 쿠바 미사일 위가라고 일컬어지는 협상의 결과로 귀착되었다. 소련이 쿠바에서 미사일을 철수하도록 함으로써 게임에서는 미국이 '승리'한 것 같은 일면이 있기도 하지만, 소련도 케네디 대통령으로부터 쿠바를 침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얻어냈기 때문에 위기의 결말이 실제로는 일종의 협상이었던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_ 존 L. 캐스티, <20세기 수학의 다섯 가지 황금률>, p52


 상대에게 당했을 때, 그 이상의 피해를 안길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보다 상위의 젼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으며, 이러한 인식이 보편화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TFT전략의 관대함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극단적으로 전세계 모든 나라가 핵무장을 했을 때, 세계평화가 온다는 것은 TFT 전략을 극한으로 밀어붙였을 때의 결과값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나가도록 기존 핵보유국들은 지켜보고 있을까. 


 '이에는 이, 눈에는 눈(Tit for Tat : TFT)'류의 전략에서 중요한 것은 경기자가 배신에 의해 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보복의 위협은 항상 존재해야 한다. 보복할 수 있음을 과시하는 것은 '우리도 살고 남도 살리자' 방식의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TFT류 전략의 중요한 특징은 관대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이미 살펴본 대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장기간의 상호 보복이 연쇄를 진정시키는데 한몫한다. _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 p481/754


 상대보다 우월한 지위를 점하기 위한 군비 경쟁의 가속화에 대해, 자신들의 선도적 위치를 놓치지 않으려는 핵보유국들의 '사다리 걷어차기'는 '세계평화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이어질 것이다. 자신의 핵우산 밖으로 일본과 한국이 나가기를 바라지 않는 미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북핵개발의 또다른 수혜자는 바로 한국이다. 


 핵무기 경쟁은 서로를 몹시도 두려워하는 신중한 정부가 운영하는 두 초강대국에만 제한되지 않고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모든 국가가 때때로 바보와 악당의 손에, 심지어는 이들 모두에 의해 지배되어왔음을 역사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보와 악당, 심지어는 이들 모두가 핵무기를 보유하고, 핵전쟁이 피할 수 없게 되어버린 상황을 한번 상상해보자. 이것이 바로 일반화된 무제한 핵무기 경쟁이라는 역동적 현상 속에 내재된 실제 핵전쟁의 피할 수 없는 위험이다. _ 한스 모겐소, <국가 간의 정치> , p206


 아무리 성조기를 들고 집회에 나가서 '미국만세'를 외치더라도, 그들이 보기에 한국은 북한 핵개발의 드러나지 않은 수혜자이며,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그런 미국이 과연 한국의 독자적인 핵무기 보유를 승인할 것인가.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한국 내 핵무기가 들어온다면 그 통제권은 미군에게 있을 것이며, 우리는 러시아-중국 대륙간탄도미사일의 첫번째 목표가 되는 이상의 의미가 없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술핵배치를 주장하는 속내는 무엇일까.


 한국은 핵무기를 지역적 이해의 구도에서 파악했다. 다수의 한국인들은 북한의 핵무기를 한민족의 핵무기로 이해했다. 핵폭탄을 같은 동포의 머리 위에 떨어뜨릴 리는 만무하므로 일본과 그밖의 잠재 위협 세력으로부터의 한민족의 주권을 수호할 수 있는 좋은 수단으로 북한의 핵무기를 받아들였다. 한국의 관리들과 군 관계자들은 통일 한국의 핵무기 보유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공공연하게 피력했다. 한국의 이해는 잘 반영되었다. 핵무기 개발에 뒤따르는 희생과 국제적 오명은 북한이 짊어져야 하는 반면 한국은 궁극적으로 그것을 승계받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무기와 한국의 발달한 산업이 결합하면 통일 한반도는 동아시아 무대에서 실력 국가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다질 수 있을 것이다. _ 새뮤얼 헌팅턴, <문명의 충돌> , p151/289


 새뮤얼 헌팅턴의 주장에 영향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남북한이 핵을 공동개발하고 일본과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다는 이야기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소설에서는 무궁화 꽃처럼 피어오르는 버섯 구름이 독자들에게 통쾌함을 안겨줄지 모르겠지만, 현실은 소설이 아니다. 전술핵보유를 위해 미국에게 얼마만큼의 양보를 해야할 것이며, 미국은 북한핵에 대한 우려를 씻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게 한미일 안보동맹을 강요할 것이고, 이러한 역학관계에서 '미국의 전략무기 판매- 일본 군수물자 보급 - 한국 지상군 파병'이라는 전략의 큰 줄기가 쿠릴열도에서 부터 남중국해까지 분쟁지역에 적용될 수 있다는 걱정이 단순한 상상에 그치길 바란다... 

 

지구상의 어느 나라보다도 핵에 대한 공포심이 강한 이들 국민에게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10분 이내에 핵폭탄이 떨어질 것이라는 공습경보는 전국을 아수라장으로 바꾸어놓고 말았다. 부모들은 어린아이들을 안고 울부짖었으며, 어떻게 대피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은 발을 구르며 고함을 지르고 악을 썼다. 거동 못하는 노모를 들쳐업고 여기저기 지하실을 찾아 헤메는 사람, 기운이 떨어져 거리 한 모퉁이에 주저앉아 흐느끼는 사람, 아예 처자를 버리고 큰 건물의 지하로 깊이깊이 숨어드는 사람, 숫제 미쳐버린 사람까지 일본 열도는 순식간에 천태만상의 지옥으로 변하고 말았다. 제2차 대전때는 모르고 당했으니 차라리 나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_ 김진명,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2> , p540/546


PS. 어쩌면 그는 핵을 일단 보유하면 '게임이론'에 따라 노련하게 외교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죄수의 딜레마'에 따라 많은 용의자들을 수사한 경력과 부족한 외교능력을 연결할 고리를 핵에서 찾은 것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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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4 2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0-25 07: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2-10-25 1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술핵 배치를 주장하는 여권의 중진 의원들의 인터뷰를 슬쩍 보고 들을 때마다 바보 아닌데 왜 바보 같은 이야기를 저토록 진지하게 하나... 궁금한 적이 많았습니다. 비극을 머리에 이고 사는 슬픔과 이런 이들과 공존해야하는 현실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낍니다.

<문명의 충돌> 이름만 들었던 책이고 아주 예전(?) 책인줄 알았는데 우리 나라 사례가 저렇게 구체적으로 나오네요.
한 번 찾아 봐야겠습니다. 좋은 글, 좋은 사유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님!

겨울호랑이 2022-10-25 13:42   좋아요 0 | URL
<문명의 충돌>에서 전망한 헌팅텅의 예지가 모두 맞는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세계를 바라보는 미국 엘리트들의 인식틀은 잘 설명해준다는 면에서 여전히 유효한 책이라 생각합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는 김진태 발 채무불이행 선언으로 채권시장이 패닉상태에 빠져들었네요... 안보, 경제 등등 사회 거의 모든 면에서 극히 혼란한 요즘입니다... 단발머리님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누군가에게 무엇이 된다는 것.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고 함께 하는 누군가를 원하는 게 된다. 자신과 맞는 존재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흐르는 시간의 변화를 거치면서도 처음의 맞물림을 어긋남없이 가져가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셀 실버스타인의 <떨어진 한쪽 큰 동그라밀 만나>는 부족함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말한다. 지금의 자신을 유지하고 다른 사람을 통해 보다 완전함에 다가갈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존재가 될 것인가.

어린이들에게 이 물음은 어떻게 읽힐까. 아이에게 물어봐야 하겠지만, 어른들에게 이 질문의 답은 거의 정해졌을 것이다. 스스로 완전해 질 수 있다면, 우리에게 다른 이들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빠르게 읽자면 5분도 안 걸릴 이 책이 남긴 여운은 매우 잔잔하지만, 멀리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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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10-23 16: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께서 리뷰하시는 짧은 동화는, 뭔가 느낌이 다르네요^^ 평소 올려주시던 장르라 달라서 더 오래 기억할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니, 말씀하신대로 어른에게는 답이 어느 정도 정해진 질문이겠어요...

겨울호랑이 2022-10-23 19:2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아이 책장에 있는 책을 꺼내 읽었는데, 많은 문장은 없었지만, 빈 여백만큼 생각할 거리를 받았습니다. 여백미라 해야할까요^^:) 얄라얄라님 평안한 밤되세요!
 

뉴욕 연준의 책임자인 팀 가이트너가 정리해서 전달한 요구사항들에 따르면 9대 은행 모두는 정부 자본에 의한 지분 참여를 어느 정도는 받아들여야 했다. 또한 정부의 지분은 우선주가 될 것이었다. 정부가 요구하는 배당률은 처음에는 낮지만 5년 후에는 높아지는 것으로 설정되었다. 은행이 빨리 정부 지분을 상환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정부의 자본 투입을 승인하는 대가로 은행들의 모든 당좌거래에 대해 FDIC가 보증을 서며 또 2009년 여름까지 발행하는 모든 신규 채권에 대해서는 2009년 말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채권의 125퍼센트까지 보증해주기로 했다. 이 두 가지 내용은 서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정부의 지분 참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FDIC의 어떤 보증도 없었다.

다만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 건 대형 일반 시중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가 예상을 깨고 리먼브라더스가 아닌 메릴린치의 구원 투수로 나섰다는 사실이다.

메릴린치는 리먼브라더스보다 덩치가 더 컸으며 부동산 대출상품과도 너무 깊게 연관되어 있었다. 또한 리먼브라더스와 마찬가지로 투자은행으로서 Repo 시장이 없이는 제 기능을 할 수 없었다. 메릴린치로서는 리먼브라더스가 무너지면 그다음 차례가 될 것이 거의 확실했다.28 그렇지만 리먼브라더스와는 달리 메릴린치의 경영진은 민첩하게 대응했고 뱅크오브아메리카와 직접적인 대화에 나섬으로써 회사를 구해낼 수 있었다.

공화당 하원의원의 3분의 1은 더 이상의 구제금융 지원을 적극 반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협력을 얻을 가능성은 전혀 없었고 3분의 1은 지지기반을 잃을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한쪽은 금융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지는 길이며 다른 한쪽은 납세자들의 파산과 사회주의로 이어지는 길이다. 그런데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지 24시간 안에 대답하라는 것이었다." 텍사스주 출신으로 보수 성향의 공화당연구위원회(Republican Study Committee)를 이끌고 있던 젭 헨설링(Jeb Hensarling)이 기자들에게 분개해서 내뱉은 말이다.

그런데 독일은 왜 그렇게 비협조적이었을까? 결국 독일도 공동기금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취약은행을 비슷하게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독일의 납세자들이 독일이든 외국이든 자기들과 상관없는 문제에 세금을 낭비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냉정한 현실이 그 뒤에 자리하고 있었다. 좀 더 넓은 관점에서 보면 메르켈 총리에게서 독자적 문제 해결과 공동 해결의 차이는 단지 유럽과 미국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유럽연합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정치적 프레임이 안정되지 못한 상황에서 독일 정부는 은행들을 구하겠다고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 막대한 권한을 부여하는 그런 일은 지지할 생각이 없었다.

은행 관계자들과 재무부 관료들이 고민한 문제는 정부의 지원금을 받는 자본재구성 계획을 즉시 강제로 시행할 것인가, 또 만일 그렇게 할 경우 시장이 받는 충격은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이었다. 아니면 자본재구성을 천천히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더 유리할까? 위기에 빠져 있는 은행들은 아마도 끝까지 이를 거부할 것이 분명했다. 어떤 은행도 국가의 간섭을 받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붕괴가 목전까지 다가오는 상황에서도 은행들은 여전히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무엇인지 저울질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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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개입을 불러들인 건 금융시스템 자체의 오작동과 개별 기업들의 실패가 경제 전반에 걸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을 막아낼 수 없었던 불가항력적 상황이었다

전투를 위해 동원된 금융 화력이 너무나 엄청나서 이에 대한 해명은 그 자체로 정치 논쟁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우리가 어떤 기준을 적용하건 상관없이 그 규모가 전례 없이 거대하고 엄청났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이 전투에 투입된 자금은 7조 달러를 넘어섰다고 한다.

국가와 정부가 개입한 주요 방식은 다음과 같았다. (1) 은행에 대출 형태로 자금 지원 (2) 자본재구성(recapitalization) (3) 자산매입 (4) 은행예금, 채무 혹은 심지어 은행의 대차대조표 전체에 대한 정부의 보증. 위기가 발생한 모든 곳에 대해 각국 정부는 이 네 가지 방식을 몇 가지로 결합해 적용할 수밖에 없었고, 여기에 관계된 기관은 중앙은행과 재무부, 그리고 금융 규제 감독청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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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0-23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무슨 큰 잘못을 했나요

2022-10-23 07: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 2022-10-23 22:23   좋아요 0 | URL
겨호님과의 관계가 예전과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2022-10-24 04: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진화는 인간을 비롯한 동물이 살면서 반복적으로 겪는 신체적, 생물학적, 사회적 문제에 대처할 수 있게 하는 적응을 선택한다. 인지 모듈cognitive module은 오랫동안 반복되는 문제에 대한 자극을 감지하고 그것들을 적절한 반응과 연결 짓도록 진화했다. 이런 적응적인 자극·반응 결합은 먹이 보상이 종소리처럼 관련 없는 자극과 짝지어지는 것과 같은 중립적 결합보다 빠르게 형성되고 제거하기 어렵다.

넓은 의미에서 유전자는 "무생물의 물질을 살아 있는 시스템으로 조직하기 위해" 환경과 정보를 교환한다. 이는 발생에서 종결에 이르는 모든 유기체의 과정에서 일어난다. 유전자와 환경의 교환은 생명의 본질이다.
상호작용은 통계적 용어로, 유전자들이 다른 환경에서 얼마나 다른 결과를 갖는지를 기술한다.

자폐증에서 나타나는 전반적인 결과를 보면, 인간이 보편적으로 지닌 표정 인식능력이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오히려 그것은 진화 과정에서 선택된 인간 본성의 기본적인 측면으로 유전적이며, 신경생리학적 토대가 존재한다. 그러나 경험이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한 현재 가설은 생물학적 비정상성이 초기 사회적 발달을 방해하고, 그것이 연쇄적으로 얼굴을 인식하고 반응하며 감정을 드러내는 법에 대한 학습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자폐증은 치료할 수 없지만 개선할 수는 있다. 바로 여기서 학습심리학이 큰 역할을 한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마음에 대한 계산주의 이론과 행동생태학이 결합하여 생겨난 학문으로서, 인간의 마음이 여러 종류의 수많은 적응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본다. 인간은 오랜 진화의 역사를 거치면서 여러 유형의 ‘적응 문제’에 직면했고,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게끔 설계된 마음을 가진 개체만이 진화적으로 성공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라, 특정한 적응 문제(예를 들어, 적절한 음식 찾기, 짝을 찾거나 지키기, 상대방의 마음 읽기, 동맹 만들기 등)를 해결하기 위해 자연선택에 의해 설계되었다는 대목이다(Barkow et al., 1992; Pinker, 1997; Buss, 2015).

여기서 ‘빈 서판the blank slate’의 의미는 마음은 타고난 특성이 없다는 뜻이고, ‘고상한 야만인’은 인간은 선하게 태어나지만, 사회 속에서 타락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기계 속의 유령’은 우리 각자는 생물학적 제약 없이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영혼을 지닌다는 뜻이다.

인간 본성 개념에 대한 가장 강력한 옹호자인 핑커는 인간의 언어, 추론, 수리, 짝짓기 능력 등은 수렵채집기에 우리를 옥죄었던 적응 문제들을 해결하게끔 자연선택에 의해 직접적으로 설계된 적응들이고, 종교, 예술, 창의성, 유머 등은 이런 적응들의 부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찬란한 현대 문명 속에 있지만, 사실은 수렵채집기에 잘 적응된 몸과 마음을 장착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이런 견해를 바탕으로 진화심리학적 인간관이 기존의 인간 본성론과 얼마나 큰 차이를 보이는지 이야기한다.

고통 감수 능력과 언어 능력마저도 인간 본성의 구성요소가 될 수 없다면 대체 어떤 능력(속성)들이 본성이 될 수 있겠는가? 이 질문에 다다르면 우리는 두 갈래의 갈림길을 만난다. 하나는 기존의 인간 본성 개념들이 지나치게 엄격하기 때문에 그것들을 다시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본성이란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 개념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도킨스는 니치 구성론자들의 반론에 대해 그들이 니치 구성construction과 니치 변화change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여기서 ‘니치 변화’란 환경에 대한 유기체의 개입으로 인해 생긴 부산물인 반면에, ‘니치 구성’은 부산물이 아니라 적응이다. 도킨스는 니치 구성을 환경에 대한 개체의 ‘엔지니어링engineering’이라고 표현한다(Dawkins, 2004).

하지만 진화론은 그러한 류의 본질주의적 세계관을 거부하는 듯이 보인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대체로 다음 세 가지 서로 다른 조건들이 만족될 때이다(Darwin, 1859; Lewontin, 1970).
어떤 개체군 내의 유기체들은 다양하다(변이 조건). 어떤 변이들은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이 부과하는 문제들을 다루는 데 있어서 다른 개체들보다 더 적합할 것이다(차별적 적합도 조건). 그러면, 이 변이들은 다른 변이들에 비해 번식기까지 더 많이 생존하거나 더 많은 자손을 남길 것이다. 만일 생존과 번식에 차이를 낳는 그런 특성들이 부분적으로 대물림 가능하면(대물림 조건), 다음 세대의 개체군에서는 그런 이로운 형질들이 더 많아질 것이고 결국 개체군 내의 형질들의 분포는 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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